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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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이킬수록 후회로 남는 일들이 있다. 그때 그렇게 말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때 나는 그를 만나지 말았어야 했는데. 생각하면 할수록 그때의 내가 사라졌으면 하는 마음이 가득하다. 문제는 그런 일들이 반복된다는 점이다. 그때의 나와 다른 내가 되어야 하는데 변하기는커녕 더 비열해지고 치사해진다는 거다. 어쩔 수 없었다는 핑계를 곁에 두고서. 이기호의 소설집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를 재밌게 읽고 찜찜한 무언가에 붙잡힌 기분이다. 그 찜찜함이란 소설에서의 내용이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것이다. 지인은 이 소설집에 대해 올해의 책이라 말했다. 그 정도로 좋았다는 말에 나도 동의한다. 그런데 그 소설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표제작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 소설집에 수록된 단편의 제목엔 고유한 이름이 있다. 보통의 누군가가 아닌 강민호, 최미진, 나정만, 권순찬, 박창수, 김숙희, 한정희까지 7명이다. 소설을 다 읽고 그들을 만났거나 이야기를 전해 들은 화자(‘나’)가 되어 생각하게 되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주인공의 상황을 살피고 그를 이해하려고 할 때도 많지만 이번엔 좀 달랐다. 소설의 이야기가 적나라하게 현실적이어서 그랬다. 소설은 삶이고 삶은 소설이라고 말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완벽한 동의어처럼 다가왔다. 거기다 몇 편은 소설가 이기호의 마음도 읽을 수 있기에 더욱 그랬다. 이기호는 그저 소설로 읽어 달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독자가 건넨 자신의 책에 사인을 해준다거나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는 것, 소설 쓰기의 괴로움에 힘들어하며 자신만의 작업실을 갖고 있다는 점 등이 그러했다.

 

 그렇다면 이 소설집을 읽고 내가 느낀 떳떳하지 못한 마음, 불현듯 살아나는 어떤 한 장면은 소설 속 화자인 ‘나’의 그것과 같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다, 다를 것이다. 그는 내게서 이런 마음을 불러온 소설가이지 않은가. 소설가의 의무라 할 수 있는 이런 글도 소설 속에서 말하고 있으니. 그래도 내가 가장 많이 쓰고자 했던 것은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걸 쓰지 않는다면 작가가 또 무엇을 쓴단 말인가? 나는 그렇게 배웠고, 그런 소설들을 되풀이해서 읽었으며, 주변에 널려 있는 제각각의 고통에 대해서, 그 무게에 대해서, 오랫동안 고민하고자 노력했다.” (「한정희와 나」, 264~265쪽) 물론 그 뒤에는 고통에 대해 쓴다는 게 힘들었다고 말한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한다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조차 힘겹다는 걸 아는데 과연 가능한 것일까?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하고, 남들의 시선 때문에 어떤 일에 동참하고, 온전하게 상대의 입장에 설 자신도 없으면서 위로한답시고 위로를 하는 우리들이 이 소설집에 있었다. 결국은 나를 위해 나의 마음이 편해지려고 그랬던 건 아니었을까. 내 위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했으니 할 만큼 했다고. 그건 우리의 입장이고 상대의 입장은 다르다는 걸 매번 잊는다. 용산참사에 대해 취재를 하는 과정을 콩트로 풀어 낸 「나정만씨의 살짝 아래로 굽은 붐」에서 크레인 기사 나정만의 말처럼 그곳에 있던 사람과 만나야 하는 게 맞았다. 그들의 아픔에 동참하고 위로하려는 슬픈 마음은 충분히 안다. 현장에 있던 이들을 만날 자신도 없으면서 그것에 대해 소설을 쓰려고 했던 소설가의 비겁함, 우리 모두의 민낯은 아닐까.

 

 사채업자에게 돈을 돌려받기 위해 아파트 단지 앞에서 농성을 하는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속 권순찬 씨도 잘못이 없다. 그를 도우려는 아파트 주민들도 마찬가지였다. 사채 빚 700만 원을 이중으로 받은 사채업자가 나쁜 사람이다. 권순찬 씨는 그 돈을 돌려받아야 하는 게 마땅했다. 십시일반 700만 원을 마련해 전하지만 권순찬 씨는 받지 않고 추운 날씨에도 농성을 이어간다. 시간이 지날수록 권순찬 씨가 신경 쓰이고 빨리 떠나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누군가의 신고로 그는 노숙자 쉼터로 갔다. 아파트 주민과 ‘나’는 왜 권순찬 씨를 참지 못했을까. 그가 잘못한 게 하나도 없는데. 우리 사회의 수많은 ‘권순찬’의 고통을 우리는 진심으로 헤아릴 수 있을까.

 

 친절 혹은 진심이라는 단어에 감춘 진짜 친절과 진심은 어떤 걸까. 우리는 그 진심을 마주할 용기가 있는 걸까.「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에선 여기저기 내비친 친절을 기억하지 못하는 남자가 등장한다. 제목을 통해 짐작하듯 강민호는 누구에게나 친절했다. 중학교 후배인 윤희와 아내에게 똑같은 분홍색 스프라이트 비키니 수영복을 사 준 남자. 윤희의 입장에서 그건 단순한 친절이 아니었을 텐데. 고교 후배의 여자친구로 다시 만난 윤희 앞에 강민호는 부끄러움도 모르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무심히 던진 말이나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된다는 걸 확인하게 만든다.

 

 강민호처럼 부끄러움을 몰랐다면 「나를 혐오하게 될 박창수에게」, 「오래전 김숙희는」속 김숙희는 남편을 죽이지 않았을까? 자신에게 모든 걸 주기만 했던 남편을 두고 다른 남자를 만난 김숙희. 남자는 영업상 필요에 의해 유치원 교사였던 김숙희를 만났고 그녀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김숙희는 남편의 무조건적 환대를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을까. 왜 그런 걸까. 다른 소설에 비해 이 두 편의 소설은 기묘하다.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을 소설은 「한정희와 나」, 그리고 「이기호의 말」이다. 「한정희와 나」속 한정희는 다른 인물과 다르게 초등학생이다. 작가인 ‘나’와 아내는 한정희를 잠시 맡게 된다. 정희는 아내가 어린 시절 돌봄을 받았던 이들의 손녀다. 아내가 그들에게 받은 사랑에 보답하는 정도로 데리고 있는 동안 부족함이 없도록 애를 쓴다. 그런데 정희가 학교폭력에 가해자가 되면서 갈등이 생긴 것이다. 친구를 따돌리고 언어폭력을 일삼으며 그것이 얼마나 무섭고 나쁜 일인지 정희는 인지하지 못한다. ‘나’는 그런 정희를 참아내려 노력하지만 끝내 폭발해버린다. 하지 말아야 한 말들을 해버렸고 정희는 조부모에게 돌아간다. ‘나’를 통해 보통의 어른을 본다. 만약 나라면 나는 정희에게 어떻게 대했을까.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윤리적으로 행동할 수 있었을까. 자신할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은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 불편함의 울림을 ‘이기호의 말’에서 다시 마주한다.

 

  “자네, 윤리를 책으로, 소설로,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나? 책으로, 소설로, 함께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나? 내가 보기엔 그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네.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 그것이 우리가 소설이나 책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유일한 진실이라네. 이 말을 하려고 여기까지 왔다네. 진실이 눈앞에 도착했을 때, 자네는 얼마나 뻔하지 않게 행동할 수 있는가? 나는 아직 멀었다네.” (「이기호의 말」, 313~314쪽)

 

 소설 읽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소설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 잘 모르겠다. 소설 속 인물처럼 살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 아니면 주변에 그런 이들이 없기를 바라는 부끄러운 소망. 어쩌면 무언가 생각나게 하는 게 소설을 통해 얻는 것인지도 모른다. 함께 산다는 것, 타인의 고통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 생각이 행동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읽어야 한다는 것, 그 정도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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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7-11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기호 이기호 하던데 역시더군요!

자목련 2018-07-13 16:39   좋아요 0 | URL
네, 이기호 정말 대단해요. 이번 소설집은 특히 더^^
 
괜찮다는 말은 차마 못했어도 슬로북 Slow Book 3
함정임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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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은 자기 안에 억눌린 자아에 귀를 기울이고, 숨을 터주는 것부터 출발한다. 차마 보여주기가 부끄럽지만, 드러내놓고 나면 마음이 가벼워지고, 자유로워진다. 마음이 자유로운 사람은 자신과 세상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소설 쓰기의 본질이 구원에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3쪽)

 

 글을 쓰고 싶은 날이 있다. 그냥 쓴다는 말이 맞겠다. 컴퓨터를 켤 수 없는 상황에는 핸드폰에 짧은 문장을 쓴다. 최근에 쓴 문장은 이렇다. ‘아무렇지 않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괜찮다고 말했지만 괜찮은 적이 많지 않았다.’ 아마도 괜찮은 척했던 날이었던 것 같다. 괜찮지 않으면서 왜 괜찮다고 말했을까. 아마도 그건 나를 보여주고 싶지 않은 상대였거나 나를 걱정하는 상대였기 때문일 것이다. 걱정하는 마음과 그 마음을 재차 확인하며 걱정하는 마음, 함정임의 에세이 『괜찮다는 말은 차마 못했어도』를 통해 그 마음이 되살아났다.

  

 책은 보통의 일상을 기록한 글이다. 62편의 짧은 글에는 부산으로 이동 후 터를 잡고 대학에서 소설을 가르치는 일상, 해운대 달맞이 언덕의 이미지, 집과 가까운 병원에 계시는 어머니를 주말마다 뵙고 돌아오는 길, 유학을 떠난 아들에 대한 그리움, 광장에 나가던 주말, 제주도에서 반가운 이와의 재회, 아나톨리아 고원 중부에서 만난 잔단, 함께 소설을 공부하고 읽는 모임에 대한 진솔함이 가득했다. 작가로의 일상은 우리의 그것과 달랐고 그 안에는 여행과 책, 영화, 예술이 있었을 뿐이다. 좋아하는 창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소설을 쓰고 소설을 가르치는 함정임을 만날 수 있었다.

 평범한 일상이 자연스럽게 책과 연결되고 책의 이야기는 우리는 다른 공간으로 데리고 간다. 그곳은 함정임이 읽은 작가의 고향이거나 유년 시절을 보낸 곳, 그리워한 곳이었다. 한 권의 책이 우리는 그곳으로 인도했고 그 안에서 우리가 만난 그들은 마치 그곳에서 우리는 기다린 것만 같았다. 버지니아 울프, 롤랑 바르트, 로맹 가리, 카뮈, 톨스토이, 보들레르, 등 함정이 그들을 얼마나 깊이 사랑하고 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여행서 같기도 했다. 문학 여행서, 작가를 만나러 가는 길, 혹은 소설 속 그 장면과 만나는 여행 안내서. 나를 홀리는 책을 몇 권 메모하기도 한다. 버지니아 울프와 토마스 만의 소설을 담는다. 책은 책으로 이어지는 통로라는 걸 실감한다.

 한 권의 책을 읽는 동안 나와 책은 내밀하게 연결되어 있듯 함정임에게 여행은 그런 존재인 것 같았다.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하는 동안 누군가와 동행했다는 언급은 없었다. 그러므로 오롯이 자신의 내면을 채우기 위한 여행, 혹은 문학의 깊이를 더하기 위한 여행처럼 보였다. 단순하게 떠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인생을 마주하는 일이라는 걸 체감하다. 책이라는 여행에서도 마찬가지다. 함정임의 책을 통해 나는 이곳이 아닌 그곳을 탐색하고 그곳의 풍경을 상상하고 그곳의 쓸쓸한 기운을 감지한다. 활자를 통해 숨 쉬는 함정임의 호흡을 느낀다.

 

 글을 쓰며 사는 삶, 문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는 삶이 향한 그곳에는 이야기가 있고 소설 쓰기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시대를 읽고 시대를 공감하며 그것을 글로 쓰는 일. 별거 아닌 것처럼 여겨지지만 막상 쓸려고 하면 쉽지 않은 게 글이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과제를 내주거나 소설가에 대한 언급을 한 부분은 조금 더 강렬하게 다가왔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필명을 지었던 에피소드, 윤대녕과 이기호의 소설로 닿는 쌍계사를 다녀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을 바꾸는 행위, 그것은 자신의 존재감과 정체성, 나아가 자신의 뿌리를 근원적으로 되돌아보고 적극적으로 미래를 탐색하는 일이다. (202쪽)

 

 소설가란 단 한순간도 쓰지 않으면 사는 데 의미가 없다고 자각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것은 작가만의 운명이 아니다. 모든 인간의 속성이되, 대부분 쓰지 않을 뿐이다. (278쪽)

 

 쓴다는 것이 운명이라는 말, 괜히 고맙고 감사하다. 작가만이 아니라 모두의 운명이라니. 쓰고 싶은 마음을 키워도 좋을 것 같다. 그게 무엇이든 계속 써나가라는 격려 같다고 할까. 보통의 날들, 보통의 일상을 기록하는 삶을 사랑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상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웃고, 화내고 웃고, 화내고, 싸우고, 그리고 다시 화해하는 반복된 일상, 그 소중함을 전할 시간이다.

 

 때로는 벅차게 용솟음치며 희열을 느끼고, 또 때로는 절망적으로 고통을 겪으며, 우여곡절 끝에 도달한 세밑, 나 자신과 가족, 친구들을 위한 따뜻하고 강인한 이야기, 사랑에 관한 긴 이야기가 간절하다. (3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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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7-10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함정임 작가도 신간이 나왔나봅니다. 책 제목이 좋네요.
자목련님, 시원한 오후 보내세요.^^

자목련 2018-07-11 18:20   좋아요 1 | URL
말씀처럼 제목이 참 좋아요. 쓸쓸하면서도 따뜻한 그런 글들이 많았어요.
서니데이 님, 맛있는 저녁 드시고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장마가 시작되었다. 일기예보에서 예측한 대로 무섭게 비가 내렸다. 창문을 열었다가 닫기를 반복한다. 빗소리를 듣고 싶어서 창문을 열었다가 달려드는 빗줄기를 밖으로 내몬다. 풀냄새, 비 냄새에 취했다가 깨어난다. 여름의 날들인 것이다. 벌써 7월이고 아무 생각도 없이 지낸다는 말에 아는 동생은 내게 혼을 냈다. 그럼, 무슨 생각을 해야 할까.

 

 난은 꽃을 피웠다. 난이 꽃을 피울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난에게 말을 걸지도 않았기에 미안해졌다. 낮에는 몰랐던 은은한 향기가 밤을 지배한다. 여름밤, 가만히 캔맥주를 마시다 향기를 떠올린다. 곧 꽃은 지고 언제 이 꽃을 다시 볼지 알 수 없다. 알 수 없으니 신비롭고 알 수 없으니 더욱 소중하다.

 

 

 

 

 

 

 우리의 통화는 그런 것이었다. 10년 동안 글과 글 사이를 오가다 말과 글 사이를 오갔다. 말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말들이, 말하고 싶지 않았던 말들이 계속해서 나왔다. 고맙고도 신기한 일이었다. 말과 글 사이에 우리는 나란히 서 있는 기분이었다. 누군가를 위한 글이 아니라 나를 위한 글, 나 자신을 위한 글은 계속되어야만 한다. 읽고 쓴다는 일이 우리를 위로할 것이고 지탱할 것이다. 그리고 회복시킬 것이다. 쏟아지던 비를 바라보며 나는 조금 울고 싶어졌다. 그러나 울지 않았다. 울지 않을 수 있는 힘이 자라고 있다는 걸까. 문득, 그 힘이 자라는 걸 계속 지켜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만이 알 수 있는 힘이기에, 나만 알 수 있는 것이다.

 

 이곳에 가져온 책은 두 권이었다. 모두 읽었고 지금은 아무것도 읽지 않고 있다. 책장에서 발견한 타샤 튜더의 ​『타샤 튜더, 나의 정원』속 꽃들을 보기만 했다. 꽃을 본다는 건 평화롭고 즐거운 일이니까. 박완서의 『아주 오래된 농담』을 다시 읽을까 꺼냈지만 읽지 않았다. 최은영의 『내게 무해한 사람』, 드리스 레싱의 『19호실로 가다』가 제일 만나고 싶은 책이다. 언제나 그렇듯 읽고 싶은 책은 나중으로 미뤄진다. 그래서 살며시 말한다. 책들아,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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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제자리에
최정화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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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화의 소설을 떠올리면 고요한 불안이 등장한다. 불안을 감추는 표정, 불안을 피하는 몸짓, 그리고 그것을 포착하는 누군가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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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맹 - 자전적 이야기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백수린 옮김 / 한겨레출판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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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쓸 때 가장 큰 위로를 받기도 한다. 나는 그렇다는 말이다. 글을 쓰는 동안 오롯이 글(나)과 하나가 될 수 있어서다. 책을 읽을 때도 그렇지 않냐고 물을 수도 있다. 책을 읽을 때와 마찬가지로 딴 생각이 자리를 잡아 집중이 어려울 때도 있으니까. 하지만 읽는 것과 쓰는 건 같은 듯하면서도 완전히 다르다. 읽기는 정해진 끝을 향해 나가는 것이고 쓰기는 내가 그 끝을 정해야 한다. 이 글이 언제 어떻게 끝날지 아는 건 나밖에 없다.

 

 쓴다는 건 무엇일까. 일기를 쓰고, 편지를 쓰고,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쓰는 일. 단순히 기록하기 위해 쓰고 나를 표현하기 위해 쓴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로 알려진 작가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자전적 에세이 『문맹』은 쓴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어떤 기대도 없이 『문맹』을 처음 읽었을 때 쉽게 읽혔다. 읽고 나서 지인에게 이 책에 대해 어린아이의 글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그 나이를 생각하면 대단한 글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리고 쓰고 싶을 때 쓸 수 있다는 환경에 감사하며 다시 읽었다.

 

 

 

 

 네 살 아이가 읽은 것들, 글자를 읽는다는 기쁨, 전쟁이 막 시작된 상황, 억지로 가르치고 배우는 언어, 어쩔 수 없이 가족과 헤어져 기숙사에서 거주하며 서로를 그리워하는 시간, 난민 시설을 거쳐 스위스에서의 생활을 차례차례 짚어보며 글을 쓸 수밖에 없었던 아고타 크리스토프가 마주했다.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나는 무엇을 쓰고 싶은지, 내가 쓰는 건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지 자꾸만 내게 묻게 된다. 아니다. 어떤 목적도 없이 아무런 의미도 없이 글을 쓸 때도 많다. 그냥 쓰고 싶은 것이다.

 

 아버지의 교실에서는 분필, 잉크, 종이, 고요함, 침묵, 눈雪의 냄새가, 여름에도 풍긴다. 어머니의 넓은 부엌에서는 도살된 짐승, 삶은 고기, 우유, 잼, 빵, 젖은 빨래, 아기의 오줌, 부산함, 시끄러움, 여름 열기의 냄새가, 겨울에도 난다. (10쪽)

 

 뭔가 읽을 것이 있을 때면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나는 계속 읽고, 그러고 나면 울면서 잠든 밤 사이에 문장들이 태어난다. 문장들은 내 곁을 맴돌다, 속삭이고 리듬과 운율을 갖추고, 노래를 부르며 시가 된다. (34쪽)

 

 아름다우면서도 솔직하고 순수하고 순진한 『문맹』의 글은 아고타 크리스토프를 증명한다. 곱게 정제된 글이 아니다. 그럼에도 충분히 유려하다. 오직 그녀만의 쓸 수 있는 글이다. 100여 쪽의 글로 이렇게 확고하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다니. 그녀의 모든 감각은 쓰기 위해 존재하고 열려 있다. 어린아이의 감정, 소녀의 마음, 젊은 엄마의 불안, 작가의 고통을 전부 보여준다. 그래서 어떤 글에서는 통증을 느끼고 어떤 글에서는 같이 아파하고 어떤 글에서는 공포로 숨을 죽인다. 안개보다 더 짙게 깔려 알 수 없는 내일의 상황을 고스란히 안고 살아가면서도 글을 향한 열정을 놓지 않는다. 자신이 말하고 쓰는 언어를 떠나 겨우 들리기만 하는 언어로의 이동. 모어를 잃어버린 게 아니라 간직한 채 스물여섯 살, 다시 학교에 다닌다. 프랑스어를 배우고 글을 쓴다. 자신이 쓴 글을 당당하게 사랑하고 확신을 갖는다. 그것만이 그녀를 계속 쓸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무엇보다, 당연하게도, 가장 먼저 할 일은 쓰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쓰는 것을 계속해나가야 한다. 그것이 누구의 흥미를 끌지 못할 때조차. 그것이 영원토록 그 누구의 흥미로 끌지 못할 것이라는 기분이 들 때조차. 원고가 서랍 안에 쌓이고, 우리 가 다른 것들을 쓰다 그 쌓인 원고들을 잊어버리게 될 때조차. (97쪽)

 

 어떻게 작가가 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이런 것이다. 우리는 작가가 된다. 우리가 쓰는 것에 대한 믿음을 결코 잃지 않은 채, 끈질기고 고집스럽게 쓰면서. (103쪽)

 

 글을 쓸 때 무섭고 두렵다. 제대로 쓰고 있는지 알 수 없어서다. 완벽한 글을 쓰기를 바라지만 ‘완벽’에 대해 모른다. 모르기에 쓸 수 있고 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글을 붙잡고 계속 쓰다 보면 나아지겠지 생각한다. 그래도 쓸 수 있어서 다행이다. 모어(母語)로 말하고 쓸 수 있어 다행이다. 내가 하는 말과 쓰는 글을 들을 수 있고 읽을 수 있는 이들이 있어 감사하다. 쓴다는 것에 두려워하지 않기로 한다. 무엇을 쓰든, 무엇 때문에 쓰든, 얼마나 쓰든 상관하지 않기로 한다. 그저 나를 위해 쓰고 쓰는 일을 지속한다. 쓰는 동안 나는 살아 있고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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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8-06-19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용하신 구절들이 저도 무척 마음에 들었더 구절이라 더 공감이 가네요.

자목련 2018-06-21 10:11   좋아요 1 | URL
아름답고도 매혹적인 구절이 참 많았어요, 놀라운 책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