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딜레마의 모든 것 -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잘난 척 인문학
이용범 지음 / 노마드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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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생존을 위해 진화를 해왔지만 여러가지 딜레마에 빠져있다.

 

진화가 어떤 도덕적 규칙이나 누군가의 선택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저 하다보니 지금의 현재까지 흘러온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완벽하지도 않고 항상 문제가 많다. 과거의 봉건시대와 잦은 전쟁의 잔인함을 지나왔지만 여전히 생존이라는 큰 틀에서 문제를 안고 살고 있다. 완벽한 것은 없다는 것은 어쩌면 자연의 섭리가 아닐까 한다.

 




 

 

1부 도덕적 딜레마를 읽고 많은 생각이 든다. 초반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책임 분산효과나 동조효과 등인데 이미 심리학 서적 꽤나 읽어 보았던 사람들이라면 이미 익숙한 내용일 것이다. 2부 선과 악의 딜레마로 이어지는 내용도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따로 구분없이 읽고 느낀 점들을 기재했다.

 

질서나 도덕, 종교 등은 인간 생존에 필요한 요소들이었다. 필요한것 이상으로 소유하려는 욕심을 가진 인간들은 항상 남보다 많이 가지려 드는 자들로 들끓는다.

굶주리는 사람이 넘쳐남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필요이상의 자원, 음식, 재산 등을 축척해왔던 귀족이나 왕족, 봉건시대가 끝났어도 여전히 부자와 빈자로 나뉘어 있는 인간들의 본성은 탐욕스럽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동족을 죽이기도 하는 존재다. 프로이트의 저서에 언급된것처럼 원시부족의 아버지를 죽이려 하는 본능은 집단의 규범과 질서로 통제를 해야 했을 것이고 현대에도 법체계가 있어야 질서가 유지가 된다. 질서 유지나 도덕을 지키기 위한 마음과 외면하거나 질서를 파괴하고 싶은 욕구는 인간을 도덕적 딜레마에 빠지게 만드는 것 같다. 작게는 쓰레기를 길에 버릴 것인지 쓰레기통을 찾아서 버릴 것인지 고민하는 것도 도덕적 딜레마라고 할 수 있다.

 

생존을 위해 규범을 세우고 질서를 지켜왔기 때문에 다른 종들보다 진화를 할 수 있었던 인간에겐 경쟁이나 욕구, 폭력성등의 본능도 가지고 있지만 생존을 위해 지켜야 했던 도덕이나 이타성 등의 본성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법을 어겨보지 않은 사람도 마음속으로는 그러한 충동 아니 적어도 상상이라도 해보게 되고 나쁜 짓을 하는 사람도 죄책감을 느끼거나 양심의 가책을 느낄 수 있듯이.

 

세상에 어쩌다보니 존재해 살아가면서도 세상에 대해서 너무 모르던 인간은 어떤 큰 존재나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신과 종교를 상상해냈으며 종교는 집단의 결속을 다져주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물론 항상 나쁜 결과도 있다. 종교의 이름으로 인해 벌어진 많은 전쟁, 마녀사냥, 학살, 단죄 등. 현대에도 특정 국가나 집단에 여전히 남아있는 속성이다. 과학이 발달하고 세상에 대해서 몰랐던 사실을 밝혀내고 현재에도 계속 연구하고 밝혀내고 있기 때문에 신이나 종교의 존재는 더이상 예전처럼 생존의 필수요소는 아니다.

 

 

3부 남자와 여자의 딜레마는 많은 사람들이 흥미있어할 내용이다.

데이비드 버스나 매트 리들리 등의 진화심리학 서적을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친숙한 내용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도 조금 더 쉽게 풀어낸 내용으로 진화심리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다.

 

진화심리학을 처음 접한 사람들은 굉장히 당황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존엄한 존재이고 남녀의 차별적인 요소들이 굉장히 많이 포함되어있다. 데이비드 버스 교수도 연구내용을 공개하지 말아야 된다는 권유등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과거를 도덕적으로 포장한다고 현재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고 있는 그대로 밝혀내야 하는 것이고 그게 과학의 역할이다. 그런 것들을 해석하고 현대적으로 적용하는 방법이 성숙하면 될 일이다.

 

다른 동물들과 확연히 구별될 정도로 크게 진화한 인간은 새로운 생존을 위해 질서를 바로 잡으면 된다. 남녀 평등과 인종차별에 대한 반대는 현대의 딜레마지 과거의 딜레마가 아니었을 것이다.

과거 선조들의 본능이 그러했다고 현대의 인간들이 그것을 차별적이라고 생각하고 은폐하려는 시도는 무의미 하다. 오히려 그런 과거의 실수들을 바로 잡고 비도덕적인 본성을 알아차리고 현재의 질서를 공고히 하는데 이용하면 된다.

 

과거에 대한 연구를 부정하거나 왜곡하고 비난한다고 그 과거가 바뀌지는 않는다. 과거에는 동물에 가까웠고 진화했으니 진화한 인간에 걸맞게 발전 시키면 되는 것이다. 새로운 환경에 맞게 적응하고 생존률을 높이기 위해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것도 인간의 능력이자 생존 본능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평등한 세상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노력을 하는 자료나 반면교사로 삼으면 되는 것이다. 인식하지 못하는 본능적 기제를 밝혀내 나도 모르게 하는 어리석은 행동들을 이해하고 바꿀 수 있는 도구로 삼으면 된다. 과거에 그랬다고 그것을 그대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멍청이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생각보다 많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인간은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완벽하지 않다.

너무 완벽하려거나 정답을 찾기보다는 상황에 맞고 자신에게 맞는 답을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낫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아는 것이 필요하고 인간의 본능에 대해서 아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심리학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도 나를 비롯 대부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해하지 못할 문제들에 대한 고민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진화 생물학이나 심리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재미있으면서도 참 느끼는게 많은 것 같다. 인간의 때로는 무식하고 동물적인 본능에 대해서 알게 된다고 해서 그시절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로 참 화가 많던 나였는데 그게 많이 줄어드는데 도움이 되었다.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상대방의 반응, 나 자신의 행동 등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문제를 가지고 있고 그것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고 그것이 생물의 본질인것 같다. 완벽하지 않아야 발전의 여지가 있는 것이고 아직 밝혀내지 못한 것들이 많기 때문에 과학도 발전해가는 것이다. 진화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고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 자체가 진화 과정인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그런 노력을 쭉 해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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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적으로 어쩔 수가 없다
이시카와 마사토 지음, 이정현 옮김 / 시그마북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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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겐 무한 가능성이 있다지만 그게 나한테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노력이 부족해서 인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노력을 해보지만 노력을 해서 되는 일이 있고 잘 안되는 일이 있다. 노력이 부족해서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노력이 부족한 것도 맞고 잘 안되는 것도 맞는것 같다. 그런데 저자는 그게 생물학적으로 어쩔수 없는 유전적 요인이 있다고 말한다. 진화심리학자인 저자는 그런 어쩔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 이 책에서 이야기 하고 있다.

 

참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세상이지만 개인이 할 수 있는 것들은 한정되어있다. 그래서 어쩔 수 없는 것들은 빨리 포기하고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는 것은 어찌보면 현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소개하는 '어쩔 수 없는 것들' 을 모두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한다면 그 사람은 아무것도 어쩔 수 없이 못하게 되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들기도 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특성을 잘 파악하고 공감하는 것에만 선택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사람마다 그 특성이 다르다고 저자는 분명이 이야기 하고 있다.

어쩔 수 없다는 핑계거리를 만드는 것보다는 정말 잘 안되는 것들의 원인을 알아차리고 어쩔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자는 취지로 받아들여야지 이 책의 이야기들을 안되는 것의 목록이라고 받아들이면 안될것이다.

 

2장 게을러 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의 첫번째 이야기' 정리하지도 버리지도 못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할 것이다. 나에게 딱 들어맞는 거라 웃음이 나온다. 작은 방 세개가 있는 집에 살지만 항상 정리가 안되고 물건이 많다. 책도 잔뜩 쌓여있는데 자꾸 새로운 책을 찾는다. 수집욕구가 있는 것은 어느정도 본능이 작용한다는 이야기가 진화학적으로 설명이 된다. 필요한것 같은데 당분간 쓸일이 없는 물건을 버리는게 참 어려운 이유에 대해서 이해를 할 수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를 한다 싶은 것도 있고, 이게 그리 안되나 싶은 것도 있다.

수학 문제를 골치 아파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는데, 수학을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도 물론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수학에 골치아파본 사람들은 아 내가 그래서 그랬구나 라는 핑계같은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게 맞기도 하겠지만 어찌보면 허무하기도 하다.

어떤 인지심리학자는 방법의 문제만 잘 선택하면 학습을 할 수 있다고 이야기 하는 주장도 있기 때문에 그 얘기를 들으면 재능을 타고 나지 않았다고 못하겠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한 것 같기도 하다. 노력하면 다 된다고 물론 생각하지만 그건 노력하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일단 해봐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를 비롯) 사람들은 머리로 먼저 너무 계산을 한다.

 

정말 어쩔 수 없는 특성도 있는거 같긴 하다. 성적 정체성 혼란을 느끼는 사람은 타고 난다고 한다.

 

나같은 사람은 절대로 동성애적 요소가 1%도 없다.

그렇다고 동성애 혐오자는 아니다. 옹호자도 아니다.

그냥 관심이 없다. 남의 성적 선택에 내가 왜 관심을 가져야 하나 싶다. 앞으로도 관심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확실히 반대한다.

 

그건 개인의 자유의 문제이다. 남이 된다 안된다 허락할 일이 아니다. 왜 찬반을 조사하는지 조차 모르겠다.

남에게 과도하게 개입하려는 사람이 참 많다. 종교나 사회라는 이름으로. 그러나 그건 폭력이요 월권이다. 그런 인간들은 남의 개인적인 문제에 관여하지 말고 본인들 문제나 신경써야 한다. 특히 종교는 신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을 통제하려고 한다. 지들끼리나 통제하면 될일인데. 신이 있다 쳐도 이런 문제는 신이 해결해야지 신도가 해결할 일이 아니다. 그것은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신의 권한을 지들이 누리려는 월권행위다. 내 입장?은 신이 인간을 만든게 아니라 인간이 신을 만들었다는 것이고.

 

생각해보면 어떤 유전적 요인으로 그걸 타고난다면 혼란을 느끼게 되는 것도 이해가 간다.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내가 어쩔 수 없이 완전한 이성애자인것처럼.

 




 

 

야기들이 누구나 흥미있어할 이야기이지만 좀 더 자세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저자가 전문 학자이니 지식이 많을텐데 마치 전문가가 아닌 것처럼 주장만 있고 이유나 근거는 부족하다. 반대로 전문가라서 확신을 하는 것이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었다. 어떤 전문가가 자신이 가진 카드를 의도적으로 일부만 내놓는 것을 별로 안좋아하는지라.

 

한국에 출간되는 많은 일본서적들이 이런 식이다. 200~300페이지이고 책 판형이 작거나 글씨가 크고 단락이 나누어져 있고 많은 것들을 소개 하지만 짧다. 폭이 넓지만 깊이가 없다. 대신 이런 서적의 장점은 부담이 없고 읽고 싶은 페이지 아무 페이지나 펼쳐도 읽는데 지장이 없고, 쉽게 완독을 할 수 있어서 책을 한 권 끝냈다는 성취감을 줄 수 있으며 휴대하면서 지하철 등에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일본이 독서 강국이라는데 이런 식의 쉬운 대중서적만 읽는 강국이면 별로 대단할 것도 없다는 생각도 든다. 안 읽는 것보다야 훨씬 낫지만.

일본에 대해서 자세한 것은 잘 알지 못하지만 표면적으론 그래 보인다. 이 책은 그런 틀을 따라서 아쉬움도 있지만 그래도 전문가가 쓴 책이라 신뢰는 간다. 소재도 재미있는 소재라 가볍게 인간 본능에 대해서 읽고 싶은 사람이라면 괜찮은 선택이 될 것이다.

 

 

나도 원인을 모르는 내 심리에 대해서 진화적 본능으로 접근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이유가 진화에 있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본능을 극복할 능력 또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안되는 것도 있다. 그 정말 안되는 것의 가짓수가 많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글은 네이버 컬처블룸 카페를 통해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 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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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의 반란
임소장 지음 / 스노우폭스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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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물려받은 재산을 수저에 비유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금수저도 은수저도 흙수저도 아니다. 아니, 아니라기 보다는 거부한다는 쪽이 맞겠다. 

그 수저 이론에 속하고 싶지가 않다. 남들이 아무리 수저 범주에 넣는다고 해도 난 거부할 것이다. 

물론 거부한다고 세상의 구조 자체가 변하진 않는다. 내가 거부하는 것은 표현 방식이고 수저론은 세상의 구조를 표현하는 방식일 뿐이다. 

 

수저론?은 처음엔 농담처럼 비유가 되었을 것이나 점점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실은 냉혹하기 때문이다. 사회가 만들어놓은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굉장히 가혹하다. 한국 사회는 어릴때부터 학교 등지에서 성적에 따라 아이들을 자꾸 가르고, 그 분류법에 익숙해져버린 사람들은 다른 현상에도 그걸 적용 시키려는 강박을 가진다. 그런 증세가 있다는 인지조차 하지 못하면서. 

 

봉건사회가 신분을 벗어날 수 없었고 글마저 익히지 못하게 했다. 거기에 비하면 지금은 가능성이 많은 사회이다.

그런데 흙수저라는 말 자체가 가능성 있는 새싹을 밟아버리려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것을 당연히 받아들이는 듯이 나는 흙수저니 뭐니 스스로 입으로 내뱉고들 있다. 

 

세상은 냉정하고 니 수저는 정해져 있어~ 라고 자꾸 말해준다. 

 

세상의 냉혹함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너는 사람이다' 라는 것을 다른 사람이 알려줘야 아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그걸 자신만 아는 대단한 지식을 알려주는 양 말하고 있다. 

 

어차피 세상에 대한 이런 평가는 추상적이고 비유적이다. 

밝은 면을 보면 밝고 어두운 면을 보면 어둡다. 밝은 면까지 어둡게 볼 필요도 없고 반대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세상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변하는 것은 내 관점일 뿐이다. 그렇다면 내 관점은 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는 말하고 싶다. '관점은 내 자유다. 간섭하지 말라'고.

 

누가 그런 논리를 자꾸 퍼트린다 해도 그런 논리를 받아들이고 스스로들의 입으로 내뱉는 것은 결국 자신들 스스로다. 세상이 어찌보든 내 정체성이나 분류는 스스로 할 자유가 있다. 돈 몇푼보다 나에겐 그게 더 중요하다. 

 

부자가 아니어도 열심히 살아온 부모님에게 흙이라며 비하를 하는 것 같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수저 수저 들먹인다. 뭐 난 남들이 그런 용어를 쓰든 말든 나는 앞으로도 쭉 쓰지 않을 것이다. 그걸 누가 강요한다면 신경끄고 니 삶이나 살라고 하거나 엿이나 드시라고 할 것이다. 


 

 

이 책을 읽는 자체가 그런 논리에 갖혀버릴것 같은 생각이 들어 거부감이 들었었다. 노력을 해서 흙수저라는 범주에서 벗어난다고 해도 그것을 탈출했다는 말은 쓰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궁금했다. 금수저로 살게 되었다는 저자의 이야기가. 

 

부동산 재테크를 통해 돈을 번 사람들이 낸 책이 상당히 있다. 국가가 토지라는 것을 잘 통제했으면 이런 투기를 권유하는 사회가 되지 않았을텐데라는 아쉬움이 들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런 현상은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인플레이션을 정부나 대통령 등의 몇 사람이 막는다고 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강대국의 상황에 따라 휩쓸리기 때문이다. 

어설프게 법으로 통제를 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오게 되어 부동산 가격만 폭등하게 만들었다.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을 정도다.

 

저자도 부동산을 통해서 부자가 되었는데 이미 부동산 성공기나 부동산 방법론에 대한 책은 많이 나와있고 자신은 다르게 표현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이런 유행하는 자극적인 용어를 컨셉으로 삼아 책을 냈는데, 제목과 표현 방식만 다를 뿐 다른 자기계발서와 크게 차이는 없다. 

"부자의 게임에 참여하시겠습니까?" 라는 문구가 유행했던 오징어 게임을 보는 것 같고 수저론도 그렇다. 이런 방식은 확실히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자극성이 있지만 다르게 보면 조금은 저렴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다른 자기계발서보다 못하거나 내용을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도 흙수저의 사고 방식에서 벗어날 것을 이야기 하고 있기도 하다. 

부동산에 관한 노하우나 지식보다는 마인드를 강조하는 책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그 표현 방식이 중요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컨셉을 잘 잡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그런 표현 방식 자체가 거부감이 들기 때문에 맘에 들지 않는다. 내용이 잘못되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은 분명 다르다. 

 

이럴걸 어느정도 예상을 하고 선택을 하기도 했다. 자극적인 제목에 거부감이 들면서도 동시에 이끌려 이 책을 보게 된 것이기도 하다. 막장드라마에 끌리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까? 표현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참 많이 했는데 나처럼 거기에 민감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상관없을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그런 시스템을 만든 것이 저자도 아니고 씌운 것도 아니다. 그저 그것을 벗어나려고 했다는 것인데 벗어나려면 우선 들어가야 한다. 나는 표현 방식을 거부한 것이지 세상의 구조 자체를 부정한 것이 아니다. 내가 부정하든 말든 세상은 변함이 없다.

 

사회가 신분 상승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전제 자체가 진실일까? 

용납하지 않는 것은 실제로 누구일까. 그런 시스템을 진실로 받아들인 사람들 자체는 아닐까? 시스템이 마음에 안들면 시스템을 만들면 된다. 그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나는 남들이 말하는 정석 코스에 제대로 들어간적이 없다. 달리기 경주를 하려면 트렉에 올라서야 하는데 올라선 적도 없는것 같다. 시작도 하기 전에 이탈해 다른 길로 걸어왔던 것 같다. 그길이 평탄하지는 않았지만 생각해보면 그리 험하지만도 않았다. 오히려 편하게 방황을 했던것 같다. 아까운 것은 허비한 시간일 뿐이지만 그 허비한 시간을 아까워 하는 시간도 아까워질 것이기 때문에 그저 기억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 시간을 치열하게 보냈던 아니던 이미 지난 시간이고 되돌리고 싶은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람이 시대를 추억하는 것은 시대 자체가 아니라 젊음이기 때문이다. 

 

내 신념을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이지 이 책에서 얻을 것이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내 나름대로 이 책에서 이미 익히 알았던 조언들은 강화를 했고 몰랐던 사실도 알게 되었다. 

마음에 안들면서 동시에 보게 만들었던 컨셉이 어쨋는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지만 그저 여기에 대해서 이야기는 하고 싶었다. 자연스레 드는 생각이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억지로 막는 것보다는 이렇게 털어내버리는 것도 좋다고 생각하고 이 책이 그렇게 만들어준 계기가 되었다. 

YES 라고 말하는 것만이 긍정은 아니다. No라고 말하는 것도 무조건 부정이 아니다. 얻는 것이 있고 그게 나에게 도움이 된다면 긍정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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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살인 2 - 내 안의 살인 파트너
카르스텐 두세 지음, 전은경 옮김 / 세계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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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살인 1편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2권이 출간되길 기다렸다.

 

명상살인 씨리즈는 독일에서 3권까지 출간되었고, 모두 베스트 셀러에 올랐다고 한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작가의 첫 소설이라는 것이다.

독일에서 법학을 전공한 변호사이며 방송작가로 일한 경력도 있는 작가는 법률상식에 대한 책은 출간한적이 있지만 소설은 2019년에 출간한 명상살인이 처음이다.

 

개인적으론 결말을 포함한 스포일러에 대한 큰 거부감이 없다. 밤에 혼자 공포영화를 봐도 크게 지장이 없을 정도로 공포나 스릴러가 주는 충격에 무덤덤한 편이기도 하고, 결말보다는 과정을 더 중요시 하는 성향 때문이다. 식스센스 결말을 알고 보면 결말이 주는 충격은 없겠지만 결말을 모르고 봤을때 놓칠 수 있는 요소에 주목할 수 있는 재미도 있는 법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스포일러를 싫어하기 때문에 최대한 결말이나 중요한 요소를 기재하지 않는 편이지만, 2편의 서평이라는 특성상 1편의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밖에 없으므로, 1편을 읽지 않은 사람은 주의를 요한다. 뭐 1편을 읽지 않은 사람이 2편의 서평을 읽을 가능성은 크지 않겠지만.

 

변호를 맡았던 조직의 보스를 포함 4명을 살인하고 1명은 지하에 가두고 있는 주인공 비요른은 6개월 동안 살인을 하지 않고 자기의 고객이자 자신이 살해한 보스의 대리인으로서 조직을 실질적으로 이끌어나가고 있다. 조직원들은 보스가 죽었다는 것을 여전히 모른다.

 

부인과 딸을 데리고 알프스 산맥으로 여행을 다녀온 직후 주인공은 다시 자신의 명상선생인 요쉬카 브라이트너를 찾게 된다. 명상을 통해 마음을 진정시키는 방법을 찾았지만, 산장에서 생겼던, 통제가 되지 않던 분노의 원인을 찾고 싶었던 것이었다.

 

명상선생은 마치 정신과 의사처럼 주인공의 심리를 꿰뚫고 조언을 하며 '내면아이' 에 대해서 이야기 해준다.

심리학 서적 꽤나 읽어 봤던 독자들이라면 이 용어를 들어 봤을 것이다. 이 내면아이에 대한 명상선생의 비유가 참 탁월해서 소개해본다.

 

내 호기심이 깨어났다. "제 내면아이가 누군가요?"

브라이트너 씨는 비유로 대답했다. "허벅지에 퍼런 멍이 있다면 잀아생활에 방해가 될까요?"

"아닙니다."

"누군가 그 멍을 누른다면?"

"무척아프죠"

"그렇죠. 내면아이도 마찬가지 입니다. 당신의 내면아이에게는 심리적인 멍이 있어요."

(중략)

"내면아이는 깊은 심리적 과정을 설명하는 비유적 용어입니다.

당신의 내면아이는 아주 이른 유년 시절의 심리적 부상들이 저장된 무의식의 일부죠.

이런 부상의 결과가 퍼런 멍이라고 상상해보세요. 오래된 이 상처들은 평소에는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습니다.

상처 입은 아이가 당신 내면에 존재한다는 사실도 모르죠. 하지만 누군가 이 멍을 건드리면 내면아이는 아주 큰 통증을 느낍니다. 당신은 내면아이를 전혀 모르기 때문에 고함소리를 들을 뿐, 누가 그렇게 소리치는지는 알지 못하는 거죠."

(중략)

잠"재 의식은 내면아이가 왜 분노하는지 알지만 의식은 모릅니다. 의식은 이 연관성을 이미 오래전에 밀어냈으니까요. 그래서 사실 매우 당연한 잠재의식의 행위에 의식이 당황한 겁니다."

64~67p 중 -

 

1편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명상선생의 조언은 우리가 실제로 읽는 명상 관련 서적처럼 좋은 조언을 가득 담고 있다. 내면아이에 대한 설명도 실제로 사람들이 나도 모를 내 과민반응이나 분노에 대한 원인을 찾는데 도움이 될만한 조언이라 여겨진다.

서적을 읽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 책이 범죄소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명상에 문외한인 독자가 명상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주인공은 명상을 비틀어서 소화한다. 명상을 자기 행동의 이유를 정당화 시키는 도구로 전락시키는 해석을 한 것이다. 명상이 문제가 아니라 주인공의 해석방식이 문제인 것이다. 같은 경험을 해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다르게 작용한다. 실패가 성공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 그저 좌절이 되기도 한다.

주인공은 주로 자기 합리화에 명상 기술을 사용한다. 독자는 이러한 주인공의 태도에 실소를 하게 되고, 풍자와 아이러니를 느낄 수 있는데 이 점이 이 책의 가장 흥미로운 점이 아닐까 싶다.

 

우리도 일상에서 정보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참 많다.

똑같은 영화를 봤을때도 각자의 경험현실이나 감정 상태, 사고방식이나 가치관에 따라서 다르게 소화가 된다. 천만영화라도 나에겐 쓰레기 같은 영화일 수 있다. 나도 천만 관객이 들었던 어떤 영화를 보고 '왜 이런 유치한 감성팔이 영화를 천만명이나 본거지?' 라는 생각이 든적이 있다.

 

이 자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항상 극단적인 것이 문제가 된다. 판단력이 어딘가 결여된, 싸이코패스성향의 주인공은 명상을 통해서 죄책감을 덜어내고 흑백논리를 펼쳐낸다.

현실에서도 모아니면 도 식의 흑백논리는 위험하다. 인터넷 덧글 등에서 많이 보이는, 주제를 벗어난 비방과 추측, 편향적 주장과 고집, 미신적 믿음 등이 뒤섞인 흑백논리의 싸움은 사람을 굉장히 유치하고 단순하고 때로는 위험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런 요소들에 대한 위험성을 주인공이 아주 극단적으로 잘 풍자했다고 생각된다.

 

풍자가 가득한 이 소설은 민감한 주제인 인종문제, 남녀 평등에 대해서도 간접적으로 언급을 한다. 그 모순을 지적하는데 이부분이 참 통쾌하기 까지 하다. 그렇다고 흑백논리로 받아들여 그런 문제들에 반대한다고 보면 안된다. 내가 볼 때는 작가는 회색지대에 속하고 있다. 진정한 평등은 소외받던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는게 아니라 소외받던 사람도 혜택받던 사람도 공평하게 적용해야 한다. 소외자와 혜택자가 바뀌면 또 다시 기득권을 형성하게 되고 어리석음을 반복하게 된다. 불평등을 헤체시키는 것은 평등이지 또다른 이권의 반복은 다른 형태의 불평등을 낳는다는 것을 소설속에서 잘 풍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겉으로는 환경을 보호하자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자신들의 이권만 생각하는 사람들의 심리도 이 풍자속에 들어있다. 물론 환경 보호는 중요하다. 무슨 대단한 이상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 그래야 함을 우리는 코로나 시대를 통해 어느정도 배웠을 것이다.

유명인에게는 인성에 대해서 비난하지만 자신들은 담배 꽁초를 길에 버리고 쓰레기를 무단 투기 한다. 자신들이 하는 것은 사소한 것이고 남이 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런 크기를 재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야 말로 오만이다


 

"의식된 스트레스는 명상으로 제거했지만, 내면 아이와 그 아이의 스트레스는 잠재의식에 그대로 남았습니다"

우리도 각자 내면에 내면아이를 키우고 있다.

이유를 알수 없는 괴로움이나 흥분, 분노 등은 실제로 유년 시절의 상처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다루냐는 거다. 내면아이의 고통을 알아차리고, 치유하고, 성장의 동력으로 삼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주인공처럼 현실도피나 핑계, 합리화의 도구로 삼을 수도 있다.

 

과거의 상처나 트라우마, 내면아이 등을 인식하고 달래고 치유하는 것도 좋지만, 여기에 핑계를 대서는 안된다. 내면에 아이가 잠자고 있다고 해도 어쨌든 성인이면 자신이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 내면아이를 잘 달래고 키워나가야지 거기에 사로잡히면 어른이 아니라 그저 늙은 어린아이가 된다. 겉모습만 늙었다고 어른일까? 진정한 어른은 나이만 먹는다고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이가 들수록 더 깨닫게 된다.

과거 때문에 현재와 미래를 더이상 망치지 않기 위해서 그것들을 달래고 치유해야 하는 것이 목적이지 현실을 도피하거나 변명거리나 합리화의 도구로 삼아서는 발전이 없다. 위로도 좋지만 때로는 스스로 채찍질도 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무엇이든 극단적이지 않고 적절하게 조절하여 흑백이 아닌 회색지대에 머무르는 것이 대부분 현명한 선택이 된다.

 

 

별 생각 없어 보이는 사람들도 알고보면 내 생각보다 굉장히 똑똑한 경우가 많다.

그저 드러나는 단면만 보고 쉽게 판단하거나 비난하는 것은 오히려 그 사람 자신의 어리석음일 수 있고, 타인에 대한 미움과 증오는 자기 혐오에서 기인한 것일 수도 있다. 그 인과관계를 잘 파악하는 것이 좋겠지만 정확하게 알아내지 못한다고 해도 문제가 된다는 것만 알아도 극단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똑똑한 사람도 어떤 생각에 너무 빠지거나 잘못된 가치관 등에 사로잡히면 어리석은 행동을 하기도 한다.

이런 인간의 심리에 대한 포인트를 굉장히 잘 잡은게 이 소설이라고 생각 된다.

 

보통 전편보다 나은 속편은 없다고 말하지만 개인적으로는 2편도 1편 만큼이나 흥미로웠다. 1편을 재미있게 읽은 사람이라면 2편도 실망하지 않을것이다.

 

 

 

 

[네이버 문화충전200% 카페를 통해 책을 제공받은 뒤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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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마이셀프 - 나를 사랑하면 달라지는 것
멜라니 피그니터 지음, 임정희 옮김 / 일므디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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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비판은 성장의 디딤돌이 되기도 한다.

남들이 그럭저럭 칭찬해주는 부분이라도 거기에 우쭐하지 않고 더 나아가기 위해 자신은 아직 부족하다며 채찍질 할 때 쓸 수도 있다. 한국사회에서는 겸손이 미덕이며 자신이 책임을 자고 자신을 탓하는 풍조가 있는데 그것이 잘못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그렇지만 자기 비판은 자기 혐오로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

뭐든 도가 지나치면 탈이 나기마련인데, 문제는 그 경계가 참 애매하다는 것이다. 습관처럼 자기 자신에 대해 자조하고 탓하는 사람들은 속으로 자신을 탓하고 겉으론 남에게 비난을 퍼붓기도 한다.

비판은 좋지만 비난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은 자기혐오도 동시에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본다. 나도 그런 부류들 중 하나다. 그게 도움이 될 때도 많지만 방해가 될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삶이 회의적이고 짜릿한 자극 없이는 즐거움도 없고 담담하다.

이런 나도 어린아이였을 시절에는 작은 일에도 기뻐하고 신기해하고 행복해 했었을 것이다.

 

저자는 원인 모를 병에 걸려 엄청난 통증을 달고 살았다고 한다.

목디스크 때문에 고생했고 지금도 하고 있는 나는 저자만은 못하겠지만 그 아픔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저자도 자기 회의에 빠져있던 시절이 있었고 신체의 고통 때문에 절망할 때도 있었으나 그것을 자기애로 극복하고 상담 전문가로서 자신과 타인의 마음을 치유하는 일을 하고 있고 이렇게 책도 낸 것이다.

 

직접 경험한 사람의 이야기는 아무래도 더 진실되게 들리고 무시할 수가 없듯이 저자의 고통이 이 책에 설득력을 주고 현재의 직업에 도움이 된 것 같다. 저자의 말대불행에도 좋은 면이 있다는 것이다.

 

선생님이 심하게 꾸짖었던 경험은 저자에게 움츠리고 자기 회의를 습관이 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런 경험이 자기 신뢰에 대한 자세를 만들었다. 자기 신뢰가 지나친 사람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이다.

 

저자는 우리 삶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고정 관념이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해서 크게 3가지를 지적한다.

1. 유년시절에 형성된 한계

2. 학교에서 습득한 한계

3. 신념을 통해 굳어진 한계

 

이 3가지는 정말 공감이 되고 옳다고 여겨진다. 특히 가정과 학교에서 받은 영향이 큰것 같다.

 

요즘은 많이 나아진 것으로 보이지만 내 학창시절에는 교사들은 엄청난 체벌을 가했다.

잘못을 했을때 그 잘못에 대해서만 체벌을 하는 교사는 매가 매워도 견딜만했고, 감정적으로 처벌을 하는 교사의 매는 견디기가 참 힘들었다. 학생들이 모르는 것 같아도 다 느껴지는 것이다.

아무리 공부를 잘하는 모범생이라도 군부독재의 잔재가 남긴 문화인지 전체 기합을 받고 매를 맞았던 시절이었는데, 공부를 못하고 왠지 어른의 마음에 들지 않은 태도와 생김새를 학생은 거의 매일 화풀이의 대상으로 삼는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맞았다.

어른이 된 지금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한없이 어른처럼 보이고 옳아 보이던 교사들이 실은 어설픈 어른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당시 교사들은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을 주먹으로 구타하기도 했는데, 학생의 잘못을 떠나 정말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어른이 어린아이에게 주먹질을 가한단 말인가?

인격적으로 모독하는 말들도 많았다. 몸의 상처는 아물지만 마음의 상처는 십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억하심정 같은 앙금을 남긴것 같다. 너는 절대 안될거라는 저주에 가까운 말들도 100번 가까이 들어본 것 같다. 어떤 교사는 그걸 수업시간에 반 전체 아이들에게 감정적으로 쏟아내는 교사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교사들도 그저 특정 공간에 갖힌 직장인일 뿐이었던것 같다. 생각해보면 그들도 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와 사회경험도 별로 없고 학교 공부가 인생의 전부인줄 아는 것이다. 실적을 위해 부하들을 다그치는 상사처럼.

 

상위권의 아이들은 굳이 교사의 지도가 없어도 잘할 수 있다. 교사는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이끌어 주는 것이다. 공부를 가르쳐 준다는 개념은 지금 생각하면 맞지 않는다. 공부는 스스로 익혀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못한 아이들을 이끌어주는 것이 교사가 할 수 있는, 해야 하는 일이 아닐까.

 

 

 

책에서는 이런 자기비하 같은 머릿속 쓰레기들을 해결하고 피드백으로 받아들이는 방법을 중점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극복할 수 없어 보이는 한계를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까?"

나의 한계는 무엇인지를 점검하고 실수에 대한 두려움을 약화 시키고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다. 다른 사람은 한계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구체적으로 연구해본다.

 

자기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다고 한다. 그 원인에 대해서 부족한 인정과 존중, 자신에 대한 비현실적 요구, 다른 사람들과 끊임 없이 비교하는 습성,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타인과 비교를 할때는 주로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에 대한 비교가 많게 된다. 잘생기고 예쁜사람과의 외모 비교부터 재력, 학력 등의 온갖 콤플렉스를 유발하는 요소들은 세상에 넘치지만, 우리가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자신의 그런 점은 제쳐놓고 자신이 부족하다 생각하는 부분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좌절할 것이다.

 

타인에 의해 얻은 자신감은 큰 위력을 발휘하지만, 피드백이 사라지는 순간 무용지물이 되거나 좌절로 돌아온다. 한때의 영광을 잊지 못해 다른 사람은 모두 잊고 있는 자신의 영광을 수십년간 그리워 하며 사는 사람도 많다. 한때 반짝 스타였던 연예인들의 모습을 봐도 그래 보인다. 영광은 짧고 영광을 그리워 하는 기간이 훨씬 길다. 그런 사람은 자신감이 없는 사람일 수 있을것 같다. 그만큼 타인에게 얻은 자신감은 달콤하지만 허무하기도 한 것이다.

자신감에 대해서 내가 아는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자기비하가 버릇이던 어떤 사람이 있었다.

어릴적에는 빛나지 않았지만 십대 중후반에 들어설때부터 빛이 나기 시작해서 여러 여성들의 칭송을 받고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다. 가난한 환경에서 특출나지 않은 유년 시절을 보내고 성적도 좋지 않았기에 자기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소리를 듣고 자란 그는 자존감이 바닥이었는데, 여러 사람의 칭송을 받고 자신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자존감이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 칭송은 몇 년동안 꾸준했고 이제 그는 자존감을 넘어 거만함까지 지니게 되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외모가 점점 빛을 발하기 시작하자 그의 자존감은 다시 서서히 내려왔다.

그 영광의 시절을 잊지 못해 그보다 훨씬 긴 세월을 그 시대를 그리워하고 추억하는 것으로 보냈다.

 

이런 일화에서 볼 수 있듯이 타인에게 얻은, 이른바 근거 있는 자신감은 근거가 사라지면 소멸된다.

자신감이라는 것은 어찌보면 무슨 결과가 나기 전에 잘 할 수 있을거라는 마음이기 때문에 근거가 있을 수 없다. 그저 과거 경험이 근거가 되는데 그런 경험이 날때부터 쌓인 사람은 없다. 자신감이 과해도 문제가 되지만 건강한 자신감은 삶에서 아주 필요한 것이다.

물론 과도한 자신감은 금물이고 한국에서 과도한 자신감은 재수없음으로 비춰지기 때문에 내면에서 자신감을 가지고 말보다는 태도로 나타내는 것이 바람직 할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가진 사람을 보곤 하면 말하지 않아도 대단해 보이고 호감이 간다.




 

인간은 긍정보다는 부정을 하기가 쉽게 태어났다고 한다.

진화의 역사는 생존의 역사였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서 끝없이 상황을 의심하고 긴장해야 했을 것이다.

그런 점을 이겨냈기에 인간이 다른 생물보다 훨씬 진화할 수 있었지만 진화의 산물이라 할 수 있는 부정적 요소들도 많이 남겼다. 타고난 것을 이겨내려면 자꾸 되새기고 노력하는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런 쪽으로 부모가 유년시절에 바람직하게 자라도록 이끌어주면 좋으련만 부모들도 완벽한 부모는 없기도 하고 알지도 못해 그렇게 교육시키지도 못하고, 안다고 해도 쉽지 않다.

 

쉽지 않은 과정을 이겨내는 것은 인류가 겪은 진화 과정과도 닮아있는, 어렵지만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끝없이 되새기고 노력하고 습관으로 정착시킨다면 가능할것이고 그런 노력의 과정을 도와주는 것이 이 책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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