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소녀 우리같이 청소년문고 14
이정옥 지음 / 우리같이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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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가위소녀』는 위소에 대한 이야기다. 위소는 가위소녀의 준말이자, 위험한 소녀, 위태로운 소녀의 준말이기도 하다. 이제 중학생인 솔은 초등학교시절부터 가위로 자신의 머리를 자르곤 해서, 위소라 불린다.

 

솔이 자신의 머리를 마치 남자 아이들처럼, 그리고 아무렇게나 잘라대는 것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너무나 먹먹하고 막막하여 견딜 수고 없기 때문이다. 솔의 가정사를 들여다보면, 이런 솔의 막막함을 알 수 있다.

 

솔의 엄마는 자폐를 앓고 있다. 그리고 엄마보다 5살이 많은 외삼촌 역시 자폐를 앓고 있다. 솔이 아빠가 누구인지는 끝내 밝히지 않아 모른다. 아마 여기에도 솔이 가위를 들어야말 견뎌낼 수 있는 아픔, 기막힌 사연이 담겨 있으리라. 자폐를 앓고 있는 엄마를 둔 솔은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 함께 살아간다.

 

자신의 머리칼을 잘라낼 수밖에 없는, 그렇게 해야만 견뎌낼 수 있는 어린 솔의 삶의 무게가 독자들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그리고 솔의 이런 가위질은 엄마보다 자폐의 정도가 심한 삼촌의 가위질에 영향을 받았다. 삼촌의 자폐 증상 가운데 하나는 가위로 뭔가를 끊임없이 잘라야만 한다. 삼촌보다는 자폐의 증상이 약하지만, 엄마의 증상은 갑자가 옷을 훌렁훌렁 벗어버리는 것. 이처럼 위소 솔을 가로막은 삶의 견고한 벽이 존재한다. 이런 솔의 막막함을 솔은 이렇게 표현한다.

 

“삼촌이 가위질을 하는 게, 그렇게 해서라도 꽉 막힌 삼촌의 머릿속을 ‘풀어’보려는 것으로 여겼으니까. 엄마가 옷을 훌렁훌렁 벗어 버리는 게, 그렇게 해서라도 꽉 막힌 머릿속을 ‘정리’하려는 것으로 생각되었으니까. 삼촌도 그렇고 엄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너무나 먹먹하고 막막해서 견딜 수가 없었을 테니까.”(162쪽)

 

이처럼 막막하여 견딜 수 없는 삶의 무게를 안고 살아가는 솔이, 그 삶의 무게를 견뎌내며, 넘을 수 없을 것 같던 벽을 건너는 동력으로 여러 가지가 등장한다. 먼저, 작은 외할머니인 산할머니가 가장 중요한 동력 가운데 하나다. 언제나 더불어 사는 삶,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며 살아가는 산할머니를 통해, 솔은 진정한 친구들을 갖게 된다.

 

또 하나의 동력은 증조외할아버지(외할머니의 아버지)인 꽃할배의 젊음, 치기, 객기 등이 아닐까 싶다. 이제 곧 아흔을 맞게 될 연세임에도 여전히 멋쟁이로 오토바이를 몰고 다니는 청년 꽃할배의 그 젊은 정신 역시, 애늙은이처럼 살아가는 위소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어주는 동력이 된다.

 

또 하나는 아무래도 친구들이겠다. 진정한 친구들을 만나게 되고, 그런 친구들을 통해, 함께 손을 잡고 마치 담쟁이처럼 그네들의 앞을 가로막은 벽을 올라 넘어가는 모습이야말로 이 시가 지향하는 바일 것이다.

 

이 땅의 수많은 ‘위소’들이 그들 앞에 가로막고 있는 벽을 올라 넘어가는 축복이 있길 소망해 본다.

 

작가는 위소, 솔 앞에 놓은 인생의 무게를 벽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이런 벽을 넘길 바라는 작가의 마음을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란 시로 풀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시의 출처를 밝히지 않음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게다가 작가는 처음에 이 소설의 가제를 <담쟁이>이라 붙였다니, 이 시는 이 작품 가운데 위소인 솔과 그의 친구들이 함께 손을 잡고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벽을 결국에는 넘어가는 중요한 모티브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니, 적어도 출처를 밝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어쩌면 작가가 ‘작가의 말’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세월호’라는 엄청난 사건 이후에 자신의 작품이 다시 고쳐 쓸 수밖에 없었음을 감안한다면, 이런 과정 가운데 누락된 것이라 여길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에 또 하나의 아쉬움이 남는다. ‘세월호’ 사건은 우리 역사 가운데 결코 지울 수 없는 엄청난 아픔의 사건임에 분명하다. 그리고 이 사건을 우린 영원히 기억해야 마땅하며, 더 이상 그런 끔찍하고, 말도 안 되는 역사는 반복되지 않아야 함에 분명하다. 하지만, 어쩌면 이러한 엄청난 사건을 꼭 반영해야만 한다는 작가의 의무감(?)이 왠지 이 소설 속에서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갖게 하고 있다 여겨진다. 물론, 이것을 더 좋게 여길 수도 있겠지만, 내 개인적 생각은 그렇다. 왠지 뜬금없다는 생각이었으니.

 

아무튼 그럼에도 이 땅의 수많은 ‘위소’들에 대한 돌아봄의 시간을 갖게 한 좋은 작품임에 분명하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에도 등장하는 시 <담쟁이>란 시를 언급하며 이 땅의 모든 '위소'들이 벽을 넘길 소망하며 서평을 마칠까 한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잎 하나는 담쟁이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도종환, <담쟁이>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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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의 분실물센터
브룩 데이비스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수첩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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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명이 있는 것은 언젠가는 다 죽게 마련이다(이 책에서 밀리를 통해 강조되는 내용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당연히 우리 인간 역시 포함된다. 하지만, 모든 생명이 죽기 마련이기에 죽음이 가벼운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특히, 누군가의 죽음 뒤에 남겨진 자가 겪어야 할 충격의 시간들, 공허한 시간들은 말할 필요도 없다. 게다가 그 죽음이 나와 가장 가까운 이의 죽음이라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바로 이런 죽음에 대해 때론 다소 유쾌하고, 때론 다소 철딱서니 없으며, 때론 다소 철학적으로 성찰하는 이야기가 있다. 제목도 범상치 않은 『밀리의 분실물 센터』.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세 명이다. 제일 먼저, 밀리가 주인공이다. 이제 겨우 7살인 꼬마 아가씨 밀리. 그녀에게는 남들과 다른 취미(?)가 있다. 바로 죽음을 수집한다는 것. 자신이 기르던 개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하여, 전혀 상관없는 타인의 죽음, 그리고 거미와 파리의 죽음까지 수집한다. 그리고 이 죽음을 자신만의 노트, 「죽은 것들의 기록장」에 기록한다. 왠지, 덴도 아라타의 소설, 『애도하는 사람』을 떠올려보게 되는 내용이기도 하다. 이런 밀리의 「죽은 것들의 기록장」 28번째로 기록되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아빠.”

 

그렇다. 밀리의 아빠는 어린 밀리를 남겨놓고 죽는다. 그런 밀리에게 아빠의 죽음보다 더 큰 충격의 사건이 다가온다. 어느 날 엄마와 함께 간 백화점. 엄마는 속옷코너에서 기다리라 하고선 사라져 버린다. 밀리는 그곳 백화점에서 떠나지 않는다. 밤엔 몰래 숨어 그 자리를 지킨다. 하루, 이틀,,, 하지만, 엄마는 오지 않는다. 밀리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사라져 버린 거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눈길이 있었으니, 이 눈길은 바로 또 다른 주인공인 80이 넘은 나이의 노인, 칼. 칼 역시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을 경험하고 아내를 그리워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나 여기 있어.’란 말을 거듭하며... 그런 칼을 아들과 며느리는 요양원에 보내버리고, 그곳에서 어느 날 칼은 아내가 살아 있을 당시 일탈을 꿈꾸며 했던 말을 떠올린다. 바로 문 닫은 백화점에 몰래 남아 밤을 보내는 일탈에 대한 이야기들. 하지만, 칼과 아내는 언제나 상상과 말은 많이 해도 행동으로는 잘 옮기지 못하는 소심한 사람들. 그런데, 문득 아내가 살았을 때 했던 그 말을 칼은 떠올리게 되고, 실제 행동으로 옮기려 한다. 무엇보다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끼기 위해 밤중에 요양원을 몰래 빠져 나가 문을 닫기 전 백화점 남자 탈의실에 숨어 있다가 아무도 없는 백화점에 남아 있는 모험을 즐기다가 밀리를 보게 된 것. 그리고 칼은 밀리를 도와주려는 마음을 품는다. 그래서 백화점의 관계자들이 밀리를 위탁시설에 보내려 할 때, 밀리의 탈출을 돕는다. 물론, 후엔 함께 밀리의 엄마 찾아 떠나는 여정에 합세하게 된다.

 

또 한 사람의 주인공은 역시 사랑하는 남편을 떠나보내고 하루하루를 시간을 죽이며 보내는 할머니 애거서. 그녀의 일상이 참 의미 없다. 그녀의 일상은 그저 의자를 옮겨다니며 앉는 것뿐이다. 믿기지 않는 심정의 의자에 앉는 것으로부터 일상을 시작하여, 맛을 음미하는 의자, 안목을 과시하는 의자, 분노하는 의자, 불평하는 의자, 좌절하는 의자 등에 앉는다. 물론, 하루의 마무리는 또 다시 믿기지 않는 심정의 의자에 앉으며 하루를 마감한다. 그렇게 수년을 살아간다.

 

그런 애거서는 ‘안목을 과시하는 의자’에 앉아 창밖을 쳐다보다가 옆집 밀리를 보게 된다. 백화점에서 무사히 탈출하여 집으로 돌아온 밀리를 말이다. 처음엔 참견하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 밀리의 엄마 찾는 여정의 동반자가 된다.

 

경찰서에서 또 다시 도망친 칼이 극적으로 두 사람이 타고 떠나는 버스를 발견하게 되고, 나중에 그 버스에 합류하게 됨으로, 이 셋은 그들만의 여정을 함께 하게 되고, 이런 가운데 그들만의 방식으로 죽음을 떨쳐버리게 되는데. 과연 밀리는 엄마를 찾을 수 있을까?

 

이처럼 세 명의 주인공은 모두 어느 식으로든 죽음을 애도하는 자들이다. 7살 꼬마 여자아이와 80이 넘은 두 남녀, 이렇게 세 사람은 그들만의 여정을 통해, 또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어 간다.

 

이 소설을 통해, 작가가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바는 무엇일까? 먼저, 칼이 아내를 생각하며, 외치던 말, “나 여기 있어.” 그리고 밀리가 엄마를 기다리며, 또한 엄마를 찾아가며, 언제나 적는 말, “엄마, 나 여기 있어요.” 이 말 안에 죽음을 애도하는 작가만의 방식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닐까?

 

남겨진 자들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어쩌면, ‘거기’가 아닌 ‘여기’ 아닐까? 물론, 죽은 자들은 ‘거기’에 있겠지만, 우린 여전히, ‘여기’에 있으며, ‘여기’야말로 우리가 살아내야 할 공간이 아닐까? 비록 지금 당장은 슬픔이 있고, 허전함과 공허함에 짓눌려 있다 할지라도.

 

또 하나 작가가 남은 자들에게 바라는 바는 죽은 자들을 그리워하며 슬퍼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그럼에도 남겨진 자들이 다시 서로 부대끼며, 살아 있음을 느끼며, 생기 넘치게 살아가기를 원하는 것이 아닐까? 죽음에 짓눌려 하루하루 공허하게 살아가던 칼과 애거서가 다시 사랑을 느끼고, 젊은 시절의 만용을 부리기도 하는 그런 모습이야말로 어쩌면 살아 있음의 기운 아닐까?

 

물론, 소설에서 여러 차례 반복되는 말, “살아 있는 것은 언젠간 다 죽음을 맞는다.” 그러니,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즐거움으로 살아내야 하지 않을까? 때론 그런 삶이 만용이나 객기처럼 비춰질지라도, 살아 있음을 느끼며 살아내는 것이야말로 어쩌면 이미 떠난 사람을 애도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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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와 릴 이야기 : 우리 집에 놀러 올래?
줄리아 코퍼스 글, 서은영 그림, 최용환 옮김 / 미운오리새끼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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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멋쟁이 돼지 해리와 생쥐 릴의 이야기랍니다. 생쥐 릴이 해리를 집에 초대했답니다. 릴은 해리가 좋아하는 맛난 음식들을 잔뜩 장만하고 해리를 기다린답니다. 그런데, 시간이 되어도 해리가 오지 않네요. 창밖을 보니 안개가 잔뜩 기어 있어요. 릴은 해리가 혹 안개 때문에 길을 잃었을까 싶어, 해리를 찾아 나서봅니다.

 

릴은 만나는 친구들에게 해리를 봤는지 물어본답니다. 양에게, 사슴에게, 까마귀에게 묻는데, 모두 안개 속에서 뭔가를 봤네요. 모두 다른 걸 봤지만, 이 모두를 합하면 바로 바로 ... 해리랍니다. 해리는 안개 속을 걷다 진흙탕에 빠졌답니다.

 

모두가 함께 힘을 모아 진흙탕에서 해리를 구해내네요. 비록 시간은 늦었지만, 모두가 함께 릴의 집에서 맛난 음식을 먹으며 파티를 시작한답니다.

 

이 책은 무엇보다 동물들의 그림이 참 예쁘네요. 그리고 모두가 함께 힘을 모다 안개 속에서 길을 잃고 진흙웅덩이에 빠진 해리를 구해내는 모습도 참 보기 좋네요. 또한 생쥐 릴의 모습도 참 예쁘네요. 자신이 초대한 친구가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을 때, 혹 우린 언짢거나 화가 날 수도 있겠죠. 그런데, 릴은 화를 내기보다는 안개 속에서 친구가 혹 길을 잃은 것은 아닌지 걱정부터 하네요. 참 예쁜 마음이죠? 이런 예쁜 마음이 우리의 마음이 되면 좋겠네요.

 

진흙웅덩이에서 빠져 나온 해리의 여유로움도 의외네요. 힘든 표정은 전혀 볼 수 없답니다. 오히려 늦었지만, 지금 가도 차를 마실 수 있느냐며 릴에게 물어보는 여유로운 모습도 멋지답니다. 자신의 힘든 상황을 부각시켜 함께 힘들어 하는 것보다는 이처럼 자신의 힘듦은 감추고, 여유로운 모습을 보임으로 친구들의 파티가 즐거운 파티가 되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 아이들에게도 이런 여유로움과 남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다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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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길 따라 훨훨 나는 철새 씨앗 톡톡 과학 그림책 4
미셸 프란체스코니 지음, 이정주 옮김, 카퓌신 마질 그림 / 개암나무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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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 가운데는 텃새가 있고, 철새도 있다. 그런데, 이 둘 가운데 철새는 조금 억울한 느낌이 없지 않다. 왜냐하면, 철새에 대한 어감이 부정적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이다. 예를 든다면, 정치인들 가운데 자신의 정치적 신념 없이 그저 자신의 이익을 좇아 이리저리 당을 옮기는 정치인을 “철새 정치꾼”이라 부르곤 한다. 그러니, ‘철새’란 단어에는 부정적 의미가 담겨 있는 셈이다(반면 텃새에게는 그런 부정적 의미가 없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텃세부린다는 말은 텃새가 아닌 텃세이다).

 

그러니, 철새의 입장에서 이는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철새의 이동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다. 아울러 어쩌면 철새의 이동은 그들의 유전자 자체에 각인되어 있는 생존본능이자, 창조질서 일수도 있겠다. 그러니, 오히려 철새의 이동은 자연스러운 것이자, 아름다운 투쟁의 몸짓이기도 하겠다.

 

 

이 책, 『하늘 길 따라 훨훨 나는 철새』는 바로 이런 철새의 이동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는 그림책이다. 이 책은 도서출판 개암나무에서 출간되는 <씨앗 톡톡 과학 그림책> 4번째 책으로 철새에 대해 다루고 있다. <씨앗 톡톡 과학 그림책>에 대해서 책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과학을 처음 만나는 어린이들이 즐겁게 공부할 수 있도록 꾸민 교양 과학 시리즈입니다. 씨앗처럼 작은 호기심을 톡톡 두르려 과학에 흥미를 북돋우고, 일상생활 속에서 탐구하고 관찰하는 힘을 길러 줍니다.”

 

그렇다. 이 그림책은 아이들이 처음 접하게 되는 과학책이라 할 수 있다. 그림책이긴 하지만, 어쩌면 아이들에게 필요한 철새에 대한 정보를 집대성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몇 달 전 우연히 집 마당에서 하늘위에서 배회하는 철새들을 발견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알 수 없지만, 이들의 리더가 갑자기 없어졌나 보다. 수많은 새들이 흩어진 진영을 다시 이루려 해도 쉽지 않은가 보다. 몇 십분 동안을 하늘위에서 이리저리 맴돌며 진영을 만들려 애쓰는 모습을 관찰한 적이 있다. 새들은 계속 날면서, 모였다 흩어졌다 하며, 진영을 이루어 갔다. 문제는 리더가 확실하지 않을뿐더러, 리더로 나서는 이들이 한 마리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계속하여 진영이 2개, 3개, 이런 식으로 만들어졌다가 다시 흩어지기를 반복하던 가운데, 결국 한 무리는 진영을 이루어 그들의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꽤 오랜 시간동안 관찰한 적이 있다.

 

만약, 그 때가 이 책을 딸아이와 읽은 후였더라면 더욱 흥미를 가지고 하늘을 관찰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은 후 그 때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유익한 시간을 가졌다. 분명한 것은 앞으로 이 책을 읽은 후의 딸아이에게는 새들의 이동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질 것이라는 점이다. 이것이 이 책의 목적하는 바가 아닐까. 아이들의 처음 과학책으로 참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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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수 없는 이야기, 제주 4.3은 왜?
신여랑 외 지음, 김종민 외 그림 / 사계절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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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 『믿을 수 없는 이야기』처럼, 제주 4.3 사건은 쉽게 믿을 수 없는 일이 실제 일어난 사건이다. 물론, 제주 4.3뿐이겠나?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도 그렇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여순반란사건’이라 부르는 ‘여순사건’에서도 얼마나 많은 학살이 벌어졌나?

 

얼마나 많은 이들이 군대와 경찰의 폭력 앞에 죽었으면, 한국전쟁 다음으로 많은 수의 민간인들이 죽은 사건일까? 하지만, 또 얼마나 오랫동안 이 사건은 반란사건으로 곡해되어져서 수많은 국민들에게 이식되었던가?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김대중 정부의 공약 가운데 하나가 4.3사건의 진상규명이었고, 실제 그 일이 시작되어, 노무현 정부에 이르러서는 국가 차원에서 제주도민들을 향한, 4.3 피해자 가족들을 향한 공식적인 사과가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금도 여전히 4.3에 대해서 우 편향적인 여러 목소리들이 있음도 사실이다. 명백한 역사의 실수임에도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억울하게 고통 받은 분들의 상처를 다시 건드리려 하기보다는 그분들의 아픔과 눈물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책은 청소년들이 제주 4.3에 대해 알아가고 느끼고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좋은 책이다. 6편의 동화가 주를 이루고 있고, 여기에 더하여 당시 상황설명들을 하고 있다. 그러니 팩트를 기반으로 픽션을 가미한 내용이다. 물론 이야기 전개를 위해 픽션이 가미되어 있긴 하지만, 모두가 진실을 담고 있는 내용이다.

 

자라나는 세대들이 우리의 역사의 부끄러운 단면을 알지 못하고, 외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부끄러운 단면을 바로 보고 알게 될 때, 역사 앞에 바로 서는 자가 될 것이기에. 부끄러운 역사를 직시할 때, 역사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자로 살려는 몸부림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청소년들이라면 꼭 한 번 보고, 때론 분개하고, 때론 슬퍼하고, 때론 바른 결단을 하는 시간들이 있다면 좋겠다.

 

제주는 평화의 섬이다. 평화의 섬이라는 말은 평화롭게 관광하고 쉬는 장소라는 말만은 아니다. 사실, 평화의 섬이라는 타이틀 이면에는 바로 이런 슬픔의 역사, 통곡의 역사가 있기에 평화의 섬으로 지정된 것이다. 제주에 휴가를 가더라도 이런 아픔도 한번쯤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면 어떨까? 사실, 제주만큼 “평화”란 타이틀로 휴가를 보내기에 좋은 곳도 없다. 나 역시 몇 년 전 가족들과 함께 4박 5일간 “평화”라는 테마를 정해 제주 곳곳을 다녀본 적이 있다. 그 때 처음으로 4.3평화 공원에 갔는데,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본질을 상실한 정권에 얼마나 화가 나던지.

 

이 책 역시, 그런 먹먹함을 느끼게 되는 책이다. 마치 가슴이 데인 것과 같은 아픔이 느껴지며, 부끄럽고, 또 화가 나는 책이기도 하다. 어느 집단이든 본질을 잃은 집단은 존재의 가치가 없는 집단이 되고 만다. 아니 심지어, 본질을 잃는 순간 존재함이 도리어 해가 될 수도 있다. 군인은 자국민을 외부의 적으로부터 지켜내는 자들이다. 군인은 국민의 목숨과 재산을 지켜내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는 자들이다. 그런데, 그런 군인들이 자신들의 권력과 자신들의 목숨을 지켜내기 위해 수많은 국민의 목숨을 앗아간다면 이는 본질을 잃은 존재해서는 안 되는 집단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국민을 위해 국가원수가 존재할까? 아님 국가원수를 지켜내기 위해 국민이 존재할까? 이건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그럼에도 본질을 잃어버린 자들로 인해, 우리의 현대사는 부끄러운 역사를 만들어 냈던 것이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우리의 자라나는 세대들이 이처럼 좋은 책들을 통해, 우리의 아픈 역사를 알고 장차 그들이 자라 이 땅의 평화를 만들어 가는 자들, 평화의 수호자들이 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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