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 석양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보니 기분이 묘하다. 사진은 베란다 창문을 닫다가 마주한 풍경이다. 오랜만에 담은 해 질 무렵이다. 창틀에 기대어 한참을 바라보았다. 몇 시간 뒤면 다가올 순간인데도 멀고 먼 순간일 것 같은 착각을 불러온다. 아침에는 가는 빗줄기가 내려 서늘하더니 한낮인 지금은 덥다. 가을이 이렇게 더워도 되는 거냐고 따지고 싶을 정도다.

10월이 되었고 예상할 수 없었던 문제가 생겼다. 문제란, 그렇게 다가오는 것이다. 예상했던 범위를 벗어나 발생한다. 나쁜 일은 아니지만 좋은 일도 아니다. 어떤 과정을 지나야 하고 해결될 일이다. 그저께는 베란다에서 버려야 할 화분을 정리하고 오래된 기름때와 이별했다. 이별은 힘들었다. 팔 근육을 써야 했고 시원하지도 않았다. 미루지 말아야 할 일이 집안일인데.

알면서도 알고 있다는 이유로 미루는 일들이 많다. 모두가 사소하고 소소한 것들이다. 그것들이 쌓이면 거대한 산을 이루고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 때로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삶이란 이런 조각들이 모이고 엮이는 것이라는 걸 새삼 확인한다.

10월에는 무언가에 집중하고 싶다. 집중하는 순간에 세상은 그것과 나​로 채워진다. 그것과 나를 제외한 세상을 향한 시선은 잠시 거두고 나를 더 오래 바라볼 수 있기를. 책과 마주하는 순간에도 그러하기를. 김혜진의 신간 『9번의 일』과 대상과 수상작 모두 여성작가라는 반갑고도 신기한 『2019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읽는 이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그냥 독자의 마음이 그렇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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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9-10-05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아름다운 순간이네요
 
경애의 마음
김금희 지음 / 창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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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러 개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누구에게나 보여주고 나눌 수 있는 마음, 보여줄 수 있지만 나눌 수는 없는 마음, 아무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마음, 오직 한 사람에게만 보여주고 나눌 수 있는 마음. 적절한 때에 맞춰 마음을 꺼내 사용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건 생각처럼 쉽지 않다. 다른 누군가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기댈 수 있는 마음을 발견하면 전부를 보여주고 싶은 욕구에 흔들린다. 그러면서 궁금하다. 진짜 마음이란 무엇일까? 김금희의 장편소설『경애의 마음』을 읽으면서도 내가 안다고 믿었던 마음이 정말 맞는 것일까 혼란스러웠다. 이제 안다고 알 수 없는 나의 마음들.

 

우리는 쉽게 “네 마음을 안다.”라고 말하기도 하고 “내 마음을 몰라준다.”라고 속상해한다. 마음을 쉽게 다룰 수 있다고도 자신한다. 마치 마음이 보이는 투명한 유리나 거울인 것처럼 말이다. ‘반도미싱’ 영업부에서 팀장과 팀원으로 일하는 상수와 경애는 그렇지 않았다. 낙하산으로 회사에 들어온 팀장 상수에게 사내 파업에 참여하고 부당한 대우를 견디고 버티면서 현재까지 남은 문제 사원 경애는 반갑지 않은 사원이었다. 거기다 쉽사리 마음을 보여주지 않았다. 말투나 행동, 먹는 음식까지 상수와는 달랐다. 누구에게나 보여줄 수 있는 마음까지 감추고 있었다. 출근부터 퇴근까지 한 공간에서 미싱을 팔아야 한다는 목표 아래 시간을 보내지만 서로에게 내어줄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마음은 그런 것이었다. 쉽게 꺼낼 수 없고 꺼내도 접혀진 부분의 주름을 하나하나 펴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사실 두 사람의 접점은 독자에게는 한눈에 보인다. 그들이 단단히 싸매고 있는 마음의 한가운데 친구 ‘은총’이 있다는 걸 말이다. 자연스럽게 과거의 상처에 대한 마음이 아직 아물지 않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아물지 않고 상처로 남는 상처도 있으니까. 그 마음의 결에 대해서는 상수와 경애가 똑같았다. 그렇다면 어떤 마음은 저절로 보이는 것일까? 아닐 것이다. 실제 일어난 1999년 10월 동인천 호프집 화재 사건에 대해 우리가 아는 건 뉴스에 보도가 된 게 전부인 것처럼. 아이들이 왜 죽어야 했는지 사건의 원인보다는 그곳에서 고등학생이 술을 마셨다는 일에 관심을 보였으니까. 소설 속 그 현장에서 경애가 친구 은총을 잃고 품었던 마음을 우리는 평생 짐작할 수 없다. 사건을 증언하고 증인이 되어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 하는 순간을 우리는 모른다. 누군가를 잃고 남겨진 채로 살아야 하는 마음이 어떨지 같은 일을 겪었다 해도 같을 수 없고 알 수 없다. 경애에게는 어떤 마음이 필요했을까? 소설의 제목인 사랑하고 공경하는 경애(敬愛)였을지도 모른다. 가장 단순하고 가장 아름다운 마음이지만 우리 사회에서 외면해버린 마음이다.

 

대학 선배 산주와의 사랑 그러했고 반도미싱에서 파업을 하면서 머리를 삭발하고 시위를 할 때에도 그러했다. 그 마음은 경애 한 사람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결핍된 마음이 바로 그것이다. 함께 파업을 하고 회사를 떠나는 조 선생이 경애에게 전하는 말은, 그런 마음의 한 갈래는 아닐까. 어른으로서의 마음, 누군가를 돌볼 수 있는 마음이 우리를 살게 한다는 걸 느낀다. 그리고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마음을 보여주고 내어준 적이 있었는지 생각한다. 내가 그동안 무수하게 받은 마음은 순환되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런 돌봄의 마음이 순환되었더라면 우리는 조금 더 안온한 세상을 만들었을 텐데.

​“일은요, 일자리는 참 중요합니다. 박경애 씨, 일본에서는 서툰 어부는 폭풍우를 두려워하지만 능숙한 어부는 안개를 두려워한다고 말합니다. 앞으로 안개가 안 끼도록 잘 살면 됩니다. 지금 당장 이렇게 나쁜 일이 생기는 거 안 무서워하고 삽시다. 나도 그럴 거요.” (30쪽)

 

더 나은 세상이 아니기에 우리는 소설을 통해 그 마음을 붙잡는 건 아닐까. 소설에 등장하는 화재사건과 직장 내 파업은 사회적 이슈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차마 말할 수 없는 그날의 뉴스가 생생하게 그려진다. 누군가는 무거운 주제라며 말을 삼가고 나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며 불편해할지도 모른다. 그 누군가가 내가 될 수 있고 나의 가족이나 친구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피하고 싶은 거다. 그러나 똑바로 봐야 한다. 반복적으로 경험한 것처럼 불가항력의 일들이 일어나는 게 우리 생이므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안아주면서 살아가야 한다. 어떤 대책조차 대책을 황당하고 갑작스러운 죽음, 혹은 소설에서 가장 일상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사랑의 실연이나 베트남으로의 발령 같은 것. 보통의 상처처럼 보이지만 사소하지 않고 깊게 베인 상처들. 그래서 경애처럼 어딘가 내 마음을 들어줄 곳을 찾는 것이다. 경애에게 연애상담 페이지 ‘언니는 죄가 없다’는 유일하게 마음을 전부 보일 수 있는 곳이었다. 경애에 대한 어떤 편견도 없이 있는 그대로 마음의 상태만 보고 보듬어 준다. 진짜 경애하는 것이다. 포장된 마음이 아니라 순수하게 어루만지는 마음. 그것은 우리가 잃어버린 마음이 아닐는지. 화난 마음이든, 울고 싶은 마음이든, 짜증 나는 마음이든, 어떤 마음이든 모조리 쏟아부을 수 있는 곳에 쌓인 마음은 어떤 모양일까. 형체를 알 수 없겠지만 상수의 말처럼 온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니, 사라져서는 안 되는 마음이다.

 

“살면서 조금씩 안 부서지는 사람이 어딨어요? 아무 사건 없이 산뜻하게 쿨하게 살자 싶지만 안되잖아요. 망하는 줄 알면서도 선택하고, 책임지기 위해서라도 기꺼이 부서지고.” (155쪽)

 

마음을 폐기하지 마세요. 마음은 그렇게 어느 부분을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우리는 조금 부스러지기는 했지만 파괴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언제든 강변북로를 혼자 달려 돌아올 수 있잖습니까? 건강하세요, 잘 먹고요, 고기도 좋지만 가끔은 채소를, 아니 그냥 잘 지내요. 그것이 우리의 최종 매뉴얼이에요. (176쪽) ​

 

소설에선 경애의 상처가 깊고 커 보여서 상수의 마음은 조금 나중에 보인다. 상수에게 어머니의 죽음과 단 한 명의 친구였던 은총의 죽음이 그를 지배하는 강도가 얼마나 센지. 지극히 개인적인 상실과 슬픔이라고 말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다. 겹쳐진 상수의 마음이 있기에 경애는 울 수 있고 은총을 함께 그리워할 수도 있다. 나와 겹쳐진 마음이 있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자신의 마음만 챙기는 이기적인 마음만 있다면 이 세상은 적막감으로 가득할 것이다. 사랑하는 마음을 꺼낼 수 있다면 우리는 조금 더 나은 삶을 살아갈 텐데.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은 힘겹고 고단하다. 어떻게 하루를 버티나 하는 생각도 든다. 일과 사람에 치이고 사회의 제도와 정치적 시선에 치이며 오늘을 살아간다. 나와 닮은 마음을 발견하고 기뻐하면 괜찮아진 걸 느낀다. 마음의 힘을 믿는 일의 숭고함을 말이다. 켜켜이 쌓인 마음을 돌본다. 우리는 넉넉해진다. 그리하여 마음은 서로에게 그늘이 된다. 더위로 지친 삶을 그늘에서 식히는 것, 그것이 우리가 찾는 삶의 궁극적인 모습은 아닐까. 내가 가진 여러 개의 마음이 펼쳐지는 상상을 한다. 펼쳐진 마음이 누군가의 마음과 맞닿아 사랑하며 살아가는 일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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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9-10-04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태풍이 지나가고 공휴일도 지나니 금요일 저녁이네요.
기온이 조금씩 내려간다고 해요. 감기 조심하시고,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자목련 2019-10-05 15:31   좋아요 1 | URL
제법 더운 낮도 이제 곧 사라지겠지 싶어요. 서니데이 님도 건강하고 평온한 주말 보내세요^^*
 

 

윤이형의 소설집『작은마음동호회』속 단편은 이전에 만났던 수상작품이나 테마소설집에서 만난 윤이형의 그것과는 다른 느낌이다. 다르다는 건 윤이형의 소설이 조금씩 변화하는 과정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건 나 혼자의 착각일 수도 있다. 『작은마음동호회』에는 모두 11편의 이야기가 있다. 제법 긴 중편부터 아주 짧은 단편도 있다. 소설집 전체의 분위기를 말한다면 ‘마음’과 ‘이해’라고 할까. 표제작 「작은마음동호회」가 그런 마음들을 보여주는 것 같다. 소심하고 움츠러들었던 마음이 천천히 펴지고 움직이는 과정을 읽노라면 언젠가 우리를 채웠던 그 마음을 발견하고 놀라게 된다. 「작은마음동호회」에서는 촛불집회 속 수많은 유모차와 엄마들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아이를 키우고 육아에 전념하느라 사회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사람들처럼 보이는 결혼한 친구를 보면서 오해를 하는 친구. 기혼 여성과 비혼 여성의 겪는 저마다의 고충을 생각하고 사회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소설 속 ‘작은마음동호회’란 모임은 현실 속에서 수많은 다른 모임의 모습은 아닐까. 고민하고 애쓰는 마음들 말이다.

서로의 마음을 섣불리 안다고 말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이해받기를 원하고 알아주기를 바란다. 먼저 다가가는 일은 왜 이리 힘든 것일까. 「승혜와 미오」에 등장하는 레즈비언 커플 승혜와 미오의 마음도 그랬다. 함께 살면서 아이를 갖는 일에 대한 다른 입장, 자신의 입장을 강요할 수 없지만 한편으로는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소설에서 미오는 고기를 먹지 않는다. 고기를 좋아하는 승혜도 점차 고기를 멀리한다. 연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것과 그 취향에 따르는 건 같은 것일까? 사랑한다는 이유로 자꾸 마음을 숨기는 일은 결국 둘 사이의 균열을 만들 것이다. 승혜와 미오의 마음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가족이나 친구라서 말하지 못하는 마음이 자꾸만 커진다. 아마도 그게 배려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 마음을 알 것도 같아 나는 자꾸만 속상해지고 승혜에게 미오에게 네 마음을 보여줘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다른 삶을 선택하는 이의 마음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아니, 받아들인다는 건 오만일지도 모른다. 그저 인정하는 일. 도움을 원하면 도울 수 있다면 손을 잡아주는 일이 가장 중요한지도 모른다. 「마흔셋」에서 화자인 재경의 여동생 재윤은 어느 날 남동생이 되었다. 한순간에 바뀐 건 아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순간 하나씩 앞으로 새롭게 살아야 할 인생을 계획했다. 가족이면서도 철저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왔던 세 모녀에게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거기다 엄마는 자신의 암 투병 사실을 죽음이 가까운 시기에 딸에게 알린다. 가장 가까운 형제나 가장 친한 친구가 이런 자신의 성체성을 고백한다면 나의 마음은 어떨까. 똑같은 인생을 살아야 할 이유도 없고 그럴 수도 없지만 다르다는 걸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일은 여전히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를 통해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아보려고 노력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노력한다는 건 행동하는 것과는 다르다. 알고 있다. 그러나 수많은 노력이 밑바탕이 되어야만 행동할 수 있는 힘이 자라는 게 아닐까. 하나의 문제에 대해 꾸준히 생각하는 일과 알기 위해 공부하고 정보를 수집하는 일도 노력이다. 성폭력 피해자와 그들과의 연대에 대한 이야기인「피클」은 결국엔 상처와 치유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선우가 받은 퇴사한 후배로부터 온 메일의 내용은 성폭행 피해자인 자신을 도와달라는 것이다. 후배는 화자가 행동할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그러나 회사 내에서 소문의 내용은 달랐다. 피해자가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혼란스러운 건 소설이나 현실에서도 같을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거대한 피클 단지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이 속의 이것들이 우리죠. 혐오와 차별은 어디에나 있어서, 나 혼자 아무리 올곧게 살겠다고 마음먹어도 물들지 않기가 쉽지 않아요. 그걸 잊지 않는 게 중요하죠. (「피클」)

나와는 상관없는 삶이라고 외면할 수 있을까. 그건 어려울 것이다. 드러내지 못하고 비밀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이들 가운데 나와 가까운 이가 존재할 수도 있으니까. 윤이형의 이 소설집에는 소수자와 약자를 향한 사회의 차가운 시선이 있다. 그리고 묻는다. 그 차가움과 날카로움의 일부가 나의 시선은 아닌지 말이다.

윤이형의 변화는 이전의 소설에 만났단 환상과 상상, SF 적 소재에서도 느껴진다. 나의 개인적인 느낌일 뿐이다. 「의심하는 용 - 하줄라프 1」와「용기사의 자격- 하줄라프1」에서는 용과 인간의 함께 살아가는 도시국가 하줄라프에서 이야기로 현실이 아닌 가자의 현실, 게임 속 세계를 보여주는 듯하다. 인간과 용이 어떻게 연대할 수 있는지, 그것에 대한 고민은 ‘수아’란 이름의 로봇이 인간의 차별에 대해 맞서는 「수아」를 통해서도 깊어진다.

그동안 읽었던 윤이형의 소설에 대해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변화의 중심에는 여전한 인간에 대한 관찰이 있었다. 고독하고 외로운 인간에 대한 연민과 그들과 연대하려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항상 미래에 대한 상상도 놓지 않았다. 중력을 지배하는 세상, 미래로의 시간 여행을 상상하게 만든『큰 늑대 파랑』이나 2058년을 배경으로 ‘과잉기억증후군’에 걸린 한 남자의 이야기 『개인적인 기억』, 그리고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단편집 『러브 레플리카』에서도 로봇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고백하자면 사실 이 소설집에 대한 글이 아닌 『러브 레플리카』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다. 뭐랄까, 좋아하는 소설을 좀 더 깊이 있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러브 레플리카』는 다시 읽고 싶은 소설집의 목록 중 하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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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아 2019-10-03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마워요

자목련 2019-10-04 12:15   좋아요 0 | URL
^^*
투명한 하루 보내기실 바라요.
 
29초
T. M. 로건 지음, 천화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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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는 맞서 싸우는 쪽을 택했다. 설령 그것이 상대와 밑바닥까지 내려가서 비열하게 싸우는 것을 의미할지라도. 러브록은 그 정도 수준이었으니까. 그리고 때로는, 아주 가끔은,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것도 사실일지 모른다. (477쪽)

제목은 책의 내용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단편집의 경우 전체를 아우르는 문장을 제목으로 택하기도 하고 책에 대한 호감을 불러올 만한 문구를 사용하기도 한다. T.M 로건의 소설 『29초』는 그런 점에서 호기심을 불러온다. 과연 29초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29초 동안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것이 있을까? 눈 깜빡할 정도로 금방 지나갈 시간이라 생각하면서도 뭔가 대단한 일을 실행에 옮기기에도 충분한 시간이 아닐까 혼자 짐작했다.

 

작가에 대해서도 소설의 내용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모른 책 읽기 시작했다. ‘규칙은 간단했다. 가능하면 그와 단둘이 있지 말 것. 그를 부추길 수 있는 어떤 말도 행동도 하지 말 것.’ 소설의 첫 문장을 읽기 시작하면서 어떤 감이 왔다. 누군가를 조심할 것, 그 누군가에게 걸려들지 말 것. 그는 아마도 권력을 지녔을 것이고, 소설의 화자는 여성이 분명했다. 그랬다. 이 소설은 그런 내용이었다. 주인공 세라는 30대로 똑똑하고 멋진 여성으로 딸 그레이스와 아들 해리를 둔 엄마이자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시간 강사였다. 그러나 남편 닉과의 관계는 좋지 않았다. 닉은 집을 나갔고 다른 연인이 있었다. 세라가 가장 경계하는 인물은 같은 대학 상사이자 교수인 러브 록으로 세라와 같은 시간 강사의 인사권을 갖고 있었다.

러브록의 평판은 좋지 않았다. 세라와 같은 위치의 여성 강사를 희롱하고 자신의 위치를 이용해 협박을 강요하는 상사였다. 전형적인 나쁜 상사, 정말 상대하고 싶지 않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나 세상에 알려진 건 TV에 출연하는 유명한 스타였고 대학에 중요한 사람이었다. 그는 세라에게도 노골적으로 접근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면 전임강사를 주겠다고 말이다. 하지만 세라는 그럴 수 없었다. 러브록의 실체를 세상에 폭로하고 싶었다. 그와의 대화를 녹취하고 대학 인사과에 제출하고 공론화시키면 가능할 거라 믿었다. 그러나 러브록은 대학에서 막강한 권력을 지녔고 그를 상대하려면 학교를 떠날 각오를 해야만 했다.

소설을 읽는 동안 나는 화를 참을 수 없었다. 이런 제기랄, 욕이 절로 나왔다. 러브록이란 인물이 소설 속에서만 존재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직장 내 괴롭힘, 왕따, 성희롱과 폭력에 대한 문제는 우리 주변에도 만연하다. 미투 운동이 확산되고 조금씩 변화의 움직임이 보이는 것 같지만 현장에서는 어떻게 적용되는지 알 수 없기에 안타까운 마음이다. 서지현 검사가 방송에서 미투 이후의 삶에 대해 들려주었을 때 정말 놀랐다. 소설의 배경도 대학이 아니던가. 대학교수라는 사람이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다시 분노한다. 인격, 인성은 다 어디다 팔아먹었나.

그런 러브록을 상대로 세라에게 어떤 기회가 찾아온다. 우연한 계기로 여자아이를 구하고 아이의 아버지에게 황당한 제안을 받는다. 누구든 원하는 사람 한 명을 없애준다는 것이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마치 세라의 지금 상황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고민하고 주저하던 세라는 러브록의 이름을 택한다. 그의 말대로 러브록은 사라진 것일까. 어느 날 러브록은 실종되었다. 완벽하게 처리된 것일까. 나는 그러기를 바랐다. 범죄에 가담한 것이지만 그냥 그랬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소설이니까,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그러나 작가는 러브록을 돌아오게 만들었다. 거기다 세라가 자신의 납치 과정에 관여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다.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었다. 러브록의 악랄함은 더해지고 세라는 어쩔 줄 모르는 불안과 공포로 고통스럽다. 이렇게 끝내는 것일까. 러브록의 뜻대로 그에게 종속되어 살아야 하는 걸 아닐까. 끝을 향한 이야기에 조바심이 나는 건 나였다. 물론 소설의 결말은 그렇지 않다는 정도라는 것만 말하겠다.

 

통쾌한 결말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이 너무 힘들다. 소설에서는 시원한 한 방을 날렸지만 현실에서는 제대로 된 제도와 철저한 대책이 필요하다. 소설을 소설로만 읽을 수 없다는 게 화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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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9-09-27 0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도 여성보다 남성이 더 힘을 가지고 그걸 쓰죠 러브록이 아주 나쁘게 나오는가 봅니다 그런 사람 말을 한번 들으면 끝이 없을 것 같아요 힘들더라도 그러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바깥에서 보는 사람은 이렇게 말해도 아이를 기르고 살아야 하는 세라는 그렇게 하기 쉽지 않겠습니다 러브록 한사람만 사라진다고 세상이 달라질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도 자신을 가장 괴롭히는 사람만 없다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안 할 수 없을지도... 힘들다 해도 끝이 나쁘지 않다니 다행이네요


희선

자목련 2019-10-04 12:16   좋아요 1 | URL
아직도 우리 사회 많은 곳에서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겠지 생각하니 답답했어요. 현실에서도 소설처럼 통쾌한 결말이길 바라는데, 과연 그럴까 싶어요. ㅠ.ㅠ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
김숨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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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개를 길렀다. 강아지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 개였다. 친구처럼 지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개는 마당에서 달려와 내에 안겼다. 몸집이 작았던 나는 그런 개가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뿌리치지 않았다. 그만큼 개를 좋아했다. 그러다 보신탕을 알게 되었다. 물론 나는 먹지 않았다. 내가 분명히 아는 고깃국(당시 닭고기, 돼지고기,소고기)이 아닌 국이 올라오면 쳐다보지도 않았다. 개를 먹는다는 일은 있을 수 없었으니까. 그 개의 이름은 ‘존’이었고 당시 시골에서 쥐를 잡기 위해 놓은 약을 먹고 죽었다. 그 뒤로 개를 향한 애정은 멈췄다. 반려견으로 키우던 개가 죽고 다른 개를 입양하지 않는 사촌동생의 마음도 비슷한 건 아닐까.

 

김숨의 소설집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를 읽으면서 ‘존’이 자꾸 생각났다. 이 소설집은 전체적으로 그로테스크한 기운이 가득하다. 잔혹한 사건이나 동물 학대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가 등장하는 건 아니지만 평이하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은 아니다. 쥐, 염소, 자라, 벌, 노루, 곤충(나비)를 소재로 쓴 소설은 마치 꿈을 꾸는 듯하다. 아름다운 꿈이 아니라 악몽과 흉몽의 중간쯤이라고 해야 할까. 소설 속 인물들은 현실 속에서 쥐를 잡으려고 애쓰고(「쥐의 발견」), 염소를 해부하려고 염소가 오기를 기다리며 감정을 억누르고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 만병통치약인 양 노루의 피를 먹기 위해 노루 사냥을 위해 (「피의 부름」) 떠난다. 그러나 고층 아파트에서 남편이 본 쥐를 찾을 수 없고 오고 있다는 염소는 오지 않고 노루 사냥의 길은 멀고 지루하기만 하다. 쥐 한 마리에 10만 원을 달라며 쥐를 잡겠다고 온 이들은 집안을 온통 쑥대밭으로 만들고 그것을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나’는 이제는 제발 쥐를 발견했으면 좋을 지경이다.

한때 저수지에 가득했던 자라로 자라 요리 식당을 했던 여자의 아들이 빠져 죽은 저수지에서 시신을 찾아 헤매는 「자라」, 벌들과 함께 생활하며 꿀을 얻는 아들과 어머니의 이야기 「벌」, 옆 동네 아파트 주차장에서 자동차를 흠집 낸 열두 살 아들이 보았다는 나비를 찾아 함께 곤충채집에 나선 「곤충채집 체험학습」도 마찬가지다. 아들이 분명 저수지에 빠져 죽었다는 여자가 늘어놓는 다양한 자라 요리에 대한 설명은 보통의 그것인데 너무도 잔인하게 다가오고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먹는 사람들이 혐오스럽게 여겨진다. 아들이 운전하던 자동차 사고로 벌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척추를 다쳐 앉아 지내면서 벌통을 지켜보기만 하는 「벌」은 종종 방송에서 꽃을 따라 이동하는 양봉업자들의 일상과 비슷하면서도 혈육이 아닌 모자 사이에 흐르는 묘한 분위기. 평범하지 않는 아들에게서 진실을 듣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을 그린 것 같으면서도 어린 시절 방학숙제로 잡았던 수많은 곤충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든다.

어쩌면 이 소설집은 인간을 위해 실험용으로 해부대에 오르고 건강을 위해 사육당한 동물들을 위한 애도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면서도 뭔가 설명할 수 없는 거북한 거리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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