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폴 오스터 지음, 이종인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3월이면 늘 일에 빠져 허덕이게 된다. 육아와 직장과 사교 사이를 헤매다 보면 '독서'는 아련한 꿈이 되기 일쑤이다. 그래도 사람들이 소근거리는 이야기를 나만 모르고 있는 것 같다는 소외감과 불안함에 부지런히 책을 사재고 펼쳐두고 벌여둔다. 이번에도 알라딘 서재의 선택이 한목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열광했던 '우타노 쇼고'의 <밀실 살인 게임2.0>은 읽고 있으면서도 내내 불편했던 작품이다. 현실이 아니었으면 싶은 섬뜩하고 잔혹(?)한 이야기가 무미건조하고 담담하게 서술되고 있는 장면이 기괴할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이 책을 읽고 있다는 사실이 무섭기까지 했다. 그리하여 서평을 남길 일도 책 내용을 되새길 일도 아주 오랫 동안 없었다.  

그런 내 앞에 '폴 오스터'가 돌아왔다. 공교롭게도 '단테'의 <신곡>에 등장하는 인물 중 내가 유일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보른'과 함께 등장한 그의 작품. 지옥을 헤매고 있는 그의 모습과 소설 속의 인물이 나의 주의를 확 잡아 끈다. 독서를 하다보면 글을 쓸 줄은 몰라도 뭔가 흥미를 잡아끄는 글을 알아보는 안목은 생기는 모양이다. 오랜 세월 동안 책을 잡고 있으므로 생긴 내공이랄까? 그래서 첫 장을 펼쳐보면서 '이거 물건이구나' 나름 짐작은 했었다.  

'나'의 이야기만 있다고 생각한 나에게 작가는 '나'가 '그'가 되는 모습을, '그'가 '너'가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눈 번연히 뜨고 있음에도 순식간에 바뀌고 있는 이러한 시점의 이동을 나는 경이롭게 쳐다볼밖에 없었다. 세상 이래 더이상 새로운 것은 없다고 외치는 이들에게 여기 저기서 한방을 올려부치는 작가들의 펀치가 독자로서는 기쁘기만 하다. 글쟁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나는 어느새 그가 되고, 너가 되고, 우리가 되어 있다. 작중 인물의 말처럼 역겹고 천인공노할 만한 사건에도 그닥 거부감이 들지 않는 이유가 바로 '폴 오스터'가 지닌 글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실컷 독자를 끌어 들여놓고 이야기에 빠뜨린 후 여기서 말한 '애덤'은 '애덤'이 아니고, '보른'은 '보른'이 아니며 '그윈'은 '그윈'이 아니라고 설명하는 능청스러움. 소설은 어차피 픽션인데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떨까 생각하면서도 '세실'은 '세실'이고 '짐'은 '짐'이며 '마고'는 '마고'일 것이라는 생각을 거둘 길이 없다. 모두 죽고 없어진 소설 속의 인물을 왜 자꾸 만나보고만 싶어지는지. 

"이건 사실이면서 거짓인 셈이야."라고 말하고 있는 그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도 꼭 만나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끝나지 않는 이야기의 여운 속에서 한동안은 몽롱한 기분으로 살아갈 수 있을 듯하다. <보이지 않는> 소설을 볼 수 있어서 행복한 한 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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