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눈동자에 건배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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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그대 눈동자에 건배9편의 단편추리소설이 실려 있는 단편소설집이다. 본격추리소설, SF단편, 판타지, 사회파 소설, 의학소설, 휴먼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의 추리소설이 모여 있어 마치 어린 시절 종합선물세트를 받은 느낌을 갖게 한다.

 

각 단편이 어찌 이리 색깔이 다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단편소설들을 읽어가며, 몇몇 작품은 이게 뭐야하는 실망도 있었다. 아마도 내가 기대하던 바와 달라서 일게다. 그런데, 소설집을 다 읽고 덮은 후엔 오히려 기대하지 못했던 다양한 느낌을 갖게 해주기에 배부른 느낌이다. 기대하지 못했던 색깔들이 모여 있기에 오히려 무지개처럼 예쁠 수 있는, 종합선물세트와 같은 풍성함을 전해주는 소설집이 바로 그대 눈동자에 건배이다.

 

주인공이 범인인 경우도 세 편이나 있다. 10년 만의 밸런타인데이, 고장 난 시계, 크리스마스 미스터리가 그것이다. 이 세편 역시 서로 다른 느낌들이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주인공들이 범인으로서 겪게 되는 당혹감이다. 흔히 범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경우, 범인이지만 그 범행에 나름 정당성을 부여하여 독자들이 공감하고 도리어 그 행위를 감싸게 되며, 더 나아가 독자는 주인공의 범행을 함께 응원하도록 스토리를 진행시키곤 한다. 그런데, 이들 세편은 그렇지 않다. 10년 만의 밸런타인데이의 경우, 주인공은 아주 못된 놈으로 드러난다. 물론 처음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고 소설을 읽다가 저런 못된 놈은 당장 잡아들여야 해.’라고 생각될 정도로 못된 놈이라는 게 드러남으로 겪게 되는 독자의 당혹감은 아마도 소설 속 범인이 겪게 될 당혹감과 별 차이가 없지 모른다. 오히려 이런 당혹감이 신선함으로 다가온다.

 

그대 눈동자에 건배에서는 미아타리 수사원이란 게 등장한다. 이들은 평소 수많은 지명 수배자들 사진을 수시로 보며 그 얼굴을 숙지한다. 그리곤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장소, 많이 모이는 장소 등에 섞여 사람들의 얼굴을 관찰하고, 수배자가 있진 않은지 골라내는 수사원들이다. 그렇기에 주인공은 실사영화보다는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 실사에 질렸기에.

 

우치무라 씨는 왜 애니메이션을 좋아해?”

글쎄, 어째서일까, 아무튼 실제 인간들이 줄줄이 나오는 것을 보면 이제 그만, 이라는 기분이 들어. 사람 얼굴은 현실 세계에서도 지겨울 만큼 보기 때문인지도 모르지.”(134)

 

시간이 날 때마다 수배범들의 사진만을 들여다봐야 하고, 하루 종일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들여다 봐야만 하는 미아타리 수사원의 애환이 오롯이 느껴진다. 그런 우치무라가 처음으로 마음에 맞는 상대를 만났다. 애니메이션을 사랑하는 만화 캐릭터 같은 여자. 그런데, 연애를 할 때에도 미아타리 수사원의 눈동자는 열일을 한다. 마음에 둔 상대가 수배자임을 알아본 것. 수배자를 알아보고 범인을 검거할 수 있게 된 그 눈동자에 건배를 해야 할까? 아님, 간만에 사랑할 상대를 만나게 된 사랑을 끝장낸 눈동자를 저주해야 할까?

 

이 외에도 유사 육아체험을 다룬 SF렌털 베이비. 고양이의 뇌 이식 수술을 성공시킨 다소 판타지적 느낌이 가미된 의학소설 사파이어의 기적. 앞에서도 언급했던 범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범인의 심리 묘사가 돋보이는 고장 난 시계, 크리스마스 미스터리. 결혼을 앞둔 딸, 부잣집에 시집을 가 과연 깐깐한 시어머니 아래 견딜 수 있을까 걱정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다루고 있는 오늘밤은 나 홀로 히나마쓰리. 무뚝뚝하지만 아들을 염려하는 판타지가 가미된 수정 염주등이 각자의 분위기를 뽐내며 독자들을 즐겁게 해준다.

 

특히,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작품은 첫 번째 단편 새해 첫날의 결심과 마지막 단편 수정 염주.

 

마지막에 수록된 단편 수정 염주는 가문에 내려오는 비기 수정 염주에 얽힌 이야기다. 이 수정 염주는 신비한 힘이 있다. 그리고 그 힘은 가장이 죽은 후 아들에게 전해진다. 가장이 죽기 전까지는 그 신비한 수정 염주의 구체적인 힘은 아무도 모른다. 이 염주는 단 한 차례 단 하루 동안의 시간여행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 있다. 결정적 순간, 결정적 사안에 단 한 차례 사용할 수 있는 염주. 주인공의 가문은 이 염주를 통해, 가문을 일으켜 세워 왔다. 주인공은 아버지의 죽음 뒤 이 신비한 수정 염주를 물려받게 되는데. 아버지가 이 염주를 언제 사용했을지 주인공은 추리하게 된다. 그리고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주인공은 커다란 감동에 전율한다.

 

언제나 자신의 꿈에 반대만 했던 아버지. 언제나 자신의 가슴에 못을 박기만 했던 아버지. 언제나 아들에 대한 관심보다는 가문, 사업에 온통 신경을 쏟는 것 같던 매정한 아버지. 하지만, 아버지의 단 하나의 소원이 무엇인지를 수정 염주를 통해 알게 될 때, 주인공의 가슴은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다. 독자 역시 큰 감동에 몸을 떨어야만 하고. 우리네 아버지들이 어떤 가슴으로 자식들을 키웠는지. 그 단단하고, 무뚝뚝한 얼굴 이면에 어떤 진면목이 자리하고 있는지를 생각하며 눈물 흘릴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역자 역시 이 단편을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과 비교한다. 개인적으론 수정 염주가 불량은 훨씬 짧지만 오히려 그 감동은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보다 크지 않을까 생각된다.

 

가장 인상 깊었던 단편은 첫 번째에 수록된 새해 첫날의 결심이다. 이 단편은 본격추리소설과 사회파 추리소설이 잘 버무려진 소설이다.

 

성실하게 살지만 경제적으로 힘든 부부는 새해를 맞아 집 근처 신사에서 참배를 올린 후 집에 돌아와 생을 마감하려 한다. 그런 부부가 신사에서 속옷 차림으로 상처를 입고 쓰러져 있는 지역 군사를 발견하게 되고, 사건을 신고하게 된다. 이렇게 부부는 사건 후속 조치하는 일련의 과정에 참여하면서 사건의 진실을 알게 된다.

 

이 단편은 범인이 과연 누구일지 풀어나가는 본격추리소설의 형태를 띠고 있다. 아울러 그 안에 사회적 부조리를 향한 풍자가 가득 담긴 사회파 소설이기도 하다. 자신의 본질에 충실하지 못하는 자들. 거짓된 얼굴의 지역 사회 지도자들(행정, 교육, 사법, 종교)에 대한 통렬한 풍자가 담겨 있다.

 

새해 첫날 이른 새벽 살인미수 사건에 대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들은 사건을 접수하고는 도리어 신고한 부부를 귀찮아 한다. 왜 신고했느냐는 느낌이다. 그들의 정월 초 휴가를 망쳐놨기 때문이다. 스키장에 가려던 계획, 온천 여관을 예약해 둔 계획이 다 틀어져버렸기 때문. 말단 형사부터 서장 까지 모두 똑같다.

 

지역 사회의 행정과 교육을 이끌어 가는 늙은 지도자들, 군수와 교육장은 알고 보면 미모의 과부 식당 사장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온갖 추태를 부리는 자들에 불과하다. 신사 책임자인 구지는 신심보다는 돈을 사랑하는 자이고. 이런 모습을 목격한 두 부부의 다음과 같은 대화로 소설이 마쳐진다.

 

그렇게 무책임한 인간들도 떵떵거리고 위세 부리며 살고 있잖아. 그런 바보들이 군수를 하고 교육장을 하고 경찰서장을 하고...”

구지도 하고...”

그런데 왜 우리처럼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죽어야 해? 이건 정말 이상하잖아. 말도 안 돼. 여보, 열심히 살아보자. 우리도 앞으로 그이들 못지않게 대충대충, 속 편하게, 뻔뻔스럽게 살아보자.”

, 나도 동감이야.”(43-4)

 

소설 속 부부의 다음은 어땠을까? 정말 대충대충, 속 편하게, 뻔뻔스럽게 살았을까? 모르긴 해도, 성실한 부부가 하루아침 성실함을 버릴 수는 없을 게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죽을 이유가 가득한 삶이라 할지라도 살아야 할 이유 하나 굳게 붙잡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이제 부부는 흔들리지 않고 살아갈 게다. 그리고 이렇게 성실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결말이 좋아야만 한다. 무책임하게 떵떵거리고 위세 부리며 사는 바보들이 가득한 세상이기에 더욱 그렇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장편들에 맛을 들였었는데, 단편들도 장편 못지않게 좋다. 그대 눈동자에 건배, 개인적으로는 여타 작품들에 결코 뒤지지 않을 걸작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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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난민이 아니야 사회탐구 그림책 2
케이트 밀너 지음, 마술연필 옮김 / 보물창고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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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난민이 아니야란 제목의 그림책은 한없이 마음을 먹먹하게 만듭니다. ‘난민이란 슬픈 이름으로 불리는 이들. 그들 역시 우리와 똑같이 일상의 삶을 살아가던 평범한 사람들이었음을 먼저 생각해봅니다. 우리와 똑같이 꿈꾸고. 우리와 똑같이 사랑하며. 우리와 똑같이 누군가의 사랑하는 가족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며 마음은 더 젖어들며, 가라앉게 됩니다.

 

난민이란 이름으로 불리고 분리되어야 할 존재들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이 슬픔을 딛고 다시 시작할 권리가 있다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아니 마치 난민이란 이름으로 분리되어지는 이들을 마치 피해야할 병균처럼 생각하진 않았는지 하는 반성도 해보게 됩니다.

  

  

그림책 속 아이의 눈망울이 너무나도 맑습니다. 그래서 더욱 아팠습니다. 저 맑은 눈망울의 예쁜 어린아이가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촌 곳곳에서 인간으로선 겪어선 안 되는 상황 속에 처해 있을 것이란 생각에 말입니다.

 

우리 집에도 다섯 살 된 사내아이가 있습니다. 이 아이와 그림책 속 아이의 모습이 오버랩 되며, ‘만약 저 아이가 내 아들이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린 자칫 그림책 속의 상황, 그리고 뉴스를 통해 듣게 되는 난민들의 비참한 상황이 나와는 상관없는, 내 미래에는 결코 없을 그런 상황이라 생각하며, 무관심하게 지나버리곤 합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얼마나 틀린 생각인지를 알려주는 건, 우리 역사 가운데 우리 부모님들, 할아버지 할머니 역시 이런 난민의 신분으로 역사를 헤쳐 나왔다는 사실입니다.

 

그림책에서도 말하고 있듯 우리나라 역시 한국전쟁을 통해, 수많은 난민들이 발생했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나라들의 도움을 받았고요. 그런 수많은 도움이 난민사회를 헤쳐 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된 것 역시 사실입니다. 우리 역시 이젠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여건이 됩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누구나 다시 시작할 권리가 있다는 진리를 생각하며, 우리의 두 팔을 벌리면 좋겠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림책 속에 등장하는 그 땅, 시리아에서 1000명가량의 난민들이 지난해 우리나라에 왔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 단 4명만이 우리나라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다고 하네요. 참 부끄러운 일입니다. 정말 나라다운 나라는 약자를 보듬어 안아 줄 수 있는 나라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실천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행복해지는 그런 나라, 지구촌을 위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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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 보이 - 2018년 제14회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작
박형근 지음 / 나무옆의자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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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회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박형근 작가의 스페이스 보이를 만났다. 소설을 읽으며 처음엔 주인공이 정말 우주여행을 한 건지, 아님 정신적 문제인지 혼란스러웠다. 결론은 정말 우주여행을 한 것. 그래서 주인공은 스페이스 보이라 불린다. 누구에게? 외계인에게... ? 외계인? 그렇다. 소설 속엔 외계인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 외계인과의 만남이 독특하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만남이 아니다. 외계인은 주인공의 뇌를 조작하고, 뇌 속의 가상공간에서 만난다. 실제 만남이면서도 가상의, 허구의 만남처럼 느껴지는 만남. 이것이 소설 속 외계인과의 만남이다.

 

외계인은 이처럼 스페이스 보이의 뇌를 조작하며, 뇌 속에서 만난다. 그리고 기억을 조작한다. 뿐 아니라 지구에서 우주인으로 나간 주인공과 여타 우주인들의 활약상을 조작하여 송출한다. 그러니, 실제로 주인공은 외계인을 만나지만, 지구에서 보는 화면은 그저 우주인으로서 예상되어지는 일들을 수행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 이처럼 외계인은 수많은 지구인의 뇌, 기억을 조작한다.

 

이런 설정이 흥미롭다. 우리의 모든 기억이 조작되는 것이라면? 외계인과 같은 특별한 힘을 가진 존재들이 우리의 기억을 끊임없이 조작하고 있다면?

 

그런데, 외계인들이 기억을 조작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서다.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탐욕스러운 존재인지를 알기에. 그런 인간들이 자신들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 생존의 위협을 받게 될 것을 알고 살아남기 위해 기억을 조작하는 것. 왠지 씁쓸하다. 인간은 언제나 이처럼 위험한 존재라는 것이.

 

소설 속 외계인들은 그럼에도 주인공의 뇌, 그 기억만은 지우지 않는다. ? 주인공이니까.^^ 이게 주인공의 특권이다(물론 다른 이유를 소설은 말한다.). 외계인은 김신의 기억은 그대로 놔두지만 뇌에 뭔가 조작을 가한다. 그로 인해 김신은 모든 면에 뛰어난 인물이 된다(! 이런 조작을 할 수 있는 기술이 있다면 좋겠다.^^). 게다가 우주에서 돌아온 김신은 하루아침에 대스타가 된다. 일명 우주대스타가 된 것.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열광하고, 연예인의 연예인이 되는 주인공. 하지만, 주인공에게는 이런 것들은 관심 밖이다.

 

주인공의 관심은 여전히 단 하나다. 우주로 나가면서까지 지우고 싶었던 기억, 하지만, 결코 지울 수 없는 기억의 대상과의 끊어진 운명을 다시 잇고 싶은 욕망뿐이다.

 

애초 주인공이 우주로 향하려 했던 건 중력처럼 벗어날 수 없는 기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다. 어느 기억에 주인공은 옴짝달싹 못하며 벗어나지 못한다. 기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우주여행을 선택해야 할 만큼의 기억은 과연 무엇일까?

 

우릴 괴롭게 하는 기억이 있다면, 그 기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면, 뇌를 조작하는 것이 정답일까? 소설 속 주인공은 외계인에게 이렇게 말한다.

 

잔인한 기억이 될지 추억이 될지 지구로 돌아가 봐야 알 거 같아요. 그리고 아마 당신들은 굳이 이 기억을 지우지 않을 거예요. 왜냐하면 내가 외계인의 존재나 문명 따위를 발설하지 않을 것 또한 알고 있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내 머리에 아무 짓도 하지 말아요.(91)

 

결국 잔인한 기억도, 행복한 추억도 내 삶의 한 단면이다. 그 기억이 어떤 결과를 낳게 될지 역시 운명의 수레바퀴만이 알고 있을 뿐.

  

  

지구로 돌아온 주인공이 하루아침에 우주 대스타가 되어 활약하게 되는 소설의 후반부는 전반부와는 상당히 다른 분위기다. 솔직히, 흥미롭긴 하지만 별 재미없던 전반부에 비해 이 후반부는 유쾌하고 재미나다.

 

후반부의 주인공은 모든 것이 술술 풀리는 행운의 사나이일뿐더러, 외계인의 뇌 조작을 통해, 특별한 능력도 있다. 예를 들면, 로또 복권 번호가 무엇일지 미리 알 수 있는 능력이 말이다. 이런 행운아가 된 주인공. 과연 주인공은 이런 능력으로 무엇을 행할까?

 

그런데, 이처럼 모두가 우러러보는 우주대스타가 된 주인공이지만 여전히 지질하다. 우주까지 다녀와도 떨쳐버릴 수 없던 기억 때문에. 주인공은 여전히 끝나버린 인연, 이제 결혼하게 될 옛 연인을 잊지 못한다. 심지어 질척거리게 달라붙기까지. 그런데, 이런 지질한 모습이 오히려 쿨한 느낌을 갖게 하는 이유는 뭘까? 여전히 주인공은 물질에 대한 욕망으로부터 쿨하기 때문이다. 주인공에게 물질은 관심 밖이다. 주인공에겐 여전히 옛 인연, 옛 사랑, 그 기억이 중요하다.

 

소설의 마지막, 주인공의 모습을 보며 외계인은 비로소 인간다워졌다고 말하며 소설은 끝난다. 그런데, 인간답다는 건 어떤 모습일까?

 

나에게 예지의 능력이 주어진다면, 그 능력으로 로또를 구입하여 일등을 하는 것? 물질보다는 여전히 사랑의 추억을 붙잡고 살아가는 것? 헤어진 옛 연인을 잊지 못하고 여전히 지질하게 그 주변을 맴도는 모습? 아님, 쿨하게 잊고 돌아서는 모습일까? 자신을 감추고 포장하며 사는 삶일까? 아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삶일까?

 

, 외계인이 뭐라 평가하든, 가슴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그런 삶이 누군가에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아가는 것도 좋지 않을까? 때론 지질한 삶도, 때론 쿨한 삶도, 때론 탐욕스러운 모습도, 때론 로맨틱한 모습도, 때론 물질을 초월하며 추억의 한 자락을 붙잡는 모습도. 모두 인간의 모습이다. 굳이 그걸 깨닫기 위해 우주로 여행을 떠날 필요는 없다. 그저, 스페이스 보이한 권 들고 나가 야외 벤치에 앉아 읽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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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양장)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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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대략 30편쯤 읽었다. 이쯤이면 열혈 마니아는 아니더라도, 제법 작가를 좋아하는 독자이리라. 하지만, 여전히 작가의 책은 읽은 것보다 읽지 않은 작품이 더 많다. 그만큼 왕성한 작품 활동으로 유명한 작가. 내가 읽은 그의 여러 작품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아무래도 용의자 X의 헌신이 아닐까 싶다.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게 된 작품. 그래서 그 작품을 가장 아름다운 추리소설이라 말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용의자 X의 헌신의 명성을 훌쩍 뛰어넘은 작품이 있다. 바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다. 전 세계에서 1000만부 이상이 팔렸다는 작품. 그 유명한 작품을 이제야 읽었다. 역시 왜 그리 많은 독자들이 이 작품을 선택했는지를 알게 된다. 용의자 X의 헌신이 가장 아름다운 추리소설이라면, 나미야 자화점의 기적은 가장 따스한 추리소설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소설은 세 명의 청년, 삼류 좀도둑들이 도둑질을 하고, 도망치다 어느 낡은 건물에 숨어들면서 시작된다. ‘나미야 잡화점이란 낡은 간판의 폐가. 그곳에서 잠시 쉬어가려던 차, 누군가 건물에 편지 한 통을 집어넣으면서 세 명의 삼류 좀도둑 청년들은 신비한 일에 말려들게 된다.

 

그곳 나미야 잡화점은 오래 전 고민을 상담해주던 것으로 제법 유명한 건물이었다. 그런데, 이미 그 일은 33년이나 지난 오래전의 일인데, 고민을 상담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과거에서 온 상담편지. 이에 세 청년은 그 편지에 답을 보내기 시작한다. 과거의 상담자에게. 처음엔 장난처럼 시작된 세 청년의 편지 상담은 놀랍게도 시간을 초월하여 누군가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기도 하고, 누군가의 운명을 바꿔놓기도 한다. 개인의 역사이지만, 청년들은 누군가의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리게 된 것이다. 아울러 그 수레바퀴에 자신들 역시 올라타고 있음을 알게 된다. 과연 어떤 일들이 벌어진 걸까?

 

소설은 다섯 편의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서로 별개의 내용이라 말할 수 있을 각각의 고민과 그에 대한 상담편지들. 하지만, 이들 이야기는 나미야 잡화점과 환광원을 중심으로 연결된다. 사실, 이 작품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가운데서도 아주 묘한 느낌을 갖게 하는 작품이다. 본격추리소설도, 그렇다고 사회파 추리소설이라 분류하기에도 꺼려지는 내용. 어쩌면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판타지소설이라 불러야 맞을 것 같은 내용. 그런데, 소설을 덮으면서 역시 추리소설이 맞겠다 싶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다섯 개의 이야기가 어떻게 서로 꼬리를 물며 맞춰지는 지를 추리하게 되니까.

 

누군가 내 고민을 진심을 다해 들어주고, 함께 고민하고 대안을 모색할 그런 사람이 내 곁에 있다는 건 커다란 행복임에 분명하다. 나미야 잡화점은 그런 곳이다. 그래서 따스하다. 판타지적 요소로 시간을 초월하여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편지를 통한 고민과 상담이 놀라운 치유와 회복을 만들어 갈뿐더러, 누군가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오늘날 많은 독자들이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 열광하는 이유는 나의 고민을 들어줄 상대가 없기 때문은 아닌지? 내 고민을 함께 할 누군가를 우린 여전히 찾고 있기 때문은 아닐지.

 

소설을 읽은 후 이런 생각도 하게 된다.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편지. 그 편지에 대한 상담을 하는 입장에서는 나와는 상관없는 조언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결국 그 상담은 나에게 되돌아와 내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것을. 특히, 이들 삼류 도둑들, 세 청년들의 외도인 고민상담이 그렇다. 내가 행한 작은 일이 결국에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고 돌아 다시 나에게 돌아오게 됨을 생각할 때, 오늘의 삶이 더욱 겸허해지고, 옷깃을 여미게 되지 않을까?

 

아무튼,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데는 뭔가 특별한 것이 담겨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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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머문 풍경
이시목 외 11명 지음 / 글누림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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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언제나 설렘을 동반한다. 일상을 잠시 벗어나 낯선 공간을 거니는 시간도 행복하지만, 어디론가 떠날 것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시간이야말로 언제나 설렘 가득한 행복한 시간이다. 어딜 가면 좋을까 찾아보는 시간이 행복하다. 그곳에 가면 무엇을 보고, 느낄 수 있을까를 공부하는 시간도 행복하다. 그런 나에게 또 하나의 좋은 여행서적이 찾아왔다.

 

12명의 여행 작가들이 함께 만든 소설이 머문 풍경이란 제목의 책이다. 이 책을 처음 접할 때, 과연 문학 서적이라고 봐야할까, 여행서적으로 봐야할까 싶었는데, 여행서적이라 보는 것이 적합할 것 같다. 여행 정보를 전해주는 여행서적이라기보다는 문학이라는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풀어나간 여행에세이이다.

    

책은 1, 2부로 나뉘어 있는데, 1부는 작가 파트다. 작가의 삶이 녹아들어간 공간들에 대한 이야기. 물론, 작가의 작품이 드러나기도 한다. 하지만 초점은 작가에게 있다. 다양한 작가들을 잉태한 공간들을 만나는 특별한 행복이 있는 부분이다.

 

2부는 작품 파트로, 작품 속에서 만나게 되는 공간들을 이야기한다. 이 역시 1부와 마찬가지로 확연하게 작가와 작품을 구별할 수 없는 경우 역시 있다. 그럼에도 초점은 작품 속 공간에 있다. 작품 속 공간을 실제 여행한다면, 어쩐지 작품 속으로 들어가고 작품 속 인물을 만날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하는 부분이다.

 

이처럼 작가와 공간, 작품과 공간의 만남을 이야기하는 여행에세이. 그러니 이 책 속에 담긴 여행들은 문학을 품은 여행이다. 이런 문학을 품은 여행을 통해 공간은 또 하나의 스토리를 갖게 되고, 특별해 진다. 여행 자체만으로도 특별한 시간과 공간 속으로 들어가는 건데, 이처럼 특별한 인물들과 작품이 더해지니, 더욱 특별한 여행으로 만들어주기에 충분하리라.

  

  

한 사람의 글이 아닌, 12명의 서로 다른 여행 작가들의 글이기에 더욱 다양하고 풍성한 느낌을 갖게도 한다. 마치 여행은 결코 단조롭지 않음을 알려주듯 말이다. 아울러 몇몇 사진들은 작품이라 해도 좋을 만큼 좋아, 그 공간을 마음에 품게 만든다.

 

또한 의외의 기쁨도 있었다. 책 속에 소개하는 장소 가운데 내가 이미 가봤던 장소였는데, 여기에 또 다른 스토리가 담겨 있구나 싶은 기쁨도 있다. 또 어느 장소는 내가 개인적으로 자주 찾던 장소였기에 더욱 색다른 느낌을 갖게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여행지는커녕, 그곳에 찾을 때마다 한 사람의 여행객도 만난 적이 없기에 나만의 장소로 간직하고 머리를 식히러 여러 번 찾았던 장소인데, 그곳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 있을 줄이야. 내가 앉았던 장소에 소설 속 인물도 앉았고, 그 작품을 쓴 작가 역시 앉았겠구나 싶어 묘한 느낌을 갖게도 한다.

 

이 책의 부작용이 하나 있다. 책 속에서 소개하고 있는 작품들을 찾아 읽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는 것. 작품을 찾아 읽고 그 장소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면 과연 어떤 느낌일까 싶다. 작품 속 인물을 혹시 만나게 될까? 아무래도 몇몇 작품들을 찾아 읽고 그 공간을 찾아 떠나는 소설이 머문 풍경속으로의 여행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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