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공 속에는 호랑이가 산다 문학동네 동시집 35
곽해룡 지음, 강태연 그림 / 문학동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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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해룡 시인의 동시집 『축구공 속에는 호랑이가 산다』는 묘한 울림이 있다.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시인은 일부러 아름답게 꾸미지 않는다. 아울러 아름답고 선한 것들에만 관심을 기울이지도 않는다. 아니 도리어 삶의 아픔과 고단함, 눈물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 아픔은 아름다움으로 승화된다.

 

예를 들면, 이런 짧은 줄시가 있다.

 

낙타는 사람을 등에 업고 다니지만 제 자식은 한 번도 업어 주지 않았다.

< 낙타 > 전문

 

짧은 한 줄의 시이지만, 그 울림이 오랫동안 남는다. 어쩌면, 우리네 아버지, 어머니들이 세상을 이렇게 살고 있지 않았을까? 분명, 예쁜 동시는 아니다. 도리어 아픔이 있다. 하지만, 그 애틋한 마음 안에 아름다움이 녹아 있다.

 

이 시집을 해설한 유강희 시인은 이를 ‘모성적 시선’이라 표현하고 있다. 그렇다. 시인의 시들에는 모성적 시선이 가득하다. 하지만, 이를 단지 ‘모성’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부성’은 이에 못 미칠까? 그러니, ‘부모의 마음’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자녀들을 세상에 내 놓기 위해 자신을 온통 뭉개버리는 희생을 여전히 오늘도 삶 속에서 감내하고 있을 그런 부모의 마음 말이다. <홍시>라는 시를 보자.

 

책장 위 단단했던 감이 / 물렁물렁해졌다 //

잘 여문 씨들에게 / 온 힘을 다해 / 젖을 짜 먹이고 있다 //

달이 꽉 찬 씨들을 / 세상에 내보내려고 / 스스로 뭉개지고 있다

< 홍시 > 전문

 

오늘도 달이 꽉 찬 씨들을 세상에 내보내기 위해 스스로 뭉개지고 있을 부모들의 삶, 그 투혼에 박수를 보낸다. 자신은 여전히 세상 속에서 뭉개지면서도 자식들만은 더욱 단단한 삶으로 빚어내려는 부모의 마음, 부모의 헌신, 부모의 사랑이 있기에 오늘 세상은 이만큼 잘만 해진 것이 아닐까?

 

<참외>라는 시 역시 그러하다. 이 시에서는 여전히 본인들은 세상의 쓴맛을 감내하면서도, 자녀들에게만은 좋은 것으로 채우려는 부모의 인생을 읽게 된다.

 

참외 꼭지는 쓰다 // 쓰디쓴 꼭지를 빨면서 / 참외는 제 몸을 //

단물로 가득 채웠다

< 참외 > 전문

 

자신들은 안 먹고, 안 입으면서도 자녀들에게만큼은 좋은 것 먹이고, 좋은 것으로 입히는 부모의 마음이 물씬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이 시집 가운데 가장 내 마음을 울린 시를 소개한다.

 

민들레 꽃씨 / 후우 불지 마세요 //

엄마가 / 마지막 젖을 물리고 있으니 //

민들레 꽃씨 / 후우 불지 마세요 //

동무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있으니 //

민들레 꽃씨 / 후우 불지 마세요 //

제각각 원하는 방향으로 가는 / 기차를 기다리고 있으니

< 민들레 꽃씨 > 전문

 

왠지 앞으로는 민들레 꽃씨를 쉽게 불 수 없을 것 같다. 다가오는 이별을 아쉬워하며 마지막 젖을 물리고 있을 꽃대의 모성이 생각날 것이기에. 그리고 이젠 각기 사방으로 흩어지게 될 것을 아쉬워하며 동무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있을 꽃씨들이 생각날 것이기에.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민들레 꽃씨를 후우 불게 되겠지. 어쩌면 그것이 꽃씨들을 위해주는 일이기에. 그들은 시인의 노래처럼 각각 원하는 방향으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기에. 비록 헤어짐은 아픔이지만, 그 아픔을 지나 꽃씨들은 새로운 삶을 향해 기차를 탈 것이기에, 그리고 내 작은 입김이 그들에게 기차가 될 것이기에, 민들레 꽃씨를 후우 부는 행위도 이젠 예사롭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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