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교수가 그랬다. 한국에는 근대가 없다고. 그래서 우리 철학은 서양의 존재론(개인의 탄생)과 같은 철학이 없다고. 그 위대한 다산의 사상조차도 민본이 왕도정치를 구현하기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역설한다.

우리는 서양과같은 철학(일명 서구의 근대철학)을 발전시키지 못한 상태에서 근대를 맞이하여 우리는 서양의 근대를 배울수밖에 없다고.

개인적으로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학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 여러번 곱씹어 봤다.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다. 일제가 우리에게 식민사관을 세뇌시킬 때 그렇게도 마르고 닳도록 말해왔던 거와 대동소이하다.

 

그런데 과연 우리 철학에서 근대는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나? 그 교수는 매우 확신에 찬 목소리로 그렇게 잘라 말했다. 그렇기에 자기는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고. (독일이나 프랑스 영미 등 서구로 유학을 떠나 그곳에서 박사를 받고 돌아온 학자들이 이 교수와 비슷한 논조의 말을 하곤 했다.)

 

일제에 의해 단절된 우리의 자생적 근대가 없었다고 할 수는 없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조선 후기 이앙법과 광산업의 발달로 인해 축적된 자본은 근대자본주의의 맹아였다.

 

이에 발맞춰 사상면에서도 우리는 주체적으로 서양의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세계 기독교 포교사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만 선교사에 의해 교구가 확립되지 않은 나라였다.

 

뿐만 아니라 빅지원이나 박제가 그리고 최한기 같은 철학자들은 당시 실학(후대에 붙여졌지만)이라는 학풍 속에서 우리 나름대로 근대의 맹아적 사유를 하고 있었다.

 

물론 체제(왕정)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 근본적 사유는 프랑스 혁명 이후의 민본 사상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프랑스혁명 이후 나폴레옹 시대는 전제시대 였다. 그 시대에 전개된 근대적 사상이 제정 시대라서 한계가 있다는 논리는 거의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유독 다산 사상을 말하면서는 전제 시대의 한계 운운한다. 물론 다산이 주장하는 왕도정치가 유학의 범주 내에 있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사상은 시대의 산물이다. 어찌 됐건 한 개인은 그 시대의 개념으로 사고해야 하는 숙명을 타고났다. 그렇기에 그 한계 내에서 한계를 넘어서려고 하는 시도는 그래서 중요하다.

 

다산은 왕도정치 내에서 서구 근대 자유민주사상에 가장 근접한 사유를 한 사상가였다. 방점이 어디에 놓이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겠지만 나는 다산이 왕도정치 내에서 개혁정치를 구상한 한계보다는, 그 한계 내에서 백성에 근본을 두는 정치 체계를 설계한 것 자체의 의의가 크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다산의 <원목>과 <탕론>에 다산 정치철학의 핵심이 담겨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사상의 핵심이 왕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민(民; 백성)에 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서구로 유학갔다온 학자들은 다산의 한계로써 항상 그 사상의 한계를 왕도정치에만 둘까. 그리고 그 연장선에서 항상 근대의 부재를 들먹이는 것일까.

 

우리나라의 근대 부재를 논하는 책들과 논문을 보면 대체로 위 교수와 비슷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듯하다. 개인이 부재하니 항상 대동과 집단을 논한다고.

 

그래 맞는 거 같다. 그런데 우리는 정작 우리의 앞선 시대에서 근대의 맹아를 찾는 시도를 얼마나 했는지 묻고 싶다. 우리가 부지불식 간에 쓰고 있는 각종 기본적인 개념들은 유학, 도학 그리고 불교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다음과 같은 개념어 들이 그 예이다. '찰나(刹那; ksana)'는 인도어가 불교 용어로 굳어지고 우리의 일상어에 그대로 흡수된 단어다.  

 

'수유(須臾)',  '신독(愼獨)', '중화(中和)'는 <중용>에 나오는 매우 중요한 개념어 들이다. '귀신(鬼神)'은 <논어>, 여음(餘音)’은 <예기·악기>, '자연(自然)'은 <도덕경>에 있다.

 

도올 김용옥의 동양 고전 역서들을 보면 이런 중요 개념어를 현대에 맞게 잘 풀어 설명해 주고 있다. 이정우의 저서 <개념-뿌리들>은 동양 원전에서 이들 개념어들을 뽑아 사전식으로 편집한 책이다.

 

 

 

 

 

 

 

 

 

 

 

 

 

 

 

    

도올의 동양 고전 역해서들을 읽어보면 우리가 부지불식 간에 쓰는 이들 용어들이 과거로부터 우리의 삶 속에 면면히 이어져 온 것들임을 알 수 있다. 매우 현재적이고 얼마든지 현재의 철학적 성찰을 끌어낼 수 있다.

 

서구 사상의 근본적 개념어들이 헬라어나 라틴어에 있듯이 우리 사상의 근본이 저 유, 불, 도의 경전들에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이들 과거 개념으로부터 근대의 사고를 끌어내려하지 않았다. 한국적 사고로 망국의 설움을 맛보아서 그런지 없애버려야 할 구시대의 사유로 치부했다. 대신 새 시대에 어울리는 사상으로 서구의 근대사상을 여과 없이 수입해다 우리 것인 양 사용했다.

 

칸트의 <순수이성 비판>이 한국적으로 체화되면 한국의 칸트가 되는가? 서구철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그렇다고 한다. 들어보면 얼추 타당한 것도 같다. 칸트를 얼마든지 한국적으로 수용할 수 있고, 이때의 칸트는 독일이 아닌 한국이 체화한 칸트란다.

 

뭐, 듣고 보면 그럴들하다. 하지만 나는 이런 논리에 동의할 수 없다. 적어도 칸트가 한국의 칸트가 되려면 기층민들 대다수가 이해하는데 부침이 없어야 한다. 생활속 사고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 칸트의 연구 업적이 과연 우리 일반인들에게 부침없이, 거부감없이 수용되될 수 있는 수준인가? 일단 '비판'이라는 단어를 이해하는 데도 매우 불편하고 어렵다. 칸트가 자기 이론을 전개하면서 자기가 붙인 명칭에 대한 번역어도 우리말의 개념에서 찾지 못하고 있다.

 

나는 바로 이것이 되야, 다시 말해 서구 중요 개념에 대응하는 우리 개념어(번역된 말) 찾을 수 있을 때에야 그 서양의 철학이 바로 우리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적절한 번역어를 찾을 수 없다면 외래 사상일 뿐 '한국적으로 수용된' 우리 것일 수 없는 것이다.

 

좀더 쉬운 예로 데리다의 '차연'이라는 번역어를 보자. 이 단어는 불어 디페랑을 번역한 것인데, 데리다 전문가들 왈, 데리다가 창안한 이 개념에 완벽히 부응하는 우리말은 없다면서 '차연'이라 번역했다. 어떤 사람은 불어 그대로를 쓰고 있다.

 

데리다 연구가 아무리 쌓여도 이런 상태에서는 데리다의 한국화는 요원하다. 쉽게 말해서 우리에게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은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다시 강조하자. 서구 개념에 대응하는 우리 번역어를 찾을 수 없다면 차라리 번역하지 말자.

 

 

 

 

 

 

 

 

 

요즘 프랑스 철학에 빠져든 사람들을 보면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해 주는 프랑스 사상가들의 독창적인 사상의 전개 때문인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 사상가들이 해 놓은 틀로 문학과 영화를 분석하니, 이전에 말할 수 없는 부분을 건드릴 수 있어 자위에 빠진 듯하다.

 

 

 

 

 

 

 

 

그리고는 이의 연장선으로 사회를 분석하고 진단하는 것까지 나아간다. 한국과 동양 사상은 말할 수 없는 것에는 말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대표적인 예가 <논어>의 '귀신'에 대한 논의일 것이다.

 

우리에게 근대가 없다고 하고, 그런 자괴감에 서구로 눈을 돌려 서구 철학을 연구한 우리 학자들. 광복 이후 70여 년이 흐른 현재 우리 학문은 주체적으로 서구를 수용하지도 못하고 전통 사상으로부터 현대를 이루는 근대의 기본 사상을 끌어내지도 못했다.

 

원효 이후 우리의 전통 사상 속에 근대의 맹아가 담긴 개념들이 분명히 있었음에도불구하고 우리의 노력 부재로 현대화 하지 못했다. 서구 철학을 연구하는 목적이 전통과 단절된 근대를 잇는 노력이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런 시도를 하지 않았다.

 

계속 우리에게는 서구의 근대 개념에 부응하는 '개인'이 없기에 서구의 근대가 없다는 타령만 한 것이다. 물론 전통 사상에서 '개인주인'에 기반한 서구의 근대적 사상은 없었다. 하지만 그네 들이 간과한 좋은 것을 우리는 갖고 있었다.

 

서구 개인주의에 근간한 발전의 결과로 환경 오염과 비인간화 문제가 대두된 건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의 전통을 그대로 계승 발전시켰다면 우리는 현 문제를 최소화시켰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에게 근대가 없었다는 것은 오리엔탈리즘의 산물이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서구의 근대에 대응하는 우리만의 근본 사상을 갖고 있었다. 단지 일제 식민지로 전락하면서 그 연구의 맥이 끊어졌을 뿐이다.

 

요즘 도올의 저서들을 다시 보면서 전통 사상이 얼마나 현대적일 수 있는지 새삼 깨닫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서구철학을 연구하는 방향성에 있었다. 서구의 눈으로 우리 것을 재단하려고 하면 절대 우리 사상에서 현대적인(근대적인) 면을 끌어 낼 수 없다. 

 

<논어 한글역주1>이나 <중용 인간의 맛>을 보면, 서구 철학을 어떻게 공부해야할 지 그 방향성이 보인다. 우리 전통 사상에서 단절되고 계승되지 못하거나 간과했던 부분을 서구 철학을 통해 보충하고 그 의미를 새롭게 다지는 작업. 바로 그것이다. 우리에게 근대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간과하고 있었던 거다.

 

 

 

 

 

 

 

그래서 우리의 전통 사상이 현재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서구철학을 통해 입증해 가야한다. 우리에게 근대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우리의 노력이 부족했음을 직시하고 공부 방향을 제대로 정해야 한다. 그래야 학문의 식민지화(우리에게 근대가 없다는 담론)를 멈출 수 있다.

 

 

 

[덧]

참 두서없이도 썼다. 하지만 김덕영 교수(위의 어떤 교수가 바로 김 교수다)의 말을 다시 상기하는 과정에 이르니 다시 욱하는 감정이 고개를 들어 이성을 조금 잃었다. 그냥 우리에게도 근대가 없었던 게 아니라 있었다..라는 정도만 어필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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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12-04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대가 없었다기보다는 서구 사회에 비해 근대가 짧았다고 생각합니다. 이걸 근대가 없다고 하는 것과 근대가 서구 사회에 비해 기간이 짧다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인데 말이죠. 근대가 없이 진행되었다는 말은 진중권도 말했던 것 같은데.. ( 확실한 건 아닙니다만.. 그냥 들은 것 같은... )

yamoo 2014-12-05 12:59   좋아요 0 | URL
근대가 매우매우 짧았지요. 근대라고 명명할 시기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분명히 우리에게도 서구에서 말하는 근대라는 개념을 논한다면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지식인들이(서구 학문을 전공한 지식인들) 암묵적으로 전제하는 면이 강하여 문제제기를 해 본 것이에요. 곰발님의 생각도 저와 다르지 않은 거 같습니다. 이건 분명히 잘못된 사실을 매우 정설로 지식인들이 생각하는 거 같아...곰발님 정도의 필력을 가진 분들이 제대로 문제제기를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쉽싸리 2014-12-04 22: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국에서 설혹 근대가 없었으면 그게 어떠냐는 거죠. 서구의 개념으로만 볼 문제는 아니지 않느냐는 겁니다. 작금의 세계에서 서구 민주주주의 등 그 잘난 서구사상이 이루어 놓은게 뭐가 있느냐 하는 질문도 해야 되고요. 서로 인정하고 가능하다면 통합해서 가자는게 도올 선생의 한결같은 주장이지 않나 싶습니다. 독창적이고 뛰어난 한반도의 사상은 분명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yamoo 2014-12-05 13:01   좋아요 0 | URL
어이구야, 이게 누구십니까, 쉽싸리님 아니십니까! 이렇게 서재에서 쉽싸리님의 댓글을 보니 무쟈게 반갑습니다.

독창적이고 뛰어난 한반도의 사상....이것을 우리 후학들이 좀 밝혀 주었으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cephas 2019-08-01 13:44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작금의 세계에서 서구 민주주주의 등 그 잘난 서구사상이 이루어 놓은게 뭐가 있느냐 하는 질문도 해야 되고요˝ -> 네가 누리는 대부분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