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동사니 증후군 - 아무것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의 행동 심리학
마이크 넬슨 지음, 최지현 옮김 / 큰나무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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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사니 증후군이란 주변을 어지르고,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잡동사니를 쌓는 증상을 뜻한다. (뒷장에서) 내가 잡동사니 증후군이였다. 내 손에 들어온 물건은 웬만해서 내 손을 떠나지 않는다. 잡동사니 증후군이라는 것이 그저 주변이 지저분하고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것만이 아니였다. 잡동사니 증후군이 보이는 증상들이 나와 있는데 나에게 해당되는 사항이 꽤 있었다. 집중력 과다, 장기 업무에 집중하기 힘들다, 망각,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갈피를 잡지 못한다 등의 증상을 보인다. 특히 갈피를 잡지 못해서 일을 시작하고 또 다른 일을 벌이고 또 다시 새로운 일에 관심을 갖는다는 내용에 눈이 번쩍 뜨였다. 한가지 일의 마무리를 잘 하지 못하면서도 다른 일에 자꾸만 눈이 간다. 결국 끝맺지 못하고 쌓아 놓은 일은 잡동사니가 되어 나를 힘들게 한다. 일이 생각보다 커지는 일이 다반사라 자꾸 흥미를 잃어버린다. (97쪽) 아니 이럴수가 딱 내 얘기였다. 그리고 중요한 일의 순서를 정하는데 서투르다. 중요치 않은 일을 하며 소리를 듣는다. 한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잡동사니 증후군의 증상을 보인다고 한다. 다만 그래 보이지 않는 이유는 그들은 자신의 문제를 알고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참으로 현명한 사람들이다. 하긴 잡동사니 증후군의 증상을 껴안고 있다면 일을 해결하기가 매우 힘들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일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피해가 갈 것이다.

 

<손에 잡은 일은 즉시 끝내라.> 이 말은 나에게 꼭 필요한 일이다. 이 일 했다가 저 일 했다가 정신없이 왔다갔다 하다가 결국엔 이도 저도 끝내지 못한 경우가 허다했다. 두려움을 극복하는것 역시 좋은 방법이라고 한다. 누구나 실수하고 일 처리가 매끄럽지 못할 수가 있다. 다만 그것을 두려워하기만 한다면 잡동사니의 수렁에 빠져서 나올수가 없다. 결정에 대한 두려움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어째서 낡아빠진 물건에 집착하는 걸까? 어째서 잡동사니를 버리지 못하는 걸까? 어째서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걸까? (132쪽) 어째서 나는 자꾸만 이런 실수를 되풀이 하는 걸까. 때론 나 새머리 아닐까 싶다. 돌아서면 잊어 버리곤 한다. 유유부단함 때문인것도 같다. 과감하게 버릴땐 버릴 수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때론 싹 쓸어서 버려 버리고 싶은데 버리고 나서 다시 주워올 것만 같다. 낭비된 시간 관찰표를 작성한 표를 보니 내 시간표를 만들어서 낭비되고 있는 시간을 살펴보면 매우 도움이 될 것 같다. 이상적인 스케줄을 참고하여 나도 잡동사니 증후군을 벗어나 보자. 새해에는 꼭 벗어나자.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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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묵시록 - 하
신용우 지음 / 작가와비평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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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세자가 독살당했다. 알고는 있었지만 책으로 읽으니 씁쓸함이 또 다시 밀려온다. 역사의 어느 부분에서 부터 손을 되야 하는 걸까. 역사가 견적이 나오긴 할까. 견적을 낸다는 것 자체가 우습다. "요동땅 내놓으시오. 그 땅은 원래부터 우리 땅이였소." 거참 찾아야 할 것도 돌려 받아야 할 것도 많지만 정작 우리는 반쪽이다. 사대부의 명분이라는 것은 자신들의 세력유지 그것뿐이란 말인가. 나라를 위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을까 싶었다. 알고는 있겠지. 알면서도 그러고 싶지 않은 것이 사대부들의 대단한 명분이기 때문이다. 소현세자의 동생인 봉림대군이 왕으로 등극하였지만 바로 효종. 서글프게도 소현세자의 명분을 이어나가고 싶지만 사대부의 벽은 너무 높았다. 왕권을 강화하려고만 하면 미친개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난리를 친다.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종을 왕으로 세우고 소현세자도 독살한 그들인데 무슨짓인들 못하겠는가.

 

왕이 되면 무엇하겠는가. 자신의 뜻대로 일을 처리할 수 없으니 말이다. 소현세자의 사상은 너무 드높았다. 신분제 철폐, 지금도 눈에 보이지 않는 신분제가 느껴지는데 그때의 뚜렷한 신분제를 철폐한다니 얼마나 괘씸한 노릇이였을까. 양반들이 그 꼴을 가만두고 보지 않았을 터였다. 청나라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면 우리가 힘이 없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타국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강대국이 되었을 것이다. 지배만 당하지 않았더라도 가슴 아픈 역사를 쓰지 않아도 되었을 터였다. "자꾸만 왕의 앞길을 막는 것이오. 많이 배우면 뭐할꼬. 말도 안되는 말들을 그토록 논리정연하게 펼쳐서 왕의 앞길을 막으니 좋으시오. 그네들은 진즉에 무덤으로 들어가서 이런꼴 저런꼴 보지 않아도 되니 상관없다는 것이요. 이 사람들아." 하고 싶은 말은 참으로 많다. 그분들의 학식이 쓸데없이 높아서 말로는 이겨내기 어려울 것이다. 하긴 한마디만 하면 그네들의 입을 막아버릴 수 있다. "그래서 결론이 이거요." 라고 말하면 할말이 없을 것이다. 그러고도 입을 연다면 테이프를 붙여주고 싶다.

 

실화가 역사 속으로, 그것도 승자의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 설화가 된다. 그리고 후대의 누군가가 그런 사실을 알아내고도 바로잡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역사 앞에서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이다. (뒷장에서) 그렇다. 우리가 몰랐다면 알아야 한다. 그것이 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해야할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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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삭 놀 청소년문학 10
시몬 스트레인저 지음, 손화수 옮김 / 놀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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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한가운데에서 수많은 날들을 보낸 후에야 사무엘은 집을 떠난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자기가 선택한 것이 죽음을 향한 여정이었다는 걸 그제야 깨닫기 시작했던 것이다. (36쪽)

바르삭이란 이슬람 세계에서 죽음 뒤에 찾아오는 또 다른 세상 이라고 한다.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로 사무엘은 뛰어든 것이다. 사무엘은 유럽으로 가려고 한다. 험난한 여정으로 다시 끌려 올수도 있고 가는중에 죽을수도 있다. 배고프지 않고 일한만큼 돈을 벌기 위해서 어려운 선택을 했다. 보통의 18살이라면 학교에 다니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무엘은 그런 곳에서 태어나질 못했다. 에미르는 평범한 소녀였다. 보통의 소녀들이 그러하듯이 살을 빼기 위해서 음식 조절을 하고 있다. 전에는 먹는 것을 좋아했던 에미르가 충격을 받아서 그때부터는 밥을 잘 먹지 않는다. 바르삭이 보기엔 먹을 것이 없어서 못 먹는것처럼 보일 정도로 에미르는 말라있었다. 배가 고파도 먹을 것이 없는 바르삭과 살을 빼기 위해서 먹지 않는 에미르.

 

바르삭은 죽음의 여정에서 살아 남았다. 작은 배로 바다를 가로 질러서 유럽을 왔다. 하지만 이제부터 무엇을 해야 하는걸까. 남의 나라에서 밀입국자는 골칫덩어리일 뿐이다. 넘쳐나는 밀입국자들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한가닥 희망을 부여잡고 죽음의 길을 건너서 온다. 오죽하면 죽을지 살지 알수 없는 길을 건너서 올까 싶다. 에미르가 처음 발견한 바르삭. 비쩍 마른 바르삭을 에미르는 온갖힘을 다하여 끌어 올렸다. 두 사람은 그렇게 만났다. 간신히 살아남은 바르삭과 살을 빼기 위해서 조깅중이였던 에미르였다. 두 사람이 사는 곳은 달랐다. 살아온 삶도 달랐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치열하게 살아가야만 아이들이 지구상에 많다. 차라리 엄마 뱃속에 있었던 것이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에게 따뜻한 곳과 배고픔에 굶주리지 않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게 가슴 아프다. 열심히 일해도 그만큼의 댓가를 받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가고 노동력을 착취당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땅에도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사람들이 많다. 편안하게 살아가고 있는 나는 오늘도 투덜거리기 일쑤다. 그 사람들에게는 물 한방울이 얼마나 소중한데 나의 자세는 어떠한가. 오늘도 반성해본다. 이 땅에 태어나는 모든 아이들이 춥고 배고프지 않는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희망한다.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어른이 되기 위해서 노력해야겠다.

 

살아 있는 한

나는 계속 시도할 거예요.

내가 아니라 내 가족을 위해서 (마지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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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네시의 루브르]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오후 네 시의 루브르
박제 지음 / 이숲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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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의 첫 작품으로 피사넬로의 젊은 공주의 초상을 만났다. 초상화속에 그려진 나비가 죽음을 뜻하는지는 몰랐다. 그녀가 공주인지도 몰랐다. 내가 보기에 그녀는 아픈것처럼 보였지만 그런것은 아니였다. 이 초상화는 그녀가 죽은 다음에 그려진 그림이라는 추측이 있다. 그녀의 사연을 들으니 초상화속에서 그녀의 무표정해 보이는 얼굴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때는 권력의 소용돌이속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다. 시대를 넘어서 다양한 초상화와 만난다. 세번째로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만난다. 모나리자는 인가가 많아서 수난이 많았다고 한다. 지금은 방탄유리에 보호되어 있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서 루브르에 방문한다고 한다. 나도 모나리자의 미소를 눈앞에서 보고 싶다. 렘브란트의 자화상을 만나고 고야의 작품인 솔라나 후작부인의 초상을 만났다. 나는 '고민하는 고야'와 '새 시대의 빛을 갈구하는 고야'가 진정 마음에 든다. 그는 족쇄에 묶인 구체제와 모순투성이의 전통을 벗어나고자 했다. 그는 이성과 계몽정신으로 몽매한 사회를 개혁하려는 열망으로 살았다. (93쪽) 저자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고야가 친숙해졌다. 루브르의 작품을 만나면서 점점 그림이 재미있어 진다. 조르주 드 라투르의 사기도박꾼에서 여인이 눈을 흘기는 모습이 매력적이다. 그림속의 이야기를 풀어 내려가는게 개그 프로를 보는 듯한 느낌이였다. 하나의 그림안에는 요소요소 볼것이 많았다. 책을 읽어 내려가듯이 언제 보느냐에 따라서 또 느낌이 다를것 같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루브르를 찾아오나 보다. 오늘 보고 내일 봐도 또 다른 것을 볼 수 있어서 말이다.

 

보고 또 보고 하다보면 내 마음에 유난히 들어 오는 작품이 있을 것이다. 다양한 작품속에서 새로운 영감을 받기도 하고 일상의 시름을 잠시 덜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조르조네가 왜 르네상스 풍경화의 선구자이며, 왜 전원의 합주의 원작자라는 논란이 거센가를 알려면, 먼저 보아야 할 그림이 있다. 바로 폭풍이다. (180쪽) 폭풍의 그림을 보면 인물의 저 뒷편으로 벼락이 치고 있다. 사진속의 그림에서는 손바닥만한 사진이지만 실제로 보면 세로가 73cm정도 되니 직접 보면 뒷편의 외곽으로 보이는 벼락이 어떤 느낌인지 궁금하다. 사진속에서도 실감나 보인다. 곧 천둥소리가 하늘을 찢어낼 듯 울부짖을 것만 같다. 책을 읽다보면 살로몬 판 라위스달 햇살이 눈에 들어온다. 누워서 바라본 하늘의 뭉게 구름처럼, 바라보고 있으면 어디로 햇살이 비추어질지 기대하게 만든다. 뭉게구름 사이로 한조각 햇빛이 곧 모습을 드러낼것 같다. 비온 뒤의 하늘은 참 개운하고 맑다. 흙냄새가 사람을 설레게 만든다. 하늘이 높고 높아서 어디까지 일지 궁금해진다. 이제는 그런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지만 과학적이라는 것은 사람을 기운 빠지게 하기도 한다. 저항할 수 없는 유혹을 그리다 편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매우 도도하게 보이는 루카스 크라나흐 풍경 속의 비너스다. 지금까지 알아왔던 비너스와는 사뭇 다르다. 그녀의 모습은 현대적인 느낌이 난다. 장 앙투안 와토 헛디딤에서는 여인이 쓰러지려고 하자 남자가 안아 잡아 주었다고 하는데 내 느낌에는 남자가 수작을 거는것처럼 느껴진다. 여인을 일으켜 세우려고 부축하던 남자의 팔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면서 그 탐나는 몸을 와락 끌어당긴다. 눈 깜빡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287쪽) 실제에도 이런 일은 눈 깜빡할 사이에 벌어진다. 정지된 그림속에서 미묘한 감정이 교차한다.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엥그르 목욕하는 여인은 친숙한 그림이다. 알몸의 여자가 등을 돌리고 목욕탕에 앉아 있다. (323쪽) 보이지 않기에 더 매력적이기도 하다. 뽀샤시한 뒷태가 멋지다. 예전의 그림속의 알몸의 여인은 지금에 추구하는 S라인과는 다르다. 그리고 여인에서 어머니의 몸을 연상케 한다. 그림은 무엇보다 매우 유혹적이다. 멈추어 있는 그 시간이 생생하게 작가에 의해서 부활한다. 생명력이 시간을 지나도 이어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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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파탈]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아트파탈 - 치명적 매혹과 논란의 미술사
이연식 지음 / 휴먼아트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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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가 눈길을 끈다. 미술사라는 학문은 미술이 음탕하고 저속한 취향을 만족시켜 왔던 역사를 가능한 한 배제하려 하고, 음란함이 미술의 '본류' 가 아니라 일탈의 지류인 것처럼 보이게 하려 한다. (7쪽)

 

거창하게 말하자면 이 책이 음란함에 대한 독자들의 인식에 균열을 내기를 희망하고, 소박하게 말하자면 독자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야한 이야기를 들을 때처럼 빙긋 웃는다면 좋겠다. (9쪽) 저자의 말처럼 정말 음란한 것은 무엇인가 라고 생각해 본다. 함께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다지 음란하다고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은밀하다는 것 자체가 음란함을 거들게 된다. TV를 볼때마다 담배 피는 장면을 안개 처리할때면 실소를 감출 수 없다. 담배 피우는 것을 눈가리고 아웅 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건가.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하는 청소년들을 더 자극시키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금기시 한다는 것이 성적인 욕망을 더욱 고조시키는게 아닐까 싶다. 거기에 더불어 호기심까지 말이다. 그리고 우습게도 알몸을 그린 수많은 그림 중에서 되는 것이 있고 안되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직접적이면 안되는 것이다. 차라리 그리지 말라고 할 것이지 그 기준이 참으로 애매모호하다. 이 책에서는 적나란하게 보여준다. 지금껏 가리고 감춘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된 적은 없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사회적 문제는 커져만 갔다.

 

성적인 이야기를 하면 왜 민망해지는가. 그리고 웃음짓는가. 사회적인 분위기가 그렇다.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하기에는 민망하다. 목욕탕에서 모두가 알몸이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그렇게 자연스럽게 발가 벗겨진다면 더이상 궁금하지도, 몰래 보고 싶어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림에서 옷을 벗은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안에서 다양한 이야기가 존재하다. 작가가 그림을 통해서 말하고 싶어하는 것은 따로 있다.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 중 <아담의 창조>의 그림에서 조물주와 아담의 손가락이 닿을락 말락 하는 그림속에서 여러 이야기와 상상력이 흘러나온다. 아담은 어머니와 이어진 탯줄을 끊은 적이 없으니 배꼽이 없었을게 아니냐는 의문은 오래도록 가톨릭교회를 괴롭혔다. (112쪽) 조금씩 알면 알수록 그 그림이 더욱 궁금해진다. 알고 싶어지는게 많아진다. 카톨릭교회가 지키고 싶어했던 고귀함과 신성함 때문에 말도 안되는 억지를 심하게 부린다. 외면하고 감추려한다고 해서 모든게 덮어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조르주 바타유는 성행위는 배설물을 배설하는 행위이며 오물, 부패, 성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임을 강조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말대로 "똥과 오줌 사이에서 태어난" 우리는 하느님의 '거기'를 외면할 수 없다. (115쪽) 이 글을 읽으면서 웃음이 터진다. 외설과 예술 사이를 오가는 작품속에서 여전히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그들의 기준은 과연 무엇인가. 궁금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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