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 문고 세계문학 시리즈가 있습니다. 작품성이 뛰어나고, 독특하지만 잘 알려져 있지 않는 작품들을 선별해서 시리즈로 내고 있는 책세상의 대표적인 문학시리즈인데요, 그 첫 번째 권이 바로 장용학의《요한시집》외 중단편선입니다. 한국의 50년대 작품 군들을 보면, 전후 세대라서 그런지 문학 속에 담겨 있는 작가들의 고민의식이 매우 치열합니다. 그만큼 필력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특히 한국현대문학사에서 장용학의 작품만큼 인간 실존의 문제에 강렬히 천착한 작가도 없는 듯합니다. 그래서 그런지《요한시집》은 한국문학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포스를 갖고 있습니다.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시리즈를 발간하면서 이 작품을 첫 번째 권으로 발간한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장용학은 손창섭, 선우휘 등과 더불어 전후 50년대 한국전쟁으로 인한 인간소외와 개인의식의 상처를 주로 다룬 작가입니다. 특히《요한시집》은 종래의 소설양식과는 판이하게 다르게 인간 내면의 실존적 갈등과 자유를 무거운 에세이식으로 토로한 작품입니다. 사르트르가 세계대전 이후 인간 실존의 불안한 양상을 작품에 담아낸 것처럼, 장용학은 사르트르의 문제의식을 50년대 한국사회에 그대로 적용시켜 실존적 고민을 시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난해한 작가 중 한 사람이라고 평가받는 장용학의 대표작 《요한시집》. 사르트르의 <구토>, 카프카의 <변신> 등과 비교해서 장용학의 작품은 어떻게 다른지 느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군요~


루돌프 폰 예링은 19세기 독일에서 목적법학을 제창한 사람입니다. (목적법학이란 법이 만들어진 목적 개념을 중요시하는 법 이론) 그의 대표작인 <권리를 위한 투쟁>은 인류법학사에서 최고의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상에서 가장 많이 보급된 법사상서 중 한 권이라 합니다. 지금까지 탁월한 전문 법률서적들이 많이 출간되었지만 이 책만큼 법률전공자 뿐만 아니라 비전공자들에게 폭넓게 읽히는 법서는 없다는 군요. 이 책이 전 세계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는 단 하나! 심오하고 복잡한 법률이론과 사상을 간결하면서도 명쾌하게 전달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로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은 양서 중의 양서 입니다.
이 책은 우리나라 많은 대학에서 신입생들에게 꼭 읽어야할 교양도서로 추천되고 있습니다(대학생을 위한 권장서 30선, 서울대 선정 동서고전 200선). 그도 그럴 것이 아주 작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가르쳐 주는 지점이 명확하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권리가 왜 중요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 책을 읽으면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누리고 있는 권리가 침해될 때 단순히 억울해 하지 만 말고 투쟁을 해서 그 권리를 지켜내야 합니다. 그 이유가 이 책에서 가열차게 제시되어 있습니다.
이 소책자(범우사 판본으로 90페이지도 안됩니다)는 1872년에 출간되었는데, 출간된 이후 약 10여 년 동안 20여개국어로 번역되었고, 예링 사후 1세기가 흐른 뒤에는 세계의 거의 모든 주요 도서관에 이 책이 비치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59년에 최초로 번역되었으며 현재까지 4개의 번역본이 출간되었지만 현재는 범우사판과 책세상 문고본만이 유통되고 있습니다. 범우사판의 거의 절판 상태이고 번역도 매우 안 좋습니다. 책세상 문고본 번역이 읽기에 조금 더 괜찮습니다. 여력이 되신다면 예링의 <법학을 위한 투쟁>과 함께 읽으신다면 금상첨화라 생각합니다.


언론과 각종 매체에서 경제가 어렵다고 난리입니다. 휘발유 값은 계속 오르고 물가는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주가는 유럽 사태로 출렁이며, 잠재 실업자 수는 시간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습니다. 누가 봐도 참으로 암담한 상황입니다. 먹고 살기가 이렇게 힘들 줄이야…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경제학 책으로 분류되지만, 여타 다른 경제학 책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슈마허가 제창하는 경제학은 '인간을 위한 경제학'입니다. 실물경제학자로서, 관료로서 다방면에 걸쳐 경제현상을 분석하고 입안하면서, 슈마허가 생각한 것은 주류경제학 속에 인간이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슈마허가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경제 사상은 마르크스나 케인즈 경제학과는 너무도 다릅니다. 문제점을 분석하고 내놓는 대안들이 하나 같이 '인간에 대한 이해'를 중심에 두고 있습니다. 분량이 작고 읽기가 어렵지 않지만 결코 무시하지 못 할 사상이 담겨 있습니다. 슈마허는 이 책 하나로 일약 행동하는 사상가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세계적인 물리학자 프라초프 카프라가 50년 전 세계 석학과의 대담에서 슈마허는 당당히 일리야 프리고진과 동일선상의 사상가로 평가받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 책 하나 때문입니다. 정말 어려운 이때에, 슈마허가 제시하는 심플한 대안을 듣는 것도 난세의 시대를 살아가는 하나의 좋은 방편이라 생각됩니다.
90년대 초반 미국의 저명한 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21세기는 심리학의 시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심리학은 부지불식간에 우리 곁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조직관리에서부터 소비에 이르기까지 심리학의 응용분야는 날로 늘어가고 있는 추세입니다. 급기야 몇 년 전에는 경제학에서 심리학을 접목시킨 이론으로 사이먼과 카너먼은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이후 이들의 이론을 응용한 행동경제학이라는 다소 생소한 분야의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이기적 유전자>와 <눈먼 시계공>, <만들어진 신> 등이 지속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이 책들의 저자인 리처드 도킨슨은 진화심리학 계열에 속한 학자입니다. 더군다나 서점에 가면 교양 심리학 책들이 베스트셀러 목록을 점유하고 있음을 볼 때, 심리학의 시대가 성큼 다가오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거 같습니다.
여기 심리학의 시대를 열 개 한 1권의 책이 있습니다. <자유와 존엄을 넘어서>는 20세기를 충격으로 뒤흔든 3권의 저서 중 한 권이라는 평가를 받는 문제의 저작으로서, 스키너를 심리학자를 넘어 사회사상가로 격상시켜준 기념비적인 책입니다. 스키너는 자신의 실험을 바탕으로 기존의 인간관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인간은 자유롭고 존엄한 존재가 아니라 단지 환경의 조작을 통해 바꿀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주장했습니다. 스키너의 이런 생각은 수많은 작가(특히 헉슬리)와 사회과학자들의 비판과 찬사를 동시에 받았습니다. 그만큼 이 한 권의 책은 끊임없이 논란의 대상이 되어오고 있는 책입니다. 이 엄청난 책이 08년 부글북스에서 재출간되었습니다. 절판되어서 만나지 못했던 스키너의 이 혁명적 사상이 무엇인지 확인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심노숭의 <눈물이란 무엇인가>는 매우 담백한 책입니다. 조금 생소할 수도 있는 저자이겠습니다만, 18-19세기를 살다간 조선후기, 감수성이 풍부했던 선비입니다. 하지만 그가 기록해 놓은 주옥같은 글들을 통해 우리는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이라는 것을 다시 반추해 볼 수 있습니다. <구토>에서 주인공 로캉탱이 자기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매일매일 일기를 썼듯이, 심노숭도 하루하루의 슬픔을 잊고자 글을 썼고, 그 기록의 모음이 책으로 100권이 훌쩍 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심노숭의 슬픔과 글쓰기의 원천이 아내의 죽음이라는 겁니다. 조선 후기 선비가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며 매일 눈물로 지세운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인데요. 어쨌든 그는 아내를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슬픔을 달래고자 매일같이 글을 썼다고 합니다. (그리고 최근 그의 글들이 발굴되어 세상에 이름 석자를 알리게 됐다고 합니다) 이 <눈물이란 무엇인가>는 심노숭이 쓴 글들 중에서 선별하여 다시 묶은 책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난 후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어떻게 승화되는지 지켜보는 것도 의미 있는 책읽기 아닐까요?
자크 모노의 <우연과 필연>은 고전 중에서도 매우 어려운 책에 속합니다. 특히 인문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에게 그렇죠. 분자생물학의 심도 깊은 이론들이 책의 곳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러한 어려운 이론들을 건너뛰고 읽어도, 완독하고 나면 이 책의 핵심 사상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자가 글쓰는 기술이 매우 뛰어나서 핵심을 전달하는 부분에서는 평이한 예화를 들어 설명해 주고 있기 때문에 그럴 것입니다. 솔직히 저는 에른스트 마이어의 <이것이 생물학이다>보다 읽기는 조금 어려웠지만 읽은 후의 감동은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생물학과 철학의 향연이라 할까요.
책에 보면 다음과 같은 재미난 예화가 있습니다.
「브라운 박사가 응급환자로부터 급히 왕진을 와달라는 부탁을 받았고, 한 편에서는 공사장 인부인 존스가 근처에 있는 건물 지붕을 응급 수리하고 있었다. 브라운 박사가 때마침 이 건물 밑을 통과하고 있었을 때, 존스가 실수로 그만 그의 망치를 떨어뜨린 것이다. 이 망치는 결정론적 이론에 따라 그 낙하 궤도가 이 의사가 걷고 있던 궤도와 교차했기 때문에 의사는 그 망치에 두개골을 맞아 죽고 말았다. 이러한 경우에 우리는 그 의사를 우연의 희생자가 되었다고 말한다. 이 사건이야말로 본질적인 예견이 불가능하다. 완전히 독립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던 이 두 가지 사건의 연쇄가 서로 교차해서 발생한 이 사건에서 우리는 분명히 우연의 본질적인 것을 보게 된다.」
이런 상황을 모노 박사는 우연의 본질로 보고 있습니다. 과연 그러한 의견이 타당한지 모노 박사의 논의를 따라가 보는 행운을 잡으시기 바랍니다. 책을 덮으시면 생명과 인간에 대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