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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눈의 물고기
사토 다카코 지음, 김신혜 옮김 / 뜨인돌 / 2004년 12월
평점 :
절판
사람 사이에도 인연이 있듯이 책에도 인연이 있다. 사전 지식이나 지인들의 추천으로 책을 고르기도 하지만 뜬금없이 손에 들어오는 책이 한 두 권이 있다. 이 책도 그러했다. 제목에 끌린 것도 아니고 표지에 끌린 것도 아니다. 도서관에서 빌린 거라 표지는 이미 온데 간데 없고 허연 하드커버만 있었으니까. 게다가 난 하드커버를 싫어한다는 점에서도 이 책은 나에게 와서는 아니 되었다. 그런데 와 있었다. 그래서 읽기 시작했다. 장편인가 해서 읽다가 보니 단편인 듯 싶었다. 1장은 기즈모라는 남자 아이가 이혼한 아버지를 10년 만인가 만나서 그의 집에 가는 이야기가 나오더니 2장은 무라타라는 만화가 삼촌을 둔 여자 아이가 등장했다. 그냥 그렇고 잔잔한 이야기. 이게 아니다 싶은 느낌. 책을 중도에 접는 것에 거부감을 가진 나는 웬만하면 끝까지 읽으려 하지만, 그건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평생 내가 접은 책이 다섯 권 정도는 되던가? 이 책도 그 책에 포함시켜야지 생각하면서도 3장을 넘겼다. 이 두 주인공이 서로 관련이 되기 시작했다. 단편이 아니었던 셈이다. 그달리 유별날 것도 없는 청소년의 이야기들이 잔잔하게 파고든다.
사랑은 한 번에 풍던 빠져드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물들어가는 것이라던 어느 영화의 대사가 떠올랐다. 중반이 지나가자 책장을 넘기는 게 아까워지기 시작했다. 팍팍한 현실 속에서 나를 촉촉하게 적셔주는 행복한 책을 만나기란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소중히 읽었다. 진부한 사랑 이야기가 결국 진부한 인생 속에서 환하게 피어나기 마련이다. '나 사랑이야! 사랑이라니까. 이건 사랑 이야기이고.'라고 소리치지 않아도 결국은 삶이 사랑이라고 말하는 이야기들이 고맙다. 잔잔한 그들의 이야기가 비단 청소년의 이야기는 아니리라.
내가 나이를 먹으면서 드는 생각들이 결국 사람들이 어리다고 불렀던 청소년기의 생각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음을 이제야 느낀다. 감정이 조금 무뎌지고, 근사한 포장지를 입혔을 뿐 그 당시 유치한 생각들과 감정의 불안정을 지금도 겪고 있으니 말이다. 쉰이 되고 예순이 되면 달라질까? 글쎄 그럴 것 같지는 않다. 나이가 들어 너그러워지고, 유해진다고 말할 뿐 우리는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싫은 사람은 싫고, 좋은 사람은 좋고, 좋은 거 보면 갖고 싶고, 싫은 것은 피하고 싶은 우리들. 단순하고 명백한 것을 꼬아서 생각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하면서 사태는 본질과 멀어진다. 그런데 생각이 너무 많아 우리 역시 본질은 잊어버리고 만다. 화를 내다 보면 어느 순간 왜 화가 났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기가 두려워 매사를 농담처럼 처리하는 주인공의 모습에 내 자신의 빙의했기에 이 소설이 더 와닿았는지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의 주인공과 나는 <인간실격>의 주인공을 닮았다. 그러나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솔직한 모습과 정면으로 부딪혀야 한다는 주인공의 말과 행동이 부럽다. 나는 도대체 언제즈음 되어야 나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자신을 마주할 수 있을까? 그런 용기 있는 행동은 단순히 나이를 먹는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럼 나의 자리에서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은 무엇이지 또 고민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