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사람에 대해 생각할 일이 많았다. 병원에 있으면 좋든 싫든 인간을 관찰하게 된다. 한정된 공간에 다양한 연령, 출신, 배경의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일 것이다. 평소라면 서로 전혀 관련 없을 사람들이 단지 같은 시기에 이런저런 질병을 앓았다는 이유만으로 한 공간에 모이게 된다. 그러고는 며칠씩 숙식을 함께 한다. 아픈 사람이든 보호자든 쉬 그 공간을 떠나기 어려우니 거의 반강제적으로 병실에 머물게 되고 그러다 보니 좋든 싫든 낯선 타인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
나는 내가 병자로 입원하든 보호자로 있든 병실에서 오가는 대화가 싫고, 병실에 같이 있는 사람들이 친해지려고 말 거는 것은 더더욱 싫다. 서로 딱히 관심도 없으면서도 병실에서의 무료함을 달래고자 온갖 질문을 해댄다. 어디가 아파서 왔느냐는 질문에 대답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나이, 사는 곳, 직업, 관계, 결혼 유무... 병실에 있는 사람들의 연령이 높을수록 이 무례한 질문의 개수와 종류는 다양해진다. 커튼을 절대 열지 않을 것. 아무리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라도 인사하지 않고, 먹을 것을 주더라도 거절할 것...... 선을 넘지 못하게 하는 수칙이다.
그 조그만 공간에서도 권력자가 생긴다. 목소리가 큰 사람일수록 권력을 갖기 쉽다. 어리석은 사람일수록 권력자에게 빌붙어 알랑방귀를 뀌어댄다. 그게 뭐라고. 이곳에 며칠이나 있는다고. 그러고는 그새 공동의 적을 만들어 쑥덕거린다. 게다가 우습게도 질병에도 계급가 지위가 있는지 서로 자기가 더 중병이라고 우겨댄다. 이 세계의 축소판 같기도 하다. 인간은 혼자 있을 땐 자기 존재의 비루함을 감추는 시늉이라도 할 줄 아는데 여럿이 모이면 다 같이 비루해지는 꼬락서니로 폭주한다. 그러니까 인간은 모이지 말아야 한다.....
인간에 대한 혐오가 깊어질 때쯤, 떠오르는 작가가 있다. ‘토마스 베른하르트’- 베른하르트만큼 인간을 혐오하고 조국 오스트리아를 증오했던 사람이 또 있을까. 그의 장광설을 읽다 보면 이렇게까지 인간을 혐오할 일인가 싶어지다가도, 인간이란 존재가 그렇기에 이럴 수밖에 없지, 싶어지기도 한다. 병실에서 인간이란 존재를 생각해보기도 하고, 또 그즈음 친구 몇을 마음속에서 완전히 정리했기 때문인지 베른하르트의 <소멸>과 <비트겐슈타인의 조카>가 생각났다..... <소멸>은 현재 절판인데 이대로 묻히기는 참 아까운 작품이고, <비트겐슈타인의 조카>는 내가 읽었던 판본과는 출판사를 달리하여 계속 출간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이 작품도 조용히 묻히기에 아깝기는 마찬가지라서 예전에 썼던 글을 올려본다.
<비트겐슈타인의 조카>는 소설이지만 그저 픽션은 아니다. <소멸>의 작가 토마스 베른하르트와 철학자로 유명한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조카’ ‘파울 비트겐슈타인’과의 12년간의 우정의 기록이다. <소멸>의 토마스 베른하르트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이 작품의 느낌도 대충은 감 잡을 수 있다. 토마스 베른하르트는 이 작품에서도 여전히 자신의 조국인 오스트리아를 혐오하고, 비정신적인 세계에 역겨움을 토로한다. 물질적인 것, 속물적인 것, 인간의 허위의식 등 그에게 역겨운 그 모든 것에 쓴소리를 해대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이 <소멸>에 비해 조금은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 드는 것은 순전히 ‘파울 비트겐슈타인’ 그 때문이다. 아니, 파울과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우정 때문이다.
파울 비트겐슈타인은 오스트리아에서는 내로라하는 가문인 비트겐슈타인가(家) 출신이다. 물론 그의 삼촌인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역시 그렇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가문에서는 내놓은 사람들이었다. 두 사람 모두 그 명망 있는 가문, 재벌 가문과는 어울리지 않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조카와 삼촌 모두 자신의 부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물질적인 세계와는 결별한 삶을 살았고 오로지 정신적인 세계에 줄곧 탐닉했기 때문이다.
비트겐슈타인 가문에서는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이나 조카인 파울 비트겐슈타인, 이 두 사람을 모두 미친놈 취급을 했다. 비트겐슈타인이 철학자로서 그 이름을 떨쳐도 가문에서 돌아오는 소리는 비아냥거림과 멸시뿐이었다고 한다. 철학자로 유명해진 삼촌에게도 이럴진대, 조카인 파울, 토마스 베른하르트와 우정을 쌓았던 그 파울 비트겐슈타인을 향한 그들의 경멸은 오죽했을까. 삼촌 못지않은 천재성을 지녔던 파울 비트겐슈타인은 안타깝게도 정신병이 발병해 35세 이후로는 늘 정신병원을 들락날락 했기 때문이다.
파울이 정신병으로 병원을 들락거릴 때 토마스 베른하르트는 폐병으로 병원 신세를 지게 된다. 한 사람은 정신병, 한 사람은 폐병- 정신과 몸에 병을 앓으며 더욱 친근한 우정을 나누게 된 두 사람. 미치광이와 폐병환자가 어쩌다 친구가 되었을까? 그들의 우정은 한 음악회에서 우연히 시작되었다. 파울은 클래식 음악(특히 오페라)에 엄청난 애정을 지녔고 그로 인해 상당한 식견을 갖춘 사람이었다. 그렇게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그들의 우정은 꽃을 피운다.
음악, 철학, 정치, 예술 등 온갖 정신적인 대화를 나누며, 비정신적인 세계에 똑같은 혐오감을 표현하며 그들의 우정은 깊어진다. 조국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낼 때도 사람들의 무지와 허영, 물질에 대한 집착을 비판할 때도 그들은 한 목소리였고 뜻을 같이 했다. 파울 비트겐슈타인과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12년간의 우정의 기록을 읽다 보면 그들은 이 세상에서 병을 앓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아니었나 싶어진다.
두 사람은 물질적인 것이 최선으로 여겨지는, 비정신적인 이 세계를 살아가기엔, 익숙해지기엔 너무나 예민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 예민함이 한 사람에게는 정신병으로 또 다른 한 사람에게는 폐병으로 드러났으리라. 파울이 먼저 죽고 베른하르트는 끝끝내 그의 무덤을 찾아가지 않는다. 베른하르트에게 파울의 죽음은 죽음 그 자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염증 나는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정신적인 세계를 뜨겁게 추구했던 파울은 미치광이도 아니었을뿐더러, 그런 그의 죽음은 육체의 소멸이기는 하지만 정신은 여전히 살아 숨쉬기에, 진정한 죽음은 아니었던 게 아닐까. 이 세상에서 정말 죽은 사람들, 살아 있지만 무덤에 갇혀 있는 사람들은 ‘정신적인 삶’을 포기한 채 좀비처럼 먹고 싸고 자고 물질의 구축에만 온 생애를 보내는 이들이 아닐까.
<비트겐슈타인의 조카>는 ‘파울 비트겐슈타인’과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삶을 만나 볼 수 있어 색다른 경험이었지만 무엇보다도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또 다른 면목을 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소멸>을 읽었을 때 나는 이 작가는 바늘로 찔러도 피한방울 나오지 않을 만큼 독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오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에게도 역시 인간에 대한 애정은 있었다. 파울에 대한 애정이나 그가 이 책에서 언급한 또 다른 사람, ‘나의 삶의 사람’이라고 부르던 그녀를 향한 무한한 애정과 신뢰가 느껴진다.
주변을 돌아보면 사람들은 너무나도 쓸데없는 만남에 많은 시간을 보낸다. 의미 없는 인간관계를 맺고, 그 인간관계가 자신의 많은 것을 보여준다고(인맥이 어쩌고 하면서) 착각한다. 그러나 그렇게 관계 맺은 인간들이 과연 자신의 정신적인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따져본다면 지금 당장 잘라버려도 하등 문제될 것이 없는 관계들이 부지기수다. 베른하르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생애에 정말 어떤 의미를 준 사람을 우리는 다섯 손가락만으로도 다 셀 수 있으며, 우리가 솔직하다면 이런 사람을 셀 때 단 하나의 손가락도 필요하지 않을 텐데도 다섯 손가락을 다 써야 한다고 믿는 우리의 파렴치함에 나는 저항한다.’ (<비트겐슈타인의 조카>, 현암사, 110쪽)
폐병 환자였던 베른하르트와 미치광이 파울 비트겐슈타인의 결코 길지 않았던 우정의 기록은 이 염증 나는 세상을 견디기 위해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조용히 깨닫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