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시.은총의 일격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1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지음, 윤진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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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편지는, 그대여, 무척 긴 글이 될 거요.” 소설의 첫 문장입니다. 자신의 부도덕함을 토로하기 위해 선택한 이 문장은 매우 인상적이고 강렬했습니다. 책을 펼쳐 첫 문장을 읽었을 때 나는 대작을 만났다라는 느낌이었고, 이어지는 문장을 따라가면서 이는 확신으로 바뀌었습니다.

 

, 고전적 소설 한 편을 아주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편지 형식의 고백체 소설은 아주 오랜 만인데, 그냥 한 통의 편지를 94페이지에 담았습니다. 장이나 절과 같은 소설의 형식은 찾아 볼 수 없고, 그냥 아주 긴, 사연을 담은 편지 한 통입니다.

 

편지 내용은 동성애자인 남편이 아내에게 용서를 구하는 형식으로 돼 있지만, 그게 자기변명이 아니라, 한때의 경솔한 약속에 대한 사죄를 담고 있습니다. 자신의 부도덕함을 토로하는 글이지만 문장은 매우 간결하면서도 강력합니다.

 

톨스토이의 <크로이체르 소나타>나 앙드레 지드의 <배덕자>와 비슷한 느낌이지만, 1인칭 화자가 삶을 반추하며 말하는 방식은 전혀 다릅니다. 특히 주인공이 말하는 방식에 반해 계속 읽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처음에는 죄를 범할 기회를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소. 이내 우리의 행동은 징후로서의 가치밖에 지니지 않음을 깨달았소. 우리의 타고난 기질 자체를 바꾸어야 하는 거요.”

 

처음의 생각이 시간이 지나 다르게 깨달아지고, 이를 통해 판단으로 나아가는 화자의 말하기 방식은 글을 읽는 내내 빠져들 수밖에 없게 합니다. 하오체 문장은 고전적이지만 화자의 고백에 독자를 끌어당기는 묘미를 줍니다.

 

그리고 다음 부분을 읽게 되었을 때 줄을 치고 별표를 하며 3-4번 반복해 읽었습니다. 평소 내 생각과 너무도 일치하는데, 멋진 문장들로 화자가 말해주니 감동이 배가 되었습니다. 베그르손을 깊이 연구한 철학자가 생의 마지막에 들려주는 이야기 같다고나 할까요. 좀 길게 인용해 봤습니다.

 

삶은 그냥 삶이오. 삶은 우리가 가진 단 하나의 좋은 것이고, 우리에게 주어진 단 하나의 저주요. 우리는 사는 거요, 모니크. 우리는 각자 자기만의 특별하고 유일한 삶을, 우리가 아무것도 손댈 수 없는 과거 전체에 의해 결정된 삶, 아주 작은 것으로도 미래 전체를 결정지을 수 있는 삶을 사는 거요. 자기의 삶. 오로지 그 자신만의 것인, 두 번 있지 않을, 스스로 온전히 이해했는지 단 한 순간도 확신하지 못하는 삶 말이오. 삶 전체에 관한 이 말들은 삶의 매 순간에 대해서도 똑같소. 타인은 그저 우리가 있고 움직이고 말하는 것을 볼 뿐이오. 우리의 삶을 볼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뿐이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는 우리의 삶을 보고 우리의 삶이 이러저러하다는 데 놀라면서도, 그 삶을 바꾸지는 못한다오. 우리의 삶을 심판할 때조차 우리는 여전히 그 삶에 속해 있소. 삶을 향한 찬양도 비난도 삶의 일부인 거요. 삶은 언제나 삶을 비출 뿐이오.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우리 각자에게 세상은 오로지 우리 삶에 와 땋을 때에만 존재하는 거요. 그리고 삶을 이루는 요소들은 분리될 수 없소. 우리가 자랑스러워하는 본능들과 우리가 드러내지 못하는 본능들은 결국 같은 곳에서 나왔소. 그중 하나를 바꾸면 다른 것도 함께 바뀔 수밖에 없지. 말은 이제, 너무도 많은 사람이 사용하기에, 모니크, 더 이상 그 누구한테도 적합하지 않게 되어버렸다오. 어떻게 과학적인 용어 하나가 하나의 삶을 설명할 수 있단 말이오. 하나의 사실조차 설명할 수 없으면서. 그저 가리킬 뿐이지. 늘 비슷하게 가리키는데, 그런데도 다른 삶 속에 있는 것 같은 사실일 수 없고, 하나의 삶 속에 있을 때조차도 아마도 같은 사실일 수 없다오. 사실 따지고 보면 단순하오. 해명하기 쉽고, 어쩌면 당신은 이미 짐작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소. 하지만 당신이 모든 것을 다 안다 해도 나 스스로를 설명하는 일은 그대로 남는다오. (pp32-33)

 

정말 놀랍지 않나요?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는 이 작품을 발표한 때가 20대였습니다. 그것도 대중에게 첫선을 보이는 데뷔작에서 말이죠. 20대 여성 작가가 중년의 남성 화자를 통해 삶에 대한 통찰을 이 정도까지 설파할 수 있다는 데에 저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 책에는 <은총의 일격>도 수록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알렉시>가 훨씬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앞에 인용된 부분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다른 모든 문장은 이 부분을 위한 사족같이 여겨졌으니까요. 정말 끝내주는 책이라 아니할 수 없고, 작가 유르스나르를 모르시는 분들에게 강추하는 바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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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04-26 14: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우 이런 평을 받는 작품은 궁금해서 안읽을수가 없더라구요 ㅋ 저 읽어보겠습니다~!!

yamoo 2023-04-26 19:30   좋아요 3 | URL
새파랑님은 일독한 후 어떤 느낌이실지 궁금합니다. 리뷰로 남겨주시면 얼른 가서 탐독하겠습니다..ㅎㅎ

정말 대단한 데뷔작입니다!

페크pek0501 2023-05-01 16: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추하신다니 어떤 책인지 궁금합니다. (검색해 봐야징... 후다닥!!!)

yamoo 2023-05-02 10:12   좋아요 0 | URL
이 책, 페크 님께서 읽으시면 어떠실지...
전 굉장히 인상깊었습니다.
강추해 드립니다~ 일독하시면 아주아주 좋을 듯합니다!!^^

그레이스 2023-05-01 17: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입력합니다.

yamoo 2023-05-02 10:13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 님두 일독해 보시면 좋을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