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달리다
심윤경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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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사랑만큼 지독한 중독이 있을까? 요즘 나의 화두는 불륜인 듯 싶기도 하나 이것도 결국 사랑이라 생각하기에 사랑에 빠져있는 중이다. 우리는, 아니 나는 사랑에 목마르다. '사랑이 달리다'는 그런 나의 화두에 딱 맞는 작품이었다. 힘차고 거침없는 문체에서 정유정의 작품과 유사한 향내가 나긴 했으나 심윤경의 필체는 그녀와 다른 무언가 묘한 매력이 있어서 읽는 내내 시종일관 유쾌하고도 거침없는 그녀의 글발에 중간중간 풋풋 터지는 나의 웃음을 막을 수가 없었다. 현실은 너무 고단하고 직장은 힘들고 집에서는 지쳐있는 요즘의 나를 유일하게 웃게 해 준 작품이었다.

 

어릴 때 나는 사랑은 선이고 불륜은 악이라고만 생각했다. 불륜 역시 사랑을 기반으로 할 때도 있음을 몰랐다고나 할까? 사랑은 초콜릿처럼 달콤하고, 아이스크림처럼 녹기 쉬우며, 유리창처럼 깨지지 쉬운 존재임을 대중가요 가사로도 드라마의 이야기로도 접해보긴 했지만 중독성이 강한 줄은 이제야 조금 알겠다. 대학시절 나는 그 흔한 CC도 못해보고 연애란 물건이 도대체 어찌 생겼나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맨땅에서 상상력을 키우기란 쉽지 않았기에. 그러나 주변에서 연애박사라 일컬을 만큼 전설적인 인물들은 늘 만나고 헤어지고 만나고 헤어지고 네버엔딩스토리를 엮어갔다. 그네들의 놀라운 능력을 바라보며 지조없는 년놈이라 손가락질을 하기도 했으나 이제야 알겠다. 고기도 먹어 본 놈이 먹고 연애도 해 본 놈이 그 맛을 아는 것이다. 한 번 사랑을 맛 본 사람은 그 맛을 계속 보고 싶을 것이고, 한 번도 그 맛을 못 본 놈은 그 맛이 무엇인지 모르기에 궁금하지도 갈증을 느낄 줄도 몰랐던 것이다.

사랑에는 유통기한이 있기 마련이고 그 어느 사랑도 처음의 맛이 똑같지는 않다. 사랑은 왜 변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왜 새로운 사랑에 눈이 멀까? 사랑이 깊어질수록 뭉근하고 은근한 맛이 있을 수는 있으나 톡쏘는 탄산음료를 마셨던 사람이 김빠진 콜라를 기꺼이 마실 수 없는 이유랑 같지 않을까?

 

나의 사랑에겐 미안하지만 그리하여 '나도 불륜을 꿈꾼다'. ‘우리 대부분이 그렇지 않은가?’라고 말해 버리자니 이 소설에 대한 다른 서평에서 보이는 비난을 무시할 수 없어서 '나는 그렇다'라고 말하는 선에서 그친다. 드라마 볼 시간조차 없는 내가 다운받아가면서 봤던 '아내의 자격'이라는 드라마도, '응답하라 1997',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우리도 사랑일까',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라는 책도 다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을 시작하는 이들의 그 풋풋하고 짜릿짜릿함을 어찌 설명해야 할까. 터질 듯한 심장과 쉴 새 없이 미소짓게 하는 그 병을 무엇으로 살 수 있을까. '사랑이 달리다'라는 책에서 말하듯이 사랑은 너무나도 빨리 달리기에 다른 것을 생각할 여력이 없다. 굴러가는 바위는 그 아래에 깔릴 사람들의 심정을 생각할 여력이 없다. 그냥 굴러가는 것이기에 말이다. 사랑 또한 그런 것이겠지. 심윤경은 소설에서 망나니처럼 생겨먹은 오빠들과 산산조각 갈라진 가족들을, 돈에 목숨 걸고 말도 안 되는 교육을 교육이라 일컫는 세상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불륜이든 축복받은 사랑이든 결국 사랑이 문제다. 사랑이 끝났다고 결혼 생활이 끝나는 세상이 아니기에 결혼을 끝내고 사랑을 하는 그들의 용기에 박수쳐 주고 싶었다. 나의 사랑이 무사하고 너의 사랑이 무사하면 우리 모두의 사랑이 무사하겠지만, 세상은 나의 사랑 때문에 너의 사랑이 망가지기도 하고, 너의 사랑 때문에 내 친구의 사랑이 망가지기도 한다. 사랑은 그 어느 정글의 법칙보다 가혹하니까 말이다. 움직이는 사랑에게 '변하는 건 사랑이 아니다, 그러므로 넌 사랑이 아니다'라며 소리쳐봤자 떠나가는 마음을 붙들 수는 없지 않은가. 물론 사랑이 식었다고 너도나도 현실을 박차고 나가면 어느 가정이 유지되겠는가 싶긴 하다. 하지만 미친 사랑을 맛 본 사람이 가정의 평화나 사회의 평화, 세상의 평화를 생각할 여지가 있던가 말이다. 전쟁같은 사랑.

 

'우리도 사랑일까'라는 영화에서 이웃 남자에게 사랑을 느낀 여자가 남편에 대한 의리와 예의 때문에 남편을 버릴 수 없으니 30년 뒤에 만나서 키스하자고 말하는 부분이 나온다. 너무나 다정하고 착한 남편를 배신할 수는 없으니 30년 정도는 그에게 최선을 다하고 나면 그때에는 당신을 만나서 키스해도 되지 않겠느냐고. 글쎄 그렇게 다른 사람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30년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내가 그런 생각을 할 즈음 그녀는 남편에게 사실을 말하고 사랑을 느낀 이웃남자와 함께 떠나게 된다. 그런 그녀에게 알콜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다 다시 알콜중독에 빠져버린 전남편의 누이가 말한다. "너는 나와 다를 거라 생각하지만 너도 똑같아. 술을 끊지 못하는 나나 사랑을 끊지 못하는 너나 뭐가 다르니?" 그러게 둘 다 중독인 것을. 그리하여 새로 만난 사랑과 천년만년 행복하다면 좋겠지만 그들의 사랑 역시 식어간다. 사랑은 변하는 거니까. 반짝반짝 해서 좋았던 새것도 언젠가는 헌 것이 되기 마련이니까. 어른들은 이런 상황을 '그넘이 그넘이다'라는 식으로 얘기하곤 하지만... 결국 그게 진실이었던 것도 같다. 그렇지만 그넘이 그넘인지 알아가기까지의 과정이 얼마나 다이나믹하고 떨리는 일인던가. 그런 점에서 모든 사랑은 그넘이 그넘이 아닐 거라는 착각에서 시작해서 그넘이 그넘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사랑을 꿈꾼다. 늘 달콤하고 톡톡 튀는 사랑을. 그런데 현실에 그건 것이 존재하기나 할는지 모르겠다. 혹자는 사랑은 없다고 외치고, 혹자는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외치고, 혹자는 사랑은 움직인다 한다. 그런데 이들의 말이 실은 다 사실일 것만 같다. 사랑은 각자에게 다른 모습을 보이니까. 나도 사랑이고 너도 사랑이다. 서른 명의 사람이 있다면 사랑도 서른 가지 아니 사랑은 아흔 가지일지도 모른다. 사랑에 대한 답은 아직 나오지 않았기에 드라마도 영화도 노래도 다들 사랑을 이야기한다. 정반대의 내용으로 사랑을 이야기하는데도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은가 말이다. 그렇지만 이 소설에서는 사랑으로 치달아가면서도 가정이 완전히 허물어지지는 않는다. 사랑에는 남녀 간의 사랑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그렇다면 가족 간의 사랑이란 뭘까? 가족이란? 나에게 가족은 힘이기도 하지만 짐이기도 하다. 그런데 힘이 될 때의 기억보다 짐이 될 때의 기억이 더 많은 이유는 나도 모른다. 어느 시인의 시처럼 세상에 반짝거리는 모든 것들이 집으로 돌아오면 화분도 꽃도 모두 죽어버린다. 가을동화에나 나올 법한 남매를 현실에서 찾기는 힘들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 속의 학원이와 혜나의 모습은 참으로 징글징글할 정도로 부러웠다. 혜나가 징글징글한 가족을 그녀 방식으로 떠안고 나아가는 모습은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물론 나에게도 나름 그런 징글맞은 가족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들이 어느 순간 사라진다면 눈물짓게 될 만큼 그들을 사랑한다. 내가 눈물짓는 그 힘도 사랑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고, 그 사랑이 가족을 유지시켜 주는 것일 테지.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장르의 사랑 속에는 분명 반짝반짝 해서 설레고 심장이 터질 듯한 사랑도 있지만 뭉근하고 은근하며 닳고닳아 냄새마저 희미해진 가족 같은 사랑도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게 사랑이라는 것이 뜬금없고 낯설긴 해도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반짝반짝하는 사랑이 부러운 나는 오늘도 드라마를 보며 설레고, 책을 읽으며 웃고, 영화를 보며 눈물 짓는다. 불륜을 꿈꾸고, 반짝이는 사랑을 꿈꾼다고 가족을 박차고 나갈 수는 없기에 이야기를 보며 다른 삶을 경험하고 가슴 설레한다. 늘 반짝거릴 수 없는 사랑임을 알지만 드라마를 보면 늘 반짝걸리 수 있을 것만 같다. 박제가 된 보석처럼 멈춘 시간 속의 이야기들은 절대 빛을 잃어가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이런 사랑의 이야기들은 전설처럼 묻혀버린 나의 반짝반짝하는 사랑을 기억하게 해준다. 나에게도 오글오글한 멘트를 날리면서도 오글거리지 않던, 이 사람이면 아무것도 필요없을 것 같은 시간이 있었음을 드라마가 알려준다.

같이 사는 은근하고 뭉근하여 사랑인 줄도 모르게 옆에 있는, 심장을 미칠 듯 뛰게 했으나 이제는 한 템포 느리게 뛰게 만드는 이 남자가 지겹지도 않냐? 맨날 드라마 보면서도 눈물이 나오냐?”라며 둔감하게 말해도 불륜을 꿈꾸는 나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랑에 빠지는 중이다. 반짝반짝하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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