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홍
노자와 히사시 지음, 신유희 옮김 / 예담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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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알라딘이 나의 생활을 바꾸기 시작한다. 남의 말을 득기보다 아집과 독단으로 일을 결정하길 즐기던 내가 알라디너의 추천이 아니면 책 한 권을 마음대로 구매하질 못하게 되어버렸다. 직장 근처에 생긴 알라딘 중고서점을 뒤적거리다 발견한 책.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선뜻 손이 갔다. 중고서적의 가격도 매혹적이었고, 표지가 나를 부르는 듯한 느낌? 마지막으로 읽은 추리 소설이 '스노우 맨'이었는데 사람들의 평과는 달리 나에게는 그닥 감동적이진 않았기에 뭔가를 갈구하고 있던 와중에 발견한 책이다. 그런데도 선뜻 사지는 못하다가 '심리묘사가 탁월하다'는 서평을 읽자마자 사버렸다. 책을 들고 들어간 커피숍. 밖에는 비가 추적거리고 나는 식어가는 커피잔을 앞에 두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네 명의 가족의 살해당하고 이들을 죽인 살인자가 사형을 선고받는다. 남아있는 생존자 한 명. 나머지 가족은 다 죽었는데 자기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삶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던 그녀는 살인자에게도 자신과 같은 나이의 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만이 피해자라는 생각에, 자신의 가족만이 피해자라는 사실에 가해자의 가족에게 화풀이하고 싶은 마음을 가진 주인공. 하지만 이야기가 흘러갈수록 그렇게 단순한 감정의 파편으로 세상을 나눌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한다. 특별할 것도 없는 사건(?)을 전개해 나가는 데도 작가의 힘이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이미 범인은 다 나와 있는 상황이고, 사건의 전모도 드러난 상황에서 독자인 내가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만든 힘은 무엇이었던가? 정말 마지막 장까지 결말을 두근거리며 지켜보게 만든 책이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두근거림.

  

  우린 오롯이 누군가에게 피해자가 되기만 할 수 있는 것일까?

 

  친구에게 배신 당한 내가 주먹을 휘둘러 지나가던 행인을 쳤다면 행인은 피해자이고 나는 가해자인가? 그럼 나를 배신한 친구는? 나를 배신한 친구에게 일어난 일은? 그렇게 돌고 돌아 서로에게 책임을 묻다보면 우린 어느새 꼬리에 꼬리를 물고 뱅뱅 돌게 되는 것은 아닌지.

 

  나만 아프다고 소리지르는 일만큼 간단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하긴 신데렐라를 질투할 수밖에 없었던 계모와 언니들의 입장을 이해하기 시작하면 세상은 살기 힘들어지게 마련이다. 악인의 입장을 이해하는 순간 우리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니까. 그렇기에 우린 늘 적군을 만들고 그들을 험담하면서 안전지대로 나를 들여놓곤 한다. 그게 상처받은 자신을 보호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곤 하니까. 그런데 우리 모두 상처받았다는 사실을 조금은 인지한다면 세상은 조금더 녹녹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문뜩 해 본다.

  피해자들의 색색깔의 흥건한 피에서 연유한 제목인데 섬뜩하기보다는 지금의 내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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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 2012-05-16 0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몰랐던 책인데 무척 읽고 싶어지는데요. 영화든 소설이든 "그렇게 단순한 감정의 파편으로 세상을 나눌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작품들에 관심이 갑니다. "우리 모두 상처받았다는 사실을 조금은 인지한다면" 그렇네요, 동감입니다. 우연히 제목에 이끌려서 들어왔는데 글들이 진솔해서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sokdagi 2012-06-04 11:53   좋아요 0 | URL
모르는 사람들이 공통된 이야기에 공감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부디 마음에 드셨길 바랍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감상 여행
다나베 세이코 지음, 신유희 옮김 / 북스토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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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라딘 덕분에 책을 사는 능력이 감퇴되어버렸다. 서점가를 헤매며 책장을 직접 들춰보고 종이질을 느껴보며 책을 사는 게 낙이었는데 어느 순간 알라딘 홈피의 리뷰어들의 별표를 보지 않으면 불안해서 책조차 집어들 수 없게 되었다. 누구 탓을 해야 하는가. 햇살이 찬란해서 자칫 여름 중에서도 한여름이라 여겨지는 하루, 난 모처럼 굴러들어온 시간을 옹골차게 쓰겠노라 결심하고 서점에를 들어갔다. 나에게 선물을 하자고 결심하고 책을 집어들 때마다 도통 무엇을 참고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내 모습을 봐야만 했다. 그러다 집어든 이 책. 물론 다나베 세이코의 작품을 몇 권 알고 있긴 하지만 선뜻 손이 가진 않았다. 책의 등뼈를 드러내지 않고 버젓히 누워서 베스트 셀러이네 하는 책들은 괜히 일별하고 구석구석 서가를 찾다가 골라든 책. 왠지 첫부분부터 마음을 화닥 당기는 부분이 있었다. 그걸 뭐라고 말해야 할까나? 보이지 않는 마력일테지. '그래도 이왕이면 신간을 사야지 예전 서적을 제값에 사다니 말도 안 돼...'라고 머릿 속으로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서점을 나올 때는 내 손에 떡하니 이 책이 놓여 있었다. 알라딘보다 2000원이나 더 주고 산 책.

  근데 결론은? 좋다. '곰스크로 가는 기차' 이후에 내 맘을 적셔주는 책이 없었더랬는데 오랜 만에 그 책과는 다르게 나를 기분좋게 만들어줬다. 흔히들 사람들이 행복해 지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는 작가들이 많던데 이 작가는 사람들의 행복을 가로막는 게 무엇인지를 알아보려고 했단다. 그런데 그녀가 쓰는 소소한 일상들은 말 그대로 거창한 행복이라는 기치가 아닌 일상 그 자체라서 마음에 든다.

  주택의 창가에 놓인 빨간 시클라멘 꽃을 보고 감명받은 노신사(?)와 노부인(?)의 만남도 좋고, 나이 많은 여자가 사랑에 목매달고 있으나 처량하기보다는 구질구질한 일상을 상큼하게 처리한 것도 좋다. 남편의 일상에서 고개 숙이고 살던 여자가 한 순간의 사건에 힘입어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것도 좋았다. 원래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것은 거대한 사건이 아니라 소소한 사건이 아니던다. 우리 모두 너무 거대한 것들을 바라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도대체 이 책이 왜 마음에 들었냐라고 묻는다면 뭐라 콕 찝어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읽어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전작에서 말했듯이 우리의 삶을 적시는 것은 붉고 선명한 선혈이라기보다는 화선지에 스며든 먹물방울 같은 것이기에 모두들 이 이야기에 젖어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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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기 때문에 놀러 왔지 (양장) - 조선의 문장가 이옥과 김려 이야기
설흔 지음 / 창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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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년 문학이라. 솔직히 책을 연령별로 분류하는 것을 나는 별로 탐탁히 여기지 않는다. '토지'를 청소년이 읽고 이해하기 쉽게 다른 말로 바꾸어 낸 사실도 참으로 속상하다. 아이들이 읽어야 할 것을 어른들의 기준으로 재단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충격적인 영상이나 보지 않아야 할 처참한 장면이 있다면 꺼려지기 마련이긴 하나 자고로 삼류 잡지가 아니라 문학작품에서 등장하는 그러한 장면은 나름 등장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요네하라 마리란 일본 작가의 말에 따르면 어린 시절에 보았던 책속 성인물(?)은 성교육에도 도움이 되었다지 않는가. 그렇기에 나는 유아들이 보는 동화, 어린이들이 보는 어린이 도서, 청소년들이 보는 청소년 문학이란 이름이 영 탐탁치 않다. 모든 연령대가 모든 작품에 관심을 갖고 살펴보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싶다. 요즘 들어 딸아이 덕분에 보게 되는 동화는 내용이 정말 감동적이다. 왜 이런 세상을 놓쳤을까 싶을 정도로 무릎을 치게 만드는 작품들이 한 둘이 아니다. 좋은 책은 읽으면 읽을 수록 깊은 맛이 나고, 읽을 때마다 새로운 맛이 느껴지게 마련인 모양인지 요즘들어 다른 시각으로 그러한 작품을 다시 읽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다양한 책을 기웃거리고 있다. 유아에 대한 책부터 시집, 시사서적, 과학서적, 추리소설 등등. 흥미로운 부분도 있고, 나의 지식이 일천하여 이해가 안 가는 책도 태반이다. 책에 대한 욕심이 많아 쌓아두고 벌여두고 읽지 못한 책 역시 무더기다. 그러나 사람과의 만남처럼 책과의 인연도 따로 있는 모양이다. 책을 살 당시에는 손이 가리라 생각했음에도 책무더기에 깔려 있던 책들, 우연히 무너진 책 더미 사이에서 난데없이 그 책을 만나기도 한다. 그렇게 만난 첫 번째 책이 바로 창비 청소년 문학상 1호 '완득이'이다.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직업인지라 '청소년문학'이란 타이틀이 맘에 들지 않았으나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이 책을 읽게 되었다. 현장감 넘치는 언어구사와 내가 학교에서 만나고 있는 아이들과 일치되는 모습에 그 책을 얼마나 흥미진진하게 읽었던지 모른다. 무릇 현장의 모습을 책에 담고자 하면 세상은 어느새 현재를 과거로 만들어 버리고 새로운 곳으로 달려가기 마련이다. 그런데 창비의 청소년 문학은 즉각즉각 지금의 모습을 포착한 기분이랄까? 책소개를 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아이들도 '완득이'에서 '위저드베이커리'로 이어지는 책선정에는 살짝 흥미를 보인다. 나 역시 '싱커'와 '아가미'까지 그 계보를 이어가고 있다. '싱커'부터 내용이 붕 뜨는 감이 있어 아쉽긴 하지만 여튼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청소년들이 읽기에도 좋고, 부모를 포함한 기성세대들이 읽기에도 좋은 작품들이 아닐까 싶다. 책에 원래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야 상관없겠지만 책을 두려워하고 멀리 하는 청소년(?)들에겐 청소년 문학-개인적으론 맘에 들지 않지만-이란 유인물이 필요할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창비의 시리즈를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그러던 차에 읽게 된 '멋지기 때문에 놀러왔지'. 이 책은 단순한 청소년 문학이라기보다는 역사와 관련된 인물들의 삶을 흥미진진하게 그리고 있다. 아이들이 딱딱하게만 여기는 고전 수필에서나 등장하는 '이옥'이란 인물이 어떤 사건을 겪었는지, 그와 함께 짝지어 나오는 김려라는 인물의 모습과 정조라는 임금이 다스린 시대의 문학적 환경까지 이 책을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일회적 관계에 빠져 친구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는 아이들이 우정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 주는 작품이랄까? 추리 소설처럼 '김려'의 과거와 '이옥'의 삶을 톱니바퀴처럼 맞물리게 이야기를 전개하는 부분도 아이들의 독서 욕구를 자극할 듯 하다. 당시에 패관소품이라고 비천하게 취급받던 것들이 지금 어떻게 여겨지고 있는지, 당대의 평가가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를 생각하게 해 주는 계기도 되는 듯 하다. 하나만 보며 달려가는 우리 청소년들이 아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지금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도 되새겨주는 작품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오늘도 아이들에게 추천도서 목록 하나를 추가하려고 하는 중이다. 글이 가진 의미가 이렇게 크다는 것을 알면 우리 삶도 조금은 풍성하고 넉넉해 지지 않을런지 기대해 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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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폴 오스터 지음, 이종인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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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이면 늘 일에 빠져 허덕이게 된다. 육아와 직장과 사교 사이를 헤매다 보면 '독서'는 아련한 꿈이 되기 일쑤이다. 그래도 사람들이 소근거리는 이야기를 나만 모르고 있는 것 같다는 소외감과 불안함에 부지런히 책을 사재고 펼쳐두고 벌여둔다. 이번에도 알라딘 서재의 선택이 한목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열광했던 '우타노 쇼고'의 <밀실 살인 게임2.0>은 읽고 있으면서도 내내 불편했던 작품이다. 현실이 아니었으면 싶은 섬뜩하고 잔혹(?)한 이야기가 무미건조하고 담담하게 서술되고 있는 장면이 기괴할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이 책을 읽고 있다는 사실이 무섭기까지 했다. 그리하여 서평을 남길 일도 책 내용을 되새길 일도 아주 오랫 동안 없었다.  

그런 내 앞에 '폴 오스터'가 돌아왔다. 공교롭게도 '단테'의 <신곡>에 등장하는 인물 중 내가 유일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보른'과 함께 등장한 그의 작품. 지옥을 헤매고 있는 그의 모습과 소설 속의 인물이 나의 주의를 확 잡아 끈다. 독서를 하다보면 글을 쓸 줄은 몰라도 뭔가 흥미를 잡아끄는 글을 알아보는 안목은 생기는 모양이다. 오랜 세월 동안 책을 잡고 있으므로 생긴 내공이랄까? 그래서 첫 장을 펼쳐보면서 '이거 물건이구나' 나름 짐작은 했었다.  

'나'의 이야기만 있다고 생각한 나에게 작가는 '나'가 '그'가 되는 모습을, '그'가 '너'가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눈 번연히 뜨고 있음에도 순식간에 바뀌고 있는 이러한 시점의 이동을 나는 경이롭게 쳐다볼밖에 없었다. 세상 이래 더이상 새로운 것은 없다고 외치는 이들에게 여기 저기서 한방을 올려부치는 작가들의 펀치가 독자로서는 기쁘기만 하다. 글쟁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나는 어느새 그가 되고, 너가 되고, 우리가 되어 있다. 작중 인물의 말처럼 역겹고 천인공노할 만한 사건에도 그닥 거부감이 들지 않는 이유가 바로 '폴 오스터'가 지닌 글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실컷 독자를 끌어 들여놓고 이야기에 빠뜨린 후 여기서 말한 '애덤'은 '애덤'이 아니고, '보른'은 '보른'이 아니며 '그윈'은 '그윈'이 아니라고 설명하는 능청스러움. 소설은 어차피 픽션인데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떨까 생각하면서도 '세실'은 '세실'이고 '짐'은 '짐'이며 '마고'는 '마고'일 것이라는 생각을 거둘 길이 없다. 모두 죽고 없어진 소설 속의 인물을 왜 자꾸 만나보고만 싶어지는지. 

"이건 사실이면서 거짓인 셈이야."라고 말하고 있는 그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도 꼭 만나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끝나지 않는 이야기의 여운 속에서 한동안은 몽롱한 기분으로 살아갈 수 있을 듯하다. <보이지 않는> 소설을 볼 수 있어서 행복한 한 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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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 바쁜 일상에 치여 놓치고 있었던, 그러나 참으로 소중한 것들 46
정희재 지음 / 걷는나무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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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로도토스'의 '역사'라는 책을 읽고 있는 중입니다. 부피가 주는 중압갑이 장난이 아니긴 하지만 말로만 듣던 고전들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최근 들어 더욱 강해진지라 엄두를 냈습니다. 그러나 최초의 역사서라 일컬어진 이 책이 그닥 쉬이 읽히는 책이 아닌지라 서서히 한 장씩을 넘기는 중입니다. 그러던 참에 생일이 돌아왔고 지인에게 받은 선물이 바로 이 책입니다. 책 제목이야 아무렴 어떨까 싶지만 작가의 이름을 보고 망설이지 않고 펴들었습니다.  

'정희재'의 <도시에서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라는 책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녀의 책에는 삶을 조용히 응시하는 고즈넉함과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늘 담겨있었기에 저절로 손이 간 것이지요. 도시 생활에 지친 나에게 분명 위로의 손길을 내밀 것이 틀림없으리라는 확신이 들기도 했거든요. 

그녀가 서울에 상경해서 겪은 일들에 내가 겪은 일들이 자연스레 포개졌습니다. 대학 시절 기숙사에 박혀 느꼈던 감정과 지하철의 복작거림에 당황했던 출퇴근길의 압박들, 쌀쌀한 서울의 인심에 토라져 자기 연민을 느끼던 나날까지. 그러나 그녀의 말처럼 '어디에'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알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장소가 아니라 장소에 존재하는 '나'이니 말입니다. 알고 있었으니 인정하기 싫었던 사실들을 그녀 덕분에 기분 나빠하지 않고 알게 되었습니다. 설교조가 아니라 조근조근 혼잣말하듯 속삭이는 그녀의 어투는 묘하게 듣는 사람들의 고개를 주억거리게 만듭니다. 부쩍 '행복'이라는 화두와 돈을 연관시켜 미친 듯이 달려가는 세상에서 그녀가 말한 행복론이 기억에 남습니다. 

   
 

p203 

살아보니 행복은 하루 벌어 사는 것이었다.  행복에 관한 한 우리는 일용직 신세였다. 비정규직이었다. 내일 몫까지 미리 쌓아 두기 힘든 것, 그게 행복이었다. 냉정하고 불공평한 세상탓만은 아니었다. 스스로 행복의 기준이 늘 바뀌기에 오래 행복을 붙잡아 둘 수 없없던 것. 

 
   

행복은 잡으려고 한다고 잡히는 것이 아님을 알고는 있었으나 그것이 하루 벌어 하루 사는 것임은 몰랐습니다. 그리고 행복의 기준이 늘 바뀌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초등학교에 다닐 때에는 50원짜리 아이스크림을 집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먹을 수만 있어도 행복하겠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봐야 500원이면 차고 남았을 행복이었는데 지금은 5억이 있어도 행복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으니, 격세지감을 느껴야 하는 것일까요? 이러한 행복의 기준이 어느 틈에 내 마음 속에 들어와 이렇게 자리를 잡은 것인지 당사자인 나조차도 어리둥절 할 뿐입니다. 행복은 잡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느껴야 하는 것이고, 나를 위해 갈무리 해 둬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퍼내야 하는 것임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봅니다. 

그녀의 책 덕분에 오늘 하루 또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 그녀의 말처럼 육안으로도 구분할 수 있는 3천 500여 개의 별을 도시 하늘에서 볼 수 있도록 밤이 조금 더 어두워지고 세상은 조금 더 밝아지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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