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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터스쿨 상
이석범 지음 / 살림 / 1996년 11월
평점 :
절판
휴가 마지막 날, 이사를 하고 책장을 들여놓은 이후 처음으로 책을 정리했다. 아무렇게나 꽂혀져 있는 책을 이리저리 구색에 맞춰 배열했다. 이리저리 하도 움직여서 발바닥이 아플 정도였다.
분주히 옮기는 와중에 어딘가에서 툭 책이 떨어졌다. 어디서 떨어졌는지 모르겠지만, 책을 보니 <윈터스쿨>(살림, 1996)이다. 아주, 오래 전에 읽었던 책이다. 상상문학상 수상작이라는데, 이 문학상이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다.
헌데, 분명히 기억하기론 당시 이 책을 무지 재밌게 읽었더랬다. 어디서 떨어졌는지는 모르지만 그냥 무심코 책을 폈다. 아, 그런데 끝까지 읽게 되었다. 책이 널부러져 있는 상태에서 그냥 죽치고 앉아 읽어 내려갔다. 눈을 들어보니 밖은 그새 어둑어둑 해 져 있었다.
예전에 정운찬 전 총리가 설대 총장하던 시절, 학벌철폐와 설대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정 총장은 포퓰리즘이라고 매도했었다. 당시 그 발언을 듣고 정 총리가 미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었는데, 총리직을 수행했던 정운찬을 보니 그 생각이 그리 틀리지 않은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우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이 사람이 설대 전 총장이었다는 것!
정 총리의 당시 발언을 신랄하게 비판했던 신문이 있었다. 그 신문에 연재되었던 시리즈 가운데 ‘수평사회를 만들자’라는 기획기사를 꽤 관심 있게 본 기억이 있다. 기사의 요지는 ‘설대 중심의 사회를 재편성하자’라는 것. 신문은 얼마나 많은 사회의 요직을 설대 출신들이 차지하는 지 각종 지표로 보여줬다. 기사는 대충 이랬다.
『사회의 모든 기득권 세력의 60퍼센트 이상이 설대출신들이 독차지하고 있다. 각 방송국의 핵심 자리 70%, 정치가의 70%, 법조계의 85%(특히 헌법재판소 재판관9인중 8인이 대법관14인중 12인이 설대출신), 경영 쪽의 50%이상이 바로 설대출신 이다. 그 밑으로 일명 명문 사학이 차례로 지분을 차지한다.』
이 사실은 바로 강준만 교수가 그의 책 <서울대의 나라>에서 멋지게 파해쳤던 게 아닌가? 시간이 꽤 흐른 지금도 역시 사회에서 설대 출신 비율은 변하지 않고 있다. 얼마 전 MB정부의 인사만 봐도 이 나라는 ‘서울대의 나라’임을 다시금 입증하고 있다.
이 소설은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걸작 중 걸작이다. 우리 교육의 신랄한 비판서이자 우리 사회의 변혁을 요구하는 문제작이다. 겉잡을 수없이 책에 빠져들었던 이유도 아직까지 하나도 바뀌지 않은 우리나라의 실상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수능이 100일도 안 남았다. 수많은 학원과 과외, 경시대회 그리고 각종 시험의 얽게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학생들과 그 불쌍한 학생들을 등쳐먹는 과외선생들. 부장검사가 자식의 과외를 위해 사표를 써야하는 이 나라의 현실이 소설속의 상황과 맞아 떨어져 메가톤급 재미를 선사한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어찌도 이리 판에 박은 듯 똑같은지..)
한번 손에 들면 절대 놓을 수 없는 마력. 작가 양귀자가 해야할 일을 까마득히 잊고 이 소설 읽기에 몰두했다는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게 하는 책이다.
이런 작품이 왜 소리 소문 없이 잊혀졌는지 모르겠다. 한국 사회의 현실을 너무도 리얼하게 소설화켜서 그런가? 아님, 예언서라서? 여튼, 이 책은 강준만 교수의 역작 <서울대의 나라>의 소설본이다. 아쉽게도 지금은 절판이니, 도서관에서라도 빌려보길 강추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