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법
오비디우스 / 동심원 / 1996년 5월
평점 :
품절



책꽂이 앞에서 이책 저책 뽑아 보다 갑자기 눈에 들어왔다. <연애법>?? 이건 무슨 책이지? 의아해 하면서 뽑아들었다. 집에 이런 책이 있을 줄이야. 언제 산 건지도 모른다. 이런~

‘사랑’이라는 주제 하에 모아 놓은 코너 속에서 꺼내든 책인데, 저자를 보니 <변신이야기>의 그 오비디우스다.

허~ 오비디우스가 이런 책도 썼나? 하면서 쭉쭉 넘겨봤다. 아, 근데 이 책은 요즘 잘나가는 실용연애전서 쯤 된다. 연애의 전성시대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오비디우스는 당시 로마 선남선녀들에게 필살의 연애기법을 전수해 주려는 당위감이 발동한 듯하다.

당시 책이 꽤 잘 팔렸는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부가하면서 책을 끝맺고 있다. (책의 구성과 결론 내용의 정황상, 결론 부분과 뒤의 보론은 나중에 삽입된 것 같다.)

   
  이제 내 책은 끝났다. 피곤한 내 배(boat)를 꽃줄로 장식하여라. 우리는 닿고자 원했던 항구에 다다랐다. 내 시를 읽고 병을 고친 선남선녀들이여, 신성한 시인에게 길이 영광을 돌릴지어다. p258  
   

약간 주석이 따르는 결론이다. 여기서 ‘닿고자 원했던 항구’는 ‘여자 꼬시기, 남자 유혹하기’이며 ‘내 시를 읽고 병을 고친 선남선녀들’은 다름 아닌 연애 못해 환장한 로마의 젊은 솔로들 되시겠다. 그리고 ‘신성한 시인’은 아폴론이 자기에게 영감을 불어넣었으므로 신성하다고 찬사를 보낸다.

자신의 ‘작업 기술’을 ‘시’라고 까지 격상시켜 부르고 있으니, 한 번 거들떠보지 않을 수 없었다.

총 3권과 한 편의 논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권 모두 논문의 형식을 띠고 있다. 여기서 권은 ‘장(chapter)'쯤 된다.

먼저 남성들에게 일러주는 작업의 기술을 보자. 꼬시는 기술이기 때문에 여자의 유혹의 기술과는 달리 남성에게는 ‘계획’이 첫 단계이다. 
 

   
  난생 처음 전투에 임하려는 신병이여, 우선 사라의 대상을 찾는 데 주력해야 한다. 그 다음에는 마음에 드는 아가씨와 접촉하도록 노력해야 하고, 세 번째는 사랑을 유지하는데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할 일의 범위이며 우리의 수레가 궤적을 남겨야할 여정이다. p14  
   


오비디우스는 이렇게 '계획'을 일러준 다음 아가씨를 찾으러 배를 타고 해외로 나갈 필요없이 로마에서 찾으라고 당부한다. 왜냐하면 로마에는 세계 어떤 종류의 미인도 다 있기 때문이란다. 따라서 장소에 구애됨 없이 어디에서나 ‘당신만이 내 마음에 드는 군요’라는 멘트를 날리라고 한다.

헌데, 그 장소가 아주 무차별 적이다. 원형경기장, 식탁뿐만 아니라 아우구스트 해전장에서도 작업의 기술을 발휘하란다. 흠...도대체 해전의 격전인 바다에서 뭘 하라는 건지 잘 모르겠다.

장소를 물색해 준 다음 오비디우스는 작업 기술의 핵심인 ‘꼬시는 방법’을 일러준다.    

 

   
   “이제 내가 가르치려는 것은 마음에 드는 여인을 사로잡는 방법이다. 이것이 내 지침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누구든, 어디서든 고분고분 내 말에 귀를 귀울일지어다. 청중들은 마음을 가다듬고 내가 보증하는 말에 귀를 귀울여라” p33  
   


 이후의 내용은 여자를 대하는 남자의 자신감에서부터 스킨십 그리고 잠자리에 들기까지의 과정을 매우 현학적으로 일러주고 있다. 고분고분 자기 말에 귀 귀울이라고 해서 눈에 불을 켜고 읽어 봤는데, 완전히 맥이 풀리는 수준이다.

뭐, 2000년 전에는 성공했을런지 모르지만, 지금 오비디우스가 전하는 대로 했다가는 여자들에게 경멸과 한심한 눈초리를 받아야 할 것이다.

매우 실망하고 2권, 사랑을 유지하는 법으로 넘어 갔는데 조금 수긍이 갈 만한 내용이 많았다. 아마도 연애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남자들이 2권에서 가르쳐 주는 내용을 숙지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관계가 깨지지 않도록 하는 사랑을 유지하는 추천할 만한 기술들이다.
 - 상냥한 성격과 함께 집요함이 요구된다.
 - 아첨이 필요하며, 장애물이 있다고 해서 멈추어서는 안된다.
 - 선물을 해야 하며, 반드시 계속 경탄하는 모습을 보일 것.
 - 충성의 표시를 자주 보여야 한다.
 - 양다리의 의심을 받으면 강하게 나가야 하며, 반드시 강한 밤일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 대가는 평화이다.

오비디우스는 여성들에게도 남자에게 사랑받는 비법을 전수해 주고 있다. 헌데 너무 수동적이다. 예나 지금이나 여성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가꾸는 것이 제1계명인 것 같다. 그가 들려주는 기교들을 보자. 
 

-머리 모양과 의상에 신경쓸 것.
-제모와 냄새에 신경쓸 것.
-신체적 결점을 반드시 커버할 것.
-화장하는 모습을 보이지 말 것.
-춤과 잡기에 능할 것.
-말과 표정 그리고 편지로부터 남자를 애태우게 할 것.
-남자들에게 그가 줄 수 있는 것을 요구할 것.
-애인이 스스로 사랑받고 있다고 믿게 할 것.
-여자 친구들을 조심할 것.

 

여성들에게는 꽤 의미심장한 기술들이 많다. 헌데, 오비디우스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방중술까지 덧붙인다.  

 

   
  이제부터 가르쳐야 할 일은 낯을 뜨겁게 만든다. 하지만 우리의 디오네 여신은 말한다. “사람들이 부끄러워하는 일이야말로 우리 일이다.” 여성들은 각자 잘 알아 두어야 하는데 신체적 조건에 따라 이런 혹은 저런 자세를 취해야 한다. 한 자세가 모든 여자한테 맞는 것은 아니다. 특히 얼굴이 예쁜 여자는 드러누워야 한다. (이하 중략) p205  
   

 

이후 내용은 19금 이라 생략했다. ‘그래, 바로 이런 거야. 독자는 이런 걸 기대한다구!’라고 생각할 정도로 리얼했다. 개인적으로 오비디우스가 여성들에게 가르쳐 주는 기술이 남성들보다 더 나은 것 같다. 혹시 오비디우스는 게이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덤으로 하게 된다.  

 

마지막편은 ‘사랑의 치료약’이라는 다소 논문 지향적인 글이다. ‘연애법’의 총론 격인데, 좀 따분하다. 이런 글은 현재에 영향력을 주기 미미하니 그냥 패쓰하는 게 좋을 듯싶다. 뭐, 오비디우스의 문학적 표현의 정수를 느끼고 싶다면 굳이 말리고 싶지는 않지만.

책의 끝에는 보론 격으로 ‘여성의 얼굴과 화장법’도 소개하고 있는 것이 특이했다. 화장법이긴 한데, 하장품 제조술로 봐도 무방하겠다. 본문에서도 화장술에 대해서 꽤 자세하게 언급한 걸 보면 아무래도 오비디우스는 게이인 것이 분명한 것 같다. 이런 지식을 습득한 걸 보면.  

 

   
  흰 피부는 무슨 방법으로 깨끗하게 가꿀 것인가? 리비아 농부들이 바다로 실어 보내는 보리를 써라 보리 이사글 훑어서 껍질을 벗겨라. 같은 양의 렌즈콩을 달걀 열 개에 섞어서 보리에 합쳐라. 그러면 보리 미음의 무게는 2파운드는 족히 될 것이다. 이 혼합물이 바람에 마르면 노새가 느릿느릿 끄는 거친 맷돌에 빻는다. 새해가 되면 떨어지는 사슴의 새 뿔도 빻아라. 그 가루를 전부 합쳐서 고운 체로 걸러라. 흠집 없는 수선화 뿌리 열 두 개를 아주 깨끗한 대리석 절구에다 쿵쿵 빻아서 넣는다. 그런 다음, 토스카나의 밀가루 약간과 2온스의 고무, 그 아홉 배의 꿀을 넣는다. 이것을 얼굴에 바르면 거울보다도 빛나고 윤기 있어 진다. pp261-262  
   

 

여성들은 한 번쯤 오비디우스가 가르쳐 주는 제조방식을 따라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피부가 '거울보다도 빛나고 윤기 있어 진다'고 하는데, 망설일 이유는 없지 않은가.


덧붙임.

책을 빠르게 봤지만 실망할 만한 책은 아닌 듯하다. 본업이 시인이라서 그런지 그리스 로마 신화의 탁월한 인용은 처세서를 문학작품으로까지 승화시키고 있다. 실전 지침서의 내용이 시쿤둥한 사람은 아마도 저자의 시인적 기질에는 실망하지 않을 듯한 책이다. 아쉽게도 절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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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08-20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오비디우스가 썼다니 고전을 읽는다는 느낌은 있잖아요.
요즘에 나온 책들 읽으면 괜히 감추고 싶지 않나요?
왠지 속 보이고 무능해 보일 것 같은 인상 때문에...>.<;;ㅋ

yamoo 2011-08-21 15:25   좋아요 0 | URL
개인적으로는 그런 느낌은 별로 안들었어요. 표지부터가 좀 구려서 고전을 읽는다는 느낌보다는 실용연애전서 읽는 느낌이었어요~ㅎ

감추고 싶기 보다는 한번 읽고 남 주고 싶은 그런 느끼미에요..요즘 나오는 이런 부류의 책들은요.

흠...속보이고 무능해보인다라...저는 그런 인상을 전혀 가져본적이 없어요^^;;

cyrus 2011-08-20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비디우스의 이 책,, <오비디우스의 사랑의 기술>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출간되었어요/
오비디우스의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묘사는 셰익스피어가 자신의 작품에
인용되기도 하며 특히 <말괄량이 길들이기>에서 오비디우스의 연애법에 대한
문구가 인용되어 있습니다.

yamoo 2011-08-21 15:28   좋아요 0 | URL
흠...그렇군요. 저도 알라딘의 검색에서 찾아보니 목차도 똑같고...같은 책이네요. 제목이 바뀌어서 다른 책인줄 알았다는~ㅎ

호~ 그런 인용이 있었군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양철나무꾼 2011-08-23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성에게 전수한 비법 마지막, 그럴 듯 해요.
여자 친구들을 조심할 것.

전 작업 들어갈 사람은 없으니...패쓰해야 할 듯~^^

yamoo 2011-08-23 14:29   좋아요 0 | URL
그쵸~ㅎ 여자들에게 있어 동성친구들은 위험한 존재 인 것 같습니다..ㅎㅎ

그래두 이거, 읽을만 하답니다. 지금 출간되고 있는 각종 연애의 기술의 원형 쯤 되는 책이고...더군다나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적제 적소의 인용이 꽤 인상 깊습니다. 그래두 오비디우스 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