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 미스터 디킨스 - 한국 작가 9인의 찰스 디킨스 테마 소설집
김경욱 외 지음 / 이음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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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이 책을 선정한 이유는 작가진이 화려하기 때문이었다. 일단 최제훈과 김중혁, 김경욱이 날 사로잡았고 하성란이 끌렸으며 그리고 나머지 잘 알지 못하는, 가끔 듣기만 하고 접해 본 적 없는 작가를 만날 수 있다는 설렘. 단연코 망설임 없이 장바구니에 담아버렸다.

  글쎄... 읽고 나니 우선 찰스 디킨스 소설이 읽고 싶어졌다. 만화로 봐서 너무 익숙해진 그의 작품들을 몸소 확인해야겠다는 맘이 들었다랄까? 영어까지 잘 한다면 원서로 읽고 싶은 마음 굴뚝이나 그건 아무래도 이생에선 불가능할 듯 하고. 여튼 한글 번역판이라도 읽고 싶어졌다.

  그리고 하성란 작가의 이야기는 잔잔했다. 신기하기도 하고. 미드 프린지가 생각나기도 하고,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이라는 영화가 떠오르기도 했다.

 김중혁. 더이상 말이 필요없는, 내가 즐겨읽는 독특한 시선의 작가. 능수능란한 말재주가 사람을 현혹시키는 작가.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날 현혹까지 시키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실망한 것은 아니고. 기대가 컸달까?

 배명훈. 과학적 지식(?)과 함께 그의 상상력이 맘에 든다. 그렇지. 저럴 수도 있겠구나. 저런 생각이? 등등의 단상을 가지게 되었다. 다음에는 그의 단독 작품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

 백가흠. 이건 뭐랄까? 짜증나는 한 사람의 등장이 나를 사로잡았는데 그래도 좀더 짜증스럽게 그를 그렸으면 싶은 아쉬움이 남는달까? 여튼 앞으로가 궁금해지는 작가였다. 적어도 나에게는.

 박솔뫼. 어렵다. 꿈인듯 아닌듯. 의식의 흐름기법인 양 나에게 난해했다.

 박성원의 소년. 이 작가가 궁금해지려고 한다.

 윤성희. 중간중간에 나오는 문장들이 드문드문 기억이 난다. 여고 정문 앞에서 아침마다 지각하는 학생들을 바라보던 중년 아줌마 둘에 대한 이야기가 뭔지 모르게 나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나에게 다가올 미래여서일까나?

 최제훈. 우리나라에도 이런 추리소설이 있다는 게 뿌듯하다 생각하게 만들었던 작가. 역시나 여기에서도 그의 글발이 여지없이 발휘되었다. 신간치고 읽는 속도도 기대감도 시들해질 즈음 그의 글로 모든 것을 위로받았다. 좋았다. 어여 장편을 써 주었으면 하는 바람.

  김경욱. 좋았는데 어둡고 최제훈 작가의 뒤에 있다보니 최제훈에게 눈 멀어버린 내가 심드렁해져버려 작가에겐 미안.

 

여튼 오늘 나는 이 책을 읽고 최제훈 글만 머릿속에 오롯이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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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소설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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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서점에서 꽤나 괜찮은 상태로 남아있는 책이라 골랐다. 물론 알라딘 서평을 참고하여 내용 전반에 대한 평가를 살펴보고 사긴 했다. 메마른 가슴을 촉촉하게 적셔줄 것 같은 제목이라 고르긴 했는데 막상 책을 손에 잡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린 셈이다.

  차에서 읽는 책, 길거리에 있거나 시간이 날 때 짬짬이 읽는 책, 잠자리에서 읽는 책, 직장에서 읽는 책, 늘 근거리에 읽을 거리를 두자 다짐했지만 일상의 피로가 나약한 나를 쉽게 흔들어 놓기에 책 읽기도 쉽지가 않다. 직장에서는 '미쉘 우웰벡'의 <소립자>를-이건 은희경 작가가 아주 야한 책이라 소개해 줘서 읽기 시작했는게 그닥 야한 건 없는 듯^^;-, 차에서는 '박노해'의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집에서는 '라헬 판 코에이'의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를 잠자리에서는 '박정애'의 <환절기>를 읽고 있는 중이다. <소립자>는 편집이 조악하고 내용이 촘촘하게 쓰여져 있어 잘 읽히지가 않아 진도가 느리고,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는 詩인지라 한 편씩 되새기기도 벅차고, <환절기>는 조금 어두워 읽으면서 망설이게 되고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는 쉽게 쓰여 발리 읽을 수 있었다. 그러던 차에 책장에 가득 꽂혀 있던 책 중에 이 책에 손이 닿았다. 솔직히 단편인 줄 모르고 집어들었다. 단편은 호흡이 짧아 읽기가 망설여진다. 그렇지만 요즘 꽤 괜찮은 단편에 맛을 들였는지라-<곰스크로 가는 기차>, <맛>, <야시> 등등- 이 책도 읽어보았는데 실망스럽지 않았다.

 이 책에 실린 세 편의 단편은 제각각이면서도 하나의 공통된 이야기인 느낌이 든다. 옴니버스식 구성이라고 해야 하나 아님 피카레스크라고 해야 할까? 여튼<연애소설>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하나씩 잃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진 남자의 이야기이다. 자신을 사랑하던 부모님과 자신과 가까운 친구들이 죽고, 이 일련의 사태 속에서 '死神'으로 불리며 '死神'으로 충실히 살아가는 남자 주인공, 그 사람 곁에 또 다른 운명으로 다가온 여자. 통속 드라마에 나오는 흔한 대사 "사랑하기에 떠나는 거야"라는 말이 꼭 들어맞을 만한 상황이다. 그러나 그 여자가 말한다.

 "아무리 친한 사람이 있어도 안 만나면 그 사람은 죽어버려"(p54)

그러자 남자가 말했다.

"사람은 다 죽잖아. 가령 추억 속에 살아 있다고 해도 언젠가는 죽어버려."

그래서인지 남자 주인공이 사랑하는 그녀도 죽어가게 된다. 그려서 그녀를 멀리하려는 그에게 그녀가 말한다.

"너 그런 말 하면 나를 이미 죽인 거나 마찬가지야. 이상한 생각에 사로잡혀서 나를 죽이는 거라구."

그런 다음 그녀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그의 이야기를 듣던 나는?

이 일련의 모든 사건을 처리하는 작가의 시선이 나는 유독 마음에 들었다.

 

두 번째 이야기 제목은 <사랑의 환>

암에 걸린 한 남자가 자기가 사랑한 여자를 버린 남자에게 복수하는 이야기. 하지만 복수는 전혀 엉뚱한 곳에서 진행된다. 청부살인업자라는 사람에 의해서. 암에 걸린 사람이 등장하고 법학부가 등장하고 클래식이 나오는 공통점과 함께 다른 측면에서 진행되는 또 다른 사랑이야기. 내일 만약 내가 죽는다면 나는 뭘 할 것인가?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이야기는 세 번째 단편 <꽃>이었다.

사랑하는 아내와 헤어지고 그녀의 기억을 잊기 위해 일에 몰두한 한 남자가 아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의 유품을 확인하러 가는 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가 그녀에게 가는 여행에는 뇌 동맥류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한 남자가 동행한다. 시한 폭탄처럼 뇌 동맥류를 앓고 있는 남자는 혹 동맥류가 터져 '역행 건망'이라는 기억 상실이 올지도 모르는 현 질병을 애써 무시하며 고향에서 넋을 놓고 있다가 아내를 찾아가는 한 남자의 여행에 동행하게 된다.

 아내와의 추억에 마음 아파 아내와의 기억을 잊으려 28년이나 노력한 늙은 변호사는 진짜로 아내에 대한 모든 기억을 잊어버린 자신의 모습에 당황하게 되고 여행을 포기하려 한다. 앞으로 자신의 기억을 잃게 될 지 모르는 남자는 잊어버린 기억을 찾으려는 늙은 변호사의 과거를 함께 반추하면서 여행을 하고. 늙은 아내에게 도착하기 위해 그녀와 함께 한 여정을 거슬러가며 죽은 아내에게 도착한 늙은 변호사는 아내와의 모든 것을 떠올리게 되고 아내가 가꾸던 꽃도 발견하게 된다.

물망초

늙은 변호사의 이러한 여정은 뇌동맥류를 알고 있는 주인공에게 수술할 용기를 준다.

 

이 책을 읽으며 사랑은 함께 한 기억을 두고 만들어지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추억도 기억에 바탕을 두고 있구나라는 생각도 함께. 서로의 손을 꼭 잡아주자고 했던 부부의 약속을 읽으며, 새삼스레 사랑에 빠졌던 내가 그와 함께 속삭였던 밀어가, 수많은 약속이, 빛이 바랜 채 떠오른 것은 행복한 기억일까 씁쓸한 독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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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달리다
심윤경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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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사랑만큼 지독한 중독이 있을까? 요즘 나의 화두는 불륜인 듯 싶기도 하나 이것도 결국 사랑이라 생각하기에 사랑에 빠져있는 중이다. 우리는, 아니 나는 사랑에 목마르다. '사랑이 달리다'는 그런 나의 화두에 딱 맞는 작품이었다. 힘차고 거침없는 문체에서 정유정의 작품과 유사한 향내가 나긴 했으나 심윤경의 필체는 그녀와 다른 무언가 묘한 매력이 있어서 읽는 내내 시종일관 유쾌하고도 거침없는 그녀의 글발에 중간중간 풋풋 터지는 나의 웃음을 막을 수가 없었다. 현실은 너무 고단하고 직장은 힘들고 집에서는 지쳐있는 요즘의 나를 유일하게 웃게 해 준 작품이었다.

 

어릴 때 나는 사랑은 선이고 불륜은 악이라고만 생각했다. 불륜 역시 사랑을 기반으로 할 때도 있음을 몰랐다고나 할까? 사랑은 초콜릿처럼 달콤하고, 아이스크림처럼 녹기 쉬우며, 유리창처럼 깨지지 쉬운 존재임을 대중가요 가사로도 드라마의 이야기로도 접해보긴 했지만 중독성이 강한 줄은 이제야 조금 알겠다. 대학시절 나는 그 흔한 CC도 못해보고 연애란 물건이 도대체 어찌 생겼나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맨땅에서 상상력을 키우기란 쉽지 않았기에. 그러나 주변에서 연애박사라 일컬을 만큼 전설적인 인물들은 늘 만나고 헤어지고 만나고 헤어지고 네버엔딩스토리를 엮어갔다. 그네들의 놀라운 능력을 바라보며 지조없는 년놈이라 손가락질을 하기도 했으나 이제야 알겠다. 고기도 먹어 본 놈이 먹고 연애도 해 본 놈이 그 맛을 아는 것이다. 한 번 사랑을 맛 본 사람은 그 맛을 계속 보고 싶을 것이고, 한 번도 그 맛을 못 본 놈은 그 맛이 무엇인지 모르기에 궁금하지도 갈증을 느낄 줄도 몰랐던 것이다.

사랑에는 유통기한이 있기 마련이고 그 어느 사랑도 처음의 맛이 똑같지는 않다. 사랑은 왜 변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왜 새로운 사랑에 눈이 멀까? 사랑이 깊어질수록 뭉근하고 은근한 맛이 있을 수는 있으나 톡쏘는 탄산음료를 마셨던 사람이 김빠진 콜라를 기꺼이 마실 수 없는 이유랑 같지 않을까?

 

나의 사랑에겐 미안하지만 그리하여 '나도 불륜을 꿈꾼다'. ‘우리 대부분이 그렇지 않은가?’라고 말해 버리자니 이 소설에 대한 다른 서평에서 보이는 비난을 무시할 수 없어서 '나는 그렇다'라고 말하는 선에서 그친다. 드라마 볼 시간조차 없는 내가 다운받아가면서 봤던 '아내의 자격'이라는 드라마도, '응답하라 1997',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우리도 사랑일까',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라는 책도 다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을 시작하는 이들의 그 풋풋하고 짜릿짜릿함을 어찌 설명해야 할까. 터질 듯한 심장과 쉴 새 없이 미소짓게 하는 그 병을 무엇으로 살 수 있을까. '사랑이 달리다'라는 책에서 말하듯이 사랑은 너무나도 빨리 달리기에 다른 것을 생각할 여력이 없다. 굴러가는 바위는 그 아래에 깔릴 사람들의 심정을 생각할 여력이 없다. 그냥 굴러가는 것이기에 말이다. 사랑 또한 그런 것이겠지. 심윤경은 소설에서 망나니처럼 생겨먹은 오빠들과 산산조각 갈라진 가족들을, 돈에 목숨 걸고 말도 안 되는 교육을 교육이라 일컫는 세상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불륜이든 축복받은 사랑이든 결국 사랑이 문제다. 사랑이 끝났다고 결혼 생활이 끝나는 세상이 아니기에 결혼을 끝내고 사랑을 하는 그들의 용기에 박수쳐 주고 싶었다. 나의 사랑이 무사하고 너의 사랑이 무사하면 우리 모두의 사랑이 무사하겠지만, 세상은 나의 사랑 때문에 너의 사랑이 망가지기도 하고, 너의 사랑 때문에 내 친구의 사랑이 망가지기도 한다. 사랑은 그 어느 정글의 법칙보다 가혹하니까 말이다. 움직이는 사랑에게 '변하는 건 사랑이 아니다, 그러므로 넌 사랑이 아니다'라며 소리쳐봤자 떠나가는 마음을 붙들 수는 없지 않은가. 물론 사랑이 식었다고 너도나도 현실을 박차고 나가면 어느 가정이 유지되겠는가 싶긴 하다. 하지만 미친 사랑을 맛 본 사람이 가정의 평화나 사회의 평화, 세상의 평화를 생각할 여지가 있던가 말이다. 전쟁같은 사랑.

 

'우리도 사랑일까'라는 영화에서 이웃 남자에게 사랑을 느낀 여자가 남편에 대한 의리와 예의 때문에 남편을 버릴 수 없으니 30년 뒤에 만나서 키스하자고 말하는 부분이 나온다. 너무나 다정하고 착한 남편를 배신할 수는 없으니 30년 정도는 그에게 최선을 다하고 나면 그때에는 당신을 만나서 키스해도 되지 않겠느냐고. 글쎄 그렇게 다른 사람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30년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내가 그런 생각을 할 즈음 그녀는 남편에게 사실을 말하고 사랑을 느낀 이웃남자와 함께 떠나게 된다. 그런 그녀에게 알콜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다 다시 알콜중독에 빠져버린 전남편의 누이가 말한다. "너는 나와 다를 거라 생각하지만 너도 똑같아. 술을 끊지 못하는 나나 사랑을 끊지 못하는 너나 뭐가 다르니?" 그러게 둘 다 중독인 것을. 그리하여 새로 만난 사랑과 천년만년 행복하다면 좋겠지만 그들의 사랑 역시 식어간다. 사랑은 변하는 거니까. 반짝반짝 해서 좋았던 새것도 언젠가는 헌 것이 되기 마련이니까. 어른들은 이런 상황을 '그넘이 그넘이다'라는 식으로 얘기하곤 하지만... 결국 그게 진실이었던 것도 같다. 그렇지만 그넘이 그넘인지 알아가기까지의 과정이 얼마나 다이나믹하고 떨리는 일인던가. 그런 점에서 모든 사랑은 그넘이 그넘이 아닐 거라는 착각에서 시작해서 그넘이 그넘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사랑을 꿈꾼다. 늘 달콤하고 톡톡 튀는 사랑을. 그런데 현실에 그건 것이 존재하기나 할는지 모르겠다. 혹자는 사랑은 없다고 외치고, 혹자는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외치고, 혹자는 사랑은 움직인다 한다. 그런데 이들의 말이 실은 다 사실일 것만 같다. 사랑은 각자에게 다른 모습을 보이니까. 나도 사랑이고 너도 사랑이다. 서른 명의 사람이 있다면 사랑도 서른 가지 아니 사랑은 아흔 가지일지도 모른다. 사랑에 대한 답은 아직 나오지 않았기에 드라마도 영화도 노래도 다들 사랑을 이야기한다. 정반대의 내용으로 사랑을 이야기하는데도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은가 말이다. 그렇지만 이 소설에서는 사랑으로 치달아가면서도 가정이 완전히 허물어지지는 않는다. 사랑에는 남녀 간의 사랑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그렇다면 가족 간의 사랑이란 뭘까? 가족이란? 나에게 가족은 힘이기도 하지만 짐이기도 하다. 그런데 힘이 될 때의 기억보다 짐이 될 때의 기억이 더 많은 이유는 나도 모른다. 어느 시인의 시처럼 세상에 반짝거리는 모든 것들이 집으로 돌아오면 화분도 꽃도 모두 죽어버린다. 가을동화에나 나올 법한 남매를 현실에서 찾기는 힘들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 속의 학원이와 혜나의 모습은 참으로 징글징글할 정도로 부러웠다. 혜나가 징글징글한 가족을 그녀 방식으로 떠안고 나아가는 모습은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물론 나에게도 나름 그런 징글맞은 가족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들이 어느 순간 사라진다면 눈물짓게 될 만큼 그들을 사랑한다. 내가 눈물짓는 그 힘도 사랑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고, 그 사랑이 가족을 유지시켜 주는 것일 테지.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장르의 사랑 속에는 분명 반짝반짝 해서 설레고 심장이 터질 듯한 사랑도 있지만 뭉근하고 은근하며 닳고닳아 냄새마저 희미해진 가족 같은 사랑도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게 사랑이라는 것이 뜬금없고 낯설긴 해도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반짝반짝하는 사랑이 부러운 나는 오늘도 드라마를 보며 설레고, 책을 읽으며 웃고, 영화를 보며 눈물 짓는다. 불륜을 꿈꾸고, 반짝이는 사랑을 꿈꾼다고 가족을 박차고 나갈 수는 없기에 이야기를 보며 다른 삶을 경험하고 가슴 설레한다. 늘 반짝거릴 수 없는 사랑임을 알지만 드라마를 보면 늘 반짝걸리 수 있을 것만 같다. 박제가 된 보석처럼 멈춘 시간 속의 이야기들은 절대 빛을 잃어가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이런 사랑의 이야기들은 전설처럼 묻혀버린 나의 반짝반짝하는 사랑을 기억하게 해준다. 나에게도 오글오글한 멘트를 날리면서도 오글거리지 않던, 이 사람이면 아무것도 필요없을 것 같은 시간이 있었음을 드라마가 알려준다.

같이 사는 은근하고 뭉근하여 사랑인 줄도 모르게 옆에 있는, 심장을 미칠 듯 뛰게 했으나 이제는 한 템포 느리게 뛰게 만드는 이 남자가 지겹지도 않냐? 맨날 드라마 보면서도 눈물이 나오냐?”라며 둔감하게 말해도 불륜을 꿈꾸는 나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랑에 빠지는 중이다. 반짝반짝하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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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눈의 물고기
사토 다카코 지음, 김신혜 옮김 / 뜨인돌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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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 사이에도 인연이 있듯이 책에도 인연이 있다. 사전 지식이나 지인들의 추천으로 책을 고르기도 하지만 뜬금없이 손에 들어오는 책이 한 두 권이 있다. 이 책도 그러했다. 제목에 끌린 것도 아니고 표지에 끌린 것도 아니다. 도서관에서 빌린 거라 표지는 이미 온데 간데 없고 허연 하드커버만 있었으니까. 게다가 난 하드커버를 싫어한다는 점에서도 이 책은 나에게 와서는 아니 되었다. 그런데 와 있었다. 그래서 읽기 시작했다. 장편인가 해서 읽다가 보니 단편인 듯 싶었다. 1장은 기즈모라는 남자 아이가 이혼한 아버지를 10년 만인가 만나서 그의 집에 가는 이야기가 나오더니 2장은 무라타라는 만화가 삼촌을 둔 여자 아이가 등장했다. 그냥 그렇고 잔잔한 이야기. 이게 아니다 싶은 느낌. 책을 중도에 접는 것에 거부감을 가진 나는 웬만하면 끝까지 읽으려 하지만, 그건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평생 내가 접은 책이 다섯 권 정도는 되던가? 이 책도 그 책에 포함시켜야지 생각하면서도 3장을 넘겼다. 이 두 주인공이 서로 관련이 되기 시작했다. 단편이 아니었던 셈이다. 그달리 유별날 것도 없는 청소년의 이야기들이 잔잔하게 파고든다.

  사랑은 한 번에 풍던 빠져드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물들어가는 것이라던 어느 영화의 대사가 떠올랐다. 중반이 지나가자 책장을 넘기는 게 아까워지기 시작했다. 팍팍한 현실 속에서 나를 촉촉하게 적셔주는 행복한 책을 만나기란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소중히 읽었다. 진부한 사랑 이야기가 결국 진부한 인생 속에서 환하게 피어나기 마련이다. '나 사랑이야! 사랑이라니까. 이건 사랑 이야기이고.'라고 소리치지 않아도 결국은 삶이 사랑이라고 말하는 이야기들이 고맙다. 잔잔한 그들의 이야기가 비단 청소년의 이야기는 아니리라.

  내가 나이를 먹으면서 드는 생각들이 결국 사람들이 어리다고 불렀던 청소년기의 생각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음을 이제야 느낀다. 감정이 조금 무뎌지고, 근사한 포장지를 입혔을 뿐 그 당시 유치한 생각들과 감정의 불안정을 지금도 겪고 있으니 말이다. 쉰이 되고 예순이 되면 달라질까? 글쎄 그럴 것 같지는 않다. 나이가 들어 너그러워지고, 유해진다고 말할 뿐 우리는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싫은 사람은 싫고, 좋은 사람은 좋고, 좋은 거 보면 갖고 싶고, 싫은 것은 피하고 싶은 우리들. 단순하고 명백한 것을 꼬아서 생각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하면서 사태는 본질과 멀어진다. 그런데 생각이 너무 많아 우리 역시 본질은 잊어버리고 만다. 화를 내다 보면 어느 순간 왜 화가 났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기가 두려워 매사를 농담처럼 처리하는 주인공의 모습에 내 자신의 빙의했기에 이 소설이 더 와닿았는지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의 주인공과 나는 <인간실격>의 주인공을 닮았다. 그러나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솔직한 모습과 정면으로 부딪혀야 한다는 주인공의 말과 행동이 부럽다. 나는 도대체 언제즈음 되어야 나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자신을 마주할 수 있을까? 그런 용기 있는 행동은 단순히 나이를 먹는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럼 나의 자리에서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은 무엇이지 또 고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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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목소리가 들려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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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득이'를 시작으로 청소년 문학이 꽃을 피우더니 어느 새 포화상태라는 얘기를 들었다. 침체기에 들어선 소설 시장에서 과도기라 불리며 한편에 내쳤던 청소년들을 이런저런 이름으로 불러들이더니 청소년 문학의 고객으로 모셨던 게다. 그런 흐름에서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도 그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들 역시 청소년 시기를 겪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출판계의 흐름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김영하의 이번 소설은 시작부분이 나를 화악 끌어달겼다는 점에서는 도입부 별 다섯개.

  중반부분에서 이야기의 흐름이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 든다는 점에서 별 세 개.

  덮어뒀다 읽은 마지막 부분 역시 익숙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이건 내 친구 얘긴데~'라고 시작하는 이야기들이 흔히 본인의 고백임을 짐작하곤 하는 우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는 점에서 별 네개. 그리하여 총평에서 별 세 개 반 정도 주고 싶었으나 반 개가 설정이 안 되는 고로 반올림하여 네 개의 별을 띄운다.

 

  김연수의 '원더보이'에서는 사고를 당한 주인공이 사람들의 속마음이 들리기 시작했는데, 이 소설에서는 기계들의 마음을 알게 되는 불운(?)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 같기도 하고, 오토바이 폭주족들의 삶을 다큐멘터리 식으로 그리는 것 같기도 한 이 소설이 조금은 마음이 든다. 너무 적나라하고 무서운 이야기가 나오는 게 마음이 아팠지만 우리가 상상하는 것은 이미 현실이 된다던 주인공이 말이 마음에서 지워지지가 않는다. 동화같은 세상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 주위의 사람들이 지금보다는 조금씩 더 행복해진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봤다. 사람들이 간직하는 사진 속의 얼굴처럼. 활짝 웃지는 않더라도 찡그리지는 않은, 고통스러워하지는 않은 하루하루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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