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텔 시절까지만해도 돈을 주고 신문을 사야 좋아하는 신문사 주필의 글을 볼 수 있었다. 중앙일보 강위석님의 글 때문에 중앙일보를 열독할 정도였다.
그런데 인터넷 시대가 가속화되다 보니 이제는 각 신문사의 대표적인 칼럼들도 공짜로 보는 시대가 됐다.(인터텟시대라고 하던 99년만 하더라도 신문사 칼럼을 무료로 볼 수는 없었다.) 마음만 먹으면 칼럼자 별로 폴더화하여 차곡차곡 파일로 스크랩할 수 있기까지 하다.
더군다나 각 신문사 사이트에 접속하면 외부 칼럼 기고자까지 이름순으로 파일링화 돼있어 언제든지 놓친 글들을 찾아 읽을 수가 있다. 와~ 감탄사가 나올만 하다. 이렇게 편리할 수가!
그런데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신문사 사이트를 서핑하다 보면 참으로 놀라운 걸 발견한다. 우리시대 내로라하는 논객들의 글과 정성들인 기획기사를 무료로 검색해서 읽을 수 있다는 사실(앞으로는 어떻게 될 지 모르겠지만 현재까지는 서핑자에게 공짜다).
그런 글들은 돈을 주고 살 정도로 아깝지 않은데 말이다(사실 오프라인 신문이나 잡지는 돈을 주고 구독해야 한다. 하지만 동일한 기사라 하더라도 온라인 기사는 무료다). 한 신문사의 주간지는 명품 기사로 소문이 자자해 논술 교재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그런데 모든 기사가 온라인 상에서 무료다!
<블로그가 세상을 바꾼다>라는 책에 보면, 이제는 글로써 돈을 버는 시대는 지나갔다고 한다. 1인 매체 시대를 맞아 전문가 뺨치는 아마추어 글들이 쏟아져 나와 글로써 돈 버는 시대가 갔다는 것이다. 아주 수긍할 만한 말이다. 이 곳 알라딘에서도 이런 현상을 쉽게 목도할 수 있으니.
특히 알라딘 서재는 책을 내는 전문 작가들이 꽤 된다. 본래 직업이 교수인 분들과 작가인 분들이 이곳에 블로그를 개설해 글을 올리는 분들도 있고, 이곳에서 좋은 글들을 올려 나중에 책으로 출간하는 분들도 있다. 뭐든, 알라딘 서재에 올라오는 글들은 모두 무료로 볼 수 있다는 것.
돈을 주고서라도 꼭 보고 싶은 글들이 이곳 알라딘 서재에는 꽤 넘쳐난다. 그런데 무료이니 정말 아직까지는 횡재라 할만하다. (타 포털처럼 복사방지 기능도 없다!) 이 좋은 시절이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어쨌거나 아주 좋은 글을 무료로 읽는 즐거움은 이전에 칼럼을 읽는 재미와는 비교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스마트 폰으로 언제 어디서든지 알라딘에 접속하여 이웃 서재 글을 읽으면서 미친듯이 웃으면서 글을 읽을 수 있으니 말이다. 이 뿐인가. 어떤 광고문구도 나에게 책을 사라고 유혹하지 못한다. 하지만 알라디너의 리뷰들은 한 순간에 책 구매를 종용하고, 사야할 리스트까지 구성해야 할 정도이다.
뭐, 지금까지 많이도 주절거렸지만, 요점은 하나다. 값어치 있는 글들이 온라인 상의 도처에 있다는 것~
얼마전(그치만 좀 됐다) 스티븐 킹이 인터넷으로 소설을 발표하여 공전의 히트를 쳤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소설은 유료였다. 무료인터넷시대에 킹은 인터넷으로 소설을 발표해 일종의 도박을 벌였지만, 상당한 손실을 보았다고 전해진다. 왜냐하면 책을 다운받은 사람들이 비용을 끝내 지불하지 않았다고. (역시 인터넷을 사용자들은 무료에 길들여 있다!)
그런데, 한 신문사에서 주관하는 어느 문학상 1등 당첨금은 1억원 이었다. 그 1억원 당선작들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수상작가들은 일순간에 유명해 졌다. 무명작가일수록 이 상의 위력은 상당했다. 인세 수입도 상당할 정로라니. 흠, 인터넷 시대에도 여전히 글을 써서 막대한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부인할 수가 없는 듯하다.
그래서 <블로그가 세상을 바꾼다>는 전망은 아직까지는 완전 유효하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로그를 돌아다니다 보면 정말 글 잘 쓰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실감한다. 무료로 공개되는 전문가 뺨치는 글들을 볼 때면(아니 어떤 글들은 전문 작가 글을 넘어서는 것도 있다!)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에 수긍이 가는 것 또한 사실이다. 어쨋거나 좋은 글을 마음껏 무료로 볼 수 있는 특권이 생긴 건 사실이니까.
그런데 이상한 건 여전히 책 값은 점점 높아만 간다. 물론 그만한 가치가 있는 기획 출판물들(지금까지 번역되지 않은 유명 원저)은 이해가 간다. 어떤 번역 책은 번역을 한 분의 노고에 경외감마저 느끼게 한다. (특히 슘페터의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나 움베르토 에코의 저작들) 책 뒤의 가격표에 표시된 금액을 제시할 가치가 충분하다.
하지만 이른바 소설책들이 그리 높은 가격에 서점에 진열되어 있는 걸 보면 참을 수가 없다(소설을 격하시킬 의도는 전혀 없다). 이름도 듣도 보도 못한 작가의 소설들이 예쁜 책 표지에 싸여 진열대에 꽂혀있다. 가격은 1만원을 가볍게 넘는다.
대충 서서 읽어보아도 싸구려 사랑타령 아니면 개인적 얘기 인 걸 알게 된다. 이런 걸 1만원주고 살 사람이 있을까 하고 서점에 물어보면 꽤 잘나간다는 답변이 들려온다. 정말 지루하고 재미없으며 진부한데도 말이다!
대형 서점 문학 코너에 가 보면, 문단에 이름을 건 중견 작가와 데뷔한 지 얼마 안 된 신인작가 그리고 기라성 같은 작가들의 소설들이 나란히 진열되어 있다. 그리고 같은 가격대에 팔리고 있다. 문단에서 검증된 분들의 작품들은 어느 정도 그 가격을 달고 있는 게 이해가 간다.
하지만 신인작가들의 문단 등단을 위한 수상작이 고가에 책정된다는 게 영~ 께름칙하다. 어떻게 그들의 글이 기라성 같은 분들의 글과 동등한 가격에 책정되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김애란의 작과 윤흥길의 작이 똑같은 가격을 달고 있다!) 잘 모르는 신인 작가들의 소설을 도서관에서 대여하여 몇 번 읽어봤는데, 영~ 신통치 않다. 젊은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참신성하고는 거리가 멀다.
그런 작가들이 쓴 300여 페이지 안쪽의 글이 과연 1만원의 가치가 있는 것인지 검증해 보고 싶어진다.(그런데 누가 검증하지?) 우리시대 기라성 같은 논객들과 웃음을 주체하지 못하게 하는 글, 그리고 통념을 깨뜨리는 촌철살인 같은 글은 무료인데, 왜 그저그런(?) 작가의 글은 무료가 아닐까? 분량 차이인가? 문학성 차이인가? 모르겠다.
분명한건 이' 글의 세계'에서 만큼은 경제학 법칙인 ‘가격의 법칙’과 ‘수요의 법칙’이 전혀 통용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어떻게 동일하지 않은 품질의 ‘소설 상품’이 동일한 가격에 팔리며, 세상을 비판하고 진단하는 뛰어난 글이 무료로 통용될 수 있단 말인가.
이 시대에 글의 값은 과연 정당하게 책정되는 것일까? 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다고 수많은 경제 교과서에 서술되어 있던데, 왜 글의 시장만은 예외일까. 문학이라서? 인간의 영혼을 다루는 소설이라서?
그렇다면 가격을 달고 다른 상품과 똑같이 바코드가 달려 팔려나가는 이유는 뭐지? 이 시대에 문학도 분명한 상품이다. 그런데, 바로 그 상품 가격이 시장의 법칙을 따르지 않고 있다. 수요가 몰리는 책은 가격이 오르지도 않고 수요가 없는 책이 가격이 떨어지지도 않는다. (경쟁력 없는 책은 일찍 절판되는 정도??) 가치의 경중도 없이 동일한 가격에 팔리고 있다. 그리고 온라인이라는 한쪽에서는 좋은 글들이 무료로 퍼져가고 있다. 이 어찌 기막힌 역설이 아닐까.
내가 지금 끄적거리고 있는 이 글도 얼마나 하찮은지 모르겠다. '단상들'이라 글에 철판을 깔고 쓸 수 있어 다행이다. 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을 읽으면서 문득 든 생각이, 신인 작가 소설들이 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보다 더 비싼 값에 책정 돼 있다는 사실에 갑자기 울화가 치밀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