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고유한 나를 만나다 - 나에게 질문하는 순간 관계가 풀리는 ‘자아 리셋’ 심리학 내 인생에 지혜를 더하는 시간, 인생명강 시리즈 8
김석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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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는 나는 어떤 존재인가?

나로 살아가면서 당연히 나이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생각은 해보지 않게 되는 것 같다.

나는 그냥 나이고, 세상은 나의 눈으로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내가 없으면 내가 인식하고 있는 세상도 없다. 없다기 보단 나는 모른다는 게 맞겠지만 그래도 세상은 돌아갈 것이다.

 

자신에 대한 고민을 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게 내 자체라기 보다는 직업적 방향에 관계된 것일 거다. 직업적이라는 것은 무엇을 할것인가, 무엇을 해서 먹고 살 것인가 이다. 그것만으로도 머리가 복잡하기 때문에 다른 생각은 하기가 힘들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자아리셋'을 주제로 이야기 한다. 자아리셋이란 자신의 자아에 대해서 새롭게 생각해보자는 취지이다. 추상적인 자아를 물리적으로 리셋해버리는 버튼같은 것은 없지만, 삶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면서 새로운 방향으로 바라볼 수 있다. 극단적인 예이지만 시한부 판정을 받았던 사람이 계속 살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때 보는 세상은 달라질 것이다.

 

 

내 무의식의 주체는 누구인가?

무의식의 주체가 될 수 있기는 한간? 의식의 주체도 나라고 할 수 있을까? 복잡한 생각이 드는 가운데 읽어나갔다.

우리는 노예가 아니지만 우리의 삶은 그다지 자유롭지 않을지 모르겠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협력해서 살아남은 존재이기 때문에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고 그게 인간의 큰 능력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다보면 환경에 의해, 상황에 의해, 혹은 우연에 의해 되는대로 직업을 선택하고 살아가기 마련이다. 그저 남들도 그렇게 살아가기 때문에 그럭저럭 견디면서 살아가긴 하지만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괴로움 또한 부정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다보면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기 일수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환경이 변하기를 기대하기도 한다. 복권이 당첨되는 등 큰 돈이 생기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환경이 행복을 보장해주지는 못할지도 모른다. 반대로 환경이 더 좋지 않다면 아주 불행할거라 생각하지만 막상 그렇게 사는 나라의 사람들을 보면 또 그렇지도 않다. 조사에 의하면 돈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이 없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의 금액 이상이 되면 행복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물질이 우리를 채워줄거라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정신적인 것들이 우리를 채워주는 요인일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삶에 철학이 필요할지 모른다.

 

불안은 왜 생기는 것일까? 인류의 선조들은 외부의 물리적 위협에 대비해 항상 긴장을 해야 했다고 한다. 투쟁 도피 반응이 생존에 아주 중요한 요소였으나 현대에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럼에도 그런 진화의 부산물들이 현대인에게도 타고 난다. 사회적 요인에 의해서 더해지기도 할 것이다.

 

세상은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일반화 과정이 필요하다.

세상에 완전히 똑같은 사과는 없지만 우리는 사과의 모양과 냄새, 감촉 등으로 다른 사과가 사과라는 것을 안다. 그런 일반화 과정은 살아가는데 있어서 꼭 필요한 기능이지만, 때로는 그런 일반화 과정이 올바른 판단을 방해하기도 한다.

특정 사람에 대한 상처가 있는 사람은 처음보는 사람도 경계를 하게 되는 식이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 사람에게 타인이란 사과같이 일반화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런 극단적인 사례가 아니더라도 곰곰히 생각해보면 우리는 누구나 이런 일반화의 오류를 저지르곤 한다. 일반화의 오류에 대해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그러하다.

 

어쩌면 세상을 어떻게 본다는 자체가 어리석은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공부를 하고 깨닫고 세상을 어떤 관점으로 본다고 해서 세상 자체가 그렇게 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내 관점이 바뀌었을 뿐이다.

그렇지만 이게 되게 중요한 것 같다. 어쩌면 어떤 관점으로 세상을 볼것인가를 고민하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이 철학은 아닌지 감히 생각해보게 된다. 인간의 인지능력은 모든 사물을 인지할 수 없도록 설계되어있다. 길을 걸으며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을 인지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듯이.

 

개인적으로 그런 관점의 리셋이 필요한 시기가 요즘 시기인 것 같다.

인간이라는 종의 하나인 나 자신을 잘 들여다보는 것이 곧 세상이라는 넓고도 복잡한 창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시도가 아닐까?

내 관점을 고민하고, 다른 사람의 관점을 존중하고 받아들이며, 좀 더 나은 내가 되도록 관점을 계속 업데이트 해야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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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를 권하다 -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당신에게 내 인생에 지혜를 더하는 시간, 인생명강 시리즈 5
이진우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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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즐겨보던 프로그램인 '코미디 빅리그' 에서 '개인주의' 라는 이름의 코너를 방영한 적이 있다.

인물들은 각자 스마트폰만 쳐다보면서 화합하지 못하고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웃음과 공감을 자아내는 프로그램이었다. 꽤 재밌게 보긴 했으나 제목이 '이기주의'가 아닌 '개인주의' 라는 것이 의아했던 기억이 난다.

 

아직도 인터넷에 '코미디 빅리그 개인주의' 를 검색해 보면 -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상황만 생각하는 개인주의 사회를 풍자한 코너 - 라고 설명이 되어있다. 물론 개그프로지만 우리 한국인의 개인주의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전체주의 사회는 아니지만 다수결의 힘, 그러니까 보편적인 것들을 소수가 따라야 한다는 인식이 매우 강한 나라인것 같다.

물론 그것을 따라야 하는 상황은 존재하지만 문제는 개인적인 부분에서도 암묵적인 강요를 서로 받고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한국인의 성향이기도 하지만 본성이 아닌 학습된 성향일 것이다.

군부 시절에 복종과 상명하복이 원칙인 시대의 영향과, 그때의 기억이 좋았던 혹은 그때의 젊음이 그립던 사람들에 의해 포장되고 미화된 유령이 현재를 야금야금 씹어먹는다는 생각을 한적이 있다. 물론 당시에 개발도상국으로서의 업적이나 장점은 폄하할 생각이 전혀 없다. 우리는 현재의 개발도상국들보다 훨씬 훌륭하게 그 시절을 지나왔다.

하지만 시대가 다른 것은 엄연하다. 우리가 베트남 같은 개발도상국이 아닌 이상 그때의 시대의 법칙을 지금 적용할 수는 없다.

긍정적인 개인주의는 자기애와도 같다.

자신을 버리지 않고 얼마든지 남을 위할 수 있다.

아니 오히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남도 챙기는 법이다.

우리는 어쩌면 이기주의라는 지탄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서 너무 노력하다가 자기 자신을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역사속에서 수많은 위기를 이겨낸 것도 집단의 힘이다. 코로나 사태를 이겨내진 못했지만(인간은 역사상 단 한번도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했다고 한다)집단 방역 노력은 초기에 어느정도 결실을 보였다.

평소에 그랬으면 더욱 좋았겠지만, 월드컵이나 올림픽에서도 단합되는 모습을 보였다. IMF때 결혼반지를 금모으는데 내놓았던 사람들의 힘이 모여 국가 위기극복에 일익을 담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자기 자신을 버려서는 안된다. 자기 자신을 버리지 않고도, 개인주의를 잘 활용하면서도 힘을 모을 수 있다는 것을 저자는 잘 설파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요즘 보는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가 떠올랐다. 이 드라마는 IMF 시대를 배경으로 전개된다. 그 당시 청춘이었던 우리 세대는 사회에 진출하자마자 IMF를 겪으며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IMF로 시작하는 가게들이 참 많았다. IMF 생고기 라는 고깃집이 나와 내 친구의 단골집이었는데, 부족한 금전에 삼겹살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아무튼 그 드라마에서 펜싱선수인 주인공이 IMF때문에 팀이 해체되는 좌절을 겪는다. 학교 코치는 시대가 너를 그렇게 만들었으니 시대를 탓하라고 말한다. 우여곡절 끝에 전학을 가서 펜싱을 계속하는 주인공은 IMF로 펜싱을 그만 둔 사람들 때문에 국가대표 선발전에 합류할 기회를 얻는다. 그때 전학간 학교 코치는 '시대가 너에게 기회를 주었다' 라고 말한다. 시대는 기회를 앗아가기도 했지만 주기도 했던 것이다. 주인공이 시대의 비극과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것이 개인주의의 좋은 표본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이 책과 함께 한 시간은 나 자신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돌이켜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내 부족한 사고력으로 읽어내지 못한 부분이 많았을 것이다.

 

철학자인 저자는 책에서 색다르면서도 깊은 질문을 던진다. 독자는 나와 타자, 그리고 사회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책을 읽으면서 깊이 생각하는 과정 만으로도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구분할 수 있는 분별력을 갖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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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시민 불복종 (합본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1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이종인 옮김, 허버트 웬델 글리슨 사진 / 현대지성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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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골 출신이다. 내가 살던 고향은 버스가 하루에 몇 대 다니지 않고, 아이들도 우리 가족들 포함 6명 정도 밖에 안되는 작은 마을이었다.

지금은 100% 노인들만 사는 아직도 시골 마을인데, 초등학교를 가려면 산길을 둘러 30~40분을 걸어야 했다. 80년대 초반 생들 중에서 나같은 경험을 해본 사람은 거의 보질 못했다. 그때는 참 그곳이 싫었는데, 이제는 가끔씩 매우 그립다.

 

전원이 그리워 노후에 한적한 시골 근교에서 살것 같지만, 서울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지역이라 고향에 가서 살진 않을 것 같다.

 

아무튼 월든을 읽으면서 고향의 자연 생각이 많이 났다.

집뒤에 바로 산이 있고 마당 옆에 감나무와 아담한 대나무 숲이 펼쳐져 있고, 대문 앞을 조금만 나서면 논밭이 쫘악 펼쳐져 있으며, 마을회관과 마을의 나이만큼이나 많은 큰 소나무가 마을의 양쪽 입구를 감싸고 있는 풍경. 지금은 집이 너무 낡아 무너져 버리고 재건축을 하지 않고 있는 그곳에 안간지도 10년이 넘은 것 같다.

 

수년 전의 군복무 기간과도 같은 2년2개월의 시간을 숲에서 보낸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그곳에서 자연을 만끽하며 자아를 성찰해나갔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미니멀리즘을 제대로 실천한 그의 사상은 자연 친화적며 자연을 뛰어넘어 인간을 초월하는 의지를 이야기 했다.

 

하늘과 당의 오묘한 힘이 지닌 영향력은 얼마나 광대하고 심원한가! 우리는 그 힘을 알려하지만 보지 못한다. 우리는 그 힘을 들으려 하지만 듣지 못한다. 사물의 본질과 동일한 그 힘은 사물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깊이 생각함으로써 아주 건전한 의미로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다. 의식적으로 심적 노력을 기울여 우리 행동으로부터 한 발짝 초연히 물러서서 그 결과를 살펴볼 수 있다. 좋든 나쁘든 모든 것은 우리 옆을 격류처럼 흘러간다. 우리는 온몸을 던져 자연 속으로 몰입하지는 못한다.

181p -고독-

 

월든 호수의 풍경을 읽다보니 고향 마을의 저수지가 절로 떠오른다. 월든 호수보다는 책에 나오는 구스 호수와 더 가까운 풍경일것 같다. 인적이 드문 조용한 저수지. 그 저수지 길을 쭉 올라가면 조상들의 묘가 서있다. 묘지를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이미 있는 것이야 어쩌겠는가. 덕분에 그 호수를 자주 가곤 했었는데, 연못에서 아버지와 함께 민물 새우를 잡기도 하고, 개구리나 두꺼비나 새들을 구경하기도 하고, 이름 모를 괴상하게 생긴 물고기를 잡기도 했다.

 

연못에서 조금 떨어진 마을 입구로 가면 개울이 흘러 내려 가재를 잡고, 때로는 메기를 잡기도 했다. 미꾸라지는 논밭에 널린 거라서 일부러 잡으러 가지도 않았다. 무화가 열매를 먹고, 대나무로 만든 장대로 홍시를 따먹고, 날아가는 까치의 몫도 남겨 두면서 메뚜기나 잠자리를 잡으며, 불을 때우기 위한 나무도 베어 가며 시골 생활을 했던 것이 오랫만에 새록새록 기억이 난다.

 

월든의 숲보다는 덜하지만 외진 그곳에 가서 며칠을 푹 쉬면서 복잡해진 머리를 식히고 싶은 생각이 들지만, 무너져 버린 집을 다시 짓지 못하는 것은 큰집과의 이해관계와 거리 때문이다.

복잡해진 머리를 식히러 가서 복잡해 지고 싶지 않아서 찾지 않고 있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서는 소로의 월든 같은 정신적인 휴양소로서의 고향 마을이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차분해지고, 평안해지며 고요해진다. 몹시 그립기도 하다.

 

빨리 발전하려고 너무 애쓰지 말라. 너무 많은 영향력이 당신을 갑섭하도록 두지 마라. 그것은 모두 힘 낭비다.

435p-

 



 

 

시민 불복종은 짧지만 강렬했다. 노예 제도를 찬성하는 주 정부에 대한 납세를 거부하고 비폭력적인 저항으로서의 불복종을 이야기 한다. 이 불복종사상은 간디, 마틴 루터 킹, 넬슨 만델라 등의 위인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현대에도 과격한 시위 보다는 이런 비폭력 불복종 운동이 유효하지 않나 싶다.

 

생태주의자로서의 삶을 살다간 소로의 사상은 코로나 시대에 더욱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자연과 함께 조화로운 삶을 사는 것이야 말로 인류를 위한 것임을 인류는 이제 깨달았을까?

현실적으로 앞으로도 계속 도시 생활을 해야 하지만 소로의 월든 처럼 내 마음속에 고향마을의 풍경을 자주 떠올리면서 평안을 얻어야겠다.

 

 

 

[네이버 문화충전200% 카페를 통해 책을 제공받은 뒤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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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남은 삶이 한 시간뿐이라면 - 프랑스 노철학자가 전하는 삶의 가치와 본질에 대한 철학적 질문들
로제 폴 드루아 지음, 최린 옮김 / 센시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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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면서도 불공평하다.

 

시간을 때운다, 킬링 타임 등의 용어가 있다. 시간 때우는 방법에 대해서도 이야기 할만큼 누구에게 시간은 참 많고 한가한 것이고 지루한 것이기도 하다.

 

또 누구에게는 얼마 남지 않고 무엇보다 소중하고 안타까운 시간일 수도 있다.

 

시간은 공평하면서도 공평하지 않다.

밥 한끼를 먹기 위해 누구는 밥 먹을 시간만 쓰면 되고 누구는 밥값을 벌기 위해 밥먹을 시간의 몇배를 노동으로 채워야 한다.

 

우리는 영화나 책 등을 통해 삶이 얼마 안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고 시간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내 일상으로 돌아오면 여전히 하던대로 습관대로 시간을 보낸다.

 

나는 여유를 즐기는 편이라 느리게 행동을 하는 편이다. 즐겨도 너무 즐기기 때문에 탈이다. 금방 할 일을 느려 터지게 하거나 미루면 나 스스로도 답답할 지경이다. 어떤 사람은 즉시 그것을 해결 해버리고 또 다른 일을 하겠지. 어떤 사람은 남들 쉴 때 조금이라도 더 일을 해서 돈을 벌거나 일 자체를 하려고 들 것이다.

 

그렇다면 바쁘게 사는 사람이라고 시간을 소중하게 보내는 것일까? 바쁘게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서 일을 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하루에 10시간 넘게 주말도 없이 일을 하지만 어떤 사람은 빈둥거리면서도 돈을 더 많이 벌어가기도 한다.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은 것인가?

여기에 답은 없다. 어떤 사람이 오래 살지 못한다면 바쁘게 일할 필요 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라도 남은 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을까? 아마도 지난 날에 대한 후회와 남은 가족들에 대한 걱정,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얼마안되는 남은 시간을 꽉 채울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 답은 없다.

 

우리가 학교에서 익숙해진 대로 세상을 보면 그것이 바로 오답이 된다.

우리는 시험에 대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왔지만 차라리 4가지 중에서 고르는 것이 속이 편하다는 것을 알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꾸 이분법으로 세상을 생각하려 하고, 답을 찾으려 하고, 단정지으려고 할지도 모른다.

 

저자는 '진리는 결코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다' 라는 말을 인용하며 절대 진리라는 것은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답은 없기 때문에 니 마음대로 막 살아라라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이것조차 모아니면 도 식의 이분법 사고 방식일 뿐이다. 답은 없기 때문에 내 나름대로 기준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너무 세상의 기준이나, 내가 믿었던 것에 천착하지 말라는 것이기도 하다.

 

내가 믿은 신념이 남에게는 틀릴수도 있다. 내 신념을 버리지 않되 남이 다른 신념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특히 종교가 그러하다. 종교인들은 자신들의 믿음이 절대 진리라고 믿고 강요를 하려 한다.

그러나 그들의 역사만 봐도 시대와 국가와 통치 방식에 따라 변모 되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현재 자신들의 방식이 자꾸 진리라고 우긴다. 그 접근 방식 자체에 거부감이 들기 때문에 나같은 사람은 그게 진리든 아니든 아예 알고 싶지도 않게 되버린다. 물론 나는 그것이 거짓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이며 그것이 내겐 진리가 되지만 - 결코 그들이나 다른 사람에게 내 진리를 강요하지 않는다.

 

이 책의 이야기는 강요가 없지만, 어떤 방향을 강요없이 비춰주기는 한다.

그것은 삶에 대한 깊은 생각을 유발하면서 독자를 혼란스럽게 하기도, 깨닫게 하기도, 시름에 잠기게 하기도 할 것이다. 각자의 경험 현실에 따라서 다르게 반응할 수 있도록 유도된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과정인 거다. 삶이, 인생이 어째야 한다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독자 자신이 깊은 사고를 통해서 내 현실의 장소를 지금까지와는 다른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물론 이것조차 내 자의적 독자적으로 든 생각일 뿐이고 답은 절대 아니다. 답이 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내 나름대로의 정의를 해나가는 것이다.

그게 어떤 의도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더 깊이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내가 무엇을 이루기 위해서 바쁘게 사느냐 아니면 그저 삶을 즐기면서 여유롭게 사는 비중을 올릴 것이냐 결과적으로는 누구나 죽기 때문에 옛사람들은 사후의 삶을 생각하거나 죽어서 이름을 남기는지 아닌지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사후가 없다고 생각하는 나는 이름이 남든 안남든 나하고는 별로 상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소룡이 요절하면서 자기 이름이 길이 길이 다루어짐에 기뻐하며 죽거나 아직도 기뻐하고 있지는 않다. 그는 그저 죽었고 남은 것은 그가 아닌 남은 사람들의 몫이다. 어떤 면에서 이소룡은 이소룡이 아니게 된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라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거야? 이런 의문이 들 수 있다.

우리는 영화를 봐도 결말이 어떤지에 대한 궁금증이 있고 그것을 참 중요하게 생각한다. 허나 식스센스의 반전을 알고 봐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반전의 충격에 가려져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바라볼 수도 있을 것이다.

결말이 물론 중요하지만 그 과정이 어땠는지가 중요할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결말은 어쨌든 죽음이 아닌가. 뻔히 아는 결말보다 그 죽음에 이르기 까지 어쨋는가가 중요할 지도 모르고 그저 지금이 어떤가가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인간의 인생에 시간이라는 개념은 굉장히 큰 존재이다.

삶은 유한하고 사람은 점점 그 막바지로의 여행을 하고 있다. 그것이 위치에 따라 상황에 따라 짧게 혹은 길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대게 나이가 들수록 그게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동시에 아직은 시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어리석다고만 할 수 있을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책이다.

 

명상록을 읽는 것처럼 길지 않은 분량이고 어렵지 않은 글인데 머리가 좀 아파오기도 한다. 뭐 어떤 사람에게는 편하게 읽힐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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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끼고 아는 존재 - 인간의 마음은 어떻게 진화했을까
안토니오 다마지오 지음, 고현석 옮김, 박문호 감수 / 흐름출판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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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섭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저자는 탁월한 신경과학자이면서 철학과 심리학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에서 이야기 하는 관점이 굉장히 새롭고 독특하면서도 철학적이다.

 

조금 어렵기는 하지만 딱 내취향의 책이기도 하다. 진화론은 더이상 그저 이론이 아닌 과학계의 정설로서 다루어지고 있다. 태초에 말씀 같은 것은 없었다고 단정하는 그러나 종교에 반대되는 이야기를 하는게 아니다. 아예 거의 거론조차 하지 않기 때문에 종교인들이 보면 불편할 수도 있지만 나는 아주 편했다.


 

 

인간의 마음은 어떻게 진화를 했을까 라는 사유를 다루는 이 책은 의식의 본질을 탐구하고 있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 고통, 쾌락, 건강, 행복과 슬픔은 신경계에서 일어나는 감각이다. 느끼면서 생각하며 생각하면서 느끼는 생명체인 우리는 그런 감각에 의해서 진화가 되었다.

 

지능, 마음, 의식 이 세가지는 인간의 핵심이다. 크게 살아있는 유기체의 관점에서 생존과정에서 부딪치는 많은 문제들을 성공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지능이라고 보는데 인간의 그런 지능은 명시적 지능과 비명시적 지능이 있다 .그 두가지를 모두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바이러스라는 생명체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바이러스는 생명체 안으로 침투했을 때 살아있지 않은 상태를 유지하지만 지능적으로 행동한다고 한다.

 

존재에 대한 생물학적 분석과 느낌과 앎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다.

 

항상성은 유기체가 최적의 기능을 하면서 생존할 수 있는 생리학적 범위 안에서 유기체를 유지시키는 과정을 뜻한다. 그것을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느낌인데 느낌은 상상과 표상, 간접경험 등으로 자아를 생성하는데 역할을 한다.

 

뇌의 크기가 커서 인간의 지능이 발달했다고 생각하는 뇌과학은 아주 낡은 것이다. 얼마전 읽은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이라는 책과 이 책의 관점은 매우 다르지만 궁극적으로는 인간이 어떻게 지금처럼 진화를 했는가하는 그 비밀을 탐구하려는 것이다. 관점은 서로 다르지만 과학의 범위 안에서 매우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큰 몸집의 동물은 뇌도 크고 작은 동물은 뇌도 작다.

코끼리는 인간을 능가하는 거대한 뇌를 지니고 있지만 인간만큼 똑똑하지 못하다.

인간의 이런 진화는 뇌가 발달하고 행동이 작동된 것이 아니라 동시에 서로 필요에 의해 서서히 진화되어왔다.

더 복잡하고 다양한 행동을 하게 되면서 그 행동들을 통제할 기관이 필요했고, 뇌가 발달을 했는데 뇌의 크기가 커진것이 아니라 재조직 되어 발달했다는 것이 최신 뇌과학에서 밝혀졌다고 한다. 직립 보행 및 손가락 발가락의 정교한 움직임 등을 통제하려면 아주 복잡하고 민감하면서 감각적인 뇌가 필요하다.

움직임이 둔하고 한정되어있는 동물은 뇌도 그만큼 발달하지 못했고, 반대로 움직임이 세밀하나 동물은 뇌도 발달했다는 것이다.

 

의식과 느낌은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느끼고 아는 존재를 가능하게 한다.

느낌은 의식있는 마음의 생성에 핵심적 역할을 하고 지각활동을 하게 해 인간의 다양한 활동을 가능하게 한다. 존재하고, 느끼고, 알게 되는 세 단계야말로 우리 인간이 이렇게 지적 생명체로서 존재할 수 있도록 만든 진화적 산물이다.

 

인간은 끝없이 탐구를 한다. 다른 생명체는 그저 욕구를 채우며 살아가고 자손을 남기고 생존한다. 그러나 인간의 왜? 라는 의문은 끝없이 알고자 한다. 학문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조차도 근본적으로 그렇다.

 

마음의 기쁨과 고통은 그런 탐구를 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 마음에 나도 모를 고통이 찾아오고 그것이 왜인지에 대한 탐구를 하게 되지만 쉽게 답을 찾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 과정속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고 또 다른 의문을 찾는다.

 

이렇듯 끊없이 탐구하는 것이 현재의 인간을 가능하게 됐다.

 

어찌보면 인간은 자신조차 알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할 수도 있다.

인간의 근원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것을 알고자 하는 욕구 때문에 누구는 종교를 믿고 누구는 과학을 탐구하지만 근본적인 것들은 결국 하나인 내 존재에 대한 의문이다.

 

말로 설명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과정이 과학이고 신을 믿는 것은 좀 더 명확하고 쉬워 보이기도 하다. 단순히 신이 우리를 창조했다고 해버리면 다 설명이 되고 시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복잡한 탐구는 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신이 죽어버린 시대에도 종교는 이어지게 되는 것 같다. 과학계에서는 이미 몇 세기 전에 신의 존재가 없다는 것을 이미 알았고 거기에 대한 회의가 담긴 기록들과 철학은 니체의 철학 등으로 나타났다. 이미 오래전 부터 과학은 이미 진화가 정설이고 그런 증거들이 속속들이 나오고 있는데 종교인들은 그저 외면을 하거나 확증편향적 결과들을 조각내어 갖다 붙이고 합리화 하기에 급급하다. 뭐 그것조차 인간이기에 가능한 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신을 믿는 동물은 없을테니까.

 

저자의 굉장한 지식에 감탄을 하게 된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어려운 책이 독자들을 위해 쉽게 썼다는 것이다. 그만큼 세상은 복잡하고 어렵게 느껴지기 때문에 낡고 쉬운 전통적인 종교에 의지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겸허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과학과 심리학 생물학 그리고 철학까지 아우를 수 있는 아주 훌륭한 책이라고 생각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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