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의 문학작품을 읽다 보면 그는 어쩌면 칼럼이나 에세이를 더 잘 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의 대표작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1984>나 <동물농장> 같은 작품들은 사실 어떤 면에서는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지나치게 뚜렷해서 오늘날 읽기에는 조금 촌스럽게 여겨지기도 한다. 이렇게 독자에게 전하고자하는 바가 분명한 작가라면 칼럼에서는 더욱 거침없이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오웰의 칼럼을 엮은 <더 저널리스트: 조지 오웰>은 그러한 짐작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준다. <더 저널리스트: 조지 오웰> 이전에 오웰의 에세이나 칼럼을 맛볼 수 있었던 책으로는 대표적으로 <나는 왜 쓰는가>가 있다. 예전에 이미 이 책을 통해 그의 단순 명료한 문장과 명쾌한 생각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최근 출간된 <더 저널리스트: 조지 오웰>은 그동안 국내에서 보기 힘들었던 그의 ‘칼럼’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준다.

오웰은 영국 일간지 <트리뷴>에 근무하며 매주 칼럼을 썼다. 얼마나 많이 썼는지 때로는 세 편이나 네 편이 한꺼번에 실리기도 했다. 이 책은 그런 오웰의 칼럼을 ‘평등’, ‘진실’, ‘전쟁’, ‘미래’, ‘표현의 자유’ 등 주제별로 엮어 다양한 글을 실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책을 크게 관통하는 흐름은 ‘전쟁’과 ‘파시즘’ ‘자유에 대한 통제’ 등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오웰은 1차 세계대전 및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시대에 저널리스트이자 작가로 살았으며 스페인내전에 참전하기도 했다. 그러니 그의 관심사는 마땅히 전쟁과 당시의 세계 구조에 있었으리라.

그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전쟁과 파시즘, 강제수용소, 고무경찰봉, 원자 폭탄’에 관한 글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다. 오웰은 자신의 관심사가 그럴 수밖에 없음을 이렇게 말한다. ‘침몰하는 배에 타고 있다면, 머릿속이 온통 침몰하는 배에 관한 생각일 수밖에 없다.’고. 그럼에도 오웰은 ‘내가 만약 평화로운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정치와 무관한 글을 썼을 것’이라고 하기도 했다. 정치와 무관한 글을 쓰는 조지 오웰이라니, 언뜻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럴 만큼 그는 파시즘과 자본주의, 공산주의와 사회주의가 뒤섞여 요동치던 시대에 끊임없이 영국의 제국주의를 성찰하고 자본주의를 경계하는 글을 썼다.

이런 오웰의 태도는 <나는 왜 쓰는가>에서도 이미 엿볼 수 있었는데, 그는 거기에서 ‘나는 작가다. 모든 작가는 정치에 거리를 두려는 충동을 느낀다. 평화롭게 책을 쓸 수 있도록 내버려두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런 이상은 기업형 슈퍼마켓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남기를 바라는 구멍가게 주인들의 꿈보다도 실현 불가능한 것이 되어가고 있다.’ (<나는 왜 쓰는가>, 63쪽)고 말한 바 있다.

<나는 왜 쓰는가>에서 오웰은 ‘어릴 때 어떤 식으로 성장했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한 작가의 동기를 헤아리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며 글의 주제는 그가 사는 시대에 따라 결정된다고 보았다. 또한 그는 인간이 글을 쓰는 동기를 네 가지로 보았다. 그가 꼽은 첫 번째 동기는 순전한 이기심이다. ‘똑똑해 보이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고 싶은, 사후에 기억되고 싶은, 어린 시절 자신을 푸대접한 어른들에게 앙갚음을 하고 싶은’ 등등의 욕구가 여기에 속한다. 두 번째 동기는 미학적 열정으로,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 또는 낱말과 그것의 적절한 배열이 갖는 묘미에 대한 인식, 어떤 소리가 다른 소리에 끼치는 영향, 훌륭한 산문의 견고함, 훌륭한 이야기의 리듬에서 찾는 기쁨 등을 의미한다. 세 번째로 역사적 충동이 있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을 알아내고, 그것을 후세를 위해 보존해두려는 욕구가 여기에 속한다. 그리고 끝으로, 정치적 목적이 있다. 오웰은 여기서 ‘정치적’이라는 말은 가장 광범위한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밝히며 ‘이 동기는 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어떤 사회를 지향하며 분투해야 하는지에 대한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욕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어떤 책이든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인 것이다. (<나는 왜 쓰는가>, 292~294쪽) 그런 생각을 지닌 오웰이기에 정치적 색채가 짙은 문학 작품에 이어 그보다 더 정치적인 칼럼을 쓴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런 흐름은 <더 저널리스트: 조지 오웰>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이 책의 오프닝 글에서 오웰은 ‘나는 사람들이 정치적 투쟁을 계속해야 한다고 믿는다. 죽을 게 뻔한 환자라 하더라도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의사처럼 말이다.’ 라고 말한다. 그러고 나서 그는 인간의 광기가 빚어낸 전쟁과 파시즘에 맞서 진실을 전달하는 데 두려움 없이 앞장선다. 때로는 남들이 하기 어려운 말을 함으로써 곤란한 상황에 맞닥뜨리기도 한다. 오웰은 사회 부조리와 불평등에 누구보다 민감했다. 국수주의가 만연하는 시대를 살면서도 인도 식민지 국민과 유색인종, 소외 계층의 아픔을 잊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때로는 비난의 화살이 빗발치기도 했다. 물론 그가 소외된 이들의 굶주림과 추위에만 관심을 기울인 것은 아니다. 점차 고립되어 가는 도시 생활 속에서 인연을 만들고자 애쓰는 젊은이들의 문제를 고민하기도 한다. 실제로 ‘배우자 모집 광고에 대한 생각’이라는 칼럼에서는 그토록 완벽한 남녀가 신붓감 또는 신랑감을 구하기 위해 신문에 광고까지 낸다는 사실이 이해하기 힘들다고 꼬집으며 그 칼럼을 읽는 이를 미소 짓게 만들기도 한다. 그는 또, 설거지와 같은 단순하기 짝이 없는 일을 끔찍이도 싫어했는지 일찌감치 가사노동 해방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이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오웰이 자신의 칼럼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바는 사회가 무엇을 지향해야 하며, 이때 지식(인)과 진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였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인종 차별도, 혐오도, 전쟁도, 파시즘도 모두 인간의 무지에서 비롯되었으며, 무지가 더 큰 악을 불러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은 1947년이다. 유태인 혐오주의가 부끄러운 일이라는 걸 대부분 알고 있다. 그러나 이를 대체할 희생양을 찾아 나선 셈이다. 인종 간 혐오와 집단 망상은 이 시대 삶의 방식 일부나 다름없다. 사람들이 조금만 덜 무식했다면 이런 혐오와 망상의 영향이 지금보다 덜 했을지도 모른다. (.....) 조금이라도 지식을 얻고 나면 사람들이 조금은 덜 악랄하게 굴지도 모른다. (<더 저널리스트: 조지 오웰>, 50~51쪽)

우리 시대의 가장 큰 과제 중 하나는 사람들이 자기가 속한 우물 밖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에도 신경 쓰도록 만드는 일이다. (.....) 시간이 지나고 끔찍한 상황이 쌓여갈수록 인간의 마음은 ‘자기 방어적 무지’를 뿜어내는 듯하다. (<더 저널리스트: 조지 오웰>, 76~77쪽)


이런 오웰의 생각은 1949년 그가 지인에게 보낸 편지 한 구절에서도 잘 드러난다. ‘공산주의나 파시즘을 물리치려면 우리도 그들만큼 광신적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결론짓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 말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 광신적인 믿음을 타파하려면 반대로 광신적이지 않게, 지성을 활용해야 한다. 호랑이처럼 행동해서는 호랑이를 잡을 수 없다. 그래서 인간은 두뇌를 사용해 소총을 만들지 않았던가.’

오웰은 ‘지구가 사실은 다른 행성에서 빌려 쓰고 있는 정신병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 정신병원에서 인간답게 사는 방법을 그는 ‘지성’에서 찾은 듯하다. 제대로 살아남아 이 사회 어느 한 부분이라도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기 위해 사람들이 ‘깨어 있기’를 촉구했다. 그리고 오웰 자신이 바로 그런 인물이었다. 지식(인)의 역할을 강조한 오웰. 그러나 그 지성이 단순히 머리 좋음을 뜻하거나, 지식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가슴으로 뜨겁게, 그러나 머리는 냉철하게 판단하는 지성을 의미할 것이다. 그래서 오웰의 ‘정치적’인 글들이 언제나, 그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속을 뜨겁게 뒤흔드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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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9-20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왜 쓰는가>이거 몇년전에 사서 묵혀두고 있는데...오웰은 정말 자기 철학대로 삶을 살았던 사람이란 생각이 듭니다! 이 책도 기회되명 읽어봐야겠네요 늘 글 잘 보고 있습니다 잠자냥님 서재에서 책 많이 추천 받았습니다 ㅎㅎ

잠자냥 2018-09-20 14:57   좋아요 1 | URL
<나는 왜 쓰는가>에는 정치적인 글 말고도 나름 낭만적인 에세이도 종종 보입니다. 언제 꼭 읽어보세요~
참, 그리고 감사합니다. 얼마전 ‘좋아요‘ 폭풍 세례 ㅎㅎㅎㅎ

카알벨루치 2018-09-20 14:59   좋아요 1 | URL
서재 들어가서 놀다가 잠자냥님 글 보고 존 치버 일기도 구매하고 이렇게 저렇게 잘 놀았어요 글이 넘 좋아요
 
더 저널리스트: 조지 오웰 더 저널리스트 2
조지 오웰 지음, 김영진 엮음 / 한빛비즈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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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파시즘, 모든 차별에 극렬하게 반대한 조지 오웰- 그런 틈에서도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보듬고, 심지어 가사노동 해방에도 관심이 많았던 그. 그랬기에 <1984> <동물농장> 같은 작품이 탄생하지 않았을까? 오래전 쓰인 글들이지만 그의 주장은 오늘 여기 이 땅에서도 새겨들을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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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끄네 집 - 고양이 히끄와 아부지의 제주 생활기
이신아 지음 / 야옹서가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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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존재를 알게 되고, 가까워지고, 사랑하게 되고, 정들고, 그러다가 그 존재가 거의 모든 것이 되는 과정을 히끄를 통해 담담히 보여준다. 히끄 때문에 내내 미소지으면서 읽다가 어느 순간 눈물이 나는 신기한 책. 우리 냥이들과의 첫 만남도 떠오르고 그만큼 책임감도 더 커진다. 히끄야 건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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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지인의 죽음 해미시 맥베스 순경 시리즈 3
M. C. 비턴 지음, 문은실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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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시에게 여자들의 육탄공격이 이어지는 사이에 그와 프리실라의 관계는 어찌되려는지 점점 더 흥미로워진다. 일어나는 사건은 양념일뿐? ㅎㅎ 참, ‘외지인의 죽음’ 편은 다 읽고 나서 보면 표지 그림이 아주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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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년 - 열린책들 세계문학 052 열린책들 세계문학 52
A.스뜨루가쯔키 외 지음 / 열린책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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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나는 책을 감당하지 못해 드디어 이북리더기(크레마 사운드)를 마련했다. 사둔 종이책이 많아서 그것부터 읽느라 이북리더기에 이렇다 할 작품을 구매해서 다운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드디어 처음으로 산 책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년>이다. 전자책 시장은 종이책에 비해 아직은 선택의 폭이 넓지 않아서 사고 싶은 책이 드문데, 다행히 열린책들 세계문학시리즈에서는 좀 구매하고 싶은 책이 있더라.

이북리더기로 한참 재미나게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년>을 읽고 있을 때였다. 3분의 2쯤 읽었을 때였나? 그러니까 거의 발단-전개-위기를 지나 절정에 이르렀을 즈음이었는데, 책을 읽던 중 잠시 딴 짓을 하다가 다시 리더기를 집어 들었더니, 기계가 화면 보호 상태에서 멈춰버렸다. 단추란 단추는 모두 눌러보면서 기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게 하려고 온갖 애를 썼는데도 먹통이다. 아아아아- 이것이 바로 시스템 다운이란 말인가.

리셋 버튼을 누르기 위해서는 바늘이 필요했다. 아주 작은 그 구멍 안에 바늘을 집어넣어야만 했다. 아니, 그런데 집에 바늘이 없다! 아아아아. 이 무슨 날벼락인가. 그날 밤 나는 리셋 버튼을 누르기 위해, 그리하여 굳게 봉인된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년>의 절정에 다시 접속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강구했지만 끝내 실패하고 궁금증을 가득 안은 채 잠들어야만 했다. 내일 꼭 바늘을 준비하리라…….

다음날, 옷핀을 구해서 리셋 버튼을 누르는 데 성공했다. 크레마 사운드가 다시 작동한다. 자, 이제 다시 읽어볼까! 기쁜 마음으로 읽던 페이지를 찾는다. 아니,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기기가 읽던 페이지를 찾아가는가 싶더니 배터리가 0%라면서 아예 전원이 나가고 말았다. 화면 보호 상태로 밤새 켜진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배터리가 방전된 것이다. 하아. 거참, 나는 이북리더기를 충전하느라 몇 시간을 또 기다려야만 했다.

이런 이야기를 구구절절 하는 까닭은, 바늘을 찾고, 충전하는 동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절정, 드디어 진실에 닿을 무렵, 잘 작동하던 기기가 난데없이 다운되고, 가까스로 리셋에 성공하니, 이제는 충전을 해야만 그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사태. 바로 이 상황이 혹시, 이 책, 이 작품의 진실에 닿지 못하게 하려는, 아니면 그 시간을 최대한 지연시키려고 하는 어떤 거대한 세력이 기획한 하나의 음모가 아닐까 하는…….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년>의 진실에 닿기까지 ‘아직 10여 쪽’- 그런데 그걸 이 지구의 어떤 거대한,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세력이 방해하는 것이다.

망상이 지나치다고? 그러나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그래서 흠뻑 이야기에 빠졌던 사람이라면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도 남지 않았을까? <세상이 끝나기까지 아직 10억년>이 바로 그런 세계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연구에 몰두하던 천문학자 말랴노프에게 어느 날 갑자기 이상한 일이 시작된다. 아침부터 전화가 계속 잘못 걸려오고, 주문하지도 않은 식료품이 배달되지를 않나, 급기야 아내의 친구라면서 낯선(그렇지만 미모의) 여인이 찾아오기도 한다. 게다가 그 여인은 좀처럼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런 일로도 모자라, 이웃에 살던 스네고보이가 말랴노프를 만난 뒤로 시체로 발견된다. 이런 모든 정황은 말랴노프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형사는 그를 범인으로 단정 짓는 분위기이다. 그런데다가 이게 웬일인가? 알리바이를 증명해줄 여인, 아내의 친구는 그새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이 모든 상황이 그저 운 나쁜 어느 하루의 해프닝일까? 만일 당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지독하게 운이 나쁜 하루, 그렇지만 결국 다 좋게 해결될 일이라고 생각할 것인가? 혹시 이 모든 게 모종의 세력이 당신에게 가하고 있는 암묵적인 협박이라면?

동료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진실에 점차 다가가는 말랴노프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우주에 존재하는 어떤 4차원 문명이 오래전부터 말랴노프를 비롯해 바인가르텐, 구바르, 스네고보이, 글로호프 등을 관찰(명백히는 감시)하고 있던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천문학자, 정밀 공학자, 물리학자, 생물학자 등등 그들 모두는 ‘학자’로 지적 업무에 종사하면서 모두 현재 어떤 중요한 실험이나 발견을 마무리 짓는 단계에 와 있다는 점이다. 우주에 존재하는 그 4차원 문명은 그들의 연구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봐왔다.

그들의 연구가 어떤 지점에 이를 것 같으면(그러니까 절정에 이르러 어떤 결론을 도출할 과정에 다다를 즈음이면!), 4차원 문명은 그 연구를 저지하기 위해 최대한 자연스럽게 연출한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 예를 들어 바인가르텐에게는 어느 날 문득 연구소 소장 자리가 제의되거나 연구소에서 바캉스 스캔들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의 주의를 흩트리기 위해 희귀한 동전이 담긴 동전함의 발견되기도 한다. 모든 것은 우연이 아니다. 4차원 문명이 정한 대로 작동하는 것이다. 4차원 문명은 그들이 만일 협조한다면 모든 속물적 욕망을 기꺼이 충족시켜 줄 것이라고 약속한다. 그러면서 당장 바인가르텐에게 선물을 주는데, 그것은 직업 우표 수집가가 아니면 가치를 상상도 못할 정도로 희귀한 우표가 가득 담긴 꾸러미였다.

혹시 이런 일이 당신에게도 일어난다면 어떨까? 당신이 하는 어떤 일을 누군가가 내내 감시하다가, 그 일을 견제하기 위해 당신의 온갖 속물적인 욕망을 채워주겠다고 제안한다면? 당신은 자신이 하던 그 위대한(?) 일을 계속해나갈 것인가 아니면, 속물적 욕망이 가득 채워진 안락한 삶을 선택할 것인가? 이 책에는 그런 선택의 기로에 선 인물이 등장한다. 물론 이미 보이지 않는 존재인 ‘그들’의 협박에 굴복해 속물적인 욕망을 받아들이고 안락하게 살아가는 인물도 있다. 여전히 눈앞에 펼쳐진 그런 유혹에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 인물도 있고, 끝까지 그들에게 맞서 싸우기로 결심하는 인물도 있다.

그렇지만 그 4차원 문명, 세상이 창조된 때부터 존재했던 ‘9인 연합’이라는 존재에 맞서 싸우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인류의 모든 과학 업적을 수집하여 자신들이 지배’하고 ‘인류가 과학 기술의 진보를 자기 파괴의 목적에 이용하지 못하도록 통제’하는 일에 목적이 있는 그 전지전능한 이들에 맞서 싸우기는 쉽지 않다. 말랴노프의 말처럼 ‘만일 그들이 어떤 전투적인 외계인이거나 아니면 4차원의 세계로부터 온 흡혈귀 같은 침략자들’이었다면 상황은 훨씬 편했으리라. 그러면 ‘적어도 다른 모든 사람들과 운명 공동체’였을 테니까. 그러나 이들은 아무도 모르게, 철저하게 혼자서 파멸할 운명이다.
 
때문에 4차원 문명에게 항복하고 ‘변절자’와도 같은 삶을 살고 있는 한 인물에게는 비난의 감정보다는 연민이 든다. 나라도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그를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다. ‘항복한다는 것은 과히 유쾌한 일이 아니죠. 과거에 사람들은 항복한다기보다는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끊는 쪽을 택했죠. 무슨 고문이나 감방 생활, 아니면 처형당하는 것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수치스러워서 그랬지요.’라고 말하는 그. ‘용감한 자들 가운데서 자기만이 비겁한 게 수치스러’워서 다른 이들도 모두 똑같이 비겁하길 바라는 그. ‘자신의 추한 모습을 마주 대할 용기가 없는’ 그. 하지만 그가 안락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해도 그리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다. ‘아직 목숨은 부지하고 있지만 더 이상 예전의 자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서진 육체, 부서진 영혼…….

거의 모든 SF 작품이 그렇듯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년> 또한 SF 외피를 입었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소련 사회에 대한 은유로 읽힌다. 억압적인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자행되는 감시와 처벌. 체제에 위협이 되는 학자나 과학자 같은 지식인 무리, 협박과 회유. 그 속의 변절자 등등. “우리 앞에는 전쟁이 기다리고 있는 셈이야. 그들의 무기는 은폐야. 그러므로 우리의 무기는 폭로야. 우리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동포들에게 이 사건을 폭로하는 거야. 우리의 말을 믿을 정도로 상상력이 있고 또 한편 학계의 고위층 간부들을 설득할 만한 권위가 있는 동료들을 먼저 선정해야 해.”라는 베체로프스키의 말은 이 모든 일들이 그저 전지전능한 우주의 어떤 존재와 나약한 지구인의 싸움이 아니라, 공고한 체제와 그 체제를 위협하는 인물들과의 싸움임을, 그것의 은유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인류는 자신들도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이 미지의 4차원 문명의 주의를 끌게 되었다’. ‘우리는 무의식중에 4차원 문명의 영역으로까지 침범했고, 따라서 그들은 인류의 진보를 통제’하기로 결정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인간은 모두 어떤 위대한 일을 하기로 태어났는데, 대개의 인간이 그저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다 죽고 마는 것은 모두 저 거대한 우주. 4차원 문명, 9인 연합이 그려놓은 ‘큰 그림’의 하나가 아닐까. 우주의 항상성을 지키기 위해 보통의 인간들은 소시민으로 살다 죽는 것이다. 그리하여 ‘선의 이쪽 편에 남아 차를 마시거나, 맥주를 마시거나, 맥주와 보드까를 섞어 마시’며 ‘승진이나 소문 등에 관해 주절거리고, 자동차를 사기 위해 저축을 하고, 가사에 보탬이 되기 위해 따분하고 시시한 공식 연구에 손을 대며’ 그저 그렇고 그런 삶을 살다 가는 것은 아닐까.

물론 말랴노프에게는 사랑하는 아내 ‘이르까’와 토끼 같은 자식 ‘보브까’가 있고 그의 그런 소시민적 선택으로 아이는 무사히 자랄 것이다. 그러나 말랴노프가 생각하듯이 아이는 절대로 그가 바라던 유형의 청년으로 자라지 못할 것이다. 그에겐 이미 ‘자식이 그래 주길 바랄 권리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시민으로서 살게 될 자신을 그리면서 혼자 중얼거리는 말랴노프의 마지막 말은 무척 쓸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서글프다. ‘그리고 그 아이는 절대로 나를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중대한 발견을 할 수도 있었지만 너를 위해서 ....... >한 아빠일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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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 2018-09-14 14: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근 1년 고민하고 크레마 사운드 구매했어요. 전자책이 가벼워서 정말 좋긴한데 말씀하신 것 처럼 작동이 멈추는 일이 엄청 자주 생긴답니다. ㅜㅜ 그래서 저는 리셋버튼용 클립을 가방에 넣어가지고 다녀요. 안정적으로 작동하진 않지만, 대체로 만족하고, 지금은 전자책 구매량이 실제책 구매량보다 훨씬 많아요.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억년‘ 은 학자들끼리 대화할 때 학자들 속마음 유추할 수 있게 서술된 부분이 재밌었어요. 술 다 떨어져서 아쉬워 하는 장면 특히 좀 기억에 남아요. 온 우주가 저지할만큼 대단한 학자인데도 너무나 소심한 밀랴노프한테도 좀 정이 갔고요.
저는 공상과학영화를 무지 좋아하는데, 결국 내가 봤던 무수한 영화도 이런 소설같은 훌륭한 선행 텍스트(?)가 있어서 탄생했구나... 란 생각하면서 읽었어요. 억압된 체제에서도 많은 소련 예술가들이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고차원적 활동인 ‘창작‘ 을 했구나!! 란 생각에 잠시 좀 가슴이 벅차기도 했어요. (ㅋㅋㅋ 너무 거창해버려)

잠자냥 2018-09-14 15:44   좋아요 0 | URL
네, 저도 그 옷핀을 크레마 사운도 보관하는 가방에 넣어두었습니다. ㅋㅋ
전자책은 무엇보다 밤에 불끄고도 읽을 수 있어서 편리하더라고요. 암튼 저도 야금야금 전자책을 사게 되지 않을까 싶네요. 일단 보관과 휴대가 편해서 ㅎㅎ

말랴노프 참 인간적이라서 저도 정이 가더라고요. 마지막 선택도 짠하고... 맞습니다. 억압된 체제에서도 소련 예술가들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고차원적인 창작 활동을 했지요! ㅎㅎㅎ


희선 2018-09-15 01: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보기까지 이런저런 일이 있었군요 그래도 끝까지 보셨으니 누군가의 방해는 물리쳤네요 누군가는 누굴지... 어떤 책은그 책과 비슷한 일을 일어나게도 하지 않나 싶어요 그건 그저 우연이고 잠깐 기계가 잘못 움직인 것일 뿐이겠지만... 오싹한 일은 아니지만 도서관에서 빌려본 책을 돌려줬는데 그게 처리가 안 된 적 있어요 그 책에 무서운 이야기가 담겨 있었는데, 그 책에는 이 책을 보면 이상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말이 쓰여 있기도 해요

많은 사람이 4차원 문명, 9인 연합을 안다면 함께 싸우기라도 할 텐데, 몇 사람만 감시 당하고 하던 걸 그만둬야 한다면 힘들겠습니다 동료 찾기 어렵겠지만 아주 없지 않겠지요 소련에 살던 지식인이나 예술가 살기 어려웠겠습니다 그렇다 해도 다 사라지지 않은 걸 보면 사람, 인류한테 중요한 게 뭔지 말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희선

잠자냥 2018-09-15 10:02   좋아요 1 | URL
네, 하하하. 끝까지 무사히 잘 읽었습니다. 아니 그런데 도서관에 반납한 책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은 일 왠지 오싹하네요. 심지어 그 책에 무서운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니 더... ㅎㅎ 말씀하신 대로 책에 몰입하다 보면 정말로 그 책과 비슷한 일이 일어나거나, 일어나는 것처럼 착시효과가 생기는 것 같아요. 그것도 다 독서병의 하나일까요? ㅎㅎ

진지하게 써주신 댓글 보고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