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옆방에 있는 젊은 교수가 1년에 받는 연구비를 저는 평생 못 받았습니다." 얼마 전까지 R&D 예산 삭감으로 말이 많았는데 최 교수의 연구 분야는 그전 부터도 돈이 되는 연구는 아니었던 것 같다. 곱씹고 싶은 문장들을 가득 담은 책들을 여러 권 써낸 정희진 선생님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던 걸로 기억한다. 생각해 보면 이른바 '돈이 되는 일'은 대체로 경쟁적이고 환경을 파괴하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우리가 매일같이 마시는 공기며 물, 나무 같은 필수적인 요소들은 오히려 거의 공짜로 주어진다. 그래서 무시되는 걸까, 마구 남용되어 점점 그것들을 이용하는데 비용이 들어가게끔 환경이 나빠져가고 있다. 슬프고 무서운 일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곤충 사회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간다. 착취보다는 공생에 가깝고 대화도 통하지 않는 서로 다른 종이 필요한 것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모습이 놀라움을 자아낸다. 나는 줄곧 서울에서 자라 곤충이라고 접해본 건 학교에서 숙제로 채집하라는 잠자리, 사슴벌레 정도가 고작이었고 개미에 대해서는 베르나르 베르베르라는 작가를 통해 소설로 이해한 게 전부였다. 바퀴벌레는 많이들 그렇겠지만 나 역시 되도록 마주치고 싶지 않은 대상일 뿐이었는데 다큐를 보고 인식이 조금 바뀌었다. ㅡ바퀴벌레에 대한 공포의 정도는 부모에 대한 인식, 두려움과 심리적으로 연관성이 깊다고 한다. ㅡ 그래서 시골에서 곤충을 많이 보고 자란 사람들이 신기했다. 다양한 종들의 이름도 알고 두려움 없이 만질 수도 있는 점이 그랬다. 인근의 숲과 마당 텃밭을 통해서 이름 모를 곤충들을 접할 기회가 조금 더 늘었다는 게 그나마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어나가다 보니 곤충 사회는 너무나 의외였으며 흥미롭고 배울 점이 많아 보인다. 왜 최재천 교수가 평생을 여기에 몰두했는지 심지어 나이 들어서도 재미있어하는지 십분 이해가 되었다. 책을 읽다가 여기저기 마음을 사로잡는 이야기가 많아 저녁에 가족들에게 들려주곤 했는데 엄마는 요즘 만나는 친구분들에게 가서 또 그 이야기를 해줬더니 다 놀라더라며 즐거워하셨다. 예를 들면 운동화며 생활 곳곳에 쓰이는 찍찍이도 곤충의 그것을 카피해 만든 발명품이었고 개미와 흰개미,사람만이 농사를 짓는다고 한다. 침팬지보다 사회생활 면에서는 개미의 그것이 인간과 훨씬 비슷하다. 개미들도 노예를 부리고 살인을 하는 등 인간사와 닮아도 너무 많이 닮았다. 머리에 쟁반을이고 있는 모습의 개미도 있고 흰개미는 보기와 달리 메뚜기나 바퀴벌레에 가까운 곤충이라고 한다.
최재천 교수가 대학에 입학할 때 집에서는 의사가 되길 바랐다고 한다. 그는 그 대신 동물학을 전공하게 됐는데 처음에는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던 중 잠시 샘플 채집을 위해 미국에서 한국에 들어온 생물학 교수를 논으로 밭으로 안내하다가 자연을 관찰하며 신나게 살면서도 먹고 살 수 있다는데 놀랐고 이거다 싶었다. 어떻게 하면 선생님처럼 될 수 있는지 알려달라고 무릎을 꿇었다. 이 책은 최재천 교수가 강연을 다니며 했던 내용을 담았다. 펜실베니아 주립대에서 하버드로 옮겨간 사연, [통섭]으로 잘 알려진 윌슨 교수, [이기적유전자]의 리처드 도킨스 교수와의 인연 등이 다 담겨 있어 지루할 틈이 없었다. 호주제 폐지 운동에 가담했다가 큰 역할을 한 뒤 어르신들의 비난 전화에 시달렸었다는 에피소드에 반해 작년부터 [최재천의 아마존]을 너튜브에서 구독 중이었다. 거기서 그의 입담, 인간적인 매력이 넘치는 가치관이 반짝인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책으로 그가 어떤 선택들을 해왔는지 알게 되어 좋았다.
인류는 그동안 돈이 되는 일에 너무 많은 자원을 쏟아부었다. 그 결과가 정말 삶의 질을 향상시켰는지 의문이 든다. 오히려 돈이 되지 않는 일에 열정과 관심을 쏟은 사람들 덕에 이 사회가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 건 아닐까. 어쩌다 역사도 가장 짧은 호모 사피엔스가 피라미드 꼭대기에 앉아 아래에 있는 구조를 뒤흔들고 있는 중이다.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그들에게서 이제는 겸손히 배워야 할 때가 왔다.
제가 미국에서 유학하던 시절에 해양생태학자이신 제인 루브첸코 박사님이 미국 생태학회 회보에 글을 쓰셨어요.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생태학자의 비율을 계산해보셨더라고요. 지금은 제인 구달 박사님을 롤 모델로 한 여성 학자들이 제법 많지만, 그 당시는 여성 학자들이 압도적으로 적은 시절이었어요. 남성 중심의 분야였던 그 당시에 미국생태학회에 소속되어 있는 회원들의 연구 키워드를 분석하셨죠. 압도적으로 많은 남성들의 연구 주제가 경쟁인 거예요. 거의 다 경쟁에 꽂혀 있었어요. 반대로, 여성 생태학자들의 약 40퍼센트가 자연계에서 벌어지는 협동을 연구하고 있더랍니다. 그러면서 예연 같은 말씀을 하셨어요. "왜 여성들이 이 분야를 들여다보고 있을까? 내 생각에는 앞으로 이 분야가 중요해질 것이다." 91
"가진 자가 공정을 얘기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공정이라는 단어가 가진 자의 입에서 나오면 안 된다" 96
개미는 유산을 물려주지 않아요. 개미는 자기 자식이 어디 가서 어떤 성공을 하는지 전혀 모릅니다. 어느 날 수개미와 공주개미를 잔뜩 날려보내고 나면 여왕개미는 내가 자식 농사에 성공했는지 아닌지를 가늠할 방법이 전혀 없습니다. 내 아들딸들이 짝짓기에 성공했는지, 어디에 나라를 세웠는지 알 길이 전혀 없어요. 그래서 개미는 되게 깔끔해요. 그냥 최선을 다해 살고, 최선을 다해 자식을 길러서 사회에 내보내는 거예요. 그다음에는 모르는 거고, 그들은 그들대로 삽니다. 이게 인간 사회와 참 많이 다르잖아요. 우리는 결혼시켜 놓고도 김치를 해다가 며느리 없을 때 몰래 가서 냉장고에 넣어놔야 하는데, 개미는 깔끔하게 그런 게 없어요. 1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