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역사는 시간이 흐른다는 이유만으로 진보하는가? 말했다시피 이건 나이가 든다는 이유만으로 인간은 지혜로워진다는 것만큼이나 거대한 착각이다. 인간은 저절로 나아질 수 없고, 그런 인간의 역사 역시 시간이 흐른다는 이유만으로 진보하지 않는다. 가만히 놔두면 인간은 나빠지며, 역사는 더 나쁘게 과거를 반복한다.
즉 진보의 관점에서 보자면, 과거가 더 낫게 미래를 반복한다. 그러므로 이반 일리치는 "미래는 삶을 잡아먹는 우상입니다. 우리에게는 미래가 없습니다. 오직 희망만이 있을 뿐입니다"라고 말한 것이다. - <눈먼자들의 도시> P40
꽤 오랜 전 인듯하다. 김사과 작가의 귀신 싯나락 까먹는 논증을 보고 여기 페이퍼를 쓴 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근데, 또 다른 한 작가에 의해 그 옛날의 기억이 떠오르게 됐다. 이번에는 김애란 작가다.
사실, 김사과의 경우 내게는 듣보잡 작가였는데, 김애란은 내게도 아주 익숙한 작가다. 그 모든 문학상이란 문학상을 모조리 휩쓴 현 한국 문학을 이끌어 가고 있는 기수 아닌가. 나는 단편 하나 읽고 나와 맞지 않는 작가라 두 번 다시 눈길을 주지 않은 작가지만, 김애란에 대한 평단의 기대와 대중적 인기는 실로 크다.
나같은 넘이 지껄인다고 뭐하나 달라질 것도 없는 그런 위대한(?) 작가다. 근데, 시론이랍시고 쓴 글은 정말 함량미달인 듯 보인다. <눈먼자들의 국가>(문학동네, 2014)라는 작가 모음 시론집인데, 그 첫 에세이가 바로 김애란의 「기우는 봄, 우리가 본 것」이다. 인용된 부분은 바로 여기 실려 있다.
인용된 첫 두 줄, “과연 역사는 시간이 흐른다는 이유만으로 진보하는가? 말했다시피 이건 나이가 든다는 이유만으로 인간은 지혜로워진다는 것만큼이나 거대한 착각이다.”라는 건, 하나마나 한 소리다. 시간이 흐른다는 이유만으로 진보가 되지 않는다는 건 삼척동자라는 아는 사실이다. 나이 먹는다는 이유만으로 인간이 지혜로워진다는 것이 거대한 착각이 아니라는 말도 유비가 될 수 없을 정도로 뻔한 얘기다.
뒤따라오는 문장이 정말 한심하다. 김애란은 이걸 말하기 위해 ‘거대한 착각’ 운운한 듯 보인다. 이 문장 역시 거대한 착각을 지지하는 논거로 사용됐기에 그렇다. “인간은 저절로 나아질 수 없고, 그런 인간의 역사 역시 시간이 흐른다는 이유만으로 진보하지 않는다.” 이 문장을 보면 김애란도 어떤 편견에 사로잡힌 듯 보이다.
인간은 원래 태어난 대로 살아간다. 종교적으로나 실존적으로 아주 커다란 깨달음을 얻지 않는 이상 생긴 대로 살다가는 게 자연스럽다. 아니, 좀 더 생각해보면 인간이 나아진다는 자체도 매우 모호하다. 어떤 관점을 취하느냐에 따라 ‘나아진다’는 건 매우 모순적인 결과를 낳게 된다. 인간적으로 나아져도 생태적으로는 전혀 나아진 게 아닐 수 있는 게 인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역사가 진보한다는 건 우스꽝스런 복음이며, 이게 잘못된 망상이라는 건 아주 널리 밝혀져서 논할 가치조차도 없는, 지극히 상식이 된지 오래다. 이런 당연한 사실을 김애란은 지금 수사적 논증을 통해 아니라고 당당히 밝히고 있는 거다. 이게 고3 논술 문장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싶지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의 논증이라니, 기가 찰 노릇이다.
가장 심각한 건 일리치의 말을 인용하기 직전의 두 문장이다. “가만히 놔두면 인간은 나빠지며, 역사는 더 나쁘게 과거를 반복한다. 즉 진보의 관점에서 보자면, 과거가 더 낫게 미래를 반복한다.” 가만히 놔두면 더 좋아지는 인간들이 있기는 있다. 그래서 ‘가만히 놔두면 인간은 나빠진다.’는 명제는 참 거짓을 말할 수 없는 전형적인 명제다.
근데 김애란은 여기서 더 일반적인 역사적 사실을 이끌어 내는 ‘비약’을 멋지게 실행한다. 역사는 더 나쁘게 과거를 반복한단다. 지금까지 역사가 어떤 외부적 힘에 의해서 좋게 흘러왔나? 진보의 과점에서 보면 과거가 더 낫게 미래를 반복하나? 이 논증은 그야말로 소설이다. 망상에 픽션을 가미하면 이런 논증이 가능한가보다.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는 어떤 외부적 힘에 의해서 지금까지 온 게 아니다. 사관은 순환할지 모르지만 인류의 시간은 그냥 일직선으로 쭉 흐를 수밖에 없다. 물이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시간은 미래를 관통해 간다. 미래가 과거로 바뀌는 순간이 현재이고 인간은 그걸 어떻게 할 수조차 없다.
설탕물을 먹으려면 설탕이 녹는 시간을 기다려야하듯이 시간은 흐름이요, 역사 역시 기다림의 축적이다. 과거가 더 낫게 미래를 반복한다는 건 헛소리다. 진보적 관점에서 봐도 그렇다. 김애란은 역사에서 ‘진보’라는 개념을 매우 작위적으로 이해하는 듯하다.
결론적으로 김애란은 일리치의 주장을 가져오기 위해서 자신의 생각을 부가한 것인데, 앞 두문장은 하나마나 한 소리이며 뒤의 문장들은 논리적 비약을 통한 전형적인 개소리일 뿐, 일리치의 주장은 생뚱맞게 허공을 울릴 뿐이다. 이 ‘황당한 무려력’을 보여주는 논증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