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인간인가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기록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 돌베개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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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은 편 벽에는 검정색, 흰색, 빨강색으로 그린 거대한 이 한 마리가 '이 한 마리는 너의 죽음'이라는 구호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2행시도 있다.

용변을 본 후나 식사하기 전에
손 씻는 것을 잊지 말 것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제목은 참 잘 썼다고 생각한다.


나도 책 내용 안 보면 파닥파닥 낚일 듯한 제목이었기 때문이다. 부제 '아유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기록'에 주목하길 바란다. 아우슈비츠로 끌려간 유태인 프리모 레비는 이과의 우등생이어서 실험실 일꾼으로 발탁당해 살아남게 된다. 그 과정을 적은 이야기다. 실상 다른 유태인 수용소에 대한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 제목만 거창할 뿐. 하지만 독일어가 쓰여져 있는 게 마음에 든다. 아무래도 번역자가 어감을 살리기 위해 그대로 냅둔 것이라 생각한다. 이 글을 보는 독자들도 알겠지만 페북에서 문의한 사람이 있으니 설명을 붙여보겠다. 이 글을 쓴 사람은 이탈리아 출신 유태인이지만 독일로 끌려갔고 독일은 그 당시 선진국(?)이기 때문에 아우슈비츠에서 독일어를 썼던 것으로 보인다. 이 분의 다른 책들엔 다시 이탈리아어가 나온다.

 

여자를 못 본 게 몇 달이나 되었지? 부나에서 우크라이나와 폴란드 여자 노동자를 만나는 일은 드물지 않았다. 그녀들은 바지와 가죽점퍼를 입었고 남자들처럼 크고 거칠었다. 그녀들은 여름에는 땀에 흠뻑 젖었고 머리가 헝클어져 있었으며 겨울에는 솜을 넣은 두꺼운 옷을 입었다. 삽과 곡괭이를 들고 일을 해서 옆에 있어도 여자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여기서는 다르다. 실험실의 여자들 앞에서 우리 세 사람은 깊은 수치심과 당혹스러움을 느낀다.


 

그나저나 내가 읽은 건 그나마 여자를 존중해주는 책이었군요.
여기서는 완전히 여자를 눈 달린 물건 취급하네.

 

 

1944년 아우슈비츠에 오래 수용되어 있던 유대인 포로(다른 포로들은 언급하지 말도록 하자. 그들의 상황은 또 달랐으니까) 'kleine Nummer'(낮은 번호)는 15만 명이 조금 안 되었는데, 그중 수백 명만 생존했다. 그들 중 일반 코만도에서 정상적인 배급을 받으며 무기력하게 살았던 일반 해프틀링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 의사, 재봉사, 구두 수선공, 음악가, 요리사, 매력적인 젊은 동성애자, 수용소 권력자의 친구거나 동향 사람이었다.


아예 생판 이해할 수 없는 문구도 많았다.


아마 그 당시 자기 주변 사람들만 알아볼 수 있게 쓴 게 아닐까 짐작한다. 특히 오디세우스의 노래는 배경을 잘 알고 있는 나도 뭔 소린지 감이 안 잡히니 말이다. 차라리 여기에 적혀있는 것처럼 젊은 동성애자가 살아남는 '숨그네'라는 소설책도 있으니 그걸 읽어보기 바란다. 이 책보단 훨씬 아우슈비츠에 대한 이해가 잘 된다. 우리가 공감이 안 되는 상황을 이해하는 데는 텍스트 중에선 소설만한 매개체가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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