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따라 아내가 내게 오고, 내가 아내에게 갔듯이, 뭐든 올 것은 오고 갈 것은 가리라. 무엇에건 연연할 필요 없이, 세상이 적게 주면 적게 먹고, 많이 주면 많이 먹고, 나눌 수 있으면 나누리라. (23쪽)

 

소소한 생명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문틈처럼 느껴지는 게 참 좋아요. (...) 저에게 좋으니까, 누구에게나 좋은 것이기를.

(...)

중요한 건 하루하루가 에누리 없이 존재의 절정이어야 한다는 것. (31쪽)

 

"눈 가고 바람이 왔다.

늘 그렇듯 풍경에는 눈이 쌓이지 않는다.

풍경은 옛일 기억하지 않는다.

늘 이 순간을 살지.

거친 바람 마다하지 않고." (33쪽)

 

내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된 생명들에게 인사 건네고 먹습니다. 미안하게 되었다고, 네 목숨값을 내가 잘 하마고, 인사하는 거지요. (76쪽)

 

문제는 수렵 시대에 사람들이 가졌을 법한 자족과 겸손에 비해 이제 너무 잔혹하다는 것, 도에 넘치는 풍요 속 포식이라는 것, 너무 많은 피를 흘리는 섭생이라는 겁니다. 제 손으로 짐승을 잡아야 한다면, 지금처럼 포식에 포식을 더하는 일이 가능할까요?

(...)

그러나 농사는 생명과 대화하는 일이고 이게 농사가 갖는 최고의 의미예요. 씨앗이 땅에서 싹을 틔우고, 비바람에 쓰러져도 다시 일어서고, 그렇게 낱낱의 싹들이 사람의 인생과도 같은 곡절을 겪다가 마침내 땅으로 돌아가고...... 존재는 응당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99쪽)

 

우리에게 절실하게 소중한 일도, 하늘의 큰 눈으로 보면 사소할 뿐. (122쪽)

 

비 온 뒤에 흐르는 저 개울물은 흙탕입니다. 그러나 흐르고 흘러 결국은 맑아지지요. 어떤 생명인들 이렇지 않을까요. (133쪽)

 

인류가 지구에서 멸절한다 하더라도 그마저 사소한 소식일 수 있잖아요? 기적처럼 아름다운 이 지구에서, 사람들이 조화롭게 살지 못하면 결국 멸절은 당연한데, 궁극의 어떤 큰 힘, 또는 법계(法界)가 그걸 애석하다 할까요? 슬프다고 할까요? (138쪽)

 

때로 꽃들도 밤하늘의 별과 다를 게 없다는 걸, 존재 하나하나가 별자리처럼 저마다 빛난다는 걸. (143쪽)

 

자연의 투명한 달빛을, 때로는 햇빛까지 가려버리는 도시의 문명은 아마도 거대한 커튼 같은 게 아닐까요. (144쪽)

 

세상은 우리에게 넋 놓고 살기를 요구하는 것 같은데, 거기에 두 손 들어서는 안 되고, 자신의 삶을 바꾸는 일이 필요하다는 생각, (164쪽)

 

물에 빠진 병아리나 생쥐처럼 가여운 처지에 있는 아이들이 겪을 수 있는 외로움을 이해해요. 여기 궁벽한 시골에도 아이들의 자살 소식이 들려요. 파편처럼 들리는 얘기들을 종합해보면, 처녀아이가 갖고 싶은 것도, 얻고 싶은 것도, 자랑하고 싶은 것도 많았는데, 그걸 좇아 살다 보니까 욕심이 지나쳐 카드 빚이 생기고, 그걸 감당 못 해 유흥업소를 드나들고, 결국은 인신매매 시장에서 물건처럼 팔리다가 견딜 수 없어서 목을 맸나 보더군요. 길에서 비명횡사한 로드킬 희생물과 그 아이가 다를 게 무엇이겠어요?

(...)

욕망은 끝이 없죠. 욕망의 근원을 들여다보려 노력하는 수밖에요. 욕망의 뿌리를 봐야 해요. 아무것도 없을, 그 깊은 데...... (168쪽)

 

무엇보다, 마음공부는 '홀로 서기'의 출발을 의미하기도 하지요. 내가 내게 묻는 방법을 배우는 거니까요. 그렇게, 시작할 수 있는데......(169쪽)

 

'욕심의 강이 흐른다. 때로 물살 거칠다. 흐르는 강에 눈길 주지 말고, 강 건너 큰 나무 한 그루 바라보아야지.' (173쪽)

 

'염주 끈이 풀렸다

 나 다녀간다고 해라

 먹던 차는

 다 식었을 게다

 새로 끓이고

 바람 부는 날 하루

 그 결에 다녀가마

 몸조심들 하고

 기다릴 것은 없다' (185쪽)

 

 누군가는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라고 했지만, 저를 지켜준 건 온통 사람이었어요. 대숲에서는 쑥도 곧게 자란다고, 좋은 사람 곁에 사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예요. 제가 스스로 많이 모자라고 상처도 많았지만, 좋은 분들 덕분에 그럭저럭 사람이 됐어요. (197쪽)

 

30년도 더 된 이야기예요. 어느 이른 봄에 가뭄이 들었는데, 메마른 들판 길을 둘이 거닐었어요. 절 배웅하시는 길이었지요. 선생께서 타들어 가는 보리밭을 바라보며 눈물을 글썽거리십니다. '저것들이 목이 타겠다!' 하시면서...... (198쪽)

 

메마른 보리밭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멀고 가까운 모든 불쌍한 죽음을 아파하고 슬퍼한 사람, 정작 자신을 위해서는 참 적게 쓰신 분. 이런 분이 성자가 아니고 무엇일까요? 평생 어려운 문자 한 번을 쓰지 않았어요. 당신께서 몸에 병이 들어 씩씩하게 살긴 어려웠지만, 의롭지 않은 것과 결탁하거나 타협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아름다우셨지요. (202쪽)

 

늘, 마음 그릇이 작아서, 다 받아낼 수 없었던 게 제일 문제였어요. (209쪽)

 

불평하거나 분노하는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의 상처가 얼마나 아팠으면 저럴까, 그가 처한 조건을 이해하려 노력해요. 그가 던지는 가시건 둔한 망치건, 이해하려 해요. 때로 아픈 맘이 들더라도, 나는 오죽했었나? 하는 쪽으로 생각을 돌려요.

(...)

인간관계라는 거, 그것 참 힘든 일이기도 하지만 못 견뎌서 버리고 떠날 만큼이 자리는 아녜요. 그게 사는 거기도 하고. (212쪽)

 

그 누군들 이름값 하기 버겁지 않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당산나무나 낙락장송처럼 자연에서 천수를 누리며 장엄한 생명이 되는 일조차 어려운데, 이름값을 하고 살기는 더 어렵죠.

(...)

무명과 익명의 삶들을 절망스럽게 만들고 있잖아요. 딱한 일이예요. 허명의 범람, 그게 평범한 삶을 실패한 삶으로 비하하게 하지요. 참 좋은 평범한 삶을 이룰 수 없게 훼방해요. 헛된 꿈을 좇게 하고. (2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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