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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알라딘 인기책 1위는 가네시로 가즈키의 <레볼루션 No.0>이다. 하지만 몇 주 전만하더라도 장정일의 신간인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2>이 계속 1위였다. 지금은 순위가 계속 밀리고 있는 중인데, 장정일 책을 사기 위해 둘러보던 중 빵가게재습격님이 올리신 리뷰에 시선이 멈춰졌다.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의 p168 인용 부분이다.
글쓰기의 가짓수는 무척 많고, 교양이란 매우 폭이 넓은 세계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글쓰기 하면 곧바로 시나 소설을 떠올리고, 그걸 읽는 게 교양의 다인 양 하는 사람들이 많다. 다양한 글쓰기가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특정 장르의 문학이 글쓰기의 피라미드 가장 높은 꼭대기에 좌정하고 있으면서 그 외의 글쓰기를 억압하는 사회, 고작 시집이나 소설 몇 권을 읽는 것으로 교양인 행세가 가능한 나라는 가망이 없다. BBK같은 사건이 터졌을 때 제대로 된 사회에서라면, 거의 반년 안에 스무 권이 넘는 논픽션이 쏟아져 나와야 한다. 그 가운데 어느 한 종이 100만부 이상 팔리고 그 사건이 시중의 화제가 되고 칼럼에 오르내리는 사회가 <엄마를 부탁해> 같은 소설이 100만 부나 팔리는 사회보다 훨씬 바람직할 수 있다. 소설 <도가니>도 그렇다. 청각장애자 학교에서 일어났던 성폭력 사건을 유명 작가가 논픽션으로 썼다면, 사회적 파급력은 상당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 영향으로 진실이 발본되고 미비한 법들이 고쳐질 확률도 높으나, 문학이 너무 강한 사회는 온갖 사회적 의제와 다양한 글감을 문학이란 대롱으로 탈수해 버린다. -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p168
이 대목을 읽고 장정일의 말에 백번 공감했다. 그런데, 과연 해당 사건을 논픽션으로 출간해서 사회적 파급력을 기대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이슈화가 잠깐 되기는 하겠지만 미비한 법과 제도들이 고쳐질 확률은 그리 높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하튼 그건 그렇고, 나의 궁금증을 증폭시킨 것이 우리 사회에서 교양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궁금해서 미치겠다>처럼 호기심을 채우고자 백과사전을 읽어내는 것이 교양인가? 이것이 교양이라면 ‘교양=지식’인가?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흠, 생각에 빠지다 보니, 예전의 일례가 스쳐지나간다.
지인 중에 결혼을 하고 싶어 환장한 사람이 있다. 40이 됐는데도, 계속 선만 보고 있는 중이다. 헌데, 이 분은 선만 보고 오면 투정을 해댄다. 여자가 이쁘면 교양이 없다고 하고, 교양이 있으면 외모가 아니란다. 두 개 중에 하나를 포기하면 금방 결혼할 거 같아, 빨리 결혼 하고 싶으면 하나를 포기하라고 했더니, 절대 그럴 수 없단다. 책도 안 읽는 여자와 어떻게 살며, 더군다나 외모가 딸리는 여자와 어떻게 같이 다니냐는 것이다. 난 이분이 둘 중 하나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3년 내에 결혼하기 힘들 거라 말해줬다. (이분은 그 해에 꼭 결혼을 해야 된다고 비장하게 말하곤 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분이 ‘책 안 읽는 여자’를 ‘교양 없는’여자로 단정한데 있다. 이것은 우리가 참 많이도 듣던 말 중 하나의 변주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이 교양이 있으려면 책을 좀 읽어야해'라거나, '책도 안 읽고 무식한 소리 하는 것 좀 봐라'라는 말은 우리가 꽤 많이 들어오던 격언(?)이다. 이 말 속에는 ‘책=교양=지식’이라는 관계가 암묵적으로 전제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상적으로 통용되는 말 속에 말이다.
이를 종합하여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린다면 교양은 곧 지식이나 책으로 귀결됨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베이컨의 ‘아는 것이 힘이다’는 명제는 교양의 의미를 규정짓는 제1의 선언쯤 되는 것 같다. 현재 우리나라의 각종 입사시험에 ‘교양 시험’ 내지 ‘일반 상식 시험’의 구성을 보면 이를 뒷받침하기 충분하지 않을까. (어떤 사람은 지식 위주의 교양이라는 것을 비판하고, 자신에게 충격을 주는 것이 곧 교양이라고 하는데, 이는 교양의 일반적 논의를 무시한 생각인 듯하다.)
그런데, ‘지식(책)은 곧 교양인가?’ 라는 물음에 단호히 위의 잠정적 결론처럼 ‘그렇다’라고 잘라 말하기에는 꺼림칙한 뭔가가 발목을 잡는다. ‘도대체 어느 정도의 지식이 교양의 범주에 포함되는가?’란 의문 말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교양의 의미를 확인하고자, 나도 백과사전을 찾아봤다. 두산백과사전에 올라 있는 교양의 의미를 살펴보면 좀 거창하다 싶다.
교양을 뜻하는 영어 'culture'의 원뜻은 '경작(耕作)'이고, 독일어의 'Bildung'은 '형성'이라는 뜻임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여기에는 인간정신을 개발하여 풍부한 것으로 만들고 완전한 인격을 형성해 간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노력은 시대마다 일정한 문화이념에 입각해서 이루어지므로 교양의 내용은 시대 또는 민족에 따라 달라지는데, 적어도 유럽문화권에 있어서는 이제까지 그리스·로마적인 교양의 이념이 일관하여 계승되었다. 고전 그리스에서의 '파이디아(paideia:교육)' 이념이 헬레니즘을 거쳐 그리스도교 세계로 계승되어 '그리스도교'라는 새로운 교양이 확립되었다고 보는 관점도 있다.
근대 유럽에서의 교양은 로마시대에 형성된 후마니타스(humanitas:인간성)의 이상을 다시 일으키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기술의 우위가 결정적인 현대에서는 이것과는 다른 새로운 유형의 교양이 요구되기 시작하고 있다.
줄친 부분을 보면 교양이 무엇이고 어떤 걸 공부해야 하는지 좀 막연하다. 그렇다고 추상적인 설명이라고 해서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인간정신을 개발하고 완전한 인격을 형성해 가는” 방향으로 공부 방향을 잡아야 하는 것은 분명한 것 같지만 말이다.
헌데, 교양의 내용은 시대와 민족에 따라 달라진다니 환장할 노릇이다.
좋다, 교양이 무엇인지 그 실체(?)에 접근해 보도록 하자. 일단 <교양>이라는 이름을 달고 출간된 책들의 내용을 살펴보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본다. 도대체 어떤 내용으로 채워져 있는지. 책을 보면 ‘교양’이라는 실체가 잡힐 수 있지 않을까?
일단 교양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책을 검색한 이후 논술과 학습에 관련한 것들(고전을 소개한 책 포함)제외하고 교양의 사전적 정의에 근접한 내용을 담은 책을 찾아보니 4권을 추릴 수 있었다.
홍세화, 21세기를 바꾸는 교양(7인7색), 한겨레, 2004
교양으로 읽어야 할 절대지식 세트(절대지식, 세계명작, 중국지식); 1권으로 침.
또 다른 교양, 에른스트 패터 피셔
디트리히 슈바나츠, 교양, 들녘,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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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박노자 씨의 책은 7인의 시론을 모아 놓은 것으로 ‘교양’이라 이름 붙이기에는 너무도 지엽적이다. <절대지식 세트>는 고전과, 문학, 그리고 중국에 관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어 이 역시 ‘교양’의 내용 중 상당 부분이 빠져 있다. 주로 고전의 소개에 그치고 있다. <또 다른 교양>의 경우는 부제가 ‘교양인이 알아야 할 과학의 모든 것’이다. 이 교양서는 현대 과학의 주요 분야들을 종횡무진으로 넘나드는 책이다. 역시 ‘과학’, 그것도 ‘현대 과학’의 성과만을 중점적으로 다루어 너무 지엽적이다.
이로부터 보건데, 현재 ‘교양’이라는 내용을 구경할 수 있는 가장 그럴듯한 책은 디트리히 슈바나츠의 <교양>이 유일할 듯싶다. 책의 내용을 보면 사람이 알아야할 거의 모든 것을 다 갖추어 놓은 듯하다. 이 책에 대한 유시민의 추천을 보면, 더욱 신빙성이 더해진다.
“교양인을 만드는 기본요소는 슈바니츠가 강조하는바 역사와 철학, 문학과 예술에 대한 이해이며, 사회를 자기의 내면에 비추어봄으로써 사회를 결속시키는 도덕적 구속력을 생성해내는 유연하고 자성적인 정신인 것이다. 이러한 교양의 기초가 없는 전문가는 한 뼘도 안 되는 전문영역에 갇혀 평생을 살아야 한다. 그 울타리를 벗어나는 순간 그는 길을 잃고 만다. 평지에 높이 솟은 돌기둥 위에 서 있는 사람처럼 불안하다. 이런 사람들은 <교양>의 마지막 구절을 작업실 컴퓨터 모니터에 붙여 두면 좋겠다. 잃어버린 교양의 세계를 그리워하는 ‘배운 사람들’이 언제나 가슴에 담아두어야 할 잠언이기 때문이다.
-교양은 정신의 몸, 그리고 문화가 함께 하나의 인격체가 되는 형식이며, 다른 사람들의 거울 속에 자기를 비추어 보는 형식이다.-
유시민의 추천사에서 보듯이 <교양>에는 유럽의 역사(고중근세), 기독교, 종교개혁, 계몽주의, 현대(19, 20세기), 유럽의 문학, (서구)미술의 역사, (서구)음악의 역사, 철학과 철학자들, 성 논쟁의 역사, 언어, 책과 글의 세계, 지역학, 지능과 창조성, 성찰적 지식 등 실로 서양 문화의 기반이 되는 모든 것을 766페이지 속에 담고 있다.
이 책은 ‘교양’에 가장 근접한(?) 내용을 담은 책이지만 우리나라 사람이 이 책을 보고 교양을 안다는 것은 반쪽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것이 아예 없기 때문이다. 우리 것만 없느냐? 가만 보면 자연과학에 관계된 많은 것들이 빠져 있다.
위에서 두산백과사전의 교양에 대한 설명에서도 보았듯이 교양은 시대와 민족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시대 우리나라의 현 시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교양은 슈바니츠의 책에 ‘우리 것’과 '과학 분야'를 더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역사(고대, 중세, 근세, 근대, 현대), 유교 불교 도교, 한국 문학, 한국의 철학과 철학자들, 한국 미술의 역사, 한국 음악의 역사, 민주화, 우리말 바로 알기 등이 추가되고 여기에 자연과학을 더 얹어야 한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교양이라는 것은 한 권의 책을 통해서 함양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인 것 같다. 모르는 것보다야 낫지만 뭔가 많이 부족하다. 그래서 그런지 유명한 출판사들은 다투어 ‘OO교양신서’같은 총서 류나 ‘지식’ 시리즈를 기획한다. 이런 총서 류를 보면 백과사전의 주제별 묶음 쯤 돼 보인다.
그런데, 우리나라를 비롯한 선진국들의 고등교육(교육은 교양에서 정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이 지향하는 교양은 훨씬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 것 같다. 그곳이란 어디일까? (개인적 생각인데) 나는 그 높은 곳이 ‘교과서’라고 생각한다.
일전의 어느 에세이에서 유시민은 ‘교과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유시민에 따르면 자기가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을 교과서에서 배웠다고 했다. 이 말에 천만 배 공감한다. 중고등학교 때 배웠던 교과서뿐만 아니라 대학에서 배웠던 교과서는 전문가를 빼놓고 알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알려준 것 같다.
고교 시절 배웠던 기초 과목과 일명 암기과목들, 즉 국어, 수학, 문학, 정치, 경제, 세계사, 사회문화, 지리, 물리, 화학, 지구과학, 생물, 음악, 미술 등이 이른바 교양이라는 것의 가장 밑에 위치할 것이다. 이는 디트리히 슈바나츠의 <교양>을 훑어 봐도 대번 알 수 있다. 이 기초 교양 과목들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에 더하여 대학에서 개설하고 있는 교양과목(이 대학 교양과목들도 기초 교양 과목들의 연장선에 지나지 않는다)들, 예컨대 철학개론, 문학개론, 사회학 개론, 자연과학 개론, 경제학 개론, 법학 통론, 한국사, 경제사, 세계문화사, 논리학, 경제수학입문, 경제학 원론, 행정학 개론, 복식문화사, 언어학 개론, 정치학 개론, 미술사, 음악사, 심리학 개론, 경영학 개론 등을 읽고 이해한다면 위에서 말한 ‘교육이 지향’하는 ‘교양’ 수준에 도달하지 않을까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면, 교양이란 백과사전적 지식 보다는 체계가 잡힌 보편적 지식의 덩어리들이 아닐까하는 생각이다. 따라서 교양은 곧 ‘지성의 역사(=지성사)’의 일반적 표현인 듯싶다.
헌데, 이렇게 열심히 나름대로 찾은 ‘교양’이 ‘교양’이 아니라면, ‘교양’이란 대체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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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교양이 무엇인지 무척 궁금했다. 읽고 있는 교양 신서가 어떤 의도로 기획된 건지도 의심스러웠고. 그래서 <교양이란 무엇인가>라는 단행본 책을 찾아 봤다. 헌데, 없었다! 교양을 논한 비슷한 책을 찾았는데, 대부분 교양에 대한 두루뭉술한 서술 뿐이었다. '교양'이 무엇인지 답답했다. 개인적으로 좀 중요한 화두라고 나름 생각하는데, 직접적인 소개서가 없다는 것이 좀 이상하다. 그래서 좀 생각을 해 봤는데, 시원스런 답변은 못 찾은 것 같다. 혹시 교양을 논한 책을 알고 계신 알라니너 분들이 계시면, 무지한 야무에게 깨우침을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