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 브라더
케네스 오펠 지음, 공보경 옮김 / 문학수첩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이제 막 13살 청소년이 된 벤은 아빠의 결정에 기분이 언짢다. 행동심리학자인 아빠 리처드 톰린 박사께서는 동물도 언어를 익혀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가정 하에 실험을 계획한다. 새끼 침팬지를 가정에서 마치 가족의 일원으로 키우며 함께 생활하는 가운데, 수화를 통한 의사소통을 시도하는 것. 이런 말도 안 되는 실험에 의해 벤은 캐나다를 횡단하여 빅토리아 섬으로 유배 아닌 유배를 왔다(지금이야 빅토리아는 캐나다의 대표 관광명소이지만,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1973년이다. 아마 그 당시 빅토리아는 아무 것도 볼 것 없는 섬에 불과했나 보다).

 

이렇게 벤은 잔(새끼 침팬지)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잔과 함께 하는 가운데, 벤에게 잔은 동생과 같은 존재가 되어 함께 마음을 나누게 된다. 이처럼, 이 소설은 사람과 동물간의 우정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러한 동물과의 교감 내지 우정이 가슴 뭉클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소설이다.

 

하지만, 그런 감동만 남겨놓는 소설만은 아닌 듯싶다. 동물과의 교감 과정에서 과연 무엇이 바람직한 선택인가 하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는 소설이기도 하다. 인간의 유익을 위해, 동물들을 통한 연구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과연 동물권을 인정하는 것만이 옳은가? 아님, 인간에게 돌아올 과학의 혜택을 위해 동물권을 무시해야 옳은가? 동물을 가족이라 말할 때, 그 한계는 어디인가? 진정한 가족으로서 교감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저 허울뿐인 가족인가? 아니면, 동물 그 본능, 창조질서 그대로 방치하는 것이 옳은가? 사실 쉽게 말할 수만은 없는 질문들일게다.

 

그럼에도 이 소설을 통해, 작가가 대답하는 것들은 이런 것들이다.

먼저, 동물권을 인정해 줘야 한다는 것. 그렇기에 아무리 인류의 발전과 유익을 가져오는 실험이라 할지라도, 생체실험은 바람직하다 말할 수 없다.

 

아울러 동물과의 교감이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동물을 가족으로 인정하려면, 진짜 가족처럼 생각하고 대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을 이야기한다.

 

잔은 누가 나한테 줬다 뺏었다 하는 물건이 아니다. 잔은 가족의 일원이다. 내 점수가 형편없다고 해서 아빠가 내게서 잔을 떼어 놓을 수는 없는 것이다.(165쪽)

우리는 잔에게 우리 옷을 입히고 우리 음식을 먹이고 우리 침대에서 잠을 재웠다. 우리를 엄마, 아빠, 형이라고 부르게 했다. 잔은 우리와 함께 살았고 우리를 믿었지만, 우린 매일 잔에게 거짓말을 했다. 우릴 그의 진짜 가족으로 생각하도록 만들었고, 언제까지나 사랑하고 돌봐줄 거라고 속였다. 잔이 우릴 위해 재주를 부리게 하려고 그렇게 했다. 그런데 잔의 재주가 더 이상 쓸모없게 되니 우리는 잔을 우리에 집어넣고 치워버렸다.(331쪽)

 

하지만, 그럼에도 인간과 동물이라는 괴리, 그 한계가 있기에 쉽지마는 않다는 것. 더 나아가 결국 인간이 될 수 없기에, 침팬지는 침팬지의 삶을 살게 해줘야 한다는 것. 침팬지에게 인간의 옷을 입히려는 행동은 결국엔 침팬지를 불행하게 만드는 행위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사실, 쉽게 어느 것이 옳다 말하기 어려운 문제들이다. 하지만, 소설을 읽으며 진리는 사랑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침팬지에게 어떤 대접을 한다 할지라도, 그 행위 안에 사랑이 담겨 있는가 이것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리라 여겨진다. 아무리 인간의 옷을 입히고, 좋은 대접을 한다 할지라도, 참 사랑이 아니라면 가짜다. 아울러, 비록 우리에서 자라게 한다 할지라도,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대하지 않고, 사랑의 마음으로 침팬지로서 살게 한다면 이것 역시 진짜다.

 

그러니, 사랑이 답이지 않을까? 아울러 소설 속에서 잔이 처음으로 행한 말(수화)이 다름 아닌 ‘포옹’이었음도 의미 있다. 진심어린 안아줌은 종을 뛰어넘어 우정을 가능케 한다. 『하프 브라더』, 그 두툼한 무게감만큼 진한 감동을 주는 좋은 소설이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가족과 함께 떠난 휴가지에서 두 딸과 함께 읽었다는데, 휴가 기간에 읽기에 딱인 감동을 전해주는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남의 일
히라야마 유메아키 지음, 윤덕주 옮김 / 스튜디오본프리 / 200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참 고약하고, 난감하며, 끔찍한 소설집을 접하게 되었다. 히라야마 유메아키의 『남의 일』이란 소설집이다. 14편의 단편소설들로 이루어진 이 소설집은 한 마디로 끔찍하다. 엽기적이다. 정말 소름끼치고, 진저리를 칠만큼 혐오스러운 내용들로 가득하다. ‘일본산 스플래터 노벨’이란 소개가 전혀 과하지 않다고 여겨진다.

 

소설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어쩌면 실제 삶 속에서는 절대 일어나서도 안 되는 사건들이며, 일어날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일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또 한편으로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이런 일들이 우리의 삶 속에서 실제로 일어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더 끔찍함을 배가시킨다.

 

아무런 잘못도 없는 한 아주머니가 동네 청년들에 의해 장난처럼, 거짓말처럼 레슬링의 상대가 되어야만 하고, 그 일로 목숨을 잃어가는 그 농담 같은 사건, 말도 안 되는 사건. 정말 소설 속에서나 나올법한 비현실적 폭력이지만, 과연 이것이 비현실적일까란 생각을 하게 된다. 어쩌면, 그 비현실적 사건이 내 삶 속에서 현실적으로 사건화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하게 된다. 아울러 과연 소설 속의 두 청년과 같은 인간성을 찾아볼 수 없는 괴물들을 누가 만든 걸까? 묻게 된다. 어쩌면 이것이 작가가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리라.

 

그렇기에 단지 끔찍하고, 혐오스럽고, 엽기적이라는 말로 간단히 외면해 버릴 수만은 없는 그런 작품들이다. 정말 끔찍하고, 혐오스럽지만, 그래서 읽고 싶지 않고, 아니 읽으면 안 될 것 같은 내용들이지만, 그럼에도 도리어 눈살을 찌푸리더라도 직면하며 읽어나가야만 할 내용들이다. 우리가 결코 외면하지 않고 들여다보고 함께 고민하고, 내 삶을 돌아봄으로, 이런 말도 안 되는 내용들은 그저 작가의 상상에 불과한 것이 될 그런 세상을 우리가 꿈꾸고 함께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이것이 작가의 의도일 테니 말이다.

 

그렇기에 외면하지 말자. 혐오스럽다고 터부시하지도 말자. 때론 끔찍해하며, 때론 가슴아파하며, 때론 분노하며, 때론 진저리를 치며, 때론 구토가 나올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끝내 읽어내자. 어쩌면, 첫 번째 이야기인 「남의 일」에서처럼 그 끔찍한 현실을 남의 일이라고 접근하게 될 때, 그 사람은 피해자들에게 아무것도 실제 못된 짓을 하지 않았음에도 악마가 되어 그들을 괴롭히고 있음을 발견하자. 우리 역시 ‘남의 일’이라고 치부할 것이 아니라, 치열하게 고민할 수 있다면 좋겠다.

 

솔직히, 대단히 끔찍한 내용들, 극히 혐오스럽고 자극적인 내용들이기에, 그런 만큼 더 눈을 뗄 수 없는 소설집이다. 어쩌면 이 소설들을 통해, 내 인간성 내지 죄성을 평가해보는 척도로 삼아보는 것은 어떨까?

 

아울러 또 한 가지 드는 생각은 이야기 속의 끔찍한 괴물들이 상당수의 경우, 원래 괴물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 의해 당한 아픔과 끔찍한 일들로 인해 괴물이 되었음도 생각해보게 된다. 끔찍한 가해자들인 그들 역시 결국엔 사회구조적 피해자일 수 있음을. 사실, 단순히 끔찍한 내용들만을 담고 있지 않다. 그 끔찍하고 혐오스러운 내용 안에 담긴 사회를 향한 작가의 비판적 외침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대단히 끔찍하고 혐오스럽다. 하지만, 끝까지 읽고 생각하자. 아울러 그 끔찍함에 내 영혼이 함몰되지 말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물수제비 퐁퐁퐁 도토리숲 동시조 모음 5
유성규 글, 김주경 그림 / 도토리숲 / 201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유성규 시인의 동시조집 『물수제비 퐁퐁퐁』은 우리의 마음을 포근하게 해주는 마력이 있네요. 그 이유는 아마도 시인의 동시조들에는 동심의 세상이 가득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게다가 그 동심의 시대적 배경이 때론 우리 친구들의 아버지 어머니, 또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어린 시절을 연상시키는 시들도 제법 많기 때문 아닐까 싶네요. 각박하지 않은 시대, 비록 물질의 궁핍함은 있었지만 정서적으로는 풍요로움을 누리던 시대를 느끼게 하는 시를 통해서 그 시대만이 주는 포근함을 누릴 수 있지 않나 싶네요.

 

또한 어쩌면 동시와 시조가 만난 장르인 동시조라는 장르가 우리만의 특별한 문학 장르이기 때문에 또한 이러한 포근한 감성을 느끼게 하지 않나 싶기도 하네요. 우리의 생활환경, 우리의 자연환경 등을 드러내는 장르이니 말이죠.

 

여기에 더하여 김주경 작가의 그림 역시 한 몫을 하고 있고요. 그림들이 참 예쁘고 푸르거든요. 왠지 생명력이 느껴지는 그림들이 가득하답니다.

 

동심의 노래이기에 학교생활을 다룬 것들이 제법 눈에 띄네요. 그 중에 이런 시가 있네요.

선생님은 잘했다고 / 쓰다듬어 주셨어요 //

엄마는 백 점 귀신 / 구십구 점도 안 된다고요 //

엄마의 옛날 성적표 / 어디 한번 보여 줘요

< 엄마는 백 점 귀신> 전문

 

물론 어느 나라나 자녀가 공부 잘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은 비슷하겠죠. 하지만, 점수에 목을 매는 과한 우리만의 정서가 우리만의 문학인 동시조에 담겨 있네요. 구십구 점도 용납하지 못하는 엄마는 백 점 귀신이라는 아이의 항변. 여기에서 더 나아가 엄마의 옛날 성적표 한번 보여 달라는 아이의 반격이 멋지면서도 왠지 씁쓸하네요. 우리 아이들의 동심이 성적이란 괴물, 백 점 귀신에 의해 갉아 먹히고 있진 않은지 돌아보게 되고요.

 

이런 백 점 귀신과 대비하여 어쩌면 요즘은 보기 힘든 풍경도 있네요.

 

가재 잡다 허탕치고 / 무지개를 따르다가 //

투덜투덜 한나절이 슬그머니 배고플 때 //

엄마가 부르는 소리 / 모처럼 반갑구나

< 개구쟁이의 하루 > 전문

 

요즘 이런 풍경, 너무 보기 힘들어졌죠? 아이들이 뛰어놀다 배고프기보다는 학원 투어 하다가 힘겨운 시대니까요. 가재를 잡을 개울도 없을뿐더러, 그나마 있는 놀이터에서도 아이들 찾기가 힘든 시대, 아이들의 동심은 어디에서 보상받을 수 있을까요? ‘개구쟁이의 하루’와 같은 풍경들이 이 땅에 다시 회복될 수 있다면 좋겠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밤의 화사들 - 우리가 만난 날의 기록 계회도, 제4회 한우리 문학상 청소년 부문 당선작 한우리 청소년 문학 4
윤혜숙 지음 / 한우리문학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열일곱 소년인 진수는 화원에서 그림을 그리는 소년이다. 아버지 역시 화사였지만, 돈 벌이 되지 않는 ‘계회도’나 그리다 비명횡사하였기에, 그런 아버지처럼 되지 않겠다며 글공부에 기웃거렸지만, 피는 속이지 못해 진수 역시 아버지의 길을 걷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처럼, 형처럼 의지하던 인국이 살인혐의로 붙잡히기 된다. 그것도, 삼년 전 사건인 진수 아버지의 살인범으로 말이다. 이에 진수는 인국의 무고함을 밝히기 위해 동분서주 뛰어다닌다. 이런 과정 가운데 진수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곳이자 자신을 양아들 삼으려는 장 화원이 범인임을 확신하고 증거를 찾아 나간다. 뿐 아니라, 또 한 사람의 용의자인 절대 권력자 김 대감에게도 관심을 기울인다.

 

물론, 이런 일들을 진수 혼자 감당하는 것은 아니다. 진수의 아버지가 그린 문제의 ‘계회도’, 그 안에 있던 주인공들인 송 화원의 아들 범이, 이 화원의 딸 월이가 진수의 조력자가 된다. 이들은 모두 피해자의 자녀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서로를 돕는다. 또한 진수의 불알친구이자 포도청 포졸인 순두 역시 진수에게 큰 힘이 되어준다. 과연 진수는 이들과 함께 인국의 무고함을 밝힐 수 있을까? 아울러 갑자기 붉어진 이 살인사건의 진짜 범인은 누구일까?

 

장편소설인 『밤의 화사들』은 주인공이 열일곱 소년이기에 청소년소설이다(사실 이런 분류가 마음에 들진 않지만). 아울러 시대극을 다루고 있는 역사소설이면서, 범인을 추리해나가는 추리소설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추리소설이라는 것이 매력적이다. 과연 범인이 누구일까? 과연 억울하게 붙잡힌 인국의 무죄함을 증명할 수 있을까? 이러한 궁금한 마음으로 책을 읽어나가게 된다. 물론, 어느 정도 읽고 나면 범인이 누구인지는 짐작하게 된다. 그렇기에 작품은 끝에 가서 극적인 반전을 보여주는 듯싶지만, 실상 예고된 반전에 그침이 아쉬움으로 남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재미난 소설임에 분명하다.

 

재미뿐 아니라, 시대극으로서 당시대의 문화를 우리에게 소개하는 유익한 소설이기도 한다. 바로 ‘계회도’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이는 오늘날 우리의 사진과 같은 역할을 하지 않나 싶다. 모임에 참석한 이들을 그림으로 그리고, 그 그림을 연장자 순으로 맘에 드는 그림을 하나씩 가져간다는 ‘계회도’, 이러한 ‘계회도’에 대해 알게 됨도 큰 수확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의 부제로 <우리가 만난 날의 기록 계회도>가 달려 있기도 하다.

 

또한 작가는 당시 그림들이 권세가 됨을 보고, 이러한 부조리에 대해 비판한다. 이 비판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여보게 된다.

 

“네 아비는 그림이 어떻게 쓰여야 하는지를 아는 훌륭한 화공이었다. 양반들의 욕심을 채우는 도구나 돈벌이 수단이 아닌, 진짜 그림은 보는 사람이 즐거워야 하고, 그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담아야 한다는 걸 말이다.”(271쪽)

 

안타깝게도 오늘날에도 그림은 돈벌이의 수단이 되거나, 가진 자들의 허영심을 채우는 수단이 되고 있지 않은가. 그림이 곧 권세라 말하는 김 대감이 오늘 우리 곁에도 여전히 존재함에, 진수와 같은 거리의 화사들, 진정한 예술혼들이 존경받고, 대우받을 수 있는 세상을 꿈꿔본다.

 

참, 이 책의 또 하나의 특징은 표지다. 온통 검은 색으로 가득한 표지다. 사진을 찍어놓고 보니, 그래도 사진에서는 그림이 잘 드러난다. 처음엔 이게 뭐야? 싶었는데, 볼수록 매력적인 표지그림도 이 책의 대표적인 특징이 되겠다.

 

무더운 여름에 읽기에 딱 좋은 소설이 아닌가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축구공 속에는 호랑이가 산다 문학동네 동시집 35
곽해룡 지음, 강태연 그림 / 문학동네 / 201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곽해룡 시인의 동시집 『축구공 속에는 호랑이가 산다』는 묘한 울림이 있다.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시인은 일부러 아름답게 꾸미지 않는다. 아울러 아름답고 선한 것들에만 관심을 기울이지도 않는다. 아니 도리어 삶의 아픔과 고단함, 눈물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 아픔은 아름다움으로 승화된다.

 

예를 들면, 이런 짧은 줄시가 있다.

 

낙타는 사람을 등에 업고 다니지만 제 자식은 한 번도 업어 주지 않았다.

< 낙타 > 전문

 

짧은 한 줄의 시이지만, 그 울림이 오랫동안 남는다. 어쩌면, 우리네 아버지, 어머니들이 세상을 이렇게 살고 있지 않았을까? 분명, 예쁜 동시는 아니다. 도리어 아픔이 있다. 하지만, 그 애틋한 마음 안에 아름다움이 녹아 있다.

 

이 시집을 해설한 유강희 시인은 이를 ‘모성적 시선’이라 표현하고 있다. 그렇다. 시인의 시들에는 모성적 시선이 가득하다. 하지만, 이를 단지 ‘모성’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부성’은 이에 못 미칠까? 그러니, ‘부모의 마음’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자녀들을 세상에 내 놓기 위해 자신을 온통 뭉개버리는 희생을 여전히 오늘도 삶 속에서 감내하고 있을 그런 부모의 마음 말이다. <홍시>라는 시를 보자.

 

책장 위 단단했던 감이 / 물렁물렁해졌다 //

잘 여문 씨들에게 / 온 힘을 다해 / 젖을 짜 먹이고 있다 //

달이 꽉 찬 씨들을 / 세상에 내보내려고 / 스스로 뭉개지고 있다

< 홍시 > 전문

 

오늘도 달이 꽉 찬 씨들을 세상에 내보내기 위해 스스로 뭉개지고 있을 부모들의 삶, 그 투혼에 박수를 보낸다. 자신은 여전히 세상 속에서 뭉개지면서도 자식들만은 더욱 단단한 삶으로 빚어내려는 부모의 마음, 부모의 헌신, 부모의 사랑이 있기에 오늘 세상은 이만큼 잘만 해진 것이 아닐까?

 

<참외>라는 시 역시 그러하다. 이 시에서는 여전히 본인들은 세상의 쓴맛을 감내하면서도, 자녀들에게만은 좋은 것으로 채우려는 부모의 인생을 읽게 된다.

 

참외 꼭지는 쓰다 // 쓰디쓴 꼭지를 빨면서 / 참외는 제 몸을 //

단물로 가득 채웠다

< 참외 > 전문

 

자신들은 안 먹고, 안 입으면서도 자녀들에게만큼은 좋은 것 먹이고, 좋은 것으로 입히는 부모의 마음이 물씬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이 시집 가운데 가장 내 마음을 울린 시를 소개한다.

 

민들레 꽃씨 / 후우 불지 마세요 //

엄마가 / 마지막 젖을 물리고 있으니 //

민들레 꽃씨 / 후우 불지 마세요 //

동무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있으니 //

민들레 꽃씨 / 후우 불지 마세요 //

제각각 원하는 방향으로 가는 / 기차를 기다리고 있으니

< 민들레 꽃씨 > 전문

 

왠지 앞으로는 민들레 꽃씨를 쉽게 불 수 없을 것 같다. 다가오는 이별을 아쉬워하며 마지막 젖을 물리고 있을 꽃대의 모성이 생각날 것이기에. 그리고 이젠 각기 사방으로 흩어지게 될 것을 아쉬워하며 동무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있을 꽃씨들이 생각날 것이기에.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민들레 꽃씨를 후우 불게 되겠지. 어쩌면 그것이 꽃씨들을 위해주는 일이기에. 그들은 시인의 노래처럼 각각 원하는 방향으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기에. 비록 헤어짐은 아픔이지만, 그 아픔을 지나 꽃씨들은 새로운 삶을 향해 기차를 탈 것이기에, 그리고 내 작은 입김이 그들에게 기차가 될 것이기에, 민들레 꽃씨를 후우 부는 행위도 이젠 예사롭지 않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