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도 긴 여행
배지인 지음 / 델피노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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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돌아온다 - 짧고도 긴 여행

'당신에게 인생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답을 해야 할까? 딱히 거창한 의미라는 것도 없고, 솔직히 깊게 생각해 본적도 없는 듯. 인생의 의미를 깊게 생각하고, 자신만의 답을 도출하여 세상에 알리고 이를 널리 인정받는 사람도 있는데, 하다 못해 근사한 단어 하나 쯤은 내밀 수 있어야 하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래봐야 그 때 잠깐 일뿐, 이내 삶의 고단함에 파묻혀 '인생의 의미 따위..' 라고 뱉어 버리고 말지만 말이다.

이 소설 <짧고도 긴 여행>에 등장하는 '유민' 이라는 이름의 인물은 이 '인생의 의미' 를 적극적으로 찾는다. 군인 가족으로서 평범하지 않는 유년기를 보내고, 세상이 일순간에 바뀌는 큰 트라우마를 안게 되고, 성인이 되어서는 딱 30년만 살다 죽겠다는 결심까지 한다. 결심 후에는 그야말로, 전세계를 누비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루 하루를 살아간다.

솔직히 삶의 의미를 너무 늘어 놓은 듯한 느낌이 없지는 않지만, 트라우마에 당당히 맞서며 적극적으로 다가서는 '유민'의 모습이 부럽기도 하다. 뭐든 부딪히면 얻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소극적인 나와는 반대로 적극적인 '유민'

의 모습을 보면서 조금은 감정이입을 해보게 되기도 한다.

꽤나 무거운 주제 같은데, 상당히 가볍게 잘 풀어낸 느낌이다. 막연한 무게감이 느껴진다기 보다는, 가볍게 소설 속의 인물을 따라 가면서, 서서히 밀려오는,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보면 가득 차오르는 밀물을 만나는 느낌의 소설이다. 떠나가는 썰물의 쓸쓸함 보다는, 밀려와 가득 채우는 푸근함이 느껴진달까.

소설의 감상을 단순한 느낌으로만 설명하는 성의 없는 글을 쓰고 있지만, 이 소설을 마주한 솔직한 심정이기도 하다. 뭔가 그럴듯한 미사여구로 이것저것 설명하는 것보다, 담백한 문장 하나가 이 소설을 더 잘 설명해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짧은 인생도, 긴 인생도 없다. 자신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인생에 덤벼드냐에 따라, 그 길이는 언제나 조정되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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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받은 야수 디즈니의 악당들 2
세레나 발렌티노 지음, 석가원 옮김 / 라곰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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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가 야수가 된 까닭 - 저주받은 야수 _ 스토리매니악

그런 경험이 있지 않은가? 어릴 적 읽었던 이야기가 어른이 되어 읽었을 때 다르게 읽히는 경험 말이다. 단지 이야기의 분위기가 다르게 느껴지는 것을 넘어, 이야기 속의 캐릭터 자체가 다르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릴 적 읽었던 이야기의 주인공은 더 없이 착하고 한 없이 어려움에 처하는 약자였지만, 어른이 되어 읽은 이야기의 주인공은 어떤 면에서 고집쟁이고 기회주의자로 느껴지기도 한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좋은 이야기, 착한 주인공이라는 프레임을 벗어나, 내가 느끼는 개성 있는 캐릭터가 탄생하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디즈니의 명작들도 그렇다. 어릴 적 보았던 에니메이션의 캐릭터가 어른이 되어 보면 뭔가 공감이 가지 못하는 경험이 많다. 오히려 주변의 인물들에 감정이입이 되고, 악당들의 심점에 되려 동조하게 되는 재미난 경험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에니메이션에서 주인공은 왜 그가 어려움에 처했고, 어떤 과정을 거쳐 고난을 헤쳐나가게 되는지 모든 스토리가 드러난다. 하지만 악당들은 어떤가? 단지 '악당' 이라는 단어로만 표현되어 마치 태어나면서부터 악당이었을 것 같다. 더이상의 수식어도 필요치 않고, 그들이 악당이 되어야만 했던 스토리나 과정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하긴, 그런 이야기까지 넣으려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이 소설은 그런 명작들의 뒷이야기에 주목한다. 주인공에 치여 나쁜넘으로만 기억되는 악당들의 숨은 스토리, 그 이야기에 집중하여 새로운 이야기가 탄생한다.

이 소설에서의 주인공은 디즈니 명작 '미녀와 야수'에 등장하는 '야수' 다. 미녀에 의해 개과천선(?) 당하는 악당 캐릭터, 그 야수가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가 어떤 이유로 저주에 걸리게 되었는지, 그 앞뒤 이야기와 함께 야수라는 캐릭터가 가진 내면의 스토리를 재미나게 표현하고 있다.

명작을 풀어헤쳐 나온 조각들에 생명력을 불어 넣어 새로운 이야기가 창조되어 장대히 펼쳐지는 느낌이다. 저주에 걸리기 이전의 왕자의 삶, 그가 저주에 걸리게 된 경위, 미녀를 만나기까지 그가 겪어야 했던 내면의 감정들까지 오물조물 엮어내어 재미를 준다.

이야기 자체에 대한 재미 보다, 명작의 숨은 뒷이야기, 명작을 바탕으로 재창조한 이야기라는 점이 더욱 재미나게 다가온다. 그 재미를 일일이 나열할 필요는 없겠다. 읽어보면, 명작의 숨은 뒷이야기에 발견할 수 있는 색다른 재미를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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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얼티
스콧 버그스트롬 지음, 송섬별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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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한 세계에 뛰어든 소녀 - 크루얼티 _ 스토리매니악


일상에서는 느끼기 힘들지만, 미디어로 조금만 눈을 돌려도 세상의 추악한 면들을 금새 알게 된다. 뉴스와 신문에 등장하는 사건들, 수많은 영화의 소재로 쓰이는 사건들, 조금만 어두운 곳으로 발걸음을 내딛으면 맞닥뜨릴 것 같은 생생한 어둠의 세계가 존재한다.


그 세계에 존재하는 추악함은 잔혹함과 맞물려,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에게 공포심을 안겨 준다. 유약한 보통사람은 한 순간도 견디기 힘들 것 같은 공포심이 지배하는 세계는 어떨지 호기심이 일기도 하지만, 단지 호기심 차원에서 맛보고 싶을 뿐이지, 그 세계에 던져지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싫어진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상상조차 하기 싫어지는, 바로 그 지점으로 던져진다. 유약하기 짝이 없던 외교관의 자녀인 '그웬돌린',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진 아빠를 찾아 어둡고 잔혹하고 끔찍한 세계로 뛰어든다. 아빠를 납치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그들에게 접근이나 할 수 있을지, 어제까지 평범한 고등학생에 불과했던 소녀가 이 의문들을 품고 악마보다 잔혹한 사람들에게로 뛰어든다.


소설의 줄기와 흐름은 일반적인 스릴러 소설의 기준을 따르고 있다. 사건이 벌어지고, 그 사건을 해결하려 뛰어들어 생기는 갈등을 맞닥뜨리고, 그 갈등을 넘어서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어리고 약했던 '그웬돌린' 이라는 소녀는 사라지고, 잔혹한 어른의 세계에 던져진 강인한 여성으로써의 '그웬돌린' 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어제까지 평범하기 그지없던 고등학생 소녀가 어느 순간 갑자기 가혹한 뒷골목의 세계로 뛰어든다는 설정이 조금 거부감이 들기는 한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쉬운 동네가 아닐텐데 말이다. 그러나 작가는 약간의 억지스러운 설정을, 한 캐릭터의 변모해 가는 과정을 보여주며 만회하고 있다. 정통적 스릴러 소설의 꽉 짜인 스토리에서 오는 재미보다는 캐릭터 자체를 즐기게 되는 소설이다. 완성형의 스파이들이 보여주는 압도적인 모습이 아니라, 한 소녀가 두려움과 유약함과 싸우며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다른 면에서 조마조마하며 보게 된다.


스릴러, 스파이 소설의 진면목을 느끼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지만, 한 소녀 캐릭터의 변신 과정을 보는 재미와, 미국, 프랑스, 독일, 체코를 돌아다니며 벌어지는 사건들의 전개가 볼 만하다. 이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 단순한 목표가 확장되어가고, 소녀의 세계도 확장되어가며, 소녀가 보는 어른들의 세계도 점점 확장되어 간다. 조금씩 소설이 전해주는 이야기가 늘어갈 수록, 그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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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서 살 생각인가?
이사카 고타로 지음, 민경욱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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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현실의 절묘한 싱크로 - 화성에서 살 생각인가? _ 스토리매니악


'사회' 라는 세계가 무섭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은, '사회' 라는 존재를 인식하게 된 시기와 비슷하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속해 살아가는 사회라는 공간 안에서 인간이 느끼는 감정은 실로 다양한데, 사회라는 존재가 주는 공포도 그 중의 하나다. 이 공포는 살아감에 있어서의 단순한 공포만 있는 건 아니다. 사회가 현대화 되면서, 더더욱 커지고 있는 공포 중 하나는, 인간이 사회에 구속되면서 발생하는 공포들이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핵심도 그 부분과 닿아 있다. 평화를 지킨다는 구실로 공권력이 폭주하는 사회, 공권력의 폭주로 인간성이 말살되고 누구도 그 폭주에 브레이크를 걸지 못하는데서 오는 허탈감과 공포감은 이 소설은 잘 그려내고 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부분은 근래 우리 대한민국의 사회 모습과도 맞닿아 있다. 강력한 통치력을 바탕으로 국민의 입을 단속하고, 국민의 자유를 구속하며, 이를 권력을 유하고 활용하는데 이용한 일련의 사건이 그렇다. 이 소설이 그리고 있는 모습과는 다른 형태일지라도 그 본질은 의심의 여지 없이 같다.


이처럼 묵직한 사회 비판적 시선을 가지고 이야기는 진행된다. '평화경찰' 이라는 것의 창설과 더불어, 사회는 모니터링 되고, 시민간의 밀고에 의해 죄 없는 사람도 죄가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는 공포 사회가 도래한다. 감시되는 사회라는 공포에서 누구나 만들어진 범죄자가 될 수 있다는 공포로, 또 이것이 독재적이고 잔인한 처벌로 이어진다는 공포감을 느껴가는 과정이 이 소설의 백미라 할 만하다.


초반은 다소 산만한 감도 있다. 다양한 인물들의 관점에서 보여지는 공포 사회의 모습이 그려지며, 조각난 이야기가 이어지는 느낌도 받게 된다. 이 인물의 시선으로 그려지는 모습에는 무슨 의미가 있는건지, 저 인물의 시선으로 그려진 사회의 모습에서 무슨 단서를 찾아야 하는 것인지 아리송하게 흘러간다. 그러나, 초반의 이런 모습이 후반에서 하나로 모아지며, 저자가 의도하는 큰 그림이 마침내 보여질 때는 이야기꾼의 저력이 무엇인가를 느끼게 된다.


'정의' 라는 이름을 앞세워 사회를 통제하려 하고, 권력을 유지하려는 시도는 우리의 역사는 물론 세계의 역사에서 무수히 찾아볼 수 있다. 또한 현재의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처럼 사회의 불필요한 도구로 이용되고 있는 사회의 어두운 면을 소설 속에 녹여 냄으로써, 우리 사회가 곱씹어 보아야 할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어찌보면 단순한 이야기 같지만, 어찌보면 참 어려운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현재의 사회 모습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기 보다는, 좀 더 극적인 표현으로 좀 더 과장된 표현으로 이야기에 녹여냄으로써 저자가 말하는 바가 더 분명히 드러나는 느낌이다. 소설 속 공포 사회에서 한 발 물러나 보고 있지만, 마치 그 안에 살고 있는 듯 오소소한 느낌이 드는 것은 저자가 그려낸 소설 속 세계가 자꾸 우리의 사회에 오버랩 되어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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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병동 병동 시리즈
치넨 미키토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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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된 병동, 범인은 누구인가? - 가면병동 _ 스토리매니악


어둠이 깔린 밤의 병원은 묘한 공포감을 일으킨다. 기묘한 고요함, 묵직한 공기, 후각을 자극하는 약품 냄새, 어두침침한 분위기까지, 밤에 둘러쌓인 병원은 그 자체로 소설의 무대다. 그 공간이 외따로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그 병원이 더욱 고요할 수 밖에 없는 환자들로 가득하고, 심지어 외부와 차단되어 버린다면?


이 소설은 이처럼 분위기 자체가 추리 소설의 무대가 된다. 선배의 부탁으로 교외에 있는 한 요양병원에 당직을 서게 된 주인공, 피에로 가면을 쓴 괴한이 인질을 잡고 병원에 침입하고, 병원을 폐쇄한채 밤새 인질극을 벌이며 벌어지는 묘한 이야기가 주요 줄거리다. 뭔가 목적이 있는 듯한 피에로 가면의 괴한과, 조금씩 벗겨지는 병원의 비밀 안에서 작가가 숨겨 놓은 트릭들이 춤을 춘다.


이 소설은 내 기준에 의하면, 몇 가지의 뚜렷한 장점과 몇 가지의 뚜렷한 단점을 지닌 추리소설이다. 저울 추 가운데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고 어느 쪽으로 기울어질 것인가를 계속 고민하게 만든다.


이 소설에서 즐거웠던 점은 잘 읽힌다는 점, 나름 추리 소설로써의 분위기를 잘 잡아가고 있다는 점, 책을 덮고 나서 깨닫게 되는 트릭이 꽤나 존재한다는 점이다. 외딴 곳의 병동에서 벌어지는 인질극, 병원이 간직한 비밀이 조금씩 드러나며 전체 윤곽이 그려지고, 장치된 트릭이 눈에 보일 때의 즐거움은 꽤 되는 편이다. 추리소설을 많이 접해보지 못한 독자나 복잡하지 않은 트릭의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충분히 만족감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반면 추리소설을 꽤 읽었거나, 트릭의 깊이라든지 기발함을 즐기는 이들에게는, 이 소설은 상당히 싱거울 법 하다. 무엇보다 한정된 공간 안에서 한정된 인물이 사건을 만들고 이야기를 이끌어가다 보니, 범인을 추측할 수 있는 범위가 좁아지며 조금은 싱거운 범인 찾기가 되는 모양새다. 폐쇄된 공간에서의 밀실 트릭을 꽤 잘 장치에 놓았지만, 그 깊이는 아쉬운 편이다. 범위를 딱 좁혀놓고 상당 부분 읽어나가다 보면 저자가 숨겨 놓은 부분들이 꽤 선명히 보이는 편이다. 또, 사건의 발단이 된 동기 부분들이 약하지 않은가 하는 아쉬움도 있다. 병원이 가진 비밀이라는 것이 너무 뻔해 보여 범인의 동기에 깊이 감흥되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뚜렷한 장단점이 있음에도 전체적으로 보면 읽기에 편한 미스터리 소설이었다. 깊이 고민하지 않고 이야기가 흘러가는대로 의식을 따라가며 즐기는 추리소설로는 나쁘지 않은 재미를 선사한다. 좀 더 찐득한 미스터리로써의 요소들이 가미되고, 인물들에게 좀 더 잔혹한 성격을 부여했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개인적 취향에 따라 좋아하는 부분과 싫어하는 부분들이 꽤나 갈리게 될 소설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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