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사냥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2
J.M.바스콘셀로스 지음, 박원복 옮김, 김효진 그림 / 동녘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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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지막으로 똑같은 반성문 천 줄을 써야 한다."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천 줄이나? 차라리 책 한 권을 쓰는 편이 낫겠군. 소설 한 권 말이야. 젠장, 내가 알게 뭐야. 거지 같은 걸로 한 권 쓰고 말지. 그런데 천 줄이나 쓰라니, 한 문장 한 문장 똑같은 내용을 반복하는 건 연옥에 떨어지는 것보다 더한 걸 거야. (...) 나는 일부러 그걸 증오한다고 말할 텐데, 그게 받아들여진다면 최소한 내가 사랑하는 문장을 쓰게 될 것이다.
"문장을 말해요!"
"이삐랑가의 평온한 강변들은 들었노라......."
(...) "이 아이가 완전히 돌았구먼. 애국가를 증오한다고?"

내가 듣기로 이 시기의 브라질은 우리나라의 80년대와 비슷했다고 들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이 구절은 유머를 담아서 작가가 현실을 비꼬는 구절이 아닌가 생각한다. 젠장. 내가 너무 소설을 해석하려 드는 건가? 혹시라도 이 구절의 의미에 대해 좀 아는 사람이 있으면 조언을 구한다.

 


보통 혼혈아들은 생김새가 준수하다고 한다.


 혼혈인이 아름답다라고도 하지만 그런 표현은 극히 드물며, 보통은 혼혈 아이들이라는 표현을 많이 한다. 그들은 특수한 부모들에게는 인기가 많아 잘 선택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들이 그 선택을 좋아하게 될지는 별개의 문제다. 귀여움 받는 걸 상대방이 좋아하지 않는데도 계속 귀여워하는 건 폭력이라고 젤리와 만년필 창간호를 읽으면서 나는 배웠다. 게다가 귀여워하는 방식이 애정표현도 아니고 공부를 마구 시킨다는 비정상적인 방식이라면 어떨까. 차라리 아주 솔직히 네가 이쁘지도 않으며 그저 자신의 체면을 내세우고 훗날 자신에게 베풀어주는 걸 기대하고 투자하는 것 뿐이라 말한다면 나을지도 모른다. 귀여워하는 게 진정한 사랑이라 볼 수는 없음을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그리고 제발 귀여워하는 사람에게 할말 못할말 다 말하지 마라... 귀여운 인간은 니가 생각하는 것만큼 만만하지 않단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에서 뭐? 아버지가 이사를 가고 우리는 잘 살 거라고 했더니? 웨 입양이 됨? 그럼 가족이 애를 버리고 도망갔다는 겁니까? 너무 열받는데. 평소 애를 죽을 때까지 패놓더니 ㅋㅋㅋ 아니 그렇게 애를 많이 낳았으면 다 책임을 져야할 거 아냐 ㅋㅋㅋ 이거 정말 너무하네요 ㅠㅠ 1부도 그렇게 시궁창이었는데. 슈발것들 진짜 그 가족 보면 머리 다 뽑고 싶을 정도의 증오가 올라온다.. 그런데 놀랍게도 제제는 어른들을 이해하려 애쓰며 현실과 타협해 나간다. 고도이아의 자동차 사고가 계가가 된 게 아닌가 짐작해본다. 따지고보면 우리나라도 옛날엔 이런 거 많았다. 가난한 애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부잣집에 위탁형태로 가서 돈 벌거나 공부해서 잘 살고 집에 원래 집에 돈 가져다 주는 방식. 내 주변에도 그런 어른 있고.

 


제제가 어른이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게 특히나 슬프다.


 1부에서 돈을 벌어야 하고 죽음과 싸우는 어른들의 심정을 모르고 장난쳤던 제제가 있다면 이 2부에서는 어른들을 배려해주는 제제가 있다. 안돼 제제야 ㅠㅠ 어른의 심정을 안다는 건 늙어간다는 증거야 ㅠㅠ 점점 건강해지고 있는 건 좋지만 얼굴이 이쁘장해서 아버지가 경계하는 걸 보니 역시 3부에서는 여자들이 졸졸 따라다닐 거 같다 ㅠㅠ 옛날에는 제제한테 감정이입해서 어른들을 욕하고 다니면서 제제가 빨리 성장하길 바랬는데 다 커서는 안타까워하는 이유가 뭘까. 역시 내가 늙었단 증거인가(...) 아님 최애를 애끼는 마음? 애인이 생긴들 분명 제제의 불우한 환경을 버틸리 없다는 불안감이 작용하는 듯하다.

대체로 꼬꼬댁 꼬꼬 하는 암탉 웃음소리를 내는 등 제제 리즈 시절에 비하면 완전 평범하지만 기숙사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장난을 치는 듯하다. 1부의 화려한 경력을 생각하면 상류층계에 눌려서 기가 죽은 것 같아 매우 짠하다. 전엔 반항이라도 했지 여기선 초반에 찍소리도 못하고 눈물만 질질 흘리는 장면도 많이 보인다. 그러나 제제에게 점점 말을 거는 목소리가 많아지고, 지혜가 생기면서 전에 없던 완벽범죄(?)가 가능해진다. 그 점이 신박하다. 제제가 하는 짓이 내가 하는 짓 같은데 어른들에게 들켜서 혼날 것 같으면서 들키지 않는 스릴이 있다. 제제가 도시에 와서 생활하다보니 아무래도 상상력이 밍기뉴 때보다 빈곤해지는 듯하다. 어쩌면 속을 털어놓을 수 있는 인물 중 거의 유일하게 실제 인물이었던 뽀르뚜가가 기차에 치여 죽은 게 충격이 커서 거리를 뒀는지도 모르겠다. 햇빛사냥 중 핵심인물이라 할 수 있는 두꺼비 아담도 짐을 쌀 때는 제제한테 쌀쌀맞게 대하는 걸로 나오고. 기타 모리스 아저씨가 자신을 자주 방문하지 못하는 걸로 나오고 아담이 자신에 대해 다 알지 못하는 등, 일부러 한계를 설정해놓고 가상의 인물들을 조롱하듯이 말한다. 너는 근데 예전에 이 수사님이 말한 것과 어쩜 그렇게 똑같이 말하니? 라는 식으로. 무엇보다 죽음을 무서워한다. 처음 만날 때부터 너도 떠날거야? 너도 죽어? 그러고 물어보는 식. 전반적으로 기운이 없는 듯해서 불쌍하다. 안 울려고 했는데 모리스 슈발리에를 진짜로 만날 때 울었다... 제제가 모리스를 만난 게 꿈인지 아닌지 아직도 헷갈려하는 사람이 있는 듯한데, 나는 어린 시절 제제가 만난 모리스는 모리스를 꿈꾸는, 제제가 양자로 들어간 집안과 관련된 어느 배우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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