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 바쁜 일상에 치여 놓치고 있었던, 그러나 참으로 소중한 것들 46
정희재 지음 / 걷는나무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헤로도토스'의 '역사'라는 책을 읽고 있는 중입니다. 부피가 주는 중압갑이 장난이 아니긴 하지만 말로만 듣던 고전들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최근 들어 더욱 강해진지라 엄두를 냈습니다. 그러나 최초의 역사서라 일컬어진 이 책이 그닥 쉬이 읽히는 책이 아닌지라 서서히 한 장씩을 넘기는 중입니다. 그러던 참에 생일이 돌아왔고 지인에게 받은 선물이 바로 이 책입니다. 책 제목이야 아무렴 어떨까 싶지만 작가의 이름을 보고 망설이지 않고 펴들었습니다.  

'정희재'의 <도시에서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라는 책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녀의 책에는 삶을 조용히 응시하는 고즈넉함과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늘 담겨있었기에 저절로 손이 간 것이지요. 도시 생활에 지친 나에게 분명 위로의 손길을 내밀 것이 틀림없으리라는 확신이 들기도 했거든요. 

그녀가 서울에 상경해서 겪은 일들에 내가 겪은 일들이 자연스레 포개졌습니다. 대학 시절 기숙사에 박혀 느꼈던 감정과 지하철의 복작거림에 당황했던 출퇴근길의 압박들, 쌀쌀한 서울의 인심에 토라져 자기 연민을 느끼던 나날까지. 그러나 그녀의 말처럼 '어디에'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알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장소가 아니라 장소에 존재하는 '나'이니 말입니다. 알고 있었으니 인정하기 싫었던 사실들을 그녀 덕분에 기분 나빠하지 않고 알게 되었습니다. 설교조가 아니라 조근조근 혼잣말하듯 속삭이는 그녀의 어투는 묘하게 듣는 사람들의 고개를 주억거리게 만듭니다. 부쩍 '행복'이라는 화두와 돈을 연관시켜 미친 듯이 달려가는 세상에서 그녀가 말한 행복론이 기억에 남습니다. 

   
 

p203 

살아보니 행복은 하루 벌어 사는 것이었다.  행복에 관한 한 우리는 일용직 신세였다. 비정규직이었다. 내일 몫까지 미리 쌓아 두기 힘든 것, 그게 행복이었다. 냉정하고 불공평한 세상탓만은 아니었다. 스스로 행복의 기준이 늘 바뀌기에 오래 행복을 붙잡아 둘 수 없없던 것. 

 
   

행복은 잡으려고 한다고 잡히는 것이 아님을 알고는 있었으나 그것이 하루 벌어 하루 사는 것임은 몰랐습니다. 그리고 행복의 기준이 늘 바뀌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초등학교에 다닐 때에는 50원짜리 아이스크림을 집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먹을 수만 있어도 행복하겠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봐야 500원이면 차고 남았을 행복이었는데 지금은 5억이 있어도 행복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으니, 격세지감을 느껴야 하는 것일까요? 이러한 행복의 기준이 어느 틈에 내 마음 속에 들어와 이렇게 자리를 잡은 것인지 당사자인 나조차도 어리둥절 할 뿐입니다. 행복은 잡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느껴야 하는 것이고, 나를 위해 갈무리 해 둬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퍼내야 하는 것임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봅니다. 

그녀의 책 덕분에 오늘 하루 또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 그녀의 말처럼 육안으로도 구분할 수 있는 3천 500여 개의 별을 도시 하늘에서 볼 수 있도록 밤이 조금 더 어두워지고 세상은 조금 더 밝아지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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