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다. 책을 좋아한다. 책과의 사귐은 오래도록 지속된다. 책의 입장은 모르겠고 적어도 나는 그렇다. 어느 시절에는 세계 책의 날이라는 날이 있는지도 몰랐다. 온라인 서점의 존재도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해마다 서점에서 제공하는 빅데이터로 나의 취향을 알 수 있다. 어떤 분야의 책을 좋아하는지(순전히 구매에 대한 분석), 어떤 작가의 책을 관심 신간으로 기다리는지, 심지어 어떤 굿즈를 구매했는지도 보여준다. 네가 이렇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확인시킨다. 그 정보는 일정 부분은 맞고 나머지는 틀리다. 책을 구매했지만 읽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고 관심 신간에 체크를 했지만 수정하지 않아서 그대로 관심 작가로 남은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나는 책을 좋아하는 게 맞다. 이렇게 세계의 책을 날에 잊지 않고 포스팅을 하고 있으니까. 그러니 읽고 있는 책에 대해, 읽고 싶은 책에 대해 말해볼까. 지극히 현재의 나의 취향에 대해서 말이다. 다수의 작가들이 좋아하고 추천하는 작가로 알려진 W. G. 제발트의  『이민자들』을 읽고 있다. 제목처럼 이민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읽고 싶은 책으로는 은유의 『다가오는 말들』과 진은영, 김경희의 『문학, 내 마음의 무늬 읽기』두 권이다.


요즘 나는 말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말이 품은 감정과 말을 지키는 것들에 대해서 생각한다. 내 안에서 말이 이어지는 순간, 말이 소멸하는 순간을 생각한다. 책에서 들려줄 말이 어떤 말인지 모른다. 그 말에 대한 관심이 언제 사라질지는 모르지만 지금, 세계의 책의 날인 오늘은 사귀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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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친구를 만났다. 친구와의 만남, 보통의 일상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오랜만에 만났기에 순간순간 방점을 찍어야만 했다. 어쩌다가 이렇게 서로 얼굴을 마주하지 못하고 살았는지 사연은 많고도 길다.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없었을 수도 있고 삶에 집중하느라 그랬을 수도 있다. 여하튼 우리는 세월을 건너 만났고 늙고 있는 모습에 적잖이 놀라면서도 반가웠다.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다시 저녁을 먹고 다시 주스를 마셨다. 사이사이에 친구가 운전하는 자동차로 낯선 길을 다녔다. 처음 보는 봄이었고 처음 보는 삶이었다. 그 길을 돌고 돌아서 공간을 이동하면서 서로에게 집중했다. 꼬박 열 시간. 피곤함을 몰아낼 우리의 의지에 어떤 이름을 지어야 할까?

 

지난 삶을 돌아보기도 했고 슬픔을 꺼내놓기도 했고 맘껏 웃음을 터트렸고 쏟아지는 울음을 막지 않았다. 말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그간의 날들, 숨겨둔 비밀을 꺼냈다. 그러나 서로에게 강요는 없었다. 그저 말을 할 뿐이고 들을 뿐이다. 내 비밀을 말했으니 네 비밀도 말해주기를 바라는 눈빛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긴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다. 우리는 종종 상대의 비밀을 강요한다. 막역하다는 이유로, 친구라는 이유로, 선배라는 이유로.  그러니까 내 비밀을 상대에게 전함과 동시에 상대도 그럴 거라 믿는다. 어쩌면 그건 암묵적인 폭력이다. 그것은 감정에 상처를 입힌다. 내가 상대에게 어떤 이야기를 꺼내고 싶은 마음과 그 결정이 온전히 나의 것이듯 상대도 그렇다는 걸 우리는 종종 잃어버린다. 그래서 실수한다. 말을 하고 싶어도 말이 되지 않는 순간이 있다는 걸 우리는 모른다. 말이 되어 나오려는 순간, 말은 사라지기도 하고 말이 되어서 나오는 순간 말은 칼이 되기도 하고 약이 되기도 한다는 걸 우리는 놓친다.

 

말은 강하면서도 약하다. 그래서 때로는 침묵이 필요하다. 침묵으로 길들여진 관계는 깊고 단단해질 수밖에 없다. 그들 사이에 소리 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깊이, 그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라 부르기도 하고 우정이라 부르기도 할 것이다. 그것의 이름이 무엇이든 오래 지속될 수 있는 믿음을 키우는 일, 말을 고르는 일일지도 모른다. 말을 고르는 일, 정성을 들여 말을 만드는 일일지도 모른다.

 

깊은 밤 나를 안아주고 친구는 떠났다. 잘 도착했다는 문자나 통화는 서로 하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의 날을 살아가고 어느 날 문득 다시 만나 서로를 안아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런 시집을 꺼냈다. 김경미의 『고통을 달래는 순서』, 나희덕의 시선집 『그녀에게』.  두 시집의 제목을 오래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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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째 새벽예배를 드린다. 고난주간 특별 새벽 기도다. 특별이라는 말이 붙으면 뭔가 비장한 기분마저 든다. 그냥 새벽에 일어나는 일의 귀찮음을 이겨내는 중이다. 예배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시각엔 주위가 환해지는데 점자 그 환함이 커진다. 하루하루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느낌. 나의 피곤함도 변화한다. 첫날에는 너무 힘들어서 하루가 몽롱하고 기운도 없었는데 둘째, 셋째, 오늘은 점점 나아진다. 그래서 오늘은 이런 사진도 찍었다.

 

교회 예배실 입구에 있는 벚나무다. 제법 큰 나무라서 가지가 많고 꽃도 풍성하다. 주일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바람이 불 때면 춤추는 봄을 만날 수 있다. 사진에 담아봐야지 생각만 하다가 오늘 새벽에 찍었다. 제법 바람이 불었고 쌀쌀했지만 꽃은 아랑곳하지 않고 우아한 춤을 보여준다. 그런데 눈으로 보는 꽃과 사진으로 보는 꽃은 이렇게 달랐다. 새벽이라서 그 차이가 큰 것 같다. 보정을 할까 하다 말았다. 내가 본 벚꽃은 이 모습이니까.

 

 

 

 


 

내일 새벽에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차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조금씩 달라지는 나무. 살아있는 나무의 오늘을 보면서 대견하고 기특하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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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 소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76
앨리스 먼로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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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함은 열망을 부추긴다. 그리고 우리가 열망하는 것들은 대체로 불온하다. 그것을 선택했을 경우 주변의 시선을 생각하면 그렇다. 보편적이지 않거나 상식이라 말하는 주류가 아닌 비주류의 것들. 어떤 이는 가슴속 타오르는 열망을 꾹꾹 누른 채 살아가고 어떤 이는 과감하게 저지르며 살아간다. 소심한 심장을 지닌 나 같은 보통의 사람들은 둘 사이를 오가는 상상을 하거나 소설이나 영화를 통한 대리만족으로 대신한다. 간절함과 용기가 부족해서 그럴 수도 있다. 안전하고도 안정된 궤도를 이탈하면서 느낄 속도가 두려워서, 혹은 잠시나마 불온함을 열망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그 궤도를 벗어났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열망하기를 그만둔다. 단편집인데도 연작 소설이나 장편소설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거지 소녀를 통해 내 안의 갈증과 마주했다. 그것은 역시나 불온한 것들이었다. 그것들은 내 현재의 삶에서는 응원받을 수 없는 욕망이었고 실현될 수 없는 불가능한 삶들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앨리스 먼로의 소설 속 인물(여성)의 무모하면서 맹랑한 선택을 지지하게 된다. 나는 그렇게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살고 싶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앨리스 먼로는 여성의 내면과 심리를 다루는데 탁월하다. 마치 그녀들을 상담하며 조언하는 상담사 같다. 그런데도 소설은 지겹거나 따분하지 않다. 나라면 할 수 없는 행동과 방향으로 나가기 때문이다. 이 소설집은 어떤 측면에서 보면 로즈와 그녀의 계모인 플로의 인생을 담은 성장소설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는 기대한다. 로즈의 딸 애나가 어떤 삶을 살아갈지 말이다.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애나의 삶은 그녀의 것이니 로즈와 플로의 살아온 인생을 들여다보자. 어린 로즈에게 플로는 다정한 어머니가 아니었다. 심지어 로즈의 버릇을 고치고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남편을 거들며 부추긴다. 놀라운 건 로즈는 이 모든 걸 알고 그 결과를 예측한다. 단편의 제목이기도 한 아버지의 장엄한 매질, 어디까지나 그들에게는 장엄한 매질이 끝난 후 플로가 가져다줄 달콤한 맛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사는 게 힘들어서, 시골에서 작은 상점을 하며 상점 뒤의 헛간에서 가구를 고치는 일을 하는 이들에게 다정함은 사치였다. 교양이나 품격과는 거리가 먼 그런 삶이었다.

 

플로는 로즈의 삶이 부러웠던 건 아닐까? 학교에 다니며 공부를 하는 로즈가 말이다. 자신이 지나온 삶에서는 발생할 수 없는 삶을 사는 로즈였으니까. 로즈가 학교에 가 있는 동안만큼은 그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고민이 무엇인지 자신이 관여할 수도 없을뿐더러, 무엇보다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살 가능성이 로즈에게 생기는 거였다. 다시 말해 로즈가 학교에 가 있는 동안에는 두 여인은 다른 시간대를 사는 것이었다. 이처럼 두 여인은 결코 포개어질 수 시간을 만들어가며 서로의 삶으로부터 점점 멀어져간다. 소설 속 그들이 사는 시대를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여자에 대한 편견과 무시는 일상이었다. 로즈처럼 가난한 집안에서 애정은커녕 제대로 된 돌봄을 받지 못했으면 더더욱. 그래서 로즈는 잔망스럽게 되바라진 소녀가 되었다. 하지만 독자로서 내가 바라보기에 그 모습은 로즈가 삶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처럼 보였다. 인생은 무심히 흘러갔다. 무서운 아버지는 병들고 플로는 늙었다. 로즈도 더는 소녀가 아니다. 플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딸에게 의지하고 만다. 과거라는 이름으로 추하고 지저분하던 그 시절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기억은 어떻게 꺼냈을 때 추억이 되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기억을 소환하는 일은 말의 문제라기보다 타이밍의 문제에 가깝다. 언제 어느 때 기억을 꺼냈는가에 따라 그 기억은 추억이 되기도 하고, 잊혀야 할 불행한 과거가 되기도 한다. 불온함에 열망의 부추김을 당하는 로즈에게 새엄마의 지난 시간에 관한 이야기는 두 사람의 어긋난 과거만 재확인해줬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남자를 조심하라던 플로의 말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말은 불필요한 조언이기도 했다. 추억을 공유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진심은 공허한 말이 되어 상대에게 닿지 못한다. 플로가 기억을 꺼낼수록 로즈는 그녀로부터 더 멀리, 기억을 떨쳐내듯 멀어질 것이다. 한편으론 플로의 기억 꺼내기는 로즈의 과감성을 추동하는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자신의 세계에서 벗어나 다른 세상으로 달려가고 싶었던 로즈. 직접 확인해야만 직성이 풀렸던 로즈. 이런 로즈의 성향은 앨리스 먼로의 소설 속 인물의 특징이다. 위험을 감수하며 불구덩이로 뛰어든다. 불운이었을지라도 후회를 남기지 않는 과감한 여성.

 

호기심 그 어떤 욕망보다 더 줄기차고 긴급한 것. 그 자체로 욕망인 것. 단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기 위해 물러나 지나치게 오래 기다리면서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게 이끄는 것.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기 위해. (야생 백조, 118~119)

 

이런 행동은 로즈의 연애와 결혼으로 이어지는 거지 소녀장난질에서도 만날 수 있다. 가난한 대학생인 로즈와 부유한 집안의 아들 패트릭의 만남은 결말을 예상하게 했다. 로즈가 가난해서 좋다는 어이없는 패트릭의 고백. 극명하게 다른 환경은 서로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로즈도 패트릭을 선택하면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주변의 부러운 시선을 맘껏 누릴 수 있었다. 그리고 어떤 순간에는 충만함을 느끼기도 했다. 우리는 이제 알 수 있다. 로즈에게 결혼은 완성이 아니었다는 걸. 로즈에겐 다양한 삶의 경험이 필요했다. 로즈에게 결혼이란, 고요한 호수에 던져진 돌멩이 같은 것이었다. 로즈는 그런 강렬하면서도 뜨거운 것을 경험하고 싶었을 뿐이다.

 

행복에 대한 환상 같은 것. 그녀가 그간 남들에게 해왔던 다른 모든 얘기들을 생각하면 그런 말은 차마 할 수가 없었다. 정말로 이상한 것 같은데, 그녀는 정당화를 할 수가 없다. 이는 그들의 결혼생활에 벽지를 바르고 휴가를 떠나고 식사를 함께하고 쇼핑을 하고 아픈 아이를 걱정하는 길고 분주한 기간처럼 완벽하게 평범하고 견딜 만한 시간도 있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때로는 이유도 조짐도 없이 행복이, 행복의 가능성이 나타나 그들을 놀라게 하고 했다는 의미다. (거지 소녀, 177)

 

친구의 남편과의 연애를 다룬 장난질의 제목이 암시하듯 애틋하고 간절한 사랑이 아니라 어떤 탈출구 같은 걸 원했던 것이다. 그 후의 삶에 대해 두려움 따윈 없었다.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한 책임을 로즈는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 그 감정이 불러올 어떤 파국에 대해서도 로즈는 다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아니다, 파국이란 말은 적절하지 않다. 이혼이라는 결말이 온전히 비극적인 건 아니므로. 패트릭과의 사랑과 결혼은 누군가에게는 완벽함 그 자체였겠지만 로즈에게는 아니었다는 게 중요하다. 패트릭을 사랑한 건 맞다. 둘 사이엔 애나도 있으므로 관계를 회복하려는 시도조차 없었던 건 아니었다. 중요한 건 로즈에겐 로즈만의 공간, 로즈만의 삶을 선택할 권리가 있었다는 거다. 같은 시간 속에서 살았지만 포개지지 않는 새엄마와의 삶이, 그녀에게 가르쳐준 게 있다면 바로 이거 하나였다. 애나를 데리고 로즈가 길을 떠나는 과정의 이 장면은 분명 다른 장면인데도 어떤 기시감이 느껴졌던 건 이 때문이었다. 로즈가 만든 로즈의 세계로 나가는 시작이었으므로.

 

밤에 애나가 잠든 사이 로즈는 창문을 통해 충격적일 정도로 높이 쌓여 반짝이는 눈을 바라보았다. 기차는 눈사태가 무서운 듯 천천히 기어갔다. 로즈는 겁나지 않았다. 그녀는 이 어두운 칸막이 안에 갇힌 채로 거친 객차용 담요를 덮고 그런 무자비한 풍경을 지나 어디론가 실려 간다는 생각이 마음에 들었다. 제아무리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기차의 진행은 항상 안전하고 적절하게 느껴졌다. 반면 비행기는 언제라도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깨닫고 질겁하여 외마디 저항도 못하고 바로 떨어져 버릴 것만 같았다. (섭리, 251)

 

애나가 엄마인 로즈를 선택하지 않을 거라는 건 당연하다. 패트릭은 괜찮은 아빠였고 부모님의 이혼은 애나에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플로는 늙었고 양로원에서 사라지는 기억을 붙잡으며 살아간다. 로즈는 누군가가 알아보는 배우로 학교에서 연기를 가르치는 선생으로 살면서 사랑을 꿈꾸고 열망을 버리지 않는다. 그렇게 플로, 로즈, 애나는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무엇이 되기를 바랐던 소녀는 결국 자신의 원하는 삶을 선택하며 살았지만, 고등학교 시절 교사였던 미스 해티가 했던 넌 도대체 네가 뭐라고 생각하니?” 질문이 그녀를 붙잡는다. 그 순간에도 불온함은 그녀를 열망하게 만든다. 무엇으로부터? 삶으로부터 말이다.

 

우리는 로즈의 인생을 판단할 수 없다. 로즈의 인생뿐 아니라 그 누구의 인생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할 자격이 없다. 로즈가 살아온 인생이 꽃길이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이는 오직 로즈밖에 없다. 로즈이거나 로즈가 아닌 나는 그것에 대비(對比)하며 내 안의 로즈와 책 속 로즈를 가만 들여다볼 뿐이다. 저마다의 삶은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이므로. 앨리스 먼로는 우리에게 말한다. 산다는 건 고역이고, 때로는 도망치고 싶고 살아가는 동안 삶에 대한 확신을 1%도 찾을 수 없는 순간이 지속되더라도 기꺼이 삶을 껴안을 수 있어야 한다고. 불온한 갈망의 싹을 품어도 괜찮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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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7 20: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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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8 09: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은 한때 가장 떠나고 싶었던 곳이다. 아이러니하게 인생은 나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만들었다. ‘정착’이라는 단어를 쓸 정도는 아니지만 말이다. 지방의 소읍에서 시간의 속도는 아주 느리다. 지방 국도의 규정 속도로 살고 있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고 내 삶의 속도는 적어도 그렇다. 돌아왔다고는 하나 익숙한 곳은 아니다. 여전히 나는 이곳에 대해 잘 모르고 맛 집이나 관광지를 묻는 질문의 답을 찾지 못한다. 그것들에 상관없이 살아갈 뿐이다. 줌파 라히리의 『내가 있는 곳』을 자꾸만 ‘내가 사는 곳’이라 읽게 된다. ‘있는 곳’과 사는 ‘사는 곳’은 같은 것 같지만 전혀 다르다. 어쩌면 그건 줌파 라히리가 이방인이라 그런지도 모른다. 모국어가 아닌 이탈리아어로 글을 쓰는 일, 아니 그것으로 소설을 쓰는 일은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했을까.

 

소설을 읽으면서 잠시 머무는 곳 그 이상의 의미를 두고 쓴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소설이라고 분류했지만 이 책은 소설보다는 일상의 관찰이며 기록이라 하고 싶다. 46개의 짧거나 긴 글에서 그녀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차분하게 정리한 글로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무미건조하고 메마른 건 아니다. 소설의 화자인 ‘나’는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이며 혼자 살고 있고 주변의 동료나 친구들과 사귐에 있어 수동적이다. 어쩔 수 없이 맺어진 관계, 혹은 그런 사이를 유지하는 일에 대해 힘들어한다. 일로 엮인 모임이나 만남에서 겉돌고 사랑했던 연인과의 현재 관계도 마찬가지다.

 

이따금 내가 사는 동네 길거리에서 함께 어떤 이야기, 어쩌면 인생을 같이 만들어나갈 수도 있었을 한 남자를 만난다. (「길에서」)

 

한때 사랑했던 남자를 언제 어디서든 만날 수 있는 곳에 그녀가 산다. 집 주변 보도, 다리, 서점, 길거리, 카페, 식당, 병원 대기실, 박물관, 산책길, 빌라…. 그곳에서 마주할 수 있는 일상은 지극히 보편적이다. 그러나 그녀의 시선에 비친 일상은 보편적이면서도 특별하다. 그 모든 곳이 그녀에겐 내면의 공간이며 심적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이들에 대한 감정도 비슷하다. 혼자라는 삶에서 묻어나는 외로움을 견디는 일상, 그리고 그 안에서 발견하는 거룩하고 존엄한 삶의 모습들.

 

노부인은 지금 공원에서 시끄럽게 소리치며 놀고 있는 아이들보다 더 활기가 넘쳐 보인다. 끈으로 연결된 두 사람이 이미지가 날 감동시킨다. 그들 사이의 헌신, 연결된 삶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난 우리 안에 흐르는, 순환되어야 하는 규칙적으로 제거돼야 하는 물질을 생각한다. 숨겨진, 흉하지만, 중요한 작업들. (「빌라에서」)

 

나는 나이면서 그렇지 않아요. 떠나지만 늘 이곳에 남아 있어요. (「산책길에서」)

 

소설 곳곳에서 그녀는 떠나기를 원하면서도 주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예민하고 복잡 미묘한 내면의 감정을 느낀다. 어떤 공간에서 느끼는 묘한 안도감, 혹은 두려움을 생각한다. 공간의 힘은 그런 것이다. 기억 저편의 자리에서 여전히 살아있는 공간, 사라졌지만 사라지지 않은 공간이 갖는 능력처럼 말이다. 줌파 라히리에게 이탈리아는 어떤 공간이며 어떤 의미일까. 어쩌면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마주하는 특정 장소, 공간과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줌파 라히리의 소설에서 마주하는 공간은 건축가 유현준이 『당신의 별자리는 무엇인가요』에서 들려주는 공간 이야기가 전해주는 감정과 닮았다. 유현준의 공간에는 기억과 추억이 있고 줌파 라히리의 소설 속 공간에는 그것들이 생성되고 자라고 있다. 어쩌면 그녀에게 필요한 건 유현준의 이런 문장은 아닐까.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은 가장 많은 삶을 빚는 공간이다. 그곳이 좋아야 그 사람의 삶의 질도 좋아진다. (『당신의 별자리는 무엇인가요』)

 

모든 길은 다 통한다. 홍대에서 한남동으로 가야 한다고 치자. 가는 길은 수없이 많다. 강변북로를 타고 가도 되고, 삼각지와 이태원을 거쳐서 가도 되고, 남산 순환도로를 통해서 가도 된다. 신촌오거리를 통해서 가다가 길이 막히면 아현동 사거리에서 우회전해 공덕동을 통해서 돌아가도 된다. 길을 바꿔 가도 목적지는 같다. 다만 경치만 달라질 뿐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계획했던 길이 막히면 다른 길로 가면 된다. 그리고 그것이 모여서 새로운 풍경이 되는 것이다. (『당신의 별자리는 무엇인가요』)

 

공간은 우리의 생이 완성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목격자이며 동반자다. 내가 있는 곳에 하루하루가 쌓인다. 언젠가 이곳을 떠난다 하더라도 삶의 흔적은 고스란히 남는다. 많은 시간이 지났어도 문득 그곳을 지나치거나 생각하면 지우고 싶은 감정과 인연들까지 떠오르는 걸 보면 말이다.

 

줌파 라히리의 소설을 빌려 내 삶의 현재인 이곳을 천천히 둘러본다. 어두운 새벽에 등불처럼 환했던 벚꽃나무 길, 자주 찾는 식당과 카페, 멀리서 사는 친구가 오면 항상 방문하는 바닷가, 수목원…. 누군가 나를 생각하면서 떠올릴 공간도. 처음에 뿌리내린 곳을 벗어날 수 없는 나무와 다르게 우리는 그곳에서 살다가 이곳으로 옮겨오고 다시 그곳으로 가기도 한다. 내가 있는 곳은 영원한 공간처럼 여겨지기도 하고 찰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있는 곳을 사랑하고 그곳에서 보는 삶의 풍경, 그리고 맺어지는 관계에 대해서도 다르지 않다. 삶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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