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의 분실물센터
브룩 데이비스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수첩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모든 생명이 있는 것은 언젠가는 다 죽게 마련이다(이 책에서 밀리를 통해 강조되는 내용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당연히 우리 인간 역시 포함된다. 하지만, 모든 생명이 죽기 마련이기에 죽음이 가벼운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특히, 누군가의 죽음 뒤에 남겨진 자가 겪어야 할 충격의 시간들, 공허한 시간들은 말할 필요도 없다. 게다가 그 죽음이 나와 가장 가까운 이의 죽음이라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바로 이런 죽음에 대해 때론 다소 유쾌하고, 때론 다소 철딱서니 없으며, 때론 다소 철학적으로 성찰하는 이야기가 있다. 제목도 범상치 않은 『밀리의 분실물 센터』.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세 명이다. 제일 먼저, 밀리가 주인공이다. 이제 겨우 7살인 꼬마 아가씨 밀리. 그녀에게는 남들과 다른 취미(?)가 있다. 바로 죽음을 수집한다는 것. 자신이 기르던 개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하여, 전혀 상관없는 타인의 죽음, 그리고 거미와 파리의 죽음까지 수집한다. 그리고 이 죽음을 자신만의 노트, 「죽은 것들의 기록장」에 기록한다. 왠지, 덴도 아라타의 소설, 『애도하는 사람』을 떠올려보게 되는 내용이기도 하다. 이런 밀리의 「죽은 것들의 기록장」 28번째로 기록되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아빠.”

 

그렇다. 밀리의 아빠는 어린 밀리를 남겨놓고 죽는다. 그런 밀리에게 아빠의 죽음보다 더 큰 충격의 사건이 다가온다. 어느 날 엄마와 함께 간 백화점. 엄마는 속옷코너에서 기다리라 하고선 사라져 버린다. 밀리는 그곳 백화점에서 떠나지 않는다. 밤엔 몰래 숨어 그 자리를 지킨다. 하루, 이틀,,, 하지만, 엄마는 오지 않는다. 밀리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사라져 버린 거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눈길이 있었으니, 이 눈길은 바로 또 다른 주인공인 80이 넘은 나이의 노인, 칼. 칼 역시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을 경험하고 아내를 그리워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나 여기 있어.’란 말을 거듭하며... 그런 칼을 아들과 며느리는 요양원에 보내버리고, 그곳에서 어느 날 칼은 아내가 살아 있을 당시 일탈을 꿈꾸며 했던 말을 떠올린다. 바로 문 닫은 백화점에 몰래 남아 밤을 보내는 일탈에 대한 이야기들. 하지만, 칼과 아내는 언제나 상상과 말은 많이 해도 행동으로는 잘 옮기지 못하는 소심한 사람들. 그런데, 문득 아내가 살았을 때 했던 그 말을 칼은 떠올리게 되고, 실제 행동으로 옮기려 한다. 무엇보다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끼기 위해 밤중에 요양원을 몰래 빠져 나가 문을 닫기 전 백화점 남자 탈의실에 숨어 있다가 아무도 없는 백화점에 남아 있는 모험을 즐기다가 밀리를 보게 된 것. 그리고 칼은 밀리를 도와주려는 마음을 품는다. 그래서 백화점의 관계자들이 밀리를 위탁시설에 보내려 할 때, 밀리의 탈출을 돕는다. 물론, 후엔 함께 밀리의 엄마 찾아 떠나는 여정에 합세하게 된다.

 

또 한 사람의 주인공은 역시 사랑하는 남편을 떠나보내고 하루하루를 시간을 죽이며 보내는 할머니 애거서. 그녀의 일상이 참 의미 없다. 그녀의 일상은 그저 의자를 옮겨다니며 앉는 것뿐이다. 믿기지 않는 심정의 의자에 앉는 것으로부터 일상을 시작하여, 맛을 음미하는 의자, 안목을 과시하는 의자, 분노하는 의자, 불평하는 의자, 좌절하는 의자 등에 앉는다. 물론, 하루의 마무리는 또 다시 믿기지 않는 심정의 의자에 앉으며 하루를 마감한다. 그렇게 수년을 살아간다.

 

그런 애거서는 ‘안목을 과시하는 의자’에 앉아 창밖을 쳐다보다가 옆집 밀리를 보게 된다. 백화점에서 무사히 탈출하여 집으로 돌아온 밀리를 말이다. 처음엔 참견하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 밀리의 엄마 찾는 여정의 동반자가 된다.

 

경찰서에서 또 다시 도망친 칼이 극적으로 두 사람이 타고 떠나는 버스를 발견하게 되고, 나중에 그 버스에 합류하게 됨으로, 이 셋은 그들만의 여정을 함께 하게 되고, 이런 가운데 그들만의 방식으로 죽음을 떨쳐버리게 되는데. 과연 밀리는 엄마를 찾을 수 있을까?

 

이처럼 세 명의 주인공은 모두 어느 식으로든 죽음을 애도하는 자들이다. 7살 꼬마 여자아이와 80이 넘은 두 남녀, 이렇게 세 사람은 그들만의 여정을 통해, 또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어 간다.

 

이 소설을 통해, 작가가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바는 무엇일까? 먼저, 칼이 아내를 생각하며, 외치던 말, “나 여기 있어.” 그리고 밀리가 엄마를 기다리며, 또한 엄마를 찾아가며, 언제나 적는 말, “엄마, 나 여기 있어요.” 이 말 안에 죽음을 애도하는 작가만의 방식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닐까?

 

남겨진 자들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어쩌면, ‘거기’가 아닌 ‘여기’ 아닐까? 물론, 죽은 자들은 ‘거기’에 있겠지만, 우린 여전히, ‘여기’에 있으며, ‘여기’야말로 우리가 살아내야 할 공간이 아닐까? 비록 지금 당장은 슬픔이 있고, 허전함과 공허함에 짓눌려 있다 할지라도.

 

또 하나 작가가 남은 자들에게 바라는 바는 죽은 자들을 그리워하며 슬퍼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그럼에도 남겨진 자들이 다시 서로 부대끼며, 살아 있음을 느끼며, 생기 넘치게 살아가기를 원하는 것이 아닐까? 죽음에 짓눌려 하루하루 공허하게 살아가던 칼과 애거서가 다시 사랑을 느끼고, 젊은 시절의 만용을 부리기도 하는 그런 모습이야말로 어쩌면 살아 있음의 기운 아닐까?

 

물론, 소설에서 여러 차례 반복되는 말, “살아 있는 것은 언젠간 다 죽음을 맞는다.” 그러니,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즐거움으로 살아내야 하지 않을까? 때론 그런 삶이 만용이나 객기처럼 비춰질지라도, 살아 있음을 느끼며 살아내는 것이야말로 어쩌면 이미 떠난 사람을 애도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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