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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인간학 - 약함, 비열함, 선량함과 싸우는 까칠한 철학자
나카지마 요시미치 지음, 이지수 옮김, 이진우 감수 / 다산북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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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착하게 살지 마라.'

착한 사람들은 약자이고 안전을 추구하고 거짓말을 하고 무리를 짓고 동정하고 무리를 짓는다. 어? 그렇다. 이 책이 말하는 '착한 사람'은 반어법이다. 

철학자 나카지마 요시미치는 스스로를 착하다고 정당화하는 현대사회의 약자를 착한 사람이라고 부르며 그렇게 살지 마라고 한다. 

이 책은 읽으면 상당히 당황스럽고 불편하다. 저자가 정의하는 '착한 사람'을 비판하는 건 잘 알겠다. 그런데 저자의 주장에 마냥 동조하자니 그 착한 사람의 특성이 내 안에 고스란히 존재하고 있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착한 사람은 상냥하다. 지신도 타인에게 상냥하지만 무엇보다 타인도 자신에게 상냥하기를 바란다. 착한 사람이 타인에게 상냥한 이유는 자신도 타인에게 상냥한 이유는 자신도 타인에게 상냥한 대접을 받고 싶기 때문이며 그래야 자신이 안전해지기 때문이다"

나카지마 요시미치가 말하는 착한 사람의 특성 중의 하나인데 그가 말하는 착한 사람의 여러 특성들은 살아오면서 내가 한 행동의 이유를 생각하게 하고 심연 속의 나를 찾아 침잠시키곤 한다. 

'인간은 하나하나의 경험에 의해서만 다음 결단을 내릴 수 있다.'

안락과 이득이라는 기준에 따라서만 인생을 살아왔으므로 이제는 다른 식으로 살아갈 수가 없다. 오다 노부나가나 사카모토 료마의 삶을 동경했어도 그들과 자신을 동일시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처럼 내가 왜 동경하는 사람처럼 살지 못한 이유를 깨닫게 된 것이 큰 결실이다. 

#니체의인간학 #다산3.0 #나카지마요시미치 #니체 #착한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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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시대 -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지혜와 만나다
김용규 지음 / 살림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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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시대는 끝났다. 생각의 시대가 왔다.'


정보혁명은 세 가지의 큰 변화를 가져왔다.
첫째. 폭증하는 지식. 폭발적인 정보의 양으로 이제는 아무리 천재라도 그 시대의 지식을 다 익힐 수가 없다.

둘째. 지식의 소재와 성격의 변화. 지식은 이제 학자, 전문가, 장인, 대학, 백과사전에서 벗어나 네트워크화 되었다. 누가 더 많이 알고 있는지가 아니라 정보의 찾는 능력이 더 중요해졌다.

셋째. 지식의 수명단축. 대학에서 배운 지식을 수년, 수십년 동안 써먹을 수 있는 시대가 갔다. 지식의 종말. 전문가의 종말이라 불리는 시대가 왔다.  

지식이 폭발하는 정보혁명의 시대에 필요한 것은 수많은 정보 속에서 신호와 소음을 걸러내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 신호에서 보편적이고 거시적이며 합리적인 판단을 이끌어 내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것을 생각의 도구라고 한다.  

철학자 김용규 선생은 생각의 도구를 '은유. 원리. 문장. 수. 수사'라고 한다. 선생은 먼저 지식과 생각의 기원에 대해 설명한다. 그리고 각각 약 60여 페이지씩 할애하여 은유. 원리. 문장. 수. 수사가 2500년전의 그리스 철학자들의 사유로부터 기원했다며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그 5가지가 생각의 도구라고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생각의 도구를 계발하는 방법까지 알려준다.

마치 하늘의 비밀을 엿본 기분이다. 읽는내내 천기누설을 하는듯한 두근거림으로 심장이 빨리 뛰었다. 때론 비밀의 수호자가 나타나서 책을 빼앗갈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정말 대단한 내용이 담겨 있는 책이다. 호들갑을 떨 만 하다.

#김용규 #생각의시대 #살림 #생각의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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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논쟁! 철학 배틀
하타케야마 소우 지음, 이와모토 다쓰로 그림, 김경원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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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란 음미하고 대화하는 그 자체'

올해 독서목표인 철학 장르의 탐독을 위한 첫 책으로 '대논쟁, 철학배틀'을 펼쳐 들었다. 파이팅이 넘치는 두 철학자. 니체와 칸트가 웃통을 벗어 젖힌채 서로에게 카운터를 날리는 일러스트가 커버를 장식하고 있다. 두 철학자 뒤에는 긴장된 표정의 소크라테스가 심판역을 맡고 있다. 세계 타이틀 매치를 방불케 하는 이 모습은 '철학배틀'이라는 이 책의 치열한 논쟁을 잘 전해준다. 

철학이란 무엇인가? 혹자는 철학이란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한다. 진리를 탐구한다는 이 정의만 보면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학문이다. 또한 학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과도 관련이 없어 보인다. 이런 선입관이 나를 철학이라는 학문과 멀어지게 하고 철학을 어렵게만 생각한 것 같다. 

철학이란 '왜 그런가?'라는 의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다. 이를테면 '빈부격차는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가?  살인이나 전쟁은 절대악인가. 인간의 본성은 선한가? 악한가?' 와 같은 근원적인 의문들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철학이라고 한다. 이정도면 철학에도 도전할 만도 하지 않을까?

이 책은 삶. 사회. 역사. 종교를 관통하는 15가지 주제를 두고 인류사를 통틀어 한 획을 그었던 37인의 철학자. 사상가들의 논쟁배틀이 벌어진다. 

오 마이 갓!! 세상에!! 이런 레전드 경기를 관전할 기회가 생기다니 생각만 해도 짜릿하지 않는가? 지난 16년도에 '멍크 디베이트'에서 사피엔스의 미래를 두고 배틀이 벌어졌었는데 그때의 참석자가 말콤 글래드웰. 알랭 드 보통. 매트 리들리. 스티븐 핑커였다. 이들의 배틀만 해도 흥미진진했었는데 인류사 전체 중의 사상가 올스타들이 토론을 한다니.....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할 정도까진 아니지만. 

인간을 꿰뚫는 15가지 주제에 대해 침을 튀기며 논쟁하는 토론자들의 사상을 관전하는 것만으로도 철학에 입문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철학배틀 #다산초당 #철학 #하타케야마소 #이와모토다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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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 리들리의 본성과 양육 - 인간은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
매트 리들리 지음, 김한영 옮김, 이인식 해설 / 김영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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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행동은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는가?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가? '


'인간의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에서 좀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표현이다. 
이 물음에는 J와 H, 모두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한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로 생각한다. 

일란성 쌍둥이가 태어나자마자 떨어져서 한 명은 부잣집에서 자라고 나머지 한 명은 가난한 곳에서 자랐다고 가정했을 때, 20년이 지난 후에는 전혀 다른 형태의 가치관을 가질 것이라고 누구라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한 편으로 연쇄살인마의 자식을 우리는 상당히 꺼려하는 것도 사실이다.
행여라도 그의 친구가 , 배우자가 될까 걱정을 하는 것은 혹시라도 연쇄살인마의 피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 탓이 아닐까? 인간행동의 결정요소가 '유전자'인가 '환경'이냐에 대한 논쟁은 '인간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만큼이나 근원적인 의문인것 같다.

이 본성과 양육에 대한 논쟁의 시작은 처음에는 철학자들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자 '존 로크' (1632~1704)는 인간을 '빈 서판'에 비유했고 이것은 곧 환경에 영향을 받는 양육설의 중대한 근거를 제공한다.

시간이 좀 지나 프랑스의 사상가 '장 자크 루소 (1712~1778) '와 '임마누엘 칸트 (1724~1804) '는 경험주의자들과는 다르게 인간 본성론을 지지한다. 인간은 본성을 타고 난다는 이론은 찰스 다윈 (1809~1882)의 '종의 기원'을 통해서 그 이론적 배경을 공고히 해가며 '다윈'의 사촌인 '프랜시스 골턴 (1822~1911) '은 '우생학'이라는 용어까지 만들어냈다. 

19세기 말까지 인간행동의 결정요소는 '유전자'라는 인식이 대세였던가?

한편, 행동주의 심리학의 창시자, 존 왓슨 (1878~1958), 이반 파블로프의 조건반사 이론 (1849~1936), 지그문트 프로이트 (1856~1939), 독일의 프란츠 보아스 (1858~1942), 사회학의 창시자 에밀 뒤르켐 (1858~1917)은 유전자론자들과 동시대에 '환경'론을 주장해왔다. 

19세기를 지나 20세기 초까지 본성과 양육 논쟁은 첨예하게 승부를 가리고 있었다.
이 첨예한 대립이 20세기의 양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점점 승부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공산주의의 환경론과 나치주의 우생학이 대리전을 겨루었고 나치의 홀로코스트에 경악한 세계는 더이상 본성론을 주장할 수 없게 된다.

20세기 말을 기점으로 60년간 연구를 해왔던 '우생학연구회'가 만장일치로 '사회생물학 연구학회'로 개명함으로서 본성과 양육의 대결은 일방적으로 양육이 승리한 셈이 된다. 

이때 혜성처럼 등장한 '노엄 촘스키'(1928~)의 인간은 태어날때부터 언어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그의 이론이 부상하면서 다시 본성과 양육의 대결은 피할 수 없게 된다.

공전의 베스트셀러인 '게놈','붉은여왕'으로 유명한 과학저널리스트인 '매트 리들리'는 이 책 '본성과 양육'에서 인간을 단지 본성과 양육을 이분법으로 생각할 수 없다고 한다. 원제인 'nature via nurture'를 보면 알다시피 '양육에 의한 본성'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한다. 

'유전자는 행동의 원인이자 결론이다.' 

어떻게 이런 결과를 이끌어내는지 심히 궁금하다. 그의 안내에 따라 인간 행동의 결정요소를 알아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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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자 선언 - 판사 문유석의 일상유감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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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인주의자입니다'

한 개인으로 자기 삶을 행복하게 사는 것만도 전쟁같이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어느 판사의 커밍아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에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들이 있다. 학교, 입시경쟁, 취업관문, 결혼시장, 직장, 맞벌이 육아, 양육이라는 관문이 그것이다. 하지만 그 관문들 하나하나를 잘 넘어 살아남기 위해서 우리들 개인은 얼마나 전쟁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걸까. 그런 개인들이 서로를 보듬어주고 배려해주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또 그렇기에 얼마나 귀한 일인가.

"우리 하나하나는 이 험한 세상에서 자기 아이를 지킬 수 있을 만큼 강하지 못하다. 우리는 서로의 아이를 지켜주어야 한다.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이것이 문유석 판사가 이 책에서 말하고 싶은 결론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책은 현 서울동부지방법원 부장판사로 재직 중인 문유석 판사의 신간이다. 
책 제목이 '개인주의자 선언'이다. 그의 자신에 찬 선언이 담긴 책을 집어들고 처음엔 어리둥절했다.
'이 양반이 미칬나....' 하며 고개를 갸우뚱한 것도 사실이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에서 '개인주의자'라고 한다면 집단주의 문화가 지배하는 대한민국 정서상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여진다. 개인주의 라는 말은 집단의 화합과 전진을 저해하는 배신자의 가슴에 다는 '주홍글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집단에서 소외되고 배척이 될 확률이 상당히 높다. 자신을 표현할 때 함부로 내뱉을 수 없는 단어다. 

책속에서 보여준 그의 용기있는 소신과 공감은 나같은 소심한 사람들을 든든하게 만들어 준다. 그는 대한민국의 집단주의 문화에 질색을 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감히 우리 스스로를 더 불행하게 만드는 굴레가 전근대적인 집단주의 문화이고,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근대적 의미의 합리적 개인주의라고 생각한다."  

이 집단주의 문화는 JTBC의 손석희 사장의 추천사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피부로 절실히 느끼고 있으며 또 그것에 좌절당하고 있지만 개인의 힘으로는 절대 바꿀 수가 없는 문화다. 

'눈치, 체면, 모양새, 뒷담화, 공격적 열등감, 멸사봉공, 윗분 모시기, 위계질서, 관행, 관료주의, 패거리 정서, 조폭식의리, 장유유서, 일사불란함, 지역주의, 상명하복, 강요된 겸손제스처, 모난 돌 정 맞기, 다구리, 폭탄주' 이것이 전근대적 집단주의를 대표화는 문화들이다.  

'그래 이제 우리는 행복해야 한다. 행복해도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도 이 집단주의 문화가 주는 압박에 끌려가고만 있는거다. 저자는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는집단주의 문화에 끌려가서 자신의 주체를 잃어버리지 말고  '합리적 개인주의자'가 되어야 한다고 한다.

그것도 '그냥' 개인주의자가 되면 그저 각자도생이 연출되거나 자칫하다간 서바이벌 게임이 되어 버린다. 이 사태를 피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합리적' 개인주의자가 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가 지속가능해지기 위해서는 '연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함께 멀리 가야 되지 않을까.

간만에 밑줄을 무지막지하게 많이도 그은 책이다. 


"나는 감히 우리 스스로를 더 불행하게 만드는 굴레가 전근대적인 집단주의 문화이고,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근대적 의미의 합리적 개인주의라고 생각한다."

우리 하나하나는 이 험한 세상에서 자기 아이를 지킬 수 있을 만큼 강하지 못하다. 우리는 서로의 아이를 지켜주어야 한다.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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