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린 양들의 성야 ㅣ 닷쿠 & 다카치
니시자와 야스히코 지음, 이연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니시자와 야스히코의 『어린 양들의 성야』는 저자의 <닷쿠 & 다카치 시리즈> 세 번째 책이다. 옮긴이의 말에 의하면 <닷쿠 & 다카치 시리즈>로 6권의 작품이 출간되었다고 하는데, 국내 번역본으로는 3권이 번역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녀가 죽은 밤』(서울: 한스미디어, 2014), 『맥주별장의 모험』(서울: 한스미디어, 2014)에 이어 읽게 된 <닷쿠 & 다카치 시리즈> 3번째 작품 『어린 양들의 성야』는 전작들과는 다소 분위기가 다르다. 특히, 두 번째 책인 『맥주별장의 모험』과는 많이 다르다.
이 시리즈의 주인공은 네 명을 들 수 있다. 화자인 ‘나’이면서 닷쿠라 불리는 다쿠미 지아키, 보안선배라 불리는 헨미 유스케, 다카치라 불리는 다카세 지호, 우사코라 불리는 하사코 유키코, 이렇게 네 사람이 주인공이다. 이번 이야기에서는 넷 가운데 닷쿠와 다카치의 비중이 크다. 그래서 비로소 <닷쿠 & 다카치 시리즈>답다고나 할까?
게다가 전작 두 편에서는 이들 네 명의 주인공들이 마치 ‘안락의자탐정’과 같은 분위기로 논리와 상상을 기반으로 한 토론을 통해, 감춰진 진실을 향해 추리해나가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었다면, 이번 이야기는 닷쿠와 다카치가 마치 형사마냥 현장탐문수사를 해 나가는 모양새다. 특히, 이번 이야기의 탐정은 다카치다. 닷쿠는 그저 동행자의 역할에 그치는 느낌이다. 물론, 중요한 순간 다카치를 제어하는 역할을 하지만 말이다.
또 하나 이번 이야기에서 사건 이외에 얻을 수 있는 수확은 소설 속 화자 ‘나’인 닷쿠가 보안선배와 다카치, 그리고 우사코와 어떻게 만나고 친밀한 관계가 되어가는 지 그 스토리를 알게 된다는 점에서 마치 <닷쿠 & 다카치 시리즈>의 ‘기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건은 이렇게 시작된다.
보안 선배가 1년 전에 습득한 물건이라며 포장된 물건 하나를 닷쿠와 다카치 앞에 내놓는다. 편의점 ‘스마트인’ 포장지에 리본이 달린 선물, 그건 바로 1년 전 크리스마스이브에 일어났던 사건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당시 닷쿠와 다카치, 보안 선배가 처음 어울리게 된 날, 그 외 몇 사람과 함께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보자며, 편의점 스마트인에서 뭔가 하나씩을 구입하여 포장한 선물 교환 이벤트를 기획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선물을 샀던 그들은 어느 여인의 투신자살을 목격하게 된다. 1년 후 보안 선배가 내놓은 포장된 선물은 바로 그 당시 죽은 여인의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해서 닷쿠와 다카치는 이 선물을 유족에게 전달해주기 위한 추적 작업을 시작한다.
무엇인지도 모를 포장된 선물을 자살한 생면부지 여인의 유족에게 전달하기 위해 추적해 나가는 가운데, 둘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1년 전 여인이 투신자살했던 그곳에선 5년 전에도 투신자살이 있었다는 것. 당시 16세 소년이 크리스마스이브에 스마트인 포장지로 포장된 선물을 가지고 같은 건물에서 투신했던 것.
똑같은 장소, 똑같은 날짜, 똑같은 포장지의 선물, 여기에 둘 다 너무나도 행복했던 시기에 일어난 의문의 투신자살. 과연 두 사건은 어떤 연관성을 갖고 있는 걸까?
이를 추적하는 가운데, 세 번째 투신이 벌어진다. 크리스마스이브를 앞둔 시기에 같은 포장지로 포장된 선물을 가지고 같은 장소에서 투신한 사람은 바로 이들과 친분관계에 있는 가모 교수님(보안선배와는 대학 동기이며, 교수가 아닌 시간강사다. 닷쿠 일행이 1년 전 술자리를 함께하고 크리스마스이브 기분을 내며 선물교환 이벤트를 진행할 때 함께 했던 일행이기도 하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걸까?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세 사람. 그런데, 그들은 왜 거의 같은 모양으로 같은 장소에서 비슷한 시기에 자살을 하는 걸까? 과연 그 이면에는 어떤 진실이 감춰져 있을까?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이번 이야기는 본격추리소설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닷쿠와 다카치가 사건의 진실을 찾아 탐문수사를 하고 점차 사건의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본격추리소설.
여기에 또 하나의 커다란 메시지를 품고 있다. 그건 바로 가정 내에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어른들의 권력형 억압이 그것이다. 육체적 폭력이 가해지지는 않지만, 어른이라는 권력으로 자녀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이 있다. 어른의 기대와 가치관이 자녀에게 강요되어지고, 자녀는 그것을 이루기 위해 나아간다. 때론 그것이 자신의 꿈이라 착각하기도 하며. 하지만, 안개가 걷히듯 미망이 걷히면서 자신을 향한 폭력 아닌 폭력을 발견하고 힘겨워하는 아이들. 자살 사건 이면에는 이러한 어른의 권력이 낳는 폭력이 도사리고 있다. 독선적이고 지배욕이 강한 보호자들의 폭력이 말이다.
도리고에 규사쿠 군의 비명이 들린다. 애정이라는 미명하에 인격을 부정당하고, 가치관을 강요당해야 하는 대상으로 굳어져버린 아이. 그렇게 영혼을 말살당한 아이가 내지르는 단말마의 비명 소리.
와미 씨에게는 그 ‘비명’이 들리지 않는 걸까? 그렇다면 기이한 이야기다. 그녀 또한 어머니, 즉 이치코 씨의 독선적인 지배로 괴로워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자신이 부모가 되자마자 즉, ‘가해자’ 측 입장이 되자마자 그 사실을 잊어버린 걸까?
아니, 그렇지 않다. 난 문득 깨닫는다. 아니다. 와미 씨는 잊지 않았다. 결코 잊어버렸을 리 없다.
이것은 ‘복수’다.(297쪽)
마침 얼마 전 읽었던 소설 집 제목이 생각난다. 『어른은 권력이다-2018 올해의 추리소설』(부천: 도서출판 청어람, 2018). 그렇다. “어른은 권력이다.” 문제는 이 권력이 때론 애정과 사랑, 훈육이란 허울에 감춰진 채 휘둘러지며 자녀를 ‘피해자’로 만들어 버린다는 점. 이 가정에 존재하는 권력이 낳는 폭력을 소설 『어린 양들의 성야』는 끊임없이 건들며 이야기한다. 그런 측면에서 이 추리소설은 본격추리소설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사회파 소설이라 말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는 <닷쿠 & 다카치 시리즈> 가운데 가장 재미나게 읽었다. 솔직히 2권인 『맥주별장의 모험』이 썩 재미나지 않았기에 책장에 파묻어 뒀던 책인데, 제일 재미나다니. 오호라. 잠자던 책을 꺼내 읽은 보람이 있다.
아울러, 난 혹시 가정에서 권력을 휘두르는 가해자가 되고 있진 않은지 끊임없이 반성해보게 하며, 다짐도 하게 하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