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열쇠 - 역사에서 지워진 신화적이고 종교적인 이야기
브라이언 무라레스쿠 지음, 박중서 옮김, 한동일 감수 / 흐름출판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독교계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집안의 자손으로 태어났다. 직계 선조께서 순교자 기념관과 사전에 주요 인물로서 등재되어있기도 한 나는 모태신앙인이라 할 수 있다. 어릴 때부터 교회 환경에서 살아왔고, 양가 친척 대부분이 기독교인이며, 목회자로 사는 친척들을 다 세기도 어려울 지경이다.

 

그러나 이제는 종교를 버렸다. 그런 혈연이나 환경 관계가 종교를 믿어야 되는 필연적인 이유라는 생각이 들지도 않았고, 여기에 다 설명하긴 어렵지만 수 많은 이유가 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인간에겐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생각과 개개인의 신념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맹신자의 신념 그 이상으로 신이 없다는 것을 믿는다. 무신론자는 종교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신이 없다는 것을 믿는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그렇다고 가족이나 주변인에게 배교를 권하지는 않는다.

물론 전도를 당할 일도 없다. 왠만한 목사와 논쟁을 해도 지지 않을 정도였으나 이젠 그게 무슨 의미냐 싶기도 하다.

종교인은 어차피 필수적으로 편향적이어야 하고, 나는 편향을 혐오하므로 논쟁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

 

게다가 종교에 대한 자유는 비종교인은 물론이요 종교인에게도 해당이 되야 한다. 나는 그 어떤 종교인도 간섭하거나 설득할 생각이 없다. 반대는 더더욱 없음은 물론이다.

 

 

편향적 주장에는 올바른 논리가 전개되기 어렵다. 과학은 진화론을 믿는 것이 아니라 증거로서 진화론이라는 것을 뒷받침할 뿐이다. 창조론의 증거가 더 많았다면 과학은 이미 창조론의 손을 들고 있을 것이다. 편향은 위험하다. 편향적인 근거를 말장난 등으로 합리화 하고 갖다 붙이면 말도 안되는 이론도 그럴듯하게 들린다. 사기꾼이나 사이비 종교 다단계의 말이 굉장히 일리 있게 들리는 것과 비슷하다 하겠다.

 

물고기의 태아와 인간의 태아는 초기에 그 모양이 거의 비슷하다고 한다. 시간이 가면서 태아가 변화되는 모습이 진화과정 그 자체를 보여준다는 한 과학자의 말도 있는데 상당히 일리가 있게 느꼈다.

 

 

종교는 인류의 생존에 아주 큰 역할을 했음은 분명하다.

고대에는 혈연관계가 없는 사람들을 하나로 웅집하게 만들어 생존률을 높여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에는 더이상 그러한 기능을 하지 않는다. 우리의 '투쟁도피반응'이 생존률을 높여주는 기제였으나 현대에는 더 이상 필요없는 부산물이 되어버렸듯이.

 

그렇다 해도 내 환경에 대한 영향을 종교에 대한 관심이 남아있다. 그래서 이런 책도 읽게 된 것이다.

 

 

현대 종교는 인간에게 어떤 기다림과 기대감, 희망을 줄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특정 종교로서의 종교가 아닌 학문적 관점에서 종교에 접근하고 있다.

 

종교인은 신에게 더욱 가까워지기 위한 노력을 해온 역사가 있다. 약물을 이용한 영적 체험이 그 중 하나인데, 델포이 신전의 무녀는 신과의 접점을 이루기 위해 화산에서 나오는 가스를 흡입하기도 했다. 기독교 행사에도 피에 비유하여 포도주를 마시기도 하는데, 정신적인 황홀경과도 관련이 있다고 저자는 이야기 한다.

이렇듯 인류가 약물을 통한 종교적 환각을 시도한 사례는 상당히 많이 있다. 이런 주제를 종교인들은 불편하게 생각하고 회피하려 들 것이다. 과거의 잘못들이나 종교계 소수의 만행들을 일부라며 회피하려 하듯이. 종교는 자기 비판의 기능이 매우 빈약한 것 같다.

 

 

흔히 영적 체험이라고 주장하는 사례들 중에서 사실은 가수면 상태에서의 체험이 대부분일 것이다. 가능성을 열어두는 성격상 전부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특히 가위에 눌린다하는 것이 그럴 것이다. 불안 상태에서 깨어있는 상태와 비슷한 뇌파를 보이는 렘수면(가수면) 상태에서의 체험일 수 있다. 나는 어릴때부터 가위에 눌리는 일이 자주 있었다. 지금은 거의 없는데 유년 시절에는 아주 빼빼 마른 아이여서 빈혈이 잦았고 잠이 깊이 들지 못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이런 현상이 가끔 있었는데 가수면 상태에서 의식과 꿈과 환상의 경계점이라고 할만한 상태에 이르게 되면 의식이 있으면서도 꿈을 꾸게 된다. 갓 20대 초반 시절에 게임을 하다가 늦게 자는 버릇이 있어 회사에 가면 늘 피곤했기에 점심이나 쉬는 시간에 살짝 일찍 가서 박스 창고에서 잠을 취했다. 그러나 그 창고를 관리하는 회사의 대리가 자주 나를 깨우고 혼을 내곤 했다. 그렇지만 잠을 포기 할 수 없는 나는 그래도 몰래 몰래 숨어들었는데, 가수면 상태에서 대리가 나를 깨우는 것을 생생하게 느껴서 깨어보면 아무도 없었다. 그런 상태에서는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을 보게 된다고 한다. 귀신 등을 두려워 하는 사람은 귀신 같은 형태의 환상이 생생하게 느껴질 수 도 있을 것이다.

 

이렇듯 종교인들이 불편해할 고대의 전통적 행위들을 이 책에서 지적하고 있다. 종교도 나름대로 근대화 과정을 거치고 현대에 적응을 한 상태지만 많은 부산물들을 어찌하지 못한다. 그런 과거 행위들을 청산하기 위한 행동 중 빠질 수 없는 하나가 바로 약물을 통한 영적 체험의 단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명문 프린스턴 신학대를 졸업한 바트 어만은 성경 왜곡의 역사라는 책을 통해서 성경이 어떤 오류가 있으며 시대에 따라 어떻게 합리화를 해왔는지를 지적한 바 있다.

성경은 결코 완벽하지 않다. 억지로 완벽하다고 해봤자 오류가 상당히 많다. 신약의 어떤 서에서는 동방박사가 등장하지만 다른 서에서는 전혀 언급조차 없는가 하면 예수 행적의 기록도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종교가 무조건 옳다고 고집만 부릴 것이 아니라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자기들 유리한 것은 인정하고 불리하다 싶으면 얼버무리는 식의 합리화는 시대가 지나면 지날수록 통하지 않을 것이고 먼 미래에는 흔적조차 없어질지도 모른다. 진정한 종교인이라면 이런 미래를 걱정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미지에 세계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고 신을 인정할 수는 없다. 모른다는 것은 말 그대로 아무것도 확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떤 것이 있다고 주장하는 순간 모른척을 할 수가 없는 속성이 된다는 것은 이해가 가긴 하지만. 반대로 신이 존재 하지 않는다고 확실히 말할 어떤 근거도 없다.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생각 되지만 아예 없다고 확정할 수는 없다.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온갖 여러가지 종교, 일신교만해도 여러 분파가 있고 서로 뿌리를 공유하면서 자기네들만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 또한 조금도 인정할 수 없다. 만의 하나 신이 있다면 현재 인간이 인식하고 상상할 수 있는 형태를 훨씬 벗어날것이라고 생각된다. 과거 우주를 관측하기 전에 우주에 대해서 생각한 것들이 실제와 전혀 달랐듯이.

 

신화나 종교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역사적인 배경이 많고 어려운 용어가 다소 있어 쉽지만은 않은 독서가 될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어와 한글로 읽는 교양 세계사
박찬영 외 지음 / 리베르스쿨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의 역사지식, 특히 세계사는 굉장히 단편적인 것들로 영화나 드라마, 문학, 서적등에서 생긴 것인데 정리가 안되어 있는 옷장처럼 어지럽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체계적인 정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세계사 서적의 필요성을 느꼈다.

 

이 책은 한권으로 세계사의 흐름을 잡아주는 책이다. 영어가 함께 수록되어있어 왼쪽에는 한글, 오른쪽에는 영어로 나와있다. 영한대역이라 할 수 있는데 영어실력이 미약하여 대역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어 한글로만 읽게 되었다. 좀 더 실력이 업그레이드 되면 영어로 꼭 다시 읽어보고 싶다.

 

 

사실 한 국가의 역사만 하더라도 굉장히 많은 분량이 된다. 역사적 사실만도 그렇고 그 사실에 대한 해석을 더하면 어마어마하게 길어진다. 그런데 세계사를 한 권에 읽을 수 있다는 것은 굉장히 무리수이기도 하나, 그동안 알게 모르게 알아왔던 지식들의 중심을 잡는데는 더할 나위없이 좋다. 상세한 컬러 사진과 함께 설명하는데, 생소한 문화는 기억에도 잘 안남고 어렵지만, 익숙한 문화권에 대한 부분은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반대로 중심을 먼저 잡고 그 중심에 단편조각들을 끼워 맞추는 것도 좋을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 소설등은 역사에 관심을 갖게 하기도 한다. 학교에서 역사를 배울때는 그저 이걸 왜 해야 되는지 모르겠고 지루하기만 한 암기과목이었다. 그러나 삼국지를 재미있고 보고 초한지와 수호지도 접하고 나니 춘추전국시대에 대한 언급이 많아 열국지나 사마천의 사기를 찾아보게 되고 그제서야 중국의 전체적인 역사에 호기심이 생겼다. 정사 삼국지와 연의 삼국지의 차이를 알게 되고 평전도 읽게 되며 서구권에 비해 익숙한 문화의 역사를 저절로 관심을 갖게 되었다. 물론 현재의 중국이라는 나라는 많이들 그렇듯이 반감이 먼저 드는 것도 사실이고 그것은 우리나라 역사에 관심을 더 갖게 만들었다.

 

그에 비해 세계사에 대한 지식은 굉장히 부족했다. 특히 그리스 로마 신화 및 그 시대의 역사는 우리와 별 관계도 없어 보이고 이해도 어려웠는데, 미드 로마와 스파르타쿠스를 재미있게 보니 관심이 생겼다. 역사를 좋아해 역사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를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난 반대의 코스를 밟아온 것이다. 반대로 아직 역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중심을 잡아주는 이런 책을 읽고 나서 역사관련 컨텐츠를 즐기는 것도 좋은 방법인것 같다.

 

역사는 이미 지나간 과거이고 과거는 변동이 없지만 역사에 대한 시각은 해석자와 해석한 시대 등에 따라 변모한다. 루시가 인류 최초의 어머니로 알려져 있고 내용은 다르지만 그 상징성이 영화 제목으로도 쓰였으나, 그보다 440만 년 더 전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아르디에게 밀려났다.

 

역사는 기록이나 유적과 지질학등으로 예측할 수 밖에 없으니 진짜 역사는 어땠는지 정확하게 알 수도 없다. 그렇다고 마음대로 상상해낼 수는 없기 때문에 새로운 학설이 나오면 기존의 사관을 뒤집어버릴 수 있다. 그래서 과거는 변동이 없지만 역사는 시대에 따라 변모하는 것이다. 반대로 과학도 그러한데, 사람들은 역사는 근거대로 기록을 하면서 종교나 신화 등의 정확하지 않은 전통적 믿음에 대해서는 과학을 무시할 정도로 신념을 유지하는 경우를 보인다.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은 항해 실수로 콜럼버스는 죽을때까지 그곳이 인도였다고 알고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 미국이라는 강대국을 중심으로 아메리카 대륙에 형성되어있는 나라들은 콜럼버스를 선구자로 만들어야 그들의 현재 명분을 강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콜럼버스는 자기 뜻과는 상관없이 반드시 위인이 되어야 했을 것이다.

 

중국 한나라의 고조 유방도 굉장한 인물이 되어야 했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운이 좋은 것이라고 하겠다. 춘추 전국시대에는 경쟁자가 많았기 때문에 오기를 비롯 손자병법의 손무 등의 걸출한 인재를 보유한 나라들도 자기 세력을 크게 확장시키지 못했는데, 진시황이라는 폭군이 이루어 놓은 통일과 이어진 분열로 인해 많은 경쟁자를 둘 필요가 없었던 유방은 경쟁자의 오만과 자멸에 가까운 몰락, 부하들의 걸출한 능력 등에 힘입어 두번째로 중국을 통일하고 중국인들이 사랑하는 한황조를 이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개인 능력으로 봤을 때는 그렇게 대단한 인물은 아닐것이다.

 



 

 

서구가 아닌 국가들조차도 익숙할 정도로 서구 중심의 세계사관은 익숙한데 짧은 분량이다보니 역사적 사실 위주로 기록되어있기 때문에 딱딱하면서도 균형이 잡혀 있는 느낌이 들었다. 저자의 말대로 이제는 각국의 역사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서구의 양식이나 문화, 경제 등의 문명이 현대의 세계에 여기저기 많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에 서구의 중심 세계관이 있어왔겠지만 다른 나라들의 역할도 알게 모르게 중요했을 것이다. 좀 더 균형잡힌 세계관이 필요할 것이다. 저자들이 한국사람이어서 그런지 이해도 잘 되고 비슷하면서도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영어와 함께 볼 수 있어서 여러모로 쓸모가 많은 좋은 책인것 같다. 다른 시리즈도 나온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신의 역사 - 비너스, 미와 사랑 그리고 욕망으로 세상을 지배하다
베터니 휴즈 지음, 성소희 옮김 / 미래의창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구권의 역사를 보면 그리스로마 신화와 크리스찬을 빼놓을 수 없다. 그 중심에는 로마가 있다.

특히 그리스 로마 신화는 역사가 아니더라도 심리학, 문학 과학 등에도 자주 인용되기 때문에 대략이라도 알아둘 필요가 있는데, 그리스 로마신화를 보면 여신의 활약이 돋보인다. 남성 중심의 신화나 역사에서 벗어나 여신을 중심으로 역사를 보는 것은 같은 역사라도 색다른 재미를 주는 것 같다.

 

아프로디테라고도 부르는 비너스는 여신의 대표주자이자 상징과도 같다. 실제 인물 중 가장 유명한 축에 속하는 클레오파트라도 여신인 아프로디테의 이미지를 많이 활용하며 자신을 아프로디테처럼 꾸미기도 했다. 여신을 이용한 이미지 마케팅으로 국민들을 통치할 수 있는 영향력을 넓히려 했다 할 수 있겠다.

원래 여신 이시스를 숭상하던 이집트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영향으로 점점 아프로디테를 닮아갔다고 한다. 알렉산드리아의 부유한 집안에는 딸을 시집보낼때 아프로디테 조각상을 지참금에 포함시킬정도로 당시 사람들에게 아프로디테라는 존재의 영향력은 대단했다고 한다.


 

아프로디테가 여신의 대표적인 상징이라면, 여신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약 5천년 전에 발견된 '렘바의 여인상' 이라고 한다. 그것의 영향을 많이 받아 비너스가 탄생을 했을텐데, 시대에 따라 신화는 변형이 되었고 그 상징도 조금씩 변한 것 같다. 여성과 남성의 상징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던, 전쟁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물리적 전쟁의 영향으로 남성의 권력이 강해지면서 여신의 역할도 테스토스테론을 잃어갔던 것이다.

 

왜냐하면 신이 인간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창조한 것이고, 인간의 역사와 시대의 흐름과 국가에 따라서 변화한 것이다.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를 보면 조상인 쿤타킨테 부족은 알라신을 믿는다.

더 오래전에 중동에서 아프리카 지역으로 전파되었기 때문인데, 본래의 이슬람과는 아주 다른, 토테미즘이 혼합된 알라신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알라신과 원류가 같은 유대교나 기독교와도 아주 다르다. 또한 국내에 들어와있는 예수교단과 미국이나 유럽의 교단의 분위기는 또 다르다. 이슬람과 유대교, 크리스찬(천주교와 기독교)의 일신교도들은 서로 자신들의 신만 인정을 하는데, 원류는 같다. 한국에서야 하나님으로 번역되었지만 고조선의 하느님을 조금 변형한 역어에 불과하고 영어로는 그저 GOD 라 부른다. 알라신이라는 뜻도 번역을 하면 그냥 '신' 이다. 그저 신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단순하다. 신은 하나뿐이기 때문에 이름을 붙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신은 시대와 국가와 교단과 분파에 따라서 다르다. 똑같은 원류에서 나왔다고 하지만 다 다르며 각자 서로를 이단이라고 생각한다.

 

이렇듯 신과 종교는 시대와 국가에 따라 변화되는 속성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여신도 마찬가지로 역사속에서 변화되어왔는데 그 과정을 이 책에서 상세하게 잘 담고 있다.

여신의 모습은 때로는 창녀로 변모하기까지 한다. 아프로디테신전 부근에서는 마치 현대의 워킹스트리트 처럼 매춘부들이 몸을 파늕 장소로 이용되기도 했다. 로마 초기의 문인 엔니우스의 글에 따르면 원래 매춘을 처음 고안해낸 여성이 비너스였으나 나중에 여신으로 숭배받게 되었다고 말한다. 매춘부들은 비너스를 숭상하며 조각상 등을 몸에 지니고 다니기도 했다. 비너스의 이미지는 억압받는 여성들의 희망이자 상징이기도 했다. 전쟁의 여신이었다가 창녀였다가 사랑의 상징이었다가 여성미라는 고정적인 관념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현대에서는 전능한 신에서 흥행보증수표로 전락했다. 남성의 시선을 자극하는데 이용되거나 오리엔탈리즘을 바탕으로 한 식민지배를 조장하는 대상으로 이용당하기도 했고, 그저 장식모양의 하나로 활용되기도 하며 여성의 권력과 지위의 상징에서 압제와 억압의 상징으로 전락했다.

 

우리가 여신의 역사에서 읽어낼 수 있는 것은 역사속 여성의 인권이기도 하다. 비교적 평등한 사회가 되었지만 아직도 여성의 인권은 특히 동남아시아 등지에서는 열악하기 그지 없다. 한국에서도 부분적으로 여성의 힘이 더 크고 남성은 위축되었다는 이미지가 있기도 하다. 데이트 비용을 전부 부담하고 결혼할 때 집을 마련해야 하고 군대에 가서 지켜야 하는 것은 남성이다. 그러나 아직도 여러 부분에서 여성의 인권이 박약하다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여성의 권리는 여성을 위한 것이 아닌 평등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하는데 때로는 이기적으로 변모하는 모습을 볼 때이다. 여성의 인권이 올라간다고 남성이 떨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 반대가 되어서도 더더욱 안된다. 진정한 평등을 위해서 싸워야 더 설득력도 있고 현실에서 변화된 인식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특히 한국에서는 어린이의 인권이라는게 없다. 아동은 그저 어리고 어른의 말대로 따라야 하는 존재다. 그러나 그 어른들도 어린이었다. 올챙이 시절을 벗어나자 마자 올챙이를 경시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어린이도 하나의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과 보호를 받는 날이 오길 바란다. 그런 날에는 당연히 여성의 인권도 존중될 것이다. 인권이란 여성이라는 특정 대상을 위한게 아니라 가장 약한자의 편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위대한 패배자들 - 인생의 성패를 떠나 최선을 다해 경주한 삶에 대하여
유필화 지음 / 흐름출판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역사속의 인물들을 현대의 관점에서 보는 것은 현생을 사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것일 게다. 눈에 띄는 성과를 이룬 영웅들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그들의 정의감, 성공원인, 인물됨 등을 배우고자 할 것이다.

그런데 역사의 패배자들은 어떨까? 패배자들은 우리에게 그저 반면교사의 본보기일 뿐인것일까.

 

역사는 승자의 위주로 기록이 되기 때문에 그저 과거 사람들은 과거일 뿐이다. 죽은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이 남았는지 아닌지에 신경 쓸수가 없다. 수상자가 존재하지 않는 트로피는 수여자에게 의미가 있을 것이다. 역사도 그렇고 종교도 그렇고 살아남은 것들만 기억되는 것이다. 어쨌든 현대가 평가하는 기준에서의 승자와 패자를 보게 되겠지만.

 

승자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운의 혜택을 받은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항우와 유방의 항쟁시대에 한 경쟁자만 제거되면 통일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다. 진시황이 이미 통일을 해놨기 때문에 혜택을 본 것이라 할 수 있다. 승리자 유방은 한고조로 칭해지며 대대로 후세의 존경을 받았지만 사실 일은 한신과 장량이 거의 다 하고 한신은 죽임까지 당했다. 유방의 실력으로만 승자가 되었다고 할 수 없다.

삼국지의 조조가 뛰어난 인물이지만 생전에 통일을 이루지 못한 이유는 강한 경쟁자가 둘이 있었기 때문이고, 손자병법을 남긴 손무의 나라가 크게 세력이 없었던 이유는 경쟁자가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그저 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패배자들은 나름 성공적인 성과를 거둔 인물들이나 결과가 좋지 않은 인물들이기도 하다.

악비 같은 경우에는 큰 공을 세우고 외적을 막았지만 상사와 적을 잘못 만난 운이 나빴다. 물론 저자의 해석대로 처세술이 좀 더 유연했다면 살아남았을지 모를것이다. 후대 사람들에게는 억울한 죽음으로 더 영웅이 되었겠지만 본인에게는 그저 생명의 단축이다. 악비가 악비 답지 않았다면 그런 성과를 남기고 이름을 남길 수가 없었을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현대의 기준으로 보면 저자가 옳다. 역사는 현대의 기준으로 해석될 때 의미가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니까.

현대에는 악비같은 인물이 더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 아닐까.

 

이 책에선 테미스토클레스, 고르바초프, 주원장등의 인물과 우리나라의 이순신 장군등의 역사인물들의 전략을 분석하며 승패의 요인을 현대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중점적으로 다루는 인물들은 물론 테미스토클레스, 악비, 트로츠키, 롬멜장군, 고르바초프, 리지웨이, 주원장, 한무제의 8인이다.

 

그 중에 맥아더장군의 명성에 가려져 우리가 잘 몰랐던 미육군 참모차장 '매슈유 리지웨이'는 우리에게 큰 의미가 있는 인물이다. 중공군의 가세로 위기에 처한 남한을 위기에서 구했다고도 할만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당시 중공군에게 크게 밀리고 있는 상황에 미국인들의 절반이상이 원자탄을 쏘기를 바라며 개입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내 생각엔 소련과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지리적 위치로 한반도 만큼 좋은 곳이 없기 때문에, 미국은 쉽게 남한을 포기하지 않았을 것같다. 국가간에는 감정만으로 개입이 되지는 않는다. 명분이라는 내세움 뒤에는 이권이 반드시라 할 정도로 개입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의 여론이 그랬다는 것이다. 물론 남한이라는 교두보가 없어도 미국의 국력이 크게 쇄퇴하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거점이라는 것이 전쟁에서 상당히 중요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냉전시대 전 한반도의 공산화는 후에 베트남의 공산화와 마찬가지로 견재할 필요성이 있었던 것이다. 베트남은 물론 전쟁을 포기 했기 때문에 미국의 패배라고 표면적으로는 말하지만 종전 후 경제 봉쇄정책으로 베트남은 사실상 미국에 백기를 들었다고 봐야 한다.

 

아무튼 당시의 전력은 중공군에 서울을 빼앗기고 크게 밀리고 있었지만, 리지웨이는 침착하고 정확한 분석을 바탕으로 승산이 있다고 판단을 했다. 적의 허실을 알아차리고 반격에 성공한다. 약 100일 동안에 이루어낸 성과는 공산군의 공세를 저지하고 서울을 재탈환하였으며 침략군을 격멸하고 적군을 38선 이북으로 이동시켰다.

 

 

 

사실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을 패배자로 정의 하기엔 무리가 있다. 이들이 패배자면 그 당시의 99.99999 프로의 사람은 모두 패배자란 이야기니까 말이 안된다. 0.000001 프로만 승자가 되는 게임이란 것이 된다. 결과적으로 실패한 제갈량을 패배자라고 할 수는 없다. 과장된 측면이 있긴 하지만 현대인들에게도 의미 있는 인물이고 열악한? 환경에서 좋은 성과를 유지한 인물이니까. 그런 논리라면 위나라를 세운 조조도 통일을 하지 못했으니 패배자가 된다. 죽고 나서 남좋은 일만 한 인물이 되버리니까. 특히 리지웨이 장군같은 경우에는 패자가 아닌 승자다. 다만 기억되지 못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승리는 승리 자체가 아니라 기억에 남는 것이라는 말인가? 기억에 남지 못하면 패배자일까? 그게 이 세상에 없는 당사자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저자도 그것을 모를리 없지만 그저 상징적 의미나 재미의 측면에서 혹은 자극적 의미에서 '패배자들'이라는 말을 썼을 것이다. 그저 주제를 부각시키기 위한 장치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이 책에 패배자란 없다. 그저 한 두가지의 단점이 있었던 인물일 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한고조 유방도 마찬가지다. 천하통일의 공신들을 토사구팽한것만 봐도 양심이 없고 잔인한 인물이라고 평가해도 무리가 없지 않을까. 그저 지금의 측면에서 그들의 단점과 실패 원인을 분석하고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맞춤형 해석일 뿐이다. 다시 말하면 역사는 저자가 나타내고자 하는 '주제'를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이고 그것은 '유연성' 에 있다고 보여진다.

 

그렇듯 중요한 것은 역사를 통해 현대의 가치를 찾아내는 것이다. 과거 주가폭락 사태에서 현재의 흐름을 예측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듯이.

정확하게 따지고 들면 한고조 유방이라는 인물은 그저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사람을 다스리는 매력과 능력이 출중했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경쟁세력이 단 하나이고 그마저 부하말을 듣지 않는 힘만 센 인물이었다는 것이 제일 중요한 핵심일 것이다.

승리자든 패배자든 승패로 따지는 것은 이렇듯 결과론적 이야기일 뿐이다. 오늘 폭등한 주식을 생각도 못했으면서, 아니 생각을 했다 해도 안샀으면서 어제 살걸 이라고 하는 아무 의미 없는 후회처럼.

로또당첨번호를 알고 나서 알지도 못했으면서 그 번호를 기재할껄 이라는 후회의 속성과 별 다를게 없는 것이다.

여기서 함정은 주식은 로또처럼 예측의 범위가 복잡하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다. 오르거나 내리거나 변동없거나 셋중의 하나니까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저 50% 확률인것 마냥 생각해버리는 거다. 그런 식이면 인생이 성공이냐 실패냐도 가만히 있어도 운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생각하고 아무것도 안하는게 낫지 않을까. 운좋게 하늘에서 돈벼락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식의 행운을 기대하면서.

짐승은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말처럼 과거의 성공적인 결과를 빚은 인물들은 현대의 사람들에게 거론되고 있다. 사람들은 그들을 승리자라고 하는데, 위의 격언처럼 이름을 남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름없이 죽어간 사람이나, 명성을 날리며 죽은 사람이나 자신의 이름이 기억되는지 아닌지는 본인에겐 아무 의미가 없다. 본인은 그저 죽을 뿐이니까. 그들이 남긴 이름은 그들의 것이 아니라 후대사람들의 것이나 다름없다. 죽으면 내가 거론되는지 아닌지도 모를테니까. 안다면 그것은 죽음이 아닐것이다. 죽으면 썩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사후세계란건 그저 감정적으로 바라는 원시적인 마음이 구체적인 상상을 통해 사후세계를 만들어낸 것이고 그것이 전해 내려온 것뿐 아무 근거가 없다. 있다고 쳐도 그 근원은 어디서 온단말인가? 죽어간 사람들을 모두 합치면 현생의 인구보다 훨씬 많을 터인데 어디에서 왔고 어느 공간에 수용한단 말인가. 여기에 대한건 아무것도 밝혀진 것이 없다. 밝혀지지 않는 것을 그대로 믿는다는 것은 내뇌망상을 그대로 믿는것과 별 다를바 없다. 둘다 어차피 밝혀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도 없고 있을리도 없지만 사후의 세계가 있다고 해도 과거의 삶을 잊고 살지 않을까. 환생을 했다해도 마찬가지일것 같다. 새로 태어나면 새로운 사람인것이고 내가 모르는 나, 전생의 삶을 현생에 감당하게 하는 것은 연좌제나 마찬가지다.

 

하다보니 1등이 된 것과 1등을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한 것 중에 어떤 삶이 좋을까?

남들을 이기기 위해서 산 삶과 나를 위해서 산 삶은? 이름을 남긴 사람과 잊혀진 사람 중 누가 (남들에게 말고) 본인에게 의미있는 삶이라 할 수 있을까?

 

정답은 답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거나 규범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 한도내에서 자유롭게 살면 되는 것이다. 답이 없는 문제를 답이라며 거기에 따르는 것도 물론 좋다. 다만 나 아닌 타인을 그런 규범의 범주안에 넣고 보지 말것이며,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으면 된다는걸 잊지 말아야 한다. 그저 사는 동안 살아있는 사람들끼리 조화롭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역사인물들의 에피소드를 통해서 현대의 처세를 생각해볼 수 있게 구성된 책이었다. 교양지식은 물론 역사 공부까지 되며 재미가지 얻을 수 있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면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