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의 습관
전경린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2년 1월
평점 :
품절


  전경린의 <열정의 습관>을 읽었습니다. 읽는 중에도 계속 불편했습니다. 대담하고도 도발적인 섹스에 대한 내용 때문에. 그도 그럴 것이 책 말미에, 이 책이 문화일보에서 기획된 '우리시대 젊은 여성의 성과 사랑'의 기획의도 하에서 쓰인 글을 한권의 책으로 묶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문화일보 소설 난에 릴레이식으로 젊은 여성작가들의 소설들이 연재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여간~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절대~ 지하철에서 읽을 수 없습니다. 낮 뜨거워서. 거의 포르노소설을 방불케하는 적나라한 내용으로 인해. 첫 장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맨 마지막장까지 그 수위가 유지됩니다.

그런데 마광수의 저작들과 남과 여에 대한 다른 연애지상주의자들의 책을 꽤 봐왔지만, 전경린의 <열정의 습관>만큼 수위가 높고 불편한 책은 못 보았습니다. 마광수교수의 <성애론>과 여타 감각적인 소설들이 남성의 입장에서 서술된 것이라면 이 책은 철저히 여성의 입장에서 묘사되어 있어, 느낌이 무척 다릅니다. 저는 그것을 불편함이라 느낌입니다만...

확실히 여자와 남자가 느끼는 성과 사랑은 철저히 다른 것 같습니다. 똑같은 행위를 하는 와중에서도 생각하는 바가 다르고 사랑으로 인해, 섹스로 인해 고뇌하는 것 또한 범주가 확실히 다름을 이 소설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소설은 단편식의 옴니버스식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미홍, 인교, 가현 등 에피소드의 주인공들을 부각시켜 단편을 구성하고, 이들을 친구관계로 엮어 한편의 장편소설을 이루고 있습니다. 주제는 위에서 밝혔던 대로 여자들이 느끼는 성과 사랑을 가식을 벗어던지고 좀 더 진지하게 얘기해 보자는 것입니다.

미홍은 자유연애를 부르짖는 순간순간의 느낌에 충실한 여자. 인교는 무엇이 사랑인지 끊임없는 시행착오 속에서 번뇌하는 여자. 가현은 사랑이 뭔지는 모르지만 섹스가 반드시 동반되야 하지만, 그 진실이 무엇인지 흐릿해서 오르가즘에 집착하는 여자.

소설은 이 3명의 여성을 등장시켜 작가의 성애론을 펼치고 있습니다. 아무리 봐도 주인공은 미홍입니다. 인교와 가현은 미홍의 논리를 완성시키기 위한 보조적 장치이자 보론인 것 같고, 요점은 미홍인 것 같습니다.

미홍을 대리해서 전경린이 주장하고 있는 느낌 있는 사랑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결국은 섹스이고, 섹스는 느낌으로 인해서, 순간순간의 감각에 충실한 것이 그의 삶에 가장 충실하다는 생각에는 ‘아니야~!’를 외치게 됩니다.

전경린은 무수한 사랑에 대한 담론을 쏟아내지만, 솔직히 저로서는 동의할 수 없는 것들뿐입니다. 이전의 여성작가들이 묘사한 성적내용은 매우 추상적이고 고리타분해서 그저 그렇고, 전경린은 너무 급진적이어서 불편합니다.

이 작품은 그냥 가벼운 불편한 소설만은 아닙니다. 감각적으로 시작된 첫 장의 에피소드가 뒤로 갈수록 심각해지고 진실로 묻고 있습니다. ‘그런 것으로 인해 네가 행복하니’라고. ‘그런 행위가 진정한 사랑인가’라고. 그리고 ‘섹스가 한 인간의 삶속에 무슨 의미인가’라고.

인생은 여러 경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인간, 저런 인생. 하지만 미홍이 보여주는 삶은 중독된 쾌락주의자의 모습입니다. 오로지 섹스에 탐닉하는…. 그런 식의 주장이라면, 마약도 동일한 맥락으로 상습복용을 정당화 시킬 수 있을 겁니다.

우리의 삶은 물론 가식을 벗어던진 느낌에 충실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저도 그걸 부정하고 싶진 않습니다. 자유연애에 찬성표를 던지지만 사랑이라는 표현은 그게 전부가 아닌 것 같습니다. 사랑도 여러 가지가 있는 것을 존중해주는 것처럼 섹스를 제외한 사랑이 모든 가식은 아닐 것이고, 인간 실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이 오로지 섹스에 의한 감각적 느낌에만 머물기에는 인간의 사랑이 과연 1차원적일 수밖에 없는지...무한한 의문의 듭니다.

솔직히 이 책은 불편했지만, 여성이 사랑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는지, 어떤 흥분의 매카니즘을 갖고 있는지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었습니다. 사실적인 묘사가 없었다면 몰랐을  여성들의 사랑관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어 큰 소득을 올렸다고 생각됩니다. 읽을 가치는 충분합니다. 그리고 읽는 이의 사랑에 대한 가치만큼 더 많은 생각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