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에 발 담그면 나도 나무가 될까 - 식물세밀화가 정경하의 사계절 식물일기
정경하 지음 / 여름의서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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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함께 텃밭에 가면 다양한 식물의 생명체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가지는 은근 가시가 있어 위험하기도 하지만 조그맣게 열매를 맺을때 모습, 호박도 조그맣게 얼굴을 내밀때 얼마나 사랑스럽고 귀여운지 모르겠습니다. 산에서 종종 내려오는 녀석들이 파먹고 가는 것도 있지만, 각자 살아가는 방식이 있으니까요. 문서가 있다고 한들, 자연에 살아가고 있는 모든 생명체들이 더 오랫동안 이곳에 머물고 있었으므로 투덜거리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저자는 세 살 때 시골을 떠나서 도시에 살다가 허리 디스크로 인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어 서른 살쯤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지쳐있던 몸과 마음을 시골에서 추스르면서 그곳에서 다양한 식물들을 만나면서 몰랐던 이야기들을 들려줍니다. 몸과 마음이 지쳐있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자연과의 만남을 축복이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겨울입니다. 겨울이 언제 지나가나 했는데 벌써 휙 지나갔습니다. 며칠 전에 벚꽃이 만개해서 꽃비가 내리고 하얀 꽃들이 눈처럼 휘날렸는데, 여기저기 벚꽃이 만발해서 동화 속 나라로 데려다 줄 것만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빨강머리 앤의 한 장면처럼 느껴지기도 했네요. 매슈 아저씨가 돌아가셨을때 눈물이 왈칵 났습니다. 지금도 앤을 해주는데 그때 장면은 보고 싶지 않아서 딴 것만 실컷 보고 돌려 버린답니다. 초록지붕 집을 둘러싼 자연은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그 안에 초록지붕집과 가족이 있었으니까요.


실은 다 벚꽃인 줄로만 알았는데 벚꽃도 있고 살구꽃도 은근 많았습니다. 다양한 종류의 벚꽃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눈뜨고 '다 같은 꽃인 줄 알았는데 저마다 각각의 사연을 가진 꽃 들이었다네.'라고 해야 할까요?

밭에 검은 비닐이를 땅에 덮어주어 땅을 보호하기도 하지만 풀 좀 그만 나라고 하는 용도였습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는 햇빛을 보려고 잡초가 고개를 들었습니다. 잡초의 생명력은 실로 놀랍습니다. 자연은 축복처럼 열매도 내주고 거름도 주고 자연에 해를 가하지 않습니다. 열매를 맺어 우리의 밥상을 풍성하게 하고 눈을 즐겁게 해주는 꽃들이 산과 들에 피어납니다. 자세히 보아야 더 잘 보이듯이, 식물도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지 알아야 더 이쁩니다. 봄이 되면 당연히 보겠거니 생각했던 개나리를 쉽게 보지 못했습니다. 개나리는 단주화, 장주화가 있는 지도 몰랐고요. 철쭉이 꽃봉오리를 쑥 내밀며 서로 키재기를 하고 있습니다. 햇빛 좋은 자리는 이미 활짝 피기도 했습니다. 소나무는 사시사철 푸르 른데 추운 겨울에도 그리 버티려면 쉽지 않을 것입니다. 소나무는 자체적으로 주변에 아무것도 살지 못하게 하는데, 진달래꽃에게는 자리를 내어줍니다. 진달래꽃은 잎보다 꽃이 먼저 핀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자연은 어김없이 스스로 할 일을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해냅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요.


여름이 되면 나무가 무성해지듯이, 봄이 올 때 흩날리는 꽃들 덕분에 즐겁게 봄을 놓아주고 여름을 잘 버티어내야지 하고 생각합니다. 햇빛이 점점 강해지면서 식물도 사람도 지구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말라 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쉽사리 마르진 않더라고요. 수다스러운 봄의 숲은 우리가 미처 깨닫기도 전에 여름이 옵니다. 그 시간을 지키려면 우리가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쉬어가야 한다는 것을 느낍니다. 저자의 아버지께서 딸을 위해 논에서 캐어 주신 좁쌀풀. 꽃창포 인줄 알고 꽃을 기다렸던 저자에게 또 다른 식물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노란 꽃이 아기자기하고 이쁘게 피었네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나 여기있어.' 하면서 가끔 손을 흔들듯이 앙증맞은 꽃들이 인사할때가 있어요. 요즘 꽃을 따라서 그려보면서 가날픈 꽃잎이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이쁘게 피었다가 지는 모습을 보면 참 멋집니다.



생강나무는 예전에 비싼 생강을 대신해서 사용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 자체만으로 잘 살아갑니다. 고라니들이 이쁜 꽃들을 맛있게 먹고 가거나 정원을 엉망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살아남은 식물이 있습니다. 자연은 무엇 하나 쉬운 게 없으니, 야생에서 살아남으려면 식물들만의 생존 방식이 있습니다. 가을이 되면 단풍잎이 멋지게 물들어가고 곧 겨울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립니다. 봄이 되어서 싹을 틔우는 것이 아니라 겨울 동안 싹을 보호하며 지켜내고 있습니다. 혹독한 겨울을 그 자리에서 굳건하게 버티는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들은 위대합니다.



<사진출처 흙에 발 담그면 나도 나무가 될까/ 정경하 / 여름의 서재>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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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4-04-14 18: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분에 물을 줄 때 식물의 신비로움을 느끼곤 합니다. 물을 주고 나면 잎파리가 되살아나는 느낌을 받아요. 실제로 잎파리가 움직이는 경우도 있답니다. 흙에 발 담그면 나도 나무가 될까, 좋은 제목 같습니다.^^

댄스는 맨홀 2024-04-16 11:47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자기들끼리 서열도 있습니다. 큰 식물 곁에 작은 식물을 무심코 놔두면 은근 큰 식물의 이파리가 은근히 작은 식물을 압박합니다. 그래서 이름도 깡패라고 붙여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