사토리얼리스트 사토리얼리스트
스콧 슈만 지음, 박상미 옮김 / 윌북 / 2015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도대체 '멋진 룩'이란 무얼까? 2008년~9년 <보그 걸> 잡지 부록인 <The Vogue Girl Book Of World Street Style>시리즈와  <The Sartorialist>시리즈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특히 <보그 걸> 부록인 스트릿 사진집 시리즈는 정말 평소 내가 좋아하지 않는 룩만 잔뜩 들어있었다. 정말 '이게 멋진 룩이란 말인가?'란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는 사실.

 

그러면서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내가 한 sns에 올리는 데일리룩 사진도 '별루에요', '이상해요'라고 하는 사람들의 댓글들. 이들 역시 내가 저 사진 화보집을 보고 든 생각과 동일한 느낌을 댓글로 표시했다는 걸 말이다. '멋지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개인의 취향을 반영하기 때문에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일깨우게 된다.


그런데 '패션'에서는(스타일이 아니라 패션이다) 어떤 권력을 가진 자의 평가가 대중의 판단을 마비시키는 것 같다. 아니 '패션 권력'(광고주라든가 브랜드 매니저 또는 패션 기자 등 패션 관련 전문가)을 가진 자가 대중에게 이미지를 강요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거. (뭐, 어렵게 말하면 브르디외가 말한 아비투스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보다 사진을 보는 게 훨씬 이해가 빠르겠다. 한 동안 인터넷에서 회자됐던 박지성 수트 사진(2장)부터 봐 보자.

 

 

 

 먼저 스포츠 조선 사진은 2012년 현대오일뱅크 K리그를 관람하기 위해 수원월드컵경기장을 찾은  박지성의 수트 패션이다. 간만에 수트를 입은 박지성의 저 사진에 대해 기자는 '빅버드에 온 박지성, 블랙수트가 깔끔해'라는 타이틀을 붙였다.


다음 사진은  2015년 서울 모터쇼에 수트를 입고 참석한 박지성의  모습이다. 이게 데일리안에 실렸는데, 이상우 객원기자는 '콜린퍼스 못지 않네'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두 사진 속 박지성의 수트 핏은 정말 아니었다. 아무리 비싼 수트라고 해도, 박지성이 수트를 입은 게 아니라, 수트가 박지성에게 입혀져 있는 듯 보였다. 근데, 깔끔하다니느니, 콜린 퍼스 못지 않다는 평가는 우습기 짝이 없다.


더 웃긴 건 이 사진들을 보고 네티즌들이 한 마디 씩 하는 거였다. '남자는 역시 수트빨', '수트도 잘 어울리는 박지성', '정말 멋진 수트룩' 등등 상찬이 이어졌다.


영화 킹스맨을 본 사람은 알겠지만, 콜린 퍼스의 수트 입은 모습은 그냥 엘러강스 그 자체였다. 더블 브레스트 수트를 킹스맨의 콜린 퍼스만큼 멋지게 입을 수 있는 배우는 정말 드물다고 생각한다. 아니 영국과 이탈리아 전체를 뒤져도 그리 많지 않을 거 같다. 그런데 박지성의 수트 룩이 콜린 퍼스 못지 않다니,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다. (영화 본 사람 중 나만 그리 생각하는 건가~--;;)

 

 

 

정말 미심쩍은 사람들은 위 박지성의 수트 룩과 콜린 퍼스의 수트 룩을 비교해 보면 그냥 답이 나오지 않을까. 박지성의 수트는 보면 볼수록 어색하다. 그 이유는 아마도 박지성이 수트를 그리 많이 입을 일이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축구선수로 그라운드를 누비는 것이 삶의 가장 중요한 것이었으니. 그에게는 맨유 유니폼이 곧 박지성의 아우라를 발산하는 룩 자체였을 것이다.


그런데 위 사진에 나온 박지성을, 기자들은 박지성이 맨유에서 플레이하던 아우라의 후광으로 덧입힌다. 전혀 멋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콜린 퍼스 못지 않다고 한다. 당시 나온 남성 잡지에서도 수트 입은 박지성을 등장시켜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멋진 수트를 강조했다. 물론 박지성이 입은 수트는 일류 브랜드다. 하지만 단언컨대 박지성의 수트 룩은 어색했다.(요즘 박지성의 수트 룩은 정말 많이 나아졌다)


이런 현상을 곰곰 생각해 봤다. 우리나라는 한 가지 분야에 유명하면(전문가이면) 두루 그 영향이 파급되는 것 같다. 영문학을 전공한 사람이 사회비평 전문가로 행새할 수 있는 나라가 우리나라니까. 변호사가 TV에 몇 번 나오면 수입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나라니까. 그러니 유명인이 입은 유명 브랜드 수트는 당연히 멋있겠지. 아니, 그렇게 보이도록 포장해야 겠지. 그게 광고의 목적이니까.


하지만 이 주제에 대해 내 시름을 더 깊게 한 건 스콧 슈만의 그 유명한 <사토리얼리스트> 스트릿 화보집을 보면서이다. 스콧 슈만은 스트릿 사진의 유명세로 미국에서 권위 있는 사진상을 수상하고, 여러 광고 매체뿐 아니라 여러 곳에서 강의하는 유명 인물이 됐다. 내가 본 그의 첫 사진집은 그를 유명하게 만들어준 아주 중요한 사진들이 대거 들어가 있는 스트릿 사진의 보물창고였다.


단 2장의 사진때문에 나는 위의 문제를 좀 더 깊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취향은 아비투스인가?',  '멋지다는 경계는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아주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야 했다.

 

 

문제의 사진들이다.  <사토리얼리스트>(월북, 2014)를 펼쳐 넘기다 보면 400페이지와 358페이지에서 이 사진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이 카드를 보고 있는 알라디너들은 위 두 장의 사진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 모르겠다. 난 처음 볼 때, '이사람들의 사진이 왜 이 화보에 실려있는 거지?'라는 생각을 했다. (이 외에도 이런 생각이 들게 하는 사진은 꽤 있었다. 멋있다고 보이지 않아서)

 

 

나는 저 사람들이 누군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저 룩을 보고 내리는 평가가  가장 정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다. (이게 대중의 평가다. --;;) 물론 옷이 그 사람이 누구인지 말해준다고 하지만, 이건 그와 몇 마디 나눠보고 난 후에야 알 수 있다. (난 적어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야 룩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이 두 사진을 갖고 여러 사람들에게 보여줬다. 패션에 대해 잘 모르는 40~50대 이상의 장년층에게. 10이면 10 그냥 평범한 일반인의 룩으로 보았다. 이중 일부는 첫 번째 사진을 보고 공산당원 같다는 생각을 표했고, 두 번째 사진은 모두 왠 거지 사진이냐고 했다. 패션을 전공했던 한 여성분은 후자를 그런지룩을 구현한 것 같다고 했다.


사진을 처음 펼쳤을 때, 나 역시 이들 생각과 대동소이했다. 슈만의 글을 보기 전까지 말이다.


"로버트는 패션 편집자들 중에서 다음 시즌의 모습이 가장 기대되는 사람이다. 그의 스타일은 결코 고급스럽지 않으며 꼼꼼하게 신경 쓴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는 진정으로 옷을 입고 있고(옷이 사람을 입은 것이 아니라) 옷 자체가 멋있다기보단 그 자신이 옷을 멋있게 만든다. 흔히 이렇게들 말한다. 여자들은 가장 최근에 산 옷을 좋아하고 남자는 제일 오래된 옷을 좋아한다고. 로버트가 바로 그런 남자가 아닐까. 이번 시즌 패션쇼에 올라가는 옷을 입기 보단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질감과 색을 조화시키는 데 관심이 있는 그런 남자이다." (p400)


첫 번 째 사진에 대한 슈만의 글이다. 사진 속 인물이 로버트다. 원래 옷을 잘 입고 옷에 대한 전문가적 인식이 있는 사람이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질감과 색을 조화시켜 입은 룩이 바로 저 사진이다. 옷 자체가 멋있다기 보단 그 자신이 옷을 멋있게 만든다는 해석도 부가하면서 말이다. (정말 그런지 10번을 봐야 했고, 그냥 그렇다고 설득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첨 느낌은 어디로 간거지??)


한 마디로, 옷에 대한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 전략적으로 입은 거라는 게 슈만의 설명이다. 두 번째 사진의 설명은 더 혼란스럽다. (사실 두 번 째 사진이 첫 번 째 사진 앞에 있었던 거다.)


"거리에서 사진을 찍을 때 나는 최대한 멀찍이 떨어져서 대상을 살피는 편이다. 그래야 눈에 포착된 사람을 찍을지 말지 결정할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되기 때문이다. 멀리서 걸어오던 이 신사를 발견한 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 남자가 점점 내 쪽으로 다가와 시야에 명확히 들어왔을 때 내 머릿속은 '저 사람이 거지일까 아니면 좀 특이한 사람일까?'하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에겐 사람들이 흔히 호보 쉬크(hobo shic; 호보는 집 없는 부랑자라는 뜻으로, 호보 쉬크는 의도적으로 그런 사람들처럼 입는 스타일. 찢어진 스타킹이나 바지, 언뜻 보기에 마구 겹쳐입은 스타일 등이 그 예)라 부르는 요소가 상당수 있었다. 수염, 눌러쓴 모자, 그리고 기워 입은 카키 바지까지. 그가 바로 내 눈앞까지 왔을 때에야 비로소 그의 수염이 완벽하게 손질된 것이고, 카키 바지도 너무 멋들어지게 기워졌으며, 전체적으로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빈틈없이 '허름'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알고 보니 그는 랄프 로렌의 통합 서비스국에서 일하는 사람이었다. 이 사진을 찍고 1년 후 단지거 프로젝트 갤러리에서 열렸던 내 첫 개인전에 이 사진을 넣었는데, 이 전시를 본 한 신문 비평가는 '옷을 잘 입는 사람들과 함께 집 없는 거지 사진도 넣어 보기 좋았다'라고 평했다. 그 비평가에게 아마 그 '거지'가 당신보다 두 배는 더 벌 거라고 말할 자신은 없었다." (p358)


'멋진 룩'을 판단하는 아주 중요한 단서가 슈만의 설명 속에 들어있다. " 그 남자가 점점 내 쪽으로 다가와 시야에 명확히 들어왔을 때 내 머릿속은 '저 사람이 거지일까 아니면 좀 특이한 사람일까?'하는 생각으로 가득했다."는 부분이다. 패션 전문가인 슈만의 눈에도 룩만 보았을 때 그가 거지처럼 보였다는 고백이다.


바로 이어진 설명 "그가 바로 내 눈앞까지 왔을 때에야 비로소 그의 수염이 완벽하게 손질된 것이고, 카키 바지도 너무 멋들어지게 기워졌으며, 전체적으로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빈틈없이 '허름'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알고 보니 그는 랄프 로렌의 통합 서비스국에서 일하는 사람이었다." 알고 보니, 그가 의도적인 거지 차림을 했다는 거고, 결정적인 정보가 뒤따라 온다. 그가 랄프 로렌의 통합 서비스국에서 일하는 사람이었다는 거.


그러니까 '쉬크함', '엘레강스' 등의 표현은 룩(기표)가 아닌 그 이면의 기의(시니피에)로부터 나옴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타자는 '주체의 전략'을 좀처럼 알 수 없다. 나는 네가 아니기에, 네 생각이 뭔지 거의 알 수 없다는 거다. 이게 '개인주의가' 태동된 근대의 기반이다. 개인주의가 깊어질수록(사실 패션은 이 개인주의의 극단화 중 하나다) 타자를 헤아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전문가인 슈만조차도 그의 직업을 알기 전까지 '거지가 아닐까'생각할 정도였으니까. 그가 비평가에게 말해주고 싶어했던 확신에찬 그 결정적 근거도 사진 속 인물의 직업이었다. 랄프 로렌 통합 서비스국에서 일하는 사람이다! 그 정도의 사람이니까 의도적인 호보시크 룩을 선보일 수 있었다는 거!


결국 슈만에 따르면, '패션 권력'이 그 룩을 멋지게 만드는 것이다. 이건 느낌이 아니라 해석이다. 우리는 겉만 보고 주체의 의도를 전혀 감지할 수 없기 때문에(물어 보지 않는 이상 나는 모를 거라고 확신한다), "옷을 잘 입는 사람들과 함께 집 없는 거지 사진도 넣어 보기 좋았다"라고 평론가처럼 말할 수밖에 없다. 이게 정상이다.


결론적으로 스트릿 룩에서도 '멋진 룩'과 그렇지 않은 룩의 경계는 권력의 귀속 여부다. 슈만의 눈과 해석이 '멋진 룩'을 만드는 거다. 대중의 생각과 느낌?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패션 권력의 눈과 해석 그리고 전략이 '멋진 룩'을 결정한다. 슬프게도 이걸 부인할 수 없을 거 같다.


젠장, 패션에 있어, 취향도 결국은 아비투스였구나...취향의 해체는 언제나 등장할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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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3-18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위의 모든 사진을 통틀어서 거지룩이 가장 멋있어보입니다.. 제 스타일이기도 하고요..

cyrus 2016-03-18 12:17   좋아요 0 | URL
거지룩에서 파생되어 나온 빈티지 패션 스타일이 벼룩입니다.

yamoo 2016-04-05 20:34   좋아요 0 | URL
아, 곰발 님 취향이실 거 같네요..^^;;

근데, 벼룩 스타일은...ㅋㅋㅋㅋㅋ

순오기 2016-03-18 0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지성 수트발을 콜린 퍼스와 견주다니...수트에 대한 모독으로 생각됩니다요.ㅠㅠ

yamoo 2016-04-05 20:34   좋아요 0 | URL
그렇죠~?^^ 저도 순오기 님 생각에 동감 합니다요~!ㅎ

stella.K 2016-03-18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 평점이 놓더라구요. 역시 야무님도 높은 점수를 주셨네요.
옷에도 그 사람의 성격이나 취향이 베어있긴 하죠?
대충 입은 것 같은데 뭔가가 묻어나는 그런 연출이 정말 좋은 건데 말입니다.
저는 옷 가지고 이렇게는 못 쓸 것 같습니다. 대단하셔요!

그런데 저 왼쪽의 박지성 사진은 어깨 같습니다.ㅋㅋ

yamoo 2016-04-05 20:36   좋아요 0 | URL
슈만의 이 책은 사진 집으로서 최고의 경지를 보여주는 거 같습니다. 슈만의 사진 가운데 좋은 것만 엄선해서 첫 책으로 묶인 것인데...슈만의 사진들 중 최고중의 최고만 모여있는 것 같습니다..ㅎ

이 책 살 가치는 충분합니다...스텔라 님도 한 권 비치해 두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