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퇴근 후 집에 가는데, 앞에 여고생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간다. 그냥 목소리가 커서 뒤에서 걷는 내 귀에 까지 들렸다. 대충 내용이 윤리 교과서에 있는 한국 사상이 어렵다는 것.

“아씨, 존나...무슨 말인지 모르게써~” “그러게 말야, 씨바~” “아, 존나 담임 설명하는 거 봤냐. 지도 모르는 거 같던데..” “마저, 마저 ㅋㅋㅋ” “이가 기에 따르는 거 하고, 내재하는 거 하고 무슨 차이지?” “기발이수지...이기호발설..기발이승지..아씨~ 존나 짱나~” “하나두 모르게써, 씨바~ 무슨 설명을 그렇게 어렵게 하냐? 시험에 나오믄 어떡케하지?” “아~씨, 그냥 찍어! 찍어!”

요즘 학생들 입이 거칠구나..귀엽게 생긴 여학생들이 저런 말을 아무렇지나 않게 내뱉다니..무슨 뜻인지나 알고 말하는 걸까? 그나저나 ‘존나’와 ‘씨바’ 사이로 들리는 학생들의 문제의식으로부터 고등학교 윤리 교과서의 내용이 궁금해 졌다.

그래서 즉시 가까운 헌책방에서 고등학교 윤리 교과서인 <윤리와 사상>(교육 인적 자원부, 2003)을 입수해 펼쳐 보았다.

나 자신도 고등학교 때 한국 사상 부분을 매우 어렵게 배운 적이 있어, 요즘은 어떤가 확인해 보는 것도 재밌겠다 싶어서 였다. (솔직히 고등학교 당시 한국철학의 이기론 부분은 지구과학의 천구 부분과 더불어 그 내용을 정확히 아는 학생이 거의 없는 난공불락의 고지였다)

79페이지에 해당 내용이 나와 있다. 2단원 ‘윤리의 흐름과 특징’인 첫 장 ‘한국 윤리의 전개’인 ‘유교윤리’ 부분이다. 한 페이지도 채 못되는 분량이다.

『고려 말기에 원나라로부터 받아들인 성리학은 유교 사상을 이론적으로 분석하고 체계화하여 철학적으로 심화시킨 학문이다. 성리학의 이기론(理氣論)에 의하면, 성(性)은 본연지성(本然之性)과 기질지성(器質之性)으로 나누어 진다. 본연지성은 ‘이(理)’이고, 기질지성은 ‘기(氣)’이다. ‘이’는 우주 만물의 근원이 되는 이치로서 ‘기’의 활동 근거가 되어 사단(四端)으로 표출되고, ‘기’는 만물을 구성하는 재료로서 칠정(七情)으로 나타난다.
이황(李滉, 1501~1570)은 “이가 발하면 기가 이를 따르고, 기가 발하면 이가 기를 탄다.”고 하여 이기호발설(理氣互發設)을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이이(李珥)는 “기가 발하면 이가 기를 탄다.”는 명제는 맞지만, “이가 발하면 기가 이를 따른다.”는 주장은 옳지 못하다고 비판하였다. 이이는 ‘이’란 보편적인 것이고, ‘기’는 특수한 것으로 파악하여, ‘이’는 통하고 ‘기’는 국한된다[이통기국(理通氣局)]는 독특한 견해를 창출하였다. 즉, 이이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사물의 특성이 제각기 다른 것은 ‘기’의 국한성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서로 다른 특성 속에 본체로서의 ‘이’가 내재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보면, 인간이나 사물은 모두 동일하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이통기국론은 ‘이’와 ‘기’의 양자가 서로 의존하여 보완 관계를 유지하면서 조화됨을 강조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이는 불교나 도교 등에 대해서도 조예가 깊었고, 정치 경제 교육 국방 등에 대한 전반적인 개혁을 도모하였으며, 실학사상의 형성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이 페이지의 하단에는 박스로 해서 사단과 칠정의 개념이 소개돼 있다.

• 사단(四端) : 인간의 본성에서 우라나오는 마음씨, 즉 선천적이며 도덕적인 능력으로, <맹자>에 나오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측은지심], 자신의 불의를 부끄러워하고 남의 불의를 미워하는 마음[수오지심], 양보하는 마음[사양지심], 잘잘못을 분별하여 가리는 마음[시비지심] 이다.
• 칠정(七情) : 인간의 본성이 사물과 만나면서 표현되는 자연적인 감정으로, <예기>에 나오는 기쁨[희(喜)], 노여움[노(怒)], 슬픔[애(哀)], 두려움[구(懼)], 사랑[애(愛)], 미움[오(惡)], 욕망[욕(欲)]의 일곱 가지 이다.

 

자, 이게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는 한국 철학의 일부분인 ‘사단칠정론’이다. 매우 사변적이고 현란한 내용을 한 페이지 분량도 안 되게 간결히 압축해 놓았다. 그래서 인지 학생들이 이해하기 어려울만하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행간에 숨어 있는 내용들이 엄청나서 한 문장에 대한 주석이 논문 한편 한편 수준이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도 그렇지만 그때보다 설명이 더욱 간결히 압축 된 느낌이다. 기억하기론 2페이지 분량의 내용이 빽빽했던 것 같다. 이 내용이 중요했는지 교과서가 개정이 되더라도 이 부분은 계속 수록되어 있다. 혹시나 해서 70년대 교과서도 구경해 보니, 역시나 있다!

한국철학사에서, 아니 세계철학사에서도 한 획을 그은 형이상학 논쟁이기에 교육부는 사단칠정론을 간과 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러면 좀 더 쉽게 분량을 늘여서 자세히 설명해 놓지, 달랑 한 페이지면 너무 아쉽다.

그래서 이 기회에 ‘사단칠정론’에 대해서 쉽고 깔끔하게 정리해 놓기로 했다. 지금까지 읽었던 여러 한국철학 책을 밑천삼아 사단칠정론 부분만을 풀어서 설명해 보기로 한 것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했다!) 더 알고 싶으신 분은 민족과사상연구회에서 펴낸 <사단칠정론>이 있으니 참고하시면 되시겠다~
(사실 한국철학에 관심을 갖는 분들이 거의 없는 것 같아 개인적으로 참 아쉽다. 관련 책들도 적고. 읽는 사람은 더더욱 적고! 완전 우리 철학인데!!)


각설하고.. 조선 중기, 대표적인 형이상학 논쟁인 <사단칠정론>에 대한 설명 들어가시겠다~


이기론은 일단 학문적으로는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집니다. 우주의 기본원리와 인간의 본성을 이와 기로 설명하는 철학적 사유입니다. 이는 모든 사물의 생성과 변화의 원리를 주관하는 근본 원인이며, 기는 이의 원리가 현상적으로 구체화되는 요소입니다. 쉽게 말해서 이는 형이상적인 관념적인 것이고 기는 형이하적인 구체적인 것입니다. 사변적인 주희의 성리학은 조선에 들어오면서 심성론과 수양론으로 전개되어 집니다. 우주의 원리를 설명하는 원리에서 인간의 본성과 수양을 설명하는 철학적 수단으로 변용되는 것이죠.

 사변적인 이기론이 아닌 인간의 심성론과 수양론으로 연결되는 아주 기본적인 맥락으로서 이기론을 살펴보겠습니다.

 사람이 말을 탔습니다. 말의 기수가 모는 대로 말은 방향을 바꾸거나 달리거나 멈춥니다. 말의 기수가 곧 이요, 말과 기수 모두를 기로 볼 수 있습니다. 기가 발하여 이가 기에 내재한다는 말을 상기하면 됩니다. 이것을 한자로 표현하면 기발이승지(氣發理乘之) 또는 기발이수지(氣發理隨之)
 라고 합니다..

 이는 만물을 움직이는 동인이요 사물의 근본이치입니다. 그래서 이황은 사단(=인간의 순선한 면)은 이가 발한 것이고 칠정(=인간이 선할수도 악할수도 있는 면)은 기가 발한 것이라고 한 것이죠.
 


 이와 기에 연결된 두 분(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의 사단칠정론을 살펴보면..

 이황의 이기호발설은 이기공발설 또는 이기양발설이라고도 합니다. 쉽게 말해서 ‘사단은 이가발한 것’이고 ‘칠정은 기가 발한 것’이라는 거죠. (호발설 또는 양발설이라고 하는 것은 이과 기가 다 같이 발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뒤에서 보겠지만 율곡은 이는 발할 수 없고 발하는 것은 기뿐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율곡의 학설을 기발이승일도설이라고 합니다. ‘기가 발하여 이가 기에 내재한다’고 표현하죠.

 사단은 인의예지(仁義禮智)인 인간의 순선한 것이고 칠정은 희노애구애오욕의 감정적 측면으로서 가변적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단은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 다시 말해서 본연지성을 말하는 것이고 칠정은 가변적인 기질지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황에 따르면, 인간의 본성인 순선한 사단은 이가 발한 것이 되고, 칠정은 기가발한 것이 되게 됩니다. 이란 보편적인 것을 발하게 하는 것이고, 기는 특수한 것을 발하게 하는 것으로 파악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가 발하여 기가 이에 따른다고 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율곡은 퇴계의 학설을 반대합니다. 그런데 그 반대의 논점이 기대승의 논점을 그대로 계승했다는 점입니다. 너무도 유명한 이황과 기대승의 7년 서신의 결정체인 <사단칠정론> 논쟁에서 기대승이 이황의 이기양발설[=이기호발설]의 논리가 부당함을 역설합니다. 그 논점을 율곡이 그대로 계승하게 됩니다. 복잡하지만 그 이론의 뼈대만 보겠습니다.

 이황은 ‘사단은 이가 발한 것’이고 ‘칠정은 기가발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율곡은(율곡의 이 이론이 기대승이 비판한 이론입니다.) 사단과 칠정이 모두 기가 발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발하는 것은 기이고 이는 운동성이 없어 발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도 그럴것이 이는 쉽게 말해서 움직이게 하는 동인이지 스스로 움직이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발한 기 중에서 순선한 것이 발현되면 그것이 사단이고 발한 것이 순선하지 못하고 불순한 게 섞여 있으면 칠정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이가 ‘이통기국(理通氣局)’으로 표현한 것이죠.

 그런데 이것이 이황처럼 사단과 칠정이 따로따로 발하는 구조가 아니라 서로 섞여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것이 ‘이기지묘(理氣之妙)’라는 것이죠. 그래서 ‘발한 기 중에서 순선한 것’이라는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칠정 속에 사단이 포함되어 있다는 구조라 할 수 있습니다. (벤다이어그램을 그려서 생각해 보면 됩니다.)

 

 이것은 수양론으로 연결됩니다. 사단은 이가 발한 것이기 때문에 이가 중요한 것이 됩니다. 곧, 이황은 선정의 근원을 이에 둡니다. 그리하여 도덕수양, 다시 말해 존양성찰의 공부는 이를 왕성하게 하여 언제 어디서라도 기를 지배하도록 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인간이 하늘로부터 받은 선한 본성(=사단)이 제대로 발현되도록 해야 한다는 논리로 귀착됩니다.

 그러나 이이의 경우, 이는 무위 · 무조작한 것이요 기의 존재를 규정해주는  근거인 만큼(이것을 전문용어로 소이연이라고 합니다), 마음의 작용에 성악이 발생하는 것은 이로 인한 것이 아니고, 이를 싣고서 이것을 구체화시키는 기의 성질에 관계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기질을 변화 · 개선시켜 청명하고 순수한 본연의 기를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다시 말해서, 이황이 본연지성의 회복을 강조한 데 비해, 이이는 기의 본연 즉 기의 회복을 강조하고 있는 점이 중요한 차이라 할 것입니다.

 요컨대, 이성이 주가 되는 조정기능을 강조함으로써 욕망을 철저히 이성의 명령, 통제 아래 두려는 경향이 퇴계였다면, 이에 대해 이성이 욕망에서 분리될 수 없음을 강조함으로써 욕망의 자체 정화를 강조하려는 경향이 율곡이었다고 이해하면 상대적으로 이해하기 쉽습니다~

 
 
퇴계와 율곡의 이기설과 사칠론 그리고 수양론은 하나로 이어진 구조로 되어있어 분리해서 이해하면 깊은 뜻을 음미할 수 없습니다. 고교 윤리 교과서에 실린 내용은 너무도 간결하게 서술되어 고교생이 이기론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어 보입니다. 여튼 상식으로라도 한국 성리 철학의 이기론에 대한 요점을 알아 두면 좋겠군요. 그런 의미에서 정리를 해 봤습니다. 다음 책들을 읽고 정리한 것이니 관심 있는 분들은 일독해 보시길~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10-08-20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애들은 너무란 의미의 '개'라는 말을 많이 쓰더군요.
개무시, 개졸려, 개배고프더라...등등.
정말 개같은 세상이어요.ㅋㅋ
요즘 고등 교과서 어느 수준인지 보고 싶긴해요.
다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구요.
근데 확실히 사단칠정론은 어려운 것 같군요.ㅜ

yamoo 2010-08-20 22:58   좋아요 0 | URL
하하, 확실히 접두어 개를 많이 붙여 쓰더군요..개같은 세상..ㅋㅋ
요즘 고등 교과서는 올 컬러에다가 종이 질도 좋고 그래요..근데, 넘 간략한 거 같아여~

공부하는 건 어렵지 않아염~ 전 관심있는 거 막 공구하구 그래요^^

사단칠정론이 어려운 건, 그 아득한 고교시절 이후 잊혀지기 때문에 그래요..인문계로 진학하면 그 뒤론 과학과목하고 바이바이~ 이공계열로 진학하면 이후 이런 한국학에 관계된 것들은 바이바이 하게 되어여~~ㅎ 내용이 어렵다기 보단 생소해서 그런다고 확신하는 1인!

pjy 2010-08-20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퍼가 안 읽어집니다...너무 어렵습니다~ 고등학교때 이런게 있었나 기억도 나지않는 ㅜ.ㅜ

yamoo 2010-08-20 23:02   좋아요 0 | URL
앗, 그렇습니까? 아...그럼 않읽으셔도 됩니당~~~ㅎㅎ 저도 이웃 서재의 난해한 글이 주루룩 있으면 그냥 넘어가거든요~ㅎㅎ 이건, 그냥 제가 정리해 둬야 겠기에 한 번 써본거에요~ㅋㅋ 관심있는 분들이야 좀 거들떠 보고 저의 후안무치 막급한 글에 비판을 날려 주시겠죠^^ 헛소리 하네 하믄서여~ 이건 제가 반드시 정리를 하고 넘어가야 하는 거라서 써본거랍니다~

그냥이 2011-10-26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냥 지나가다가...밑에서 3단락에 마음의 작용에 성악이?? 선악 아닌가 해서요 ㅋ
좋은 정보 잘 읽고 갑니다~>_<

yamoo 2011-10-26 22:59   좋아요 0 | URL
허허, 지나가다가 이런 글도 꼼꼼히 읽으시는군요~ㅎ

확실히 오타네요...선악의 오타^^ 감사합니다~

궁금이 2012-10-28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이거 정말 내공이 깊은 분의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믾은 도움 얻고 갑니다. 감사. 꾸벅.

너구리 2014-06-18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내일 시험이라 이것저것 찾고있는데, 지금까지 읽었던 여러 글들 중에서 제일 이해하기 쉽게 써 놓으셔서 도움이 많이되네요^^ 필력이 좋으신거 같아요 잘보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