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마이페이퍼 당선작

3.1만세운동으로 촉발된 독립의 기틀 - 자성지
10년 전, 능률도 오르지 않는 책을 붙들고 책상 앞에 앉아 있느니 차라리 의미 있는 곳으로 답사를 다녀오자고 벼르던 차 한민족 역사 기행을 고등학생인 딸과 다녀왔다. 민족의 성산 백두산과 고구려·발해·항일운동 유적지를 순례하는 7박 8일 간의 일정을 소화해내는 일이 쉽진 않았지만 곳곳에 스민 우리의 웅혼한 민족혼에 전율하였다. 우리 민족의 뿌리를 찾아가는 답사로 기억 속에 지리멸렬하게 웅크리고 있는 역사에 대한 이해를 드높이는 계기로 작용했다. 연변 회룡시 들판에 방치된 나철, 서일, 김교헌 대종교 세 지도자의 묘지를 찾아 벌초...

글이 전해줄 수 있는 아름다운 진실 - 잠자냥
때로는 소소한 에세이에서 더 큰 감동을 얻는다. 유명한 작가의 글도 아니고, 문학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작품이 아닌데도, 그 어떤 글을 읽었을 때보다 마음이 흔들린다. <아흔일곱 번의 봄여름가을겨울>이 바로 그런 책이다. 아흔일곱 번의 봄여름가을겨울이라니, 제목부터 왠지 숙연해지는 기분이 든다.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는 순천 할머니들의 일기라면, 이 책은 강원도에 사는 이옥남 할머니의 글이다. 할머니는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일기를 쓰셨다. 삐뚤빼뚤한 글씨체에 맞춤법도 곧잘 틀리지만 그 안에 담...

201903 : 20 - syo
만화는 죄가 없다. 죄는 어떻게든 읽은 권수를 늘리고 싶어서 꼼수를 쓰는 인간에게 있을 뿐이다. 허허허. 이번 달에는 한 번도 안 나타날 것처럼 비장하게 굴었지만 꽤 등장했고, 한 권도 안 읽을 것처럼 단호하게 굴어놓고는 스무 권을 읽었다. syo는 또 죄인인가? 아니야, 난 그저 얍삽했을 뿐이다. 스무 권 안에 만화가 5권, 한 권이 단편소설 한 편 분량인 책이 3권, 무상무념으로 읽어 넘길 수 있는 가벼운 에세이가 너덧 권 들었으니, 이 정도면 사실상 한 10권 읽은 셈으로 치고, 면죄부를 받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요. ...

어? 내 코가 어디로 없어졌지? - CREBBP
어이없는 이야기를 더 어이없이 만드는 건 환상과 현실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방식이다. 소설은 이반이라는 한 이발사가 아침에 빵굽는 냄새를 맡고 아내의 눈치를 보며 커피도 사양한 채 갓 구운 빵을 먹는 매우 현실적이고도 세부적인 디테일로 시작한다. 날짜와 장소까지도 정확하게 서술되는 이 부분은 사실상 보통의 미스터리 서사를 읽는 독자들에게 상황의 작은 디테일들에 주목하게 하여 긴장감을 유발하시키지만 그렇게 조심조심 읽어가며 갑자기 맞닥뜨리는 건 건 황당함 자체다. 마치 어둠속에서 더듬어 가다가 웅덩이에 빠진 기분이랄까. 그러면서도 그...

가즈오 이시구로 <남아있는 나날> - lea266
남아 있는 나날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송은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가즈오 이시구로, 이 이름은 이제 나의 시기와 동경의 대상이 될 작가의 이미지로 남을 것 같다. 어떻게 이렇게 완벽한 글쓰기를 할 수 있을까. 이렇게 불필요한 문장 하나 없이 완결미를 갖출 수 있을까. 어찌하여 소리치지 않고 조곤조곤 설명하는 투의 문체로 독자를 완전히 몰입하여 숨죽이고 책장을 넘기다 한숨을 토해내게 만들까. 작가가 되기 위해 전생부터 준비하고 태어난 사람같다. <남아있는 나날>로 이시구로는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삼백 페...

... - 푸른희망
덤덤하다는 것은 힘든 적은 없었다. 세상은 감정을 드러내고 살기엔 너무 빠르고 험한 곳이었다.감정은 나의 가장 약한 속살을 드러내는 행위이다.단단하게 무장하고 누구에게도 무시당하지 않고 크게 눈이 띄지 않고 살아가기 가장 좋은 방법은 그냥 덤덤하게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머리로 계산하며 살아가는 일이다쉽게 상처받을 일도 없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일도 없이 딱 그만큼의 거리를 두고 그저 바라보고 눈길을 돌리면 그뿐인 정도의 관계망이 가장 편하다고 생각했다.어디서 운다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었다.운다고 해결될 일은 하나도 없다는 걸 ...

입원일이다. 아침 베란다에서 커피를 마시고 담배 한 대를 몰래 피운다. 맛있다. 풍경은 흐리다. 전철 역으로 사람들이 바쁘게 걸어간다. 세상의 일상은 무사하다. 그 무사함에 팩트들이 들어있다. 팩트는 엄혹한 칼이다. 정확하고 용서가 없다. 이 칼의 무심함에 나는 기록으로 맞선다. 기록은 사랑이다. 사랑은 희망이다. 뭄ㄴ득 파란 버스가 풍경안으로 들어와서 정류장에 선다. 그리고 떠난다. 카프카의 마지막 일기가 맞았따. ˝모든 것은 오고 가고 또 온다‘- P60


유쾌하게 읽는 성의 세계사... - 구단씨
플로베르는 정열적이고 허물없는 이집트인들에게 큰 인상을 받았다고 일기에 적었다. 플로베르의 이집트 여행 체험은 그의 작품에도 반영됐다. 플로베르는 이집트에 다녀와서 7년 뒤에 『마담 보바리Madame Bovary』를 발표했다. 이 소설은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글로벌 베스트셀러가 됐다. 거기엔 자유롭게 욕정을 즐기고 싶어 하는 엠마 보바리Emma Bovary 부인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에로틱 세계사 220페이지) 대문호 플로베르가 이집트로 섹스 관광을 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사람 누구? 나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의 작품...

냄새는 권력이다 - cyrus
혼자 사는 남자의 방에는 퀴퀴한 홀아비 냄새가 진동한다. 내 방도 예외가 아니다. 냄새를 없애려고 실내 방향제와 섬유 탈취제를 뿌려봤지만, 별 소용이 없다. 몸에 나는 체취에 굉장히 많이 신경 쓰는 편이다. 친구, 그것도 절친한 벗으로부터 ‘홀아비 냄새가 난다’라고 농담 섞인 핀잔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말을 듣고 난 이후부터 한동안 대인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느꼈고, 자신감이 떨어졌다. * 피에르 라즐로 《냄새란 무엇인가?》 (민음인, 2006)* [품절] 마르코 라울란트 《호르몬은 왜?》 (프...

셰익스피어 전집에 대하여... - oren
“만일 전 세계의 도서관이 불타고 있다면 나는 뛰어 들어가 『셰익스피어 전집』과 『플라톤 전집』 그리고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구해낼 것이다” - 랄프 왈도 에머슨 * * *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각자 나름대로 얼마쯤의 '독서 목표'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목표들은 처음엔 대체로 소박하게 시작하는 게 보통인 듯하다. 왜냐하면 읽어야 할 책들이 얼마만큼 많은지를 처음부터 자세히 가늠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누가 처음부터 무턱대고 '1만 권의 독서'를 목표로 하겠으며, 어느 누가 처음부터 '플라톤 전집'과 '셰익스...

내가 있는 곳, 지금 여기. - 다락방
외국어를 잘 하는 것은 언제나 내 로망이지만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외국어를 잘하는 것이야말로 노력이 필요한 것이므로. 나는 사실 노력에는 큰 재능이 없는 것 같아. 잘하고 싶다는 욕망만 있지 잘하고자 하는 의지가 부족해, 항상 외국어 공부할거야! 라고 마음 먹고 흐지부지 또 외국어 공부 안하는 내가 되고야 만다. 얼마전에는 프랑스어를 읽어보는 것 만이라도 하고 싶어 프랑스어 교재를 샀다. 스프링분철로 주문해서 받은 뒤, 한 번도 펼쳐보지 않고 한달째 방치되고 있다. 책상 위 프랑스어 교재를 볼 때마다 내가 무슨 짓을 한것인가, 이...

이름을 따라 이름 이전의 이름을 만나러 가는 여행 - timeroad
지난 초겨울 딸과 함께 서해안의 구시포(해수욕장)에 가는 길이었다. '해가 넘어가는' 풍경이 좋아 제철이 아닌 때에도 주말이면 찾는 발길들이 상당한 포구다. 그즈음에 16년 만에 나온 『곽재구의 포구기행』(해냄, 2018) 개정판을 살피고 있었다. 이 책(초판)에 구시포를 다룬 글이 있다(<천천히, 파도를 밟으며, 아주 천천히…… -전북 고창군 상하면 구시포>). 그렇다고 새삼스럽게 이 책 때문에 구시포를 찾았다기보다는, 가까이에 구시포가 있어 찾아가는 길에 마침 개정판이 나와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인근 지리에 좀 익...

공간은 생이 완성되는 과정의 목격자 - 자목련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은 한때 가장 떠나고 싶었던 곳이다. 아이러니하게 인생은 나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만들었다. ‘정착’이라는 단어를 쓸 정도는 아니지만 말이다. 지방의 소읍에서 시간의 속도는 아주 느리다. 지방 국도의 규정 속도로 살고 있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고 내 삶의 속도는 적어도 그렇다. 돌아왔다고는 하나 익숙한 곳은 아니다. 여전히 나는 이곳에 대해 잘 모르고 맛 집이나 관광지를 묻는 질문의 답을 찾지 못한다. 그것들에 상관없이 살아갈 뿐이다. 줌파 라히리의 『내가 있는 곳』을 자꾸만 ‘내가 사는 곳...

삶은 여행 - 뚜유
나는 96년에 대학에 입학했다. 그리고 내가 3-4학년 즈음 배낭여행 붐이 일어서 그때부터 소설 창작 수업에서 아이들이 쓴 소설에 이국의 풍광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당시에 난 과외를 세 개 정도 하던 때라 물론 그 대열에 동참하지는 못 했다. 해외여행을 못 간 것보다 그런 경험을 쓸 수 없다는 데에 더 좌절하곤 했다. 경험의 빈곤은 오래된 내 컴플렉스였다. 이십대 후반에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을 가게 되어 드디어 해외에 갈 명분이 생겼다. 태국의 한 휴양지였을 것이다, 아니. 필리핀이었나. 그때는 엄청나게 상처가 되었던 일인데 지금...

[D-1]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기대하며. - IshaGreen
몇 달 전부터 마블빠로서 #어벤져스엔드게임 을 기대하며 쓴 글인데딱히 게재할 플랫폼을 찾지 못해 그냥 여기에 올린다. (아직 안 본 분은 없겠지만 인피니티워 및전작들의 스포일러 많음)곧 어벤져스 원년 멤버들의 여정의 대미를 장식할 『어벤져스: 엔드게임』이개봉한다. 전 세계가 타노스에게 이를 갈고 있기에, 우리의히어로들이 타노스를 어떤 전술로 어떻게 이기냐에 대한 관심과 추측이 각종 커뮤니티, 인터넷 매체와 유투브등에서 난무하고 있지만 그건 감독들이 알아서 잘할 테니 아묻따 믿고 감상하고 싶고, 그보다는 도대체어떤 도덕적인 딜레마와 ...

마음에 그늘이 졌다 - 단발머리
책 속의 글자가 두 개로 보이거나 3D 입체로 보이는게 타미플루 때문인지 아닌지 끝까지 알아 내지 못 했다. 감기약만 먹을 때는 감기약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타미플루를 먹을 때는 타미플루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감기약과 타미플루를 먹지 않는데도 글자가 두 개로 보였다. 피곤하면 글자가 두 개로 보이던가. 그랬던가, 생각해봤다. 뿌연 글자와 글자를 헤치며 책을 읽다가, 이러면 더 눈이 나빠질지도 몰라, 하면서 책을 덮었다. 매일 아이가 학교에 가고, 매주 내가 있던 공간에 갈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이 그리웠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아팠다...

루소, 『언어의 기원에 관한 시론』 단상 - 박효진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금부터 여러분의 음악공부를 시작하겠어요.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음악이란 무엇인가 한 마디로 설명을 해보겠어요. 음악이란 사람의 감정과 사상을 나타내는 시간적 예술이라고 하죠. 즉 아무리 아름다운 음악이라도 시간만 지나면 다시 들을 수 없는 것이란 뜻이겠죠. 여러분은 들어서 잊지 말고 영영 머리 속에 기억해야겠죠?”루소의 <언어의 기원에 관한 시론>을 읽으면서 머리 속을 내내 맴돌았던 이 구절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음반인 디제이 소울스케이프의 첫 앨범 첫 트랙에 샘플링된 음원에서 나오는 강연이...

자연적 진보를 통해 모든 문자언어는 명료성을 획득함으로서 성격의 변화를 겪게 되고 힘을 잃게 된다.- P57


포노 사피엔스는 문화적 유전자이다 - 카알벨루치
1 ‘포노 사피엔스’라는 이 용어는 2015년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특집 기사에 처음 등장한 단어이다. 저자는 이 용어가 나오기 전에 ‘스마트 신인류Neo-Smart_Human’이란 말을 썼다고 한다. 스마트폰이 어떻게 세상을 혁명적으로 바꾸는 지에 대해 저자 최재붕 교수는 아주 시원하게 그리고 명쾌하게 이야기해 준다. 2 2007년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을 출시했다. 자신이 만들어놓은 ‘아이폰’이 현재의 ‘포노 사피엔스’로 이어질 운명을 잡스 자신조차도 예측하지 못했...

˝무한한 재미˝에 내몰린 개인들 -
미국 소설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와 영국 사상가 마크 피셔는 모두 50살이 되기 전에 자살했다. 그들은 왜 자살했을까? 표면적으로는 둘 모두 우울증을 앓았다. 그들 몸 안의 생물학적, 화학적 병인이 그들을 자살로 이끌었을까? 두 작가의 글을 읽어보면 그들이 누구보다도 예민하고 집요하게 후기 현대사회의 병폐들을 적어놓은 걸 느낄 수 있다. 세상의 거의 모든 것들이 자본화 되어 돈을 위해 총동원되는 세계가 그들에게 계속 경보음을 울리고 머리를 두들겼던 것 같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픽션의 미래와 현격하게 젊은 작가들」에서 대학...

겨울서점과 카프카와 박완서의 말 - 키치
홍대 경의선책거리에서 열린 세계 책의 날 행사에 다녀온 지 오늘로서 일주일이 지났다. 작년 세계 책의 날 행사는 우천으로 취소되었기에 올해 행사가 무척 기대되었다. 다행히 올해는 날씨도 좋고(행사 후반에는 비가 내린 듯하지만) 참가한 출판사나 관람객도 많아서 성황리에 잘 마친 듯하다.주최측으로부터 장미꽃 한 송이와 책 한 권도 선물받았는데, 선물받은 책이 마음에 안 들어 얼굴을 찌푸리고 있자니 어떤 분이(아마도 행사요원이었던 듯하다) 책을 2만원 상당의 책 교환권으로 바꿔주시고 계셨다. 냉큼 달려가 가지고 있던 책을 반납하고 교환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