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 개정판
노희경 지음 / 북로그컴퍼니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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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마지막 도서로 손에 집은 것은 노희경 작가님의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다. 아주 오래전에 미니북 세트로 구입해뒀었는데 이번에 가볍게 읽을 책을 찾다가 손에 집어들게 되었다. 너무 유명한 도서다보니 솔직히 별 기대는 없었고, 다만 잔잔하니 마음을 달래주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읽다보니 생각보다 더 깊은 문장들로 마음을 울리는 저자의 글은 페이지를 쉬이 넘기지 못하고 한 줄 한 줄 다시 곱씹으며 두 번씩 읽어나가며 많은 생각을 해야 했다.

-우리가 사랑하는 작가의 우리가 사랑한 에세이. 사랑받는 것들에는 모두 이유가 있다.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는 왜 그토록 사랑을 받았을까. 모든 에세이가 그렇듯 이 책에도 저자의 삶과 생각이 많이 녹아들어있다. 당연하듯 그 글들에서 단순한 위로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도서의 글들에는 마냥 단순하게 읽을 수 만은 없는 진한 무언가가 함께 담겨져있다. 나는 그것이 저자의 깊은 사색의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단순히 쓰려고 노력했지만 단순히 나오지 않은 글들. 많은 경험과 더불어 이해와 용서를 생각하고 또 생각하여 나온 글들. 자신의 깊은 생각을 나누려기 보다는 단순히, 전하고자 했던 그 마음. 그것들이 독자를 울리고, 웃기고, 결국 그녀를 사랑하게 만든게 아닐까.

-나는 차마 하지 못 할 것 같은 용서를 그녀는 해냈다. 해냈다 보다는 하게 되었다가 더 어울리는 말일까? 용서와 사랑, 이해 따위의 어려운 주제들에 대해서 진하게도 생각해야했던 시간이었다. 그 진함이 좋은지 나쁜지는 모르겠다. 다만 지금의 나에겐 너무 과해서 감정의 소용돌이에 푹 빠졌을 뿐.. 조금 더 어른이 되었을 때 다시 한 번 읽어야겠다고 다짐하며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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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를 보는 식물학자 - 식물의 사계에 새겨진 살인의 마지막 순간
마크 스펜서 지음, 김성훈 옮김 / 더퀘스트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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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퀘스트 출판사 협찬으로 읽어보게 된 <시체를 보는 식물학자> 블랙을 바탕으로 한 으스스한 표지디자인과 제목에 혹해서 받아들이게 되었다. 실물로 받아본 도서는 벨벳으로 되어있어서 훨씬 예뻤다. 처음에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미드 NCIS처럼 범인을 찾는 형사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프롤로그도 마치 소설처럼 쓰여있어서 기대감이 더 커지기도 했다) 알고보니 에세이에 가까운 책이었다. 소설이 아닌 저자의 경험이 담긴 책인걸 알고 다소 실망했지만, 이게 웬걸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이 책의 포인트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로 우리가 잘 모르는 ‘식물학’이란 무엇인지, 무슨 일을 하는지, 그 의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알 수 있으며 두번째로 그런 식물학으로 어떻게 범죄를 추적하는지에 대해서 알 수 있다. 마지막 세 번째로는 식물이 얼마나 놀라운 생명체인지에 대해서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언뜻 비슷해보이는 포인트지만 세 가지 모두 충족 되면서 경이 비슷한 감정이 솟아오른다. 제일 중요한 점은, 저자가 이 세 가지 모든 것을 흥미롭게 바라볼 수 있도록 이끈다는 것이다. 식물에 대해 아는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렵거나 지루하게 느끼지 않고 탐독하게 만드는 것이다. 식물에 대한 저자의 애정도 대단하지만, 저자가 설명하는 식물들의 생태와 그것으로 인해 범인을 잡을 수 있다는, 더 나아가 찾지 못한 시체를 찾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에 큰 감명을 받게 된다. 가까이에 존재하고, 인간의 삶에 큰 도움을 주는데도 중요한 존재라는 점을 망각하는 사람들에게 큰 시사점을 제공하기도 한다.

-많은 범죄와 연관지어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점은 아쉽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망자와 유족들을 대하는 저자의 자세에 다시 한 번 감동하게 된다. 또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자리에서 범죄자를 잡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또한 가질 수 있다. <시체를 보는 식물학자>를 읽으면 법의학과 식물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뒤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새삼 감사의 마음이 일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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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 거리가 딱 좋다
황보름 지음 / 뜻밖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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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 달달이 주제를 정해서 읽으며 한 달에 최대 두 권 읽고 싶은 도서를 선물로 선사하며 쌓인 책을 정리하기로 결정했다. 첫 시도의 달 11월은 ‘한국문학’의 달로 정했다. 그 첫 번째 도서로 새움출판사 서포터즈 활동 당시 선물로 받았던 <이 정도 거리가 딱 좋다>를 집어들었다. 작고 얇아서 금새 읽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힘든 시기가 찾아왔을 때 읽기위해 아껴두고 있었는데, 역시나 나보다 마음이 강인한 누군가의 삶을 엿보는 것은 삶의 힘든 부분을 털어내고 조금이나마 그 타인을 따라하며 이겨내보자는 마음이 생기게 만든다. 그로써 내가 조금 더 단단해질 수 있다면.

-우리는 에세이를 왜 읽는 걸까? 독서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사람들이 타인의 일기와 같은 에세이를 도대체 왜 읽는 걸까 궁금했다. 처음 에세이를 집었을 때는 역시나. 200페이지 안팎의 짧은 책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꽤 오랜 시간을 들여 읽어야 했으며 다 읽고 난 후에도 그저 타인의 일기장을 엿본 기분에 불과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에세이가 붐을 일더니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과도할정도로 넘쳐나기 시작했다. 바쁜 현대 사람들은 손에서 책을 놓은지 아주 오래 됐는데 그런 사람들까지 손에 책을 들게 만든게 바로 에세이다. 이유가 뭘까 생각해봤다. 인상을 쓰며 문학을 읽지 않고 타인의 일기를 읽는 것에 시간을 쓰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손에 든 책을 바라보며 생각하다 결국 이해하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직접 읽어보기 전까지는. 많은 출판사의 서포터즈를 진행하다보면 읽고싶지 않은 도서를 울며겨자먹기로 읽어야 할 때가 자주 있다. 그러다 의외로 만족하며 책을 덮는 경우도 마찬가지로 자주 있다. 오랜만에 에세이를 서포터즈 활동으로 손에 집어 들었을 때. 자신도 믿지 못할정도로 평온한 마음으로 책을 덮으며 깨달았다. 몇 년 전의 나는 스스로에게 꽤 자신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구나. 다른 누군가의 삶을 통해 그들이 전하는 위로를 통해 자신감을 회복 할 수 있는 거였구나. 그래서 바쁜 현대인들이 에세이를 손에 집어들었구나. 더 잘 살아가기 위해서. 살아가기 위해서.

-나는 원래 좋아하는 작가들의 삶을 엿보기 위해서, 그들은 이렇게 살아가는구나 알고싶어서 좋아하는 작가들의 에세이를 손에 들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최후의 보루’로 남겨두다 삶이 힘겨워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할 것 같다고 느낄 때 집어들게 되었다. 그들도 나와 비슷한 힘듦을 겪어왔고, 어느 방식으로 헤쳐나왔는지. 그들도 결국 다 다른 인간이며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오고 있음을 보고느끼면 다시 일어날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 정도 거리가 딱 좋다>의 저자는 독자들에게 딱히 위로를 건네지는 않는다. 그저 나는 이런 경험을 했고 이렇게 이겨내었어. 이런 사람도 있고 이런 교훈도 있어 하고 잔잔히 이야기할 뿐이다. 독자들은 그것에 위로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래 나도 이 정도 거리. 딱 이만큼 나의 삶을 지키기 위한 거리를 두며 살아보자’라는 생각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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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신경썼더니 지친다 - 섬세하고 세심한 사람들을 위한 실전 안내서
다케다 유키 지음, 전경아 옮김 / 미래지향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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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지향 출판사에서 협찬받아 읽어보게 된 <너무 신경썼더니 지친다> 처음에는 단순히 사회생활, 특히 인간관계에 지친 사람들을 위로해주는 잔잔한 에세이일 것이라 생각했다. (스포받는 기분이라 뒷표지는 책을 완독한 후 읽는 타입) 요즘의 나에게 꼭 필요한 위로를 건네줄 것 같아서 가벼운 마음으로 손에 집어 들었는데 예상외로 세심한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흔히 겪게 되는 불편함과 그러한 불편함이 생기는 이유, 완전히 없앨 수는 없겠지만, 조금이라도 더 세상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도서였고, 예민하다 평가받는 사람들에게 힘과 위로를 건네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유난히 예민한 사람들이 있다. 작은 빛이나 소음에도 쉽게 잠자리에 들지 못하고 타인의 말 한 마디에 몇 일 동안 마음 앓이를 하기도 하며 타인의 기분이 일의 능률에 영향을 끼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쉬이 “너무 예민한 사람” 이라고 불리거나 평범하게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평가 받기도 한다. 그런 세상의 시선과 잣대에 예민한 사람들은 ‘내가 이상한건가’ 라는 생각을 하며 더욱더 움츠러들고 과민해지며 자존감이 떨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사람들을 ‘섬세한 사람’ 이라고 칭하며 키가 크고 작은 것과 마찬가지로 섬세함도 타고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너무 예민한 것이 아닐까 너무 걱정하거나 주눅들지 말라고 위로를 건네준다. 섬세함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은 민감하게 많은 것들은 파악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심도 깊다. 그렇게 여러군데 신경을 쓰다보면 오히려 자기 자신은 내팽개치게 되기도 한다. 조금씩 쌓이는 작은 것들은 결국 큰 스트레스로 다가오게 된다. ‘최대한 신경쓰지 말고 살아보자’라고 다짐해도 유전자적으로 섬세하게 태어난 이상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저자는 ‘아예 느끼지 않거나 참을 수는 없다. ‘대체 방법’을 이용하자’ 라고 이야기 하며 당장 실천해볼 수 있는 여러가지 방법들을 소개해 준다.

-섬세함을 가진 사람들도 그 강도는 서로 다르다. 어떤 사람은 지나치는 사람의 체취에 인상을 쓰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가까이 앉아있는 사람의 체취에 민감하기도 하다. 그 강도는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느끼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느끼지 않게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언제까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자신을 숨기고 참을 수만은 없다. 또 숨기고 참는 것은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과도 같다. 그렇기 때문에 숨기고 부정하려 할 때 움츠러들고 자존감이 낮아지는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세심한 것은 자라온 환경 때문에 생기는 것도, 잘 못 된 것도 아니라고. 숨길 필요도 줄일 필요도 없다고. 그저 자신이 가지고 태어난 것을 잘 활용하고 적절히 컨트롤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찾아가면 된다고. 세상에는 세심함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이 정말 많다. <너무 신경썼더니 지친다>는 나와 비슷한 그들의 사연에 공감하고 잘 못 된 것이 아니라는, 오히려 배려심 깊고 꼼꼼한 성향이라는 것을 보며 위로를 받고 저자가 추천해주는 방법을 통해 나를 힘들게만 하는 것 같던 섬세함과 친해지는 법을 터득할 수 있다.

-평소 생각이 너무 많은 스스로를 바라보며 내가 이상한 건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많은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하며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의 정도와 내가 느끼는 감정의 정도가 너무 다르게 느껴져 혼자 상처 받고 힘들어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람마다 ‘세심한 정도’가 다 다르다는 것, 세심한 성향은 태어날 때부터 타고나는 것이라는 것 등 저자의 문장에 정말 많은 공감과 위로를 받으며 읽어 내려갔다. 특히 “예민한 것이 아니라 세심한 거예요.” 라는 말에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높아지기도 했다. 스스로가 남들보다 예민하다고 느껴지거나 ‘나만 이런 걸까?’ 라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는 분들에게 특히 추천해주고 싶은 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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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경의 치유의 말들
박주경 지음 / 부크럼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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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크럼 출판사 에서 신작 <박주경의 치유의 말들>이 출간 되었다. 요즈음 삶이 안정적이지 않고, 내 뜻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 처럼 느껴지는데 심지어 코로나 문제로 선뜻 홀로 여행도 가지 못하고 스트레스만 계속 쌓이고 있었다. 삶이 지치고 버거워지니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말을 함부로 하게 되고, 사소한 것들로 상처받기 일쑤였다. 이 책은 출판사에서 선물로 보내주셨는데, 나에게 꼭 필요한 시기에 이 책을 만나게 된 것은 운명이 아닐까? 읽으면서 참 많은 위안을 받은 책이다.

-무작정 다 잘 될거라며 위로해주는 것은 치유의 말이 될 수 없다. 그런 말을 듣는다고, 설령 정말 그렇다고 해도 지금 당장의 고통을 버티기 위한 ‘힘’을 주거나 그 힘을 내기 위해 지금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치유’ 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저자가 말하는 ‘치유의 말’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아무런 악의 없는 ‘무해한’ 단어들. 누군가의 선행이 점점 멀어져가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단단히 연결하고 있다는 이야기. 나도 힘들었지만 이겨낼 수 있었다는 말이 아닌, 너무 지칠 때는 언제든 나에게 와서 안겨도 된다는 이런 따스한 말이 아닐까?

-책을 읽는 동안 간혹 좋은 것들은 손에 넣기 아주 쉽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주 잊어버리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사람들의 선행에 대한 이야기는 차갑게 얼었던 상처받은 마음이 따듯하게 녹아내리고, 다정하지만 너무 깊숙이 파고들지 않는 단어들은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며 ‘그래 이렇게 생각하면, 조금만 더 힘내면 되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저자의 이야기들을 보고있노라면 부끄럽기도 하고, 이토록 자명한 어떠한 사실들을 잊고 있었다는 것에 충격이 오기도 하지만, 어찌 되었던 자기 전 침대에 누워 편하게 힘이 빠진 몸처럼 마음이 편안하게 녹아내리게 된다. 종내에는 이런 말을 저도 모르게 읊조리게 된다. ‘아아 나도 작은 선행을 실천하고 싶다.’ 그리고 그 선행은 타인이 아닌 나를 위해서 실천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되었을까 싶을 때가 종종 있다. 삶도,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앞으로는 이런 마음이 들 때면 이 책을 들고 아무 페이지나 열어서 읽으려 한다. 다정하고 따뜻한 ‘말’을 통해 치유받는 다는게 어떤 것인지, 너무 크게 느껴버렸기 때문에 그 중독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 같다. (여담이지만 최근에 다정한 에세이들을 읽으면서, 감동 포인트도 아닌데도 시도때도 없이 눈물이 나왔었는데 아마도 그 다정한 말들에 위로를 받았기 때문이 아니었나 이제서야 깨달았다. 힘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힘듦을 조금이나마 치유받을 수 있었기에 눈물이 나왔던 것 같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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