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들의 국가 - 세월호를 바라보는 작가의 눈
김애란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읽을 만 한 책이 아니라 읽어야 할 책이라 생각하고 아이들에게 권하였습니다. 그러나 소설가가 아닌 평론가의 글로 넘어가면서 권한 것을 후회하였습니다.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고, 잊지말아야 할 문제이고, 깊이 새겨야 할 문제인 만큼 모두가 이해할 수 있게 쉽게 써 줄 수는 없는 것인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메이드 인 공장 - 소설가 김중혁의 입체적인 공장 산책기
김중혁 글.그림 / 한겨레출판 / 201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신간이 나오면 덮어놓고 구입하는 작가군이 있다. '김중혁'도 그 중 하나이다. 왠지 기발할 것 같고, 황당한 웃음을 선사할 것 같은 구라쟁이의 글을 손에 들자마자 책 앞표지 안쪽에 책갈피용 포스트잇을 가득 붙여뒀다. 소장할 책인지, 선물할 책인지, 팔아버릴 책인지 결정하지 못한 시점에서 함부로 책에 줄을 칠 염을 내지 못해 내가 선택한 방법이 바로 인상깊은 구절에 포스트잇 붙이기이다. 보통 열댓개의 포스티잇이 붙게 되는데 김중혁에 대한 기대가 기대인 만큼 스무 개가 넘는 포스트잇을 장착하고 읽기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에는 포스트잇이 네 군데 붙는 것으로 마쳤다.

 

p6 사람이란, 보이는 걸 꿈꾸게 마련이어서~

 

라는 부분을 읽으며 生이 더 많은 열정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것을 겪고 봐야겠구나 생각하며 작가의 생각에 끄덕끄덕했다.

 

p159 시간은 장점을 단점으로 바꾼다. 혹은 장점이었던 것을 단점인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라는 부분에 두 번째 포스트잇을 장착했다. 뻔한 사실이지만 글 속에서 이런 구절을 발견하면 난 다시 한 번 고개를 심하게 끄덕거리곤 한다. 시간의 공평함과 매정함에 대해 요즘 들어 더 절실하게 느끼고 있기 때문인 모양이다.

 

p161 미래란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어서, 근거 없는 낙관으로 가득 채울 수도 있고, 보이는 곳 전체를 잿빛 비관으로 도배할 수도 있다. 미래를 낙관하는 사람은 현재를 넘어설 수 없고, 미래를 비관하는 사람은 현재를 더욱 꼼꼼하게 채워간다. 미래란 현재의 동력인 셈이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미래란 현재에서 이어지는 시간이지만, 반드시 현재의 결과인 것은 아니다. 때때로 현재에서 준비한 것들이 미래에서 아무런 소용이 없을 수 있다는 걸 안다.

 

이 부분이 제일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다. 희망찬 어린 것들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인과응보'와 '권서징악'과 '고진감래'라는 그럴 듯한 옛이야기만 믿고 현재를 저당잡힌 채 살아가는 것이 그리 현명한(?) 일인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미래를 낙관하든 비관하든 그 둘 모두 현재를 살아가기 위해 힘쓴다는 훈훈한 이야기가 따스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적어도 나에게는.

 

p143 누군가의 실수가 누군가의 기쁨으로 이어지는 일은 많지 않다.

 

이 부분은 라면 공장 산책기에 나오는 문장이다. 너구리라면 속에 들어있는 다시마는 사람이 직접 넣는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우연히 두 장의 다시마가 들어있는 라면을 발견한 기쁨을 이야기한 부분이다. 누군가의 실수가 다른 누군가의 기쁨이 된다는 사실을 안다면 우리는 실수한 사람에게 질책이 아닌 미소를 보낼 수 있겠구나라는 행복한 생각을 했다.

 

그리고 하나 더, 라면의 꼬불거림은 반죽을 뒤에서 밀어내는 속도가 앞에서 당기는 속도를 앞서기에 생기는 현상이라는 이야기도 인상깊었다. 손발이 맞지 않아 생기는 주름투성이의 라면이 바로 라면의 생명력이 되다니 놀랍기만 하다.

 

이번 김중혁의 공장 산책기는 '알랭 드 보통'의 "일의 즐거움"이라는 책을 생각나게 했다. 정확한 제목인지 가물가물. 여튼 그런 류의 제목이었다.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조용하고 무감한 제품들이 사실은 어딘가에서 이야기를 간직한 존재였다는 것을 알려 준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래서 김중혁의 이야기가 재미있었지만 전작처럼 신선하지는 않았다. 감동의 폭은 겨우 포스트잇 4장이 전부이다.

 

그런데.. 앞으로 '김중혁이 또 책을 쓴다면 구입할까?'라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난 여전히 'Yes'라고 대답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주커먼 시리즈
필립 로스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별은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이다.

 

  소설은 이 문장으로 마무리된다. 그런데 저 문장이 가슴을 쿵하고 울린다. 이 소설을 무슨 이야기라고 해야 할지, 어디서부터 소개를 해야 할지, 아니 어디서부터 나의 감동을 정리해야 할지 모르겠다. '정혜윤'<마술라디오>라는 책을 알게 되었고, 그 책 속에서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라는 책을 알게 되었다. '정혜윤'이 인터뷰한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섞여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라는 책이 살짝 언급되어 있었다. 나는 그걸 냅다 나의 수첩에 옮겨 적었다. 그리고 알라딘 장바구니에 이 책을 담았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음미하며 읽어나갔다. 그런데 내가 옮겨 적고 싶은 문장은 하나가 아니었다.

 

책을 읽다 보면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순간이 있다.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해 왔던 것을 글귀로 보는 경우에도 그렇고,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을 문장으로 마주하게 되는 경우도 그렇다. 그리고 뭐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으나 말로 표현하지 못해 마음 속에만 담아 두었던 형체도 없던 유령 같은 감정을 뚜렷하게 형상화시켜주는 문장을 봐도 그러하다. 그런데 이 소설은 나에게 이 세 가지 모두로 다가왔다.

 

p32

물론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에 본인이 전혀 모르던 중요한 사건이 포함되어 있다는 걸 뒤늦게 아는 것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살아온 인생이라는 것이 정작 본인은 거의 알지 못하는 이야기니까.

 

읽고 나니 그런 것 같다. 나의 탄생에 내가 개입한 적이 있던가.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이 모두 내가 결정한 것이었던가? 내가 살아온 이야기에 내가 모르는 이야기가 얼마나 많을 것인가. 내가 살아가는 인생이 결국 내가 살아가는 인생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의 신념대로 살아왔다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의 신념은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이며, 그것은 정녕 그의 신념이 맞는지...

 

일생 동안 당을 위해서, 공산주의를 위해서, 노동자를 위해서 살아왔다고 믿어진 한 인물, ‘아이라를 통해 작가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어느 것 하나 동떨어진 것이 없음을 이야기한다. 모두가 혼자만의 일이라고, 혼자만의 결정이라고 자부하는 것들이 결국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른 것들에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애국자인 양 배신을 하면서 순수함을 유지할 수 있는 시대(p440)”는 공산주의를 처단하기 위한 미국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개입으로 전쟁을 치른 우리나라 역시 그 영향을 피해갈 수 없었으니 말이다. 우리가 무심코 던지는 질문과 그것을 대하는 자세가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결정하고 있다. 지금의 우리는 결국 과거의 우리가 자초한 것이다. 섬뜩하지 않은가. 오늘을 망쳤다고 내일조차 망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데 이제는 그런 말을 하기조차 무섭다.

 

아흔 살이 된 아이라 린골드의 형인 머리 린골드 선생님은 제자 네이선에게 이렇게 말했다.

 

p509 그녀는 대중이라는 기계를 작동시켰지만, 대중은 항상 원하는 방향으로 가진 않는다네. 자기 스스로 방향을 잡지. 아이라를 깔아뭉개주길 바랐던 대중이라는 기계가 그녀 쪽으로 방향을 틀기 시작했네. 암 그래야지. 여긴 미국이니까. 대중이라는 기계는 일단 스위치를 켜면 모두를 파국으로 몰아넣기 전에는 멈추지 않거든.

 

지배층의 꼭두각시 인형 이브 프레임은 남편 아이라 린골드를 공산주의자로 몰아가는 데 앞장서게 되고, 그녀가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세상은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결국 역사의 수레바퀴가 이브 프레임으로 방향을 돌릴 줄 그 누가 알았겠는가. 저 문장에서 미국한국으로 바꿔도 내용은 전혀 어색하지 않다. 대중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이 책이 사랑에 대한 이야기인지, 이념에 대한 이야기인지, 정치에 대한 이야기인지, 예술에 대한 이야기인지 하나로 규정은 못하겠다. 아마도 그 모든 것이 담긴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내가 설명하지 못한 이 감정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이 책을 읽어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음에 여운이 남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옷을 입으렴
이도우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왈칵 눈물을 쏟게 만드는 구절이 있다.

그녀의 글에는.

현실을 지적하는 지당한 말씀만을 읽고 있다 보면 가슴이 쩍쩍 갈라질 때가 있다.

그럴 때 촉촉한 수분이 필요하기 마련이고 그럴 때 나도 모르게 손이 가는 책이 있기 마련이다.

마침 곁에 있어 고마운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쩍쩍 갈라지는 가슴이 온전한 수분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여유로운 시간이 아니라 공간이 필요하다.

여유롭지 않은 순간에도 쉬는 시간을 만들 수는 있으나

편안하고 한적한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 공간을 오늘 드디어 발견했다.

온전하진 않지만 한적하게 시선을 차단할 수 있는 구석탱이.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열악한 그 곳에서 책장을 넘기는 순간

후두둑이 아닌 주르륵 흐르는 난감한 눈물.

가려진 저 너머에 혹 소리가 새어나갈까봐 꾸욱꾹 울음소리를 눌러서 음소거한 상태로 잠깐 울었다.

대성통곡을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어 끄윽끅만으로 만족했다.

울음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크게 나서 당황스럽긴 했지만 벽 너머의 소란에 다행히도 묻혀버렸다. 고맙게도.

소란스러움이 짜증스러워 피해 왔는데 당황스러움 덕분에 소란함이 고마워지는 순간.

세상은 내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구나 또 한 번 느낀다.

차분차분, 조근조근 자신의 이야기를 건네는 작가의 목소리에

내가 왜 위로를 받았는지...

마음이 촉촉해져서 이제 조금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청춘의 문장들+ - <청춘의 문장들> 10년, 그 시간을 쓰고 말하다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지음, 금정연 대담 / 마음산책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읽을 책이 쌓여 간다. 2014년 5월은 내가 거침없이 책을 사는 날들의 연속이다. 6월부터는 도서정가제가 실시된다는 소문과 50% 세일이라는 것이 사라진다는 풍문에 세일이라는 말만 눈에 띄면 무턱대고 구입하기에 이르렀다. 그 와중에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 보여 할인폭이 적은 신간인데도 불구하고 구입한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소설보다 산문이 더 따뜻한 작가, 아까운 사탕을 먹듯이 차분차분 핥아야 하는데 마음이 성급해져서 손에서 놓치를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쌓여있는 책 쪽으로 연신 눈이 간다. 읽고 있는 책에만 집중하지 못하고 읽어야 할 책에 연신 곁눈질을 하느라 바쁘다고나 할까? 김연수 작가는 '오직 한 권의 책'이라고 했는데 곁눈질 하느라 한 권의 책조차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일단은 훑어보고 다시 읽어보리라 마음 한켠으로는 생각하지만 나의 이런 생각 역시 글쎄올시다라는 마음이다.

 

나는 김연수의 글이 참 마음에 든다. 우연히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직접 만나니 더 좋아졌다. 사람의 좋고 싫음은 희안하게도 몇 마디 말이 오가지 않아도 온몸으로 느껴진다. 작가는 나를 모르겠지만 그런 작가를 나는 한없이 가깝게 느끼고 있다. 그런 생각을 하던 와중에 들어온 책 속의 구절.

 

p33 저는 사람과 친해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사람이라서 누가 저에 대해서 잘 아는 것처럼 말하는 걸 잘 견디지 못하거든요.

 

나도 그런데... 나역시 객관화가 잘 안 되는 사람이다. "너 그럴 것 같더라"나 "이거 너 스타일이지?"라는 말이 나는 제일 싫다. 아니 두렵고 부끄럽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일 듯 하다. 나도 모르는 내 모습을 누군가가 단정짓듯이 말하는 것이 싫다. 내가 모르는 내 모습을 남들이 더 잘 파악할 수도 있는데 그걸 인정하기가 싫은 유치한 마음. 난 너희들이 보듯이 그렇게 단순하게 판단할 만큼 간단한 인간은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은 좁은 마음의 표현. 나의 유치한 마음을 누군가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간증을 들은 신자처럼 반갑기만 하다.

p61 나는 뭔가를 제멋대로 착각하게 되면 거짓도 충분히 진실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p62 우리가 믿는 것들은 대개 무지와 오해에서 비롯된 환상일 가능성이 많다.

 

여러 작가의 글을 읽다 보면 나도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 때가 있다. 그러나 김연수 작가의 생각을 빌리자면 나는 생각만 하고 글을 쓰지는 않고 있으니 결국 생각조차 하지 않은 것과 똑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의 글을 읽으면 글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현실에서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임에도 글로 쓰는 순간 그것은 존재하는 것이 되어버리는 이 뭐라 설명할 수 없는 현상. 우리의 무지와 오해가 엄청난 세상을 만들 수도 있구나라는 놀라운 깨달음.

 

p73 처음에 글쓰기는 한탄보다는 경이에 가까웠어요. 그건 아마도 내가 처음부터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 없이 글을 썼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제게는 한탄이 허용되지 않았어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한탄을 한다. 한탄을 하기 전에 일단 뭐라도 써 보라는 작가의 말에 얼마 동안 피곤한 몸을 이끌고 뭔가를 끄적여 보던 때도 있었는데 한 달을 가지 못했다. 쓰고 싶은 열망이 피곤함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고로 나의 쓰고 싶은 열망의 크기를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제 함부로 쓰고 싶다고 얘기하지 못하게 됐달까? 그러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나의 능력없음을 한탄하곤 했는데 원래부터 없던 것이라면 한탄할 필요가 없다는 작가의 말을 듣는 순간 죽비로 등짝을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한탄할 단계조차 아니었구나.'

 

p180 C.S 루이스가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말은 참 신기해요. 독서는 혼자서만 할 수밖에 없는데, 정작 책을 읽으면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죠. 심지어 수천 년 전의 사람과도 연결되기도 하고요.

 

결국 책을 읽는 이유는 외롭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이 구절을 읽으면서 들었다. 공감하기 위해서, 위로받기 위해서,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생각하며 슬퍼하기보다는 '이런 일도 있을 수 있구나' 생각하기 위해서 나는 책을 보고 있구나라고 이제야 생각해 본다.  

 

p191 어쩌면 지는 꽃을 바라보는 일은 피는 꽃을 한 번 더 바라보는 일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인지도

       어쩌면 인생이란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알지 못해서 몰랐던 게 아니라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모르는 척했던 일들을 하나하나 배워가는 것. 내년이면 나는 또 어떤 '낙안성도 낙화소식'에 귀가 뚫릴는지.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귀를 닫는 일. 요즘의 내가 그렇다. 나이를 먹을수록 사교의 폭과 생각의 폭이 넓어질 것이라 믿었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일정한 시기가 지나자 많은 이들과 주고 받는 감정을 갈무리하기가 무서워져 나를 유폐시키기 시작했다. 일정한 범주를 벗어나는 만남은 제한하고 뒷걸음치기, 나와 무관한 일에는 발을 담그지 않기. 왜냐 하면 진폭이 넓은 나의 감정이 상처받을까 봐서. 그런데 세상 그 어느 일도 나와 무관한 일은 없다라는 사실을 요즘 들어 서서히 깨달아 가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나는 무.섭.다.

  "저건 왜 저래?"라고 욕하면서, 비판하면서 바라보던 일들이 원래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음을 알게 되고 나니 마음이 스산하다 못해 저릿저릿하기까지 하다. 하긴 지는 꽃을 바라보면서 꽃이 피는 모습까지 떠올리려니 마음이 어찌 무사하겠는가. 피는 꽃과 지는 꽃이 무관한 존재가 아님을 깨닫는 순간 나 역시 피는 꽃인 동시에 지는 꽃임을 알게 되니 말이다.

 

p202 누군가의 문장을 읽는다는 건 그 문장 안에 살다 오는 거라 생각한 적이 있다.(김애란의 후기 중에서)

 

난 연예인이 부럽다. 물론 그들의 미모와 유명세와 재력이 부럽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부러운 것은 그들이 연기하는 삶이다. 주어진 삶의 궤도 안에서 공식적으로 이탈할 수 있는 직업의 축복이라니... 연기 속에서 그들은 살인자로도, 불륜의 대상으로도,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 인물로도 변신한다. 일반인들이 상상만 하던 삶을 잠깐이라도 살아가는 사람들. 그런데 김애란의 저 문장을 보는 순간 '나도 문장을 살고 있었구나'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책을 탐독하고, 활자 중독에 걸린 듯 책을 읽어댄 이유가 그 문장에서 나의 또다른 삶을 영위하고 싶었구나 싶다. 나의 생각을 다른 이들의 문장을 통해 읽어내는 이 순간의 충만감 때문이라도 당분간 독자로서의 삶은 포기하지 못할 듯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