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소녀 우리같이 청소년문고 14
이정옥 지음 / 우리같이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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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가위소녀』는 위소에 대한 이야기다. 위소는 가위소녀의 준말이자, 위험한 소녀, 위태로운 소녀의 준말이기도 하다. 이제 중학생인 솔은 초등학교시절부터 가위로 자신의 머리를 자르곤 해서, 위소라 불린다.

 

솔이 자신의 머리를 마치 남자 아이들처럼, 그리고 아무렇게나 잘라대는 것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너무나 먹먹하고 막막하여 견딜 수고 없기 때문이다. 솔의 가정사를 들여다보면, 이런 솔의 막막함을 알 수 있다.

 

솔의 엄마는 자폐를 앓고 있다. 그리고 엄마보다 5살이 많은 외삼촌 역시 자폐를 앓고 있다. 솔이 아빠가 누구인지는 끝내 밝히지 않아 모른다. 아마 여기에도 솔이 가위를 들어야말 견뎌낼 수 있는 아픔, 기막힌 사연이 담겨 있으리라. 자폐를 앓고 있는 엄마를 둔 솔은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 함께 살아간다.

 

자신의 머리칼을 잘라낼 수밖에 없는, 그렇게 해야만 견뎌낼 수 있는 어린 솔의 삶의 무게가 독자들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그리고 솔의 이런 가위질은 엄마보다 자폐의 정도가 심한 삼촌의 가위질에 영향을 받았다. 삼촌의 자폐 증상 가운데 하나는 가위로 뭔가를 끊임없이 잘라야만 한다. 삼촌보다는 자폐의 증상이 약하지만, 엄마의 증상은 갑자가 옷을 훌렁훌렁 벗어버리는 것. 이처럼 위소 솔을 가로막은 삶의 견고한 벽이 존재한다. 이런 솔의 막막함을 솔은 이렇게 표현한다.

 

“삼촌이 가위질을 하는 게, 그렇게 해서라도 꽉 막힌 삼촌의 머릿속을 ‘풀어’보려는 것으로 여겼으니까. 엄마가 옷을 훌렁훌렁 벗어 버리는 게, 그렇게 해서라도 꽉 막힌 머릿속을 ‘정리’하려는 것으로 생각되었으니까. 삼촌도 그렇고 엄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너무나 먹먹하고 막막해서 견딜 수가 없었을 테니까.”(162쪽)

 

이처럼 막막하여 견딜 수 없는 삶의 무게를 안고 살아가는 솔이, 그 삶의 무게를 견뎌내며, 넘을 수 없을 것 같던 벽을 건너는 동력으로 여러 가지가 등장한다. 먼저, 작은 외할머니인 산할머니가 가장 중요한 동력 가운데 하나다. 언제나 더불어 사는 삶,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며 살아가는 산할머니를 통해, 솔은 진정한 친구들을 갖게 된다.

 

또 하나의 동력은 증조외할아버지(외할머니의 아버지)인 꽃할배의 젊음, 치기, 객기 등이 아닐까 싶다. 이제 곧 아흔을 맞게 될 연세임에도 여전히 멋쟁이로 오토바이를 몰고 다니는 청년 꽃할배의 그 젊은 정신 역시, 애늙은이처럼 살아가는 위소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어주는 동력이 된다.

 

또 하나는 아무래도 친구들이겠다. 진정한 친구들을 만나게 되고, 그런 친구들을 통해, 함께 손을 잡고 마치 담쟁이처럼 그네들의 앞을 가로막은 벽을 올라 넘어가는 모습이야말로 이 시가 지향하는 바일 것이다.

 

이 땅의 수많은 ‘위소’들이 그들 앞에 가로막고 있는 벽을 올라 넘어가는 축복이 있길 소망해 본다.

 

작가는 위소, 솔 앞에 놓은 인생의 무게를 벽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이런 벽을 넘길 바라는 작가의 마음을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란 시로 풀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시의 출처를 밝히지 않음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게다가 작가는 처음에 이 소설의 가제를 <담쟁이>이라 붙였다니, 이 시는 이 작품 가운데 위소인 솔과 그의 친구들이 함께 손을 잡고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벽을 결국에는 넘어가는 중요한 모티브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니, 적어도 출처를 밝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어쩌면 작가가 ‘작가의 말’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세월호’라는 엄청난 사건 이후에 자신의 작품이 다시 고쳐 쓸 수밖에 없었음을 감안한다면, 이런 과정 가운데 누락된 것이라 여길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에 또 하나의 아쉬움이 남는다. ‘세월호’ 사건은 우리 역사 가운데 결코 지울 수 없는 엄청난 아픔의 사건임에 분명하다. 그리고 이 사건을 우린 영원히 기억해야 마땅하며, 더 이상 그런 끔찍하고, 말도 안 되는 역사는 반복되지 않아야 함에 분명하다. 하지만, 어쩌면 이러한 엄청난 사건을 꼭 반영해야만 한다는 작가의 의무감(?)이 왠지 이 소설 속에서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갖게 하고 있다 여겨진다. 물론, 이것을 더 좋게 여길 수도 있겠지만, 내 개인적 생각은 그렇다. 왠지 뜬금없다는 생각이었으니.

 

아무튼 그럼에도 이 땅의 수많은 ‘위소’들에 대한 돌아봄의 시간을 갖게 한 좋은 작품임에 분명하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에도 등장하는 시 <담쟁이>란 시를 언급하며 이 땅의 모든 '위소'들이 벽을 넘길 소망하며 서평을 마칠까 한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잎 하나는 담쟁이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도종환, <담쟁이>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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