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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소설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중고서점에서 꽤나 괜찮은 상태로 남아있는 책이라 골랐다. 물론 알라딘 서평을 참고하여 내용 전반에 대한 평가를 살펴보고 사긴 했다. 메마른 가슴을 촉촉하게 적셔줄 것 같은 제목이라 고르긴 했는데 막상 책을 손에 잡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린 셈이다.
차에서 읽는 책, 길거리에 있거나 시간이 날 때 짬짬이 읽는 책, 잠자리에서 읽는 책, 직장에서 읽는 책, 늘 근거리에 읽을 거리를 두자 다짐했지만 일상의 피로가 나약한 나를 쉽게 흔들어 놓기에 책 읽기도 쉽지가 않다. 직장에서는 '미쉘 우웰벡'의 <소립자>를-이건 은희경 작가가 아주 야한 책이라 소개해 줘서 읽기 시작했는게 그닥 야한 건 없는 듯^^;-, 차에서는 '박노해'의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집에서는 '라헬 판 코에이'의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를 잠자리에서는 '박정애'의 <환절기>를 읽고 있는 중이다. <소립자>는 편집이 조악하고 내용이 촘촘하게 쓰여져 있어 잘 읽히지가 않아 진도가 느리고,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는 詩인지라 한 편씩 되새기기도 벅차고, <환절기>는 조금 어두워 읽으면서 망설이게 되고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는 쉽게 쓰여 발리 읽을 수 있었다. 그러던 차에 책장에 가득 꽂혀 있던 책 중에 이 책에 손이 닿았다. 솔직히 단편인 줄 모르고 집어들었다. 단편은 호흡이 짧아 읽기가 망설여진다. 그렇지만 요즘 꽤 괜찮은 단편에 맛을 들였는지라-<곰스크로 가는 기차>, <맛>, <야시> 등등- 이 책도 읽어보았는데 실망스럽지 않았다.
이 책에 실린 세 편의 단편은 제각각이면서도 하나의 공통된 이야기인 느낌이 든다. 옴니버스식 구성이라고 해야 하나 아님 피카레스크라고 해야 할까? 여튼<연애소설>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하나씩 잃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진 남자의 이야기이다. 자신을 사랑하던 부모님과 자신과 가까운 친구들이 죽고, 이 일련의 사태 속에서 '死神'으로 불리며 '死神'으로 충실히 살아가는 남자 주인공, 그 사람 곁에 또 다른 운명으로 다가온 여자. 통속 드라마에 나오는 흔한 대사 "사랑하기에 떠나는 거야"라는 말이 꼭 들어맞을 만한 상황이다. 그러나 그 여자가 말한다.
"아무리 친한 사람이 있어도 안 만나면 그 사람은 죽어버려"(p54)
그러자 남자가 말했다.
"사람은 다 죽잖아. 가령 추억 속에 살아 있다고 해도 언젠가는 죽어버려."
그래서인지 남자 주인공이 사랑하는 그녀도 죽어가게 된다. 그려서 그녀를 멀리하려는 그에게 그녀가 말한다.
"너 그런 말 하면 나를 이미 죽인 거나 마찬가지야. 이상한 생각에 사로잡혀서 나를 죽이는 거라구."
그런 다음 그녀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그의 이야기를 듣던 나는?
이 일련의 모든 사건을 처리하는 작가의 시선이 나는 유독 마음에 들었다.
두 번째 이야기 제목은 <사랑의 환>
암에 걸린 한 남자가 자기가 사랑한 여자를 버린 남자에게 복수하는 이야기. 하지만 복수는 전혀 엉뚱한 곳에서 진행된다. 청부살인업자라는 사람에 의해서. 암에 걸린 사람이 등장하고 법학부가 등장하고 클래식이 나오는 공통점과 함께 다른 측면에서 진행되는 또 다른 사랑이야기. 내일 만약 내가 죽는다면 나는 뭘 할 것인가?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이야기는 세 번째 단편 <꽃>이었다.
사랑하는 아내와 헤어지고 그녀의 기억을 잊기 위해 일에 몰두한 한 남자가 아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의 유품을 확인하러 가는 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가 그녀에게 가는 여행에는 뇌 동맥류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한 남자가 동행한다. 시한 폭탄처럼 뇌 동맥류를 앓고 있는 남자는 혹 동맥류가 터져 '역행 건망'이라는 기억 상실이 올지도 모르는 현 질병을 애써 무시하며 고향에서 넋을 놓고 있다가 아내를 찾아가는 한 남자의 여행에 동행하게 된다.
아내와의 추억에 마음 아파 아내와의 기억을 잊으려 28년이나 노력한 늙은 변호사는 진짜로 아내에 대한 모든 기억을 잊어버린 자신의 모습에 당황하게 되고 여행을 포기하려 한다. 앞으로 자신의 기억을 잃게 될 지 모르는 남자는 잊어버린 기억을 찾으려는 늙은 변호사의 과거를 함께 반추하면서 여행을 하고. 늙은 아내에게 도착하기 위해 그녀와 함께 한 여정을 거슬러가며 죽은 아내에게 도착한 늙은 변호사는 아내와의 모든 것을 떠올리게 되고 아내가 가꾸던 꽃도 발견하게 된다.
물망초
늙은 변호사의 이러한 여정은 뇌동맥류를 알고 있는 주인공에게 수술할 용기를 준다.
이 책을 읽으며 사랑은 함께 한 기억을 두고 만들어지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추억도 기억에 바탕을 두고 있구나라는 생각도 함께. 서로의 손을 꼭 잡아주자고 했던 부부의 약속을 읽으며, 새삼스레 사랑에 빠졌던 내가 그와 함께 속삭였던 밀어가, 수많은 약속이, 빛이 바랜 채 떠오른 것은 행복한 기억일까 씁쓸한 독약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