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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 속 나라 ㅣ 시공주니어 문고 3단계 17
박상률 지음, 한선금 그림 / 시공주니어 / 199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문득 이런 상상을 할 때가 있습니다. 땅 속 깊은 곳이나 해저 깊은 곳, 또는 극지방의 얼음 속 깊은 곳에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문명이 존재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상상 말입니다. 그래서 왠지 그런 곳으로 모험을 떠나게 된다면 신나겠다는 그런 상상 말입니다.
어떤 내용일지 궁금했던 창작동화 『구멍 속 나라』는 바로 그런 상상을 글을 통해 만나게 해줍니다. <슬구 먹구 시리즈> 첫 번째 이야기이기도 한 『구멍 속 나라』는 슬구와 먹구 두 친구가 청계천 지하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이야기입니다.
이야기의 배경은 아직 청계천이 땅 속에 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슬구와 먹구는 서로 알지 못하는 사이지만, 각자의 이유로 맨홀 속에 들어갔다가 그곳에서 만나게 되고, 함께 ‘구멍 속 나라’로의 모험을 하게 됩니다.
놀랍게도 땅 속에는 조선시대부터 그곳에서 자신들만의 나라, 자신들만의 문명을 만들며 살아가던 이들이 있었던 겁니다. 옷차림은 여전히 조선시대 복장이고 생활방식도 옛 방식을 따르고 있지만, 과학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발전시켜 tv를 통해, 지상의 정보를 얻기도 하고, 자신인공태양을 만들어 에너지를 공급하기도 합니다. 지상에서의 상식과는 다른 자신들만의 문명, 과학을 만들어 살아가고 있는 나라.
하지만, 이들을 위협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도굴꾼이죠. 이들 도굴꾼은 ‘구멍 속 나라’가 있음을 알고 그들의 고서에 눈독을 들입니다. 게다가 이들 도굴꾼들은 우연히 땅 속 나라에 들어간 슬구와 먹구를 알고 이들을 이용하여 ‘구멍 속 나라’에 침투하려고 합니다. 과연 슬구와 먹구는 어떻게 헤쳐 나가게 될까요?
땅 속 나라로의 모험이라는 모티브가 재미납니다. 때론 아찔하고, 때론 위험하며, 때론 여유로운 모험. 두 친구의 모험에 함께 하게 됨이 참 신납니다.
또한 ‘구멍 속 나라’의 풍습이나 생활상을 살펴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특히, 이들 ‘구멍 속 나라’에서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들은 작가가 동화를 통해 독자들에게 선물하고 싶은 아름다운 가치들이 아닐까 여겨집니다.
그곳에선 관아의 벽은 온통 유리벽입니다. 그래서 나라의 녹을 먹으며 일하는 이들의 모든 것을 밖에서 누구든 지켜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이들을 감시한다는 의미라기보다는 나라를 이끌어가는 이들은 그들의 계획, 행동, 일처리 등 모든 면에서 감추는 것 없이 투명해야 함을 이야기합니다. 국민을 속이며 행하는 일들이 없는 투명한 정치를 상징하는 거죠. 정말 이런 정치가 실현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구멍 속 나라’에서는 나이 성별을 떠나 모두가 서로에게 존댓말을 합니다. 이는 모든 사람을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하며 서로를 존중하는 모습일 겁니다. 참 멋진 나라입니다. 또한 남녀 구분이 없습니다. 남자라고 해서 할 수 있고, 여자라고 해서 할 수 없는 그런 차별은 존재하지 않는 나라입니다.
재미난 표현은 이 나라에서는 ‘첫째 덕목’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꼭 지키며 살아야 하는 것에는 둘째가는 게 없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모두 첫째 덕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함께 어울리는 게 첫째 덕목이고, 강요하지 않는 게 첫째 덕목이며, 생명을 헤치지 않는 게 첫째 덕목이라는 식으로 표현하죠.
어쩐지 작가의 표현이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꼭 지키며 살아야 하는 것들은 모두 둘째가는 게 없다는 것. 이 말은 꼭 지키며 살아야 하는 것들은 실제 삶 속에서 진실로 지키며 살아가야 하며, 살아낸다는 의미와 다름없겠죠. 이런 가치를 붙잡고 살아가는 나라가 땅 속에만 존재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품어 봅니다.
재미도 있으며, 커다란 울림도 있는 동화, 『구멍 속 나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