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퀴어 정체성의 백가쟁명 : 비규범적인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가능성/실존


1. 젠더 × 섹슈얼리티

 젠더와 섹슈얼리티는 딱 분리되어 정의될 수 없다. "남성/여성, 동성애/이성애의 이분법만으로는 젠더와 섹슈얼리티가 어떻게 복잡하게 상호작용하는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250쪽)

 "더욱이 퀴어인 사람은 젠더나 섹슈얼리티 어느 한쪽만 퀴어하지 않다." (253쪽) "엄밀히 말해 젠더퀴어는 젠더 정체성만 퀴어한 게 아니다. 어떤 이의 젠더 정체성이 남/여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젠더 규범에 들어맞지 않을 때, 그 사람의 섹슈얼리티 또한 동성애/이성애의 구분에 들어맞을 수가 없다."(257쪽) 


 수술이나 호르몬 조치를 하지 않은 트랜스젠더가 '여성'이나 '남성'(물론 상대방의 성별도 정확히 규정할 수 없겠지만)을 사랑할 떄 그 사람은 이성애를 하고 있는 건가, 동성애를 하고 있는 건가?  - 258쪽


 젠더는 스스로의 성정체성, 섹슈얼리티는 어떤 성에게 성욕을 느끼느냐에 따른 분류 정도로 막연히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 이게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걸 처음 알려준 건, <LGBT+ 첫걸음>이었다. 


 이 책의 앞 절반 정도는 정말 흥미로웠고, 뒤 절반 정도는 어지러웠다. 너무 많은 용어들이 나와서 스펙트럼을 장식했다. 내 굳어있는 의식을 깨우기에는 좋은 책이었지만 일일이 용어를 이해하기에는 어려웠다. 그저 이렇게 많은 정체성이 있을 수 있고 이분법이 딱 들어맞는 규범적 인간을 제외한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딱 들어맞는 용어를 찾아내기 위해 애쓰고 있구나, 누군가가 그의 정체성을 낯선 용어로 소개했을 때 그말 그대로 받아들여야 겠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은 것만으로 만족한다.










2. 성 정체성, 성적 지향을 다시 사유하기 


세즈윅이 보기에 가장 중요하게 비판해야 할 문제점은, 여기 깔린 전제들에 어긋나는 수많은 차이가 침묵을 강요받고 뭉뚱그려지고 깔아뭉개지는 과정을 거쳐 '성 정체성'이 이음매 없이 매끈하고 일관된 하나의 통일체로 조직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다음 장에서 이야기하겠지만) 세즈윅은 『벽장의 인식론』에서 동성애/이성애 이분법이 근대 서구의 사유와 문화의 토대로 자리매김해왔다고 주장하지만, 이 주장은 동성애/이성애 이분법이 불변의 진리라는 뜻이 아니다. 동성애와 이성애를 이분법적으로 구분 짓고 대립시키는 구도는 '생물학적 성별'로 간주되는 여성/남성 위치를 토대 삼아 이 이분법에 어긋나는 수많은 차이를 밋밋하게 밀어버리고 말끔하게 봉합함으로써 구축된다는 점을 폭로하려는 것이다.  - 263쪽


3. 퀴어 정체성의 백가쟁명


 굉장히 재미있는 이야기가 각주(38)에 나온다. 바로 셜록과 왓슨의 관계!! 셜록 홈즈, 특히 BBC 드라마 <셜록>에서 셜록과 왓슨의 '브로맨스'가 은근히 인기의 비결이라는 건 알았지만, 본격적으로 퀴어 서사로 논의되는 줄은 몰랐다. 어, 그러니까 내 짧은 생각으로는 '브로맨스'라는 걸 현실적인 '퀴어'와 연결을 짓지 못했던 것이다. 



 저자는, "셜록은 사람 자체에 성적 욕망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왓슨과의 관계를 동성애적 끌림의 관계로 보는 해석에도, 이 둘의 관계를 퀴어베이팅으로 활용하려는 해석에도 완벽히 포획되지 않으면서 섹슈얼리티를 인간의 본능으로 단정하는 유성애적 사고관 자체를 어느 정도 낯설게 만드는 데 성공한다."고 말한다. (303쪽)

 아, 갑자기 셜록 다시 보고싶네... ㅜㅜ 


시공간에서 수많은 사람이 젠더 이분법은 물론이요, LGBT 이름들만 가지고 따지기엔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자신의 감각을 정체성으로 포착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자신의 지역에서 사용하거나 인터넷에 올리고 그걸 또 다른 이들이 건너 듣고 공유하거나 수정하며 발전시켜 온 귀납적 언어이다. 따라서 이런 이름들을 명확한 단 하나의 기원이나 사전적 정의에 고정시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정체성이 진짜냐 가짜냐를 따지는 대신에, 어떤 역사적 국면에서 어떻게 이런 정체성이 하나의 성 정체성으로 등장하게 되었는가를 탐구하는 쪽이 좀 더 생산적일 것이다.  - 284쪽


4. 일인칭으로 이야기하기 


 개개인의 경험을 담은 "서사"가 중요하고, 그 "서사"를 담은 "어떤 이름이 나의 구명줄로 받아들여지느냐"는 사람마다 다르다. 따라서 '일인칭으로 이야기한다는 것'은 진정성 투쟁과 이어지는 본질주의와는 다르고, 개개인의 역사를 중시하는 작업이다. 


3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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