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패배자 - 한 권으로 읽는 인간 패배의 역사
볼프 슈나이더 지음, 박종대 옮김 / 을유문화사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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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권유도 : 7

 

작품 제목으로부터 내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있던 영웅중 한 사람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아 무척

실망스러웠던 작품이다.

그의 이름은 어니스트 새클턴이다.(그가 누구인지는 여러분들이 찾아보시길...) 그의 패배만큼

아름답고도 위대한 패배는 없었음을 후세들은 증언하고 있지만 작품 어디에서도 그의 이름은

찾을 수 없었다. 그 점이 아쉬웠다.

그의 행동은 한마디로 헤밍웨이가 노인과 바다에서 주제로 다루었던

인간은 포기해서는 안 된다. 쓰러질 수는 있지만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

바로 그 자체였던 것이며, 그는 부하들을 자신의 목숨같이 아껴서 생환시켰다는 것이다.

 

그런 아쉬움을 뒤로한 채 저자가 작품에서 언급하고 있는 위대한 패배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작품은 최악의 대표적인 실패사례로 타이타닉호 선장인 에드워드 스미스’ - 그는 아마도 어떤

형태의 선박 사고가 나도 매번 그의 이름이 언급될 것이다 - 와 멕시코의 황제  막시밀리안

예로 들었고,

반대로 영광스런 패배자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별칭인 사막의 여우라 불리었던 에르빈

롬멜과 새로운 사고를 부르짖으며 글라스노스트(개방, 투명성 서구 여론에 대한 신중한 접근)

페레스트로이카(국가, , 총체적 개혁)를 천명하며 썩은 물처럼 정체되어 있던 소비에트 체제를

부숴버린 고르바초프를 들고 있다.

(이들의 세부적인 이야기는 본 작품을 사서 읽을 것을 추천하는 바이다)

 

나는 누가 뭐래도 작가의 주장에 전혀 동의를 하지 못하는 인물이 하나 있는데 그는 바로 쿠바의

영웅이라 불리우는 ‘체 게바라라는 인물이다.

저자는 그를 위대한 패배자라 외치고 있는데 나는 그를 이전의 체 게바라 평전통해서도

접하고 평하였지만 그를 위대한이라는 수식어가 들어간 인물로 평가하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다.

그를 그의 평전에서는 전 세계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에 맞서 싸웠다고 평가하면서 게바라는

이 세계에 비해 너무나 선한 모든 사람이 결국 악한 세상 때문에 죽고 마는 것을 몸으로 증명

하였다며 영광스런 패배자로 선정하고 있는데,

나는 그가 정말 그런 숭고한 정신 속에서 자신의 행동을 했는지가 궁금하며 오히려 그를 보면

과거에도 그랬고 요즘에도 국제 문제를 자주 일으키고 있는 ‘IS’알카에다혹은 아프리카의

보코하람이 생각났으면 생각났지 과분하게도 위대한이라는 단어가 들어갈 정도의 인물로

평가하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다.

그의 행동을 읽다 보면 우리의 문학작품 홍명희 선생의 임꺽정속에 등장하는 곽오주라는 

인물 - 작품 속에서 그는 어린아이를 자신들의 행동에 걸림돌이 된다고 죽이고 있다 - 과 뭐가

다른지를 곰곰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의 이런 관점과 시각에 대해 무식한 놈이라고 욕을 할 수도 있다.

근대 자본주의 역사는 물론이고 민중 항쟁사도 모르고 자본주의에 맞서 처절히 싸운 용사도

모르는 놈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의 시각도 있지만 나의 이런 시각도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나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그는 단순히 현실 세상에 부적응 상태를 보여서 강력한

집단과 싸우다 우연히 기회에 인물로 거듭난 것이지 어떤 시대적 사명감에 의해 그를 둘러싼

환경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나의 관점으로는 그는 현실에 부적응을 보여 일상의 돌파구를 찾아 분쟁 지역을 찾아 나선 그런

평범한 인물이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내가 위에서 언급한 어니스트 새클턴’(그가 누구인지 궁금하면 찾아 보시라)같은 인물로 나는

미국의 엘 고어부통령을 들고 싶다.

그의 행동은 지금도 툭하면 우리 대통령의 정통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질하는 한국적 민주주의

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행동을 했기 때문이며 아직도 좀 세상을 안다고 외치는 인간들과 매스콤

을 통해 민중적 스타일의 스타적 자질이 있다고 스스로 자평하고 있는 일부 모자란 인간들이

툭하면 지랄치는 세상에서 진정으로 배워야 할 자세가 무엇인지를 그는 행동으로 보여준 인물

이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요즘에는 그런 인간들이 너무 많아 일일이 손으로 세기도 벅차다 -

 

대표적인 패배자로 또 매리 스튜어트스코틀랜드 여왕(헨리 7세 증손녀)헨리 16그리고

독일의 황제이자 프로이센의 왕이었던 빌헤름 프리드리라는 인물을 들고 있다.

이들이 왜 그런 평가를 받는지는 작품을 사서 읽으며 느끼기 바라고 나의 경우는 그들의 이름을

마주하다 보면 우리 정치판에 항상 문제를 몰고 다니는 문제적 인사들이 항시 떠오르고는 하는데

실명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이쯤 읽어 보면 누구를 지칭하는 말인지 다 알 것이다

그런 인간들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는 헨리 8세와 둘째부인 에블린 사이에 태어나 일세기를

풍미한 엘리자베스영국 여왕이 후사 없이 죽자 메리 스튜어트의 아들인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의 제임스 1세로 왕위로 올랐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해 주고 싶어도 그들이 그런 찬스를 잡을 수 있을지가 오늘도 궁금할

뿐이다.

 

마지막으로 독일 수상까지 될 뻔하다 실패한 독일의 라이너 바르첼이라는 분이 1962자신이 속한 당의 전망 보고서에서 주장했다는 문구는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 주고

있어 여기에 옮겨 보면

앞으로는 히틀러와 전쟁 그리고 궁핍을 경험하지 않았고 복지를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신세대가 사회의 주류가 될 것이다. 종교적 관심은 뒷전으로 밀리고, 권위는 더 이상 먹혀들지

않으며, 원자력 시대와 자동화 시스템이 새로운 조건들을 만들어 내고, 일보다는 자유가 더

중요한 시대가 올 것이다"

이 문구는 시간이 흐른 지금 읽어도 섬뜩한 예지력에 놀랄 뿐이다.

 

작품에는 여러 유형의 실패 인물들이 나오고 있다.

비록 후세들이 접하고 있는 대부분의 역사가 승자들의 자랑거리로 일관된 천박한 비망록일지라

도 일부 패배자들이 보여주고 있는 행위가 작금의 시대에 고귀한 이야기로 전해 지고 있는 이유

는 억울하지만, 분하지만 패배를 깨끗이 승복하고 인정할 줄 아는 그런 아름다운 행동과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패배를 패배로 인정하지 않고, 승자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 소아병적 인물들에게 그들은, 그들의

행위를 기록하고 있는 후세들은 지금은 아닐지라도 언젠가 대 놓고 아주 크게 이야기하고 기록

하여 후세에 전할 것이다.

- 세계사적으로 보면 일본놈의 색히들이고, 우리의 정치, 경제, 문화사적으로 보면 하여간 엄청 많다. -

역사 속에서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던 인물의 대부분은 자신의 팔뚝이 엄청 굵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자 자신의 팔뚝을 이리저리 휘두르다 쫄딱 망했습니다라고 말이다    

  

한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쪽수로 밀어부쳐 막아낼 방법이 없다고 자포자기하지 말고 막을

명분과 논리가 확고하고 정의롭다면 민주적 방법으로 막는데까지 막는 게 소수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최근 모 제품 광고카피에도 나온 문구가 있지 않은가?

왜 넓은 바다를 청소하죠? 해도 티도 나지 않는데?’

전체가 깨끗하진 않아도 우리가 지나온 길만은 깨끗하지 않겠어요?’

무슨 의미인지 여의도에서 쓸데없이 난리치는 분들이 좀 새겨 보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꼭 이기려하지 마라! 아름다운 패배가 더 아름답게 보일 때도 있고, 역사가 평가할 때도 있음을

기억함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그 밖에 언급되고 있는

- 요한 스트라우스(아들에게 가려진 영광)

- 렌츠(괴테에게 발길질당한 천재 작가)

- 라살(마르크스에 눌린 패배자 - 노동 운동의 메시아)

- 트로츠키(스탈린에게 쫓겨난 패배자)

- 오스카 와일드(시대의 방랑자)

- 크누트 함순(경솔한 말로 세계적인 명성에 먹칠한 작가)

- 리제 마이트너(노벨상을 빼앗긴 물리학자)

- 앨런 튜링(2차 세계대전을 도운 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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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 동서분당의 프레임에서 리더십을 생각한다
이정철 지음 / 너머북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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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8

 

조선 최초의 군() 출신 왕으로서 그가 왕위에 올라 자신만의 정치적 색깔을 내기 시작하던

선조 8(1575)에서 23(1590)사이에 벌어졌던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암울하게 장식한

사건의 이면에 숨겨진 이야기로,

역사에 대한 지식이나 주워들은 정보가 조금 누구의 기준인지는 모르겠으나 하여간 - 이라도

있는 사람들이라면 일견 세력싸움이라 하기도 하고, 나처럼 지식이 있다고 하기도 없다고

하기도 애매한 부류들은 어디서 습득한 지식인지는 모르겠으나 알량한 지식을 무기로 무턱대고

정치 이념적 싸움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일종의 정치 격변사’(나쁜 말로 이야기하면 파벌 싸움’)

고 이야기하면 맞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느 쪽이던 목소리 큰 인간이 속한 부류가 이긴다 -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시각과 지식을 기본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닌 상태이기에 당시의

그런 사건의 배경과 이유를 단정적으로 뭐라 평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나 해당 작품을 읽고 또

유사한 작품 속에서 체득한 정보에 근거하여 또 살아오면서 주변으로부터 얻어들은 지식과 학창

시절 짧게 배운 역사에 대한 지식의 편린을 갖고 함부로 떠드는 행위는 저자와 같이 역사학을

공부하신 분이라면 모르겠으나 나와 같이 역사적 시각과 관점도 일천한 범인(凡人)의 입장은

상당히 주제넘은 행동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되어 작품 내용 중 나의 관점으로 중요하다고 생각

되는 부분을 성의껏 축약하는 것으로 나의 개인적 의견으로 포장해 보았고, 나의 관심에서 벗어

났거나 이제까지 내가 알고 있지 않았던 새로운 사실에 대해 작품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상황은

일반적인 검증의 절차가 없었기 때문에 나와 같이 역사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이 모른다는 사실

자체는 해당 역사적 사실이 틀렸거나 아직 검증되지 않았음을 이야기한다고 판단하여 - 이번

축약에서 제외하였다.

추후 그분들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나 역사적 사실이 밝혀지면 다루어볼까 생각한다.

여기서 역사에 대한 나의 관점이라는 것은 이런 저런 작품을 접하다 보니 생긴 것으로 어느

역사 학자가 우리의 역사를 연구하며 생성된 개인적 주장 중 작품에서 언급하고 있는 특정 시기,

특정 사안에 대한 개괄적인 동의를 표한다는 의미이지, 저자가 바라보는 우리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를 표하는 것은 절대 아니며 그냥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는

으로 우리가 몰랐던 역사적 사실에 대한 부족한 지식을 보충해 본다는 식으로 저자의 주장을

용한다는 의미로 이해되었으면 한다.

나는 정치적인 면에 있어서는 무색무취의 인물로 그 어느 정파에도 속하지 않은 그냥 한국사를

사랑하는 그냥 평범한 사람이다.

 

해당 작품의 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점검하고 알고 있어야 할 사항이 있다.

작품에서는 나와 같은 논조로 이야기하지 않았으나 작품을 읽은 나로서는 철저히 먼저 이런

생각의 기초를 다져놓지 않고 작품에 접근하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 줄기는 대체적으로 3가지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1) 선조는 명종비 인순왕후의 사망을 자신이 정치를 시작해도 좋은 출발점으로 인식했고

2) ‘개혁은 그 내용이 무엇이든 집권 초기의 집권자(선조)에게는 부담스러운 과제였기에 독자적

   세력 기반과 정치적 경험이 일천한 입장에서는 심리적으로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었기 때문에

   현상유지 정책을 선택했다.(P 44)

3) 새로운 제도(낭천제도)는 기존 세력을 견제할 수 있었던 반면 종국에는 그 제도로 인해 탄생한

   세력에 의해 반발을 사게 된다.(P 48)

 

   [동서분당의 조짐]

- 선조 8년 황해도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이 발단이 되어 동서분당의 단초로 발전하는데 동인과

  서인 간의 직접적인 분열의 원인은 대사간 허엽이 사간원 이름으로 과거 살인 사건을 담당

  했던 위관 박순의 추고 요청에 대해 김효원의 동의 아래 사헌부가 동조해 벌어진 사건이다.

   (P 65)

  평범하게 지나갔을 사건이 허엽이 개입함으로써 정치적인 사건으로 변질되는데 중요한 것은

  문제를 제기한 허엽과 피의자가 친척 관계였다는 것이다.(P 52, 57)

 

   [기준 없는 사건 처리]

1) 선조 11년 진도 군수 이수가 세금으로 거둔 쌀을 실력자(윤현, 윤두수, 윤근수)들에게 뇌물로

   주었다는 고발에 따라 이들을 조사하고 탄핵하나 선조는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조선은 사헌부, 사간원 대간에게 소문으로 들은 것이라 할지라도 이를 근거로 탄핵하는 것도

   허용했는데, 탄핵을 허락지 않았던 것이다. 해당 사건은 ‘3 으로 불리우던 당시의 세 윤씨에

   대한 사건으로 뇌물을 받았는지 여부가 확인되지 않아 탄핵이 거부된 사건이다.(P 79)

 

2) 전라도 무안 현감 전응전이 관곡 1백여 석을 착복하는 독직사건이 발생, 의금부 조사결과

   뇌물리스트에 윤의중(이발의 외삼촌)과 이양원(왕실)이 연루된 것이 확인되어 보고하자 선조는

   뇌물이 관행이라는 이유로 관대히 처분한다문제는 선조가 아닌 대간들의 태도였다.

   , 이 시기에 일어났던 다른 독직사건 특히 이수 사건에서 보여준 대간들의 자세와는 달리

   완전 딴판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인데 이는 당시 모든 사건은 사안의 배경에 따라 대응이 달라

   지기 시작한 첫 번째 사건이다.(P 76)

 

3) 또 다른 독직사건이 발생하는데 웅진 현령 이신로의 뇌물 사건으로 뇌물의 수뢰자는

   우상 노수신이었는데 이 사건을 이수사건과 함께 처리하기 곤란하다는 이유로 관련된 인물에

   대한 탄핵을 중단한다. 결국 추후 재조사를 하나 명확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석방된다.(P 80)

  

   [백인걸 상소 대필 사건]

- ‘이수의 옥사직후 선조는 구언을 청하는데 사헌부에서 올린 정희적의 차자가 결정적 역할을

   한다. , 정희적은 차자를 통해 동인이 옳고, 서인이 그릇되었으며 심의겸(인순황후 일족)

   정철, 김계휘는 소인이며 사당의 일파라 규정하였는데, 이는 마침내 동인과 서인 간의

   구분이 시비(是非)를 따지는 것에서 정사(正邪)를 나누는 것으로 전환되었다.(P 87)

    

   이런 분위기 속에서 백인걸(지충부지사)’·를 파타하고 어진 사람만 등용해야 한다

   상소를 올리자 승정원과 삼사를 장악한 동인이 들고 일어난다.

   같은 시기에 이이역시 유사한 상소를 올리지만 백인걸의 상소를 대필한 사실과 함께 사간언

   송응형백인걸이이의 문제를 제기하며 정국은 혼란에 빠진다.(P91~106)

 

- 혼란의 정국 속에서 동인과 서인 간 갈등이 심화되자 그에 따른 반작용으로 동인과 서인의

  보합(保合), 조제(調劑) , 보합조제론(保合調劑論)이 등장하는데, 이는 동인이 구신이 아닌

  같은 사림인 서인과 함께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하나의 사림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조제보합론의 핵심이다.(P108)

 

   [선조가 이이를 부른 이유]

- 30세를 앞둔 선조는 크게 병치레를 한 후 대대적인 인사를 단행하는데, 동인이 장악한 대간직

  에 서인 측 사람들을 등용한 것이다. 이는 종전의 선조의 인사 스타일이 아닌 조정 상황을

  면밀히 파악한 후 나올 수 있는 정교한 조치였는데, 이때부터 선조는 자기만의 정치 색깔을

  나타내기 시작했다.(P120)

  당초 이이가 조정을 떠난 이유는 독주할 기미를 보이는 서인을 이이가 제어하지 못했고, 서인

  내부에서 정철의 발언권이 커진 것이 그가 떠난 이유다.(P123)

 

   [탄핵 사건 2건과 정인홍]

- 선조14(1581) 동인들은 수원 부사 우성전을 탄핵하려 했다.

  역학에 능한 그가 변론하는 과정에서 여러 논적(論敵)을 만들었기 때문이며 특히 정인홍

  대해 발언한 내용이 정인홍의 귀에 들어가자 사감(私感)을 가진 그가 탄핵에 나서게 된 것이다.

  사헌부의 탄핵으로 파면된 그 사건으로 우성전과 가까웠던 사람들이 모두 불만을 갖게 되었고

  이때부터 비로소 남북분당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한다.(P128)

- 우성전 탄핵 이후 정여립의 이조전랑 후보 추천을 반대한 이경중에 대해 탄핵을 모의하는데

  이 역시 정인홍이 주도로 이뤄진다.

 

   상기 두 사건은 외견적으로는 동인과 서인의 갈등이 아니라 오히려 동인 내부의 갈등이

   요인으로 정인홍이 모두 주도한 것으로 보이나 배후에는 이발이 있었다.(P131)

 

- 또한 이이는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 이발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발 역시 표면적으로는 이이가 주장한 정치적 목적과 대의를 따르는 모습을 보였으나

  인순왕후 동생 심의겸을 증오했고 끝내 정인홍을 이용한 탄핵에 성공한다.(P141)‘

 

   [윤승훈이라는 인물]

- 동인의 집요한 노력으로 심의겸 탄핵에 성공하자 심의겸정철의 관계를 갖고 윤승훈

  문제화 삼는다. ’이이정철을 두둔하고 나서자 사간원 동료들의 동의도 얻지 못한 채 선조에

  상소를 올려 이이를 공박하나, 선조는 윤승훈에게 천박하고 경솔한 작태를 부리지 말고

  직분에 충실하라는 지적을 받는다.(P147)

   ’이이가 반박하자 언관에 대한 조정의 금기 사항(비판, 비난)을 건드린 것으로 문제가 된다.

  당시 조선의 정상적인 정치운영 구조는 대신과 언관을 양대 축으로, 대신은 민생을 포함한

  국정현안 문제 해결에, 언관은 관리의 부패를 막는 것이 주 임무였는데, 이를 정면으로 반박

  했던 인물이 바로 이이였던 것이다.(P153)

 

   [이이, 선조에게 개혁을 호소하다]

- 이이가 조정에 복귀하면서 가졌던 목표는 사림을 하나로 통합하여 그 단합된 힘으로 선조에게

  개혁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특히, 인사권에 관한 것으로 당시 조정의 인사권은 이조판서가 아니라 이조전랑과  삼사가

  장악하고 있었다. 이들 대부분은 동인으로 이 상황을 바꾸지 않고는 이조판서가 인사행정에

  영향력을 가질 수 없었기에 이이가 이를 지적하였고 사헌부 장령 홍가신이에 동조하였으나

  유성룡이 반대하고 나선다. 이 시기에 류성룡은 개혁의 당위성보다는 당파적 행동이 더 중요

  하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P158~165)

 

   [이탕개의 난과 선조 그리고 이이]

- 함경도 북부 지역에는 초기부터 번호(藩胡)‘라 불리우는 여진 부족들이 거주했다.

  이들은 조선 국경 부근에 거주하며 농업에 종사하고 조선과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살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선 정부의 관심이 줄어들고 국방상 완충역활의 필요성이 줄어들자 일부

  번호들이 주축이 되어 조선을 공격한다. 이것이 이탕개의 난이다.(P177)

- 이탕개의 난을 통해 이이는 여러 개혁안을 선조에게 건의하나 사헌부와 사간원의 반대로 무산

  되고 만다. 이즈음 종친인 세종의 아들 담양군의 증손 경안령 이요가 정치적 파란을 불러

  일으키는 발언을 하는데 이 발언에 선조가 동조하면서 파장이 커지는데, 이요의 발언 뒤에는

  같은 당여인 이이의 사주가 있다고 하면서 이때부터 이이를 직접 공격하기 시작한다.(P185) 

 

   [성혼의 상소와 계미삼찬]

- 선조는 대간에 대한 질책으로 이이가 사직 이후 성혼의 상소로 정치적 쟁점이 다시

  붙으면서 송응개가 사건의 중심에 서는데, 그를 비롯한 추종세력들이 이이를 강렬히 통박하는

  상소를 너희들이 이 일을 가지고 다투면 능히 이탕개를 잡을 수 있느냐질타한다.

  송응개의 상소는 이이가 제기한 문제가 아니라 이이 개인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의

  계미삼찬의 빌미가 된다.(P219~229)

 

   [계미삼찬 이후의 이이의 입장]

- 계미삼찬 이후 조정에는 3가지 말이 있었다.

  서인 측은 동인을 청요직에 임명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과 동인 측은 이들도 사류의 일부이니

  배척하지 말고 전처럼 기용하되 갈등의 단서를 없애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마지막으로는 문제를

  악화시켰던 동인 측 몇 사람을 제외하고 동서 구분없이 인물을 등용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는데

  이이는 마지막 입장이었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여 언관권 축소를 통한 추락한 대신의 권한을

  강화하고자 하는 뜻이 있었다.(P245~257)

 

   [조정의 재편]

- 동인 측으로 치우친 조정에서 동인을 견제하기 위해서 선조는 이이를 선택했고 이이에 대한

  선조의 신임이 굳어진 계기는 여진족의 군사 공격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이때부터 선조는 자기 스타일의 정치를 하기 시작한다. 그런 선조의 통치 스타일을 온전하게

  완성시켜 준 사람은 이산해이다. 선조가 생각한 성혼은 이이의 조력자이거나 연장선으로,

  이산해에 대해서는 이이와는 독립적인, 나아가서는 그를 대신할 수 있는 인물로 선조는 인식

  했다.(P245~271)

 

   [선조의 정치]

- 선조 17년 이후 조정의 정치적 무게중심이 동인 쪽으로 확연히 이동했다. 특히 선조는 내 뜻을

  말하겠으니 사관은 기록하라라고 할만큼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시작하는데, “내가 등용한

  현인은 이이와 성혼이다. 때문에 무릇 이 두 사람을 공격하는 자는 반드시 간사한 자라고

  생각된다고 할만큼 선조는 이들에 대한 신뢰를 보인다.

  특히, 선조는 특지(特旨)를 통해서 자기 목소리와 감정을 드러내는 대신, 조정 내 당파간 목소리

  를 이용하여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켰다.(P272~289)

 

   [기축옥사]

- 정여립에 의해 주도된 모반 사건은 상당한 파장을 불러일으키는데, 정려립 집에서 수거한 문서,

  즉 정여립이 다른 사람들과 주고받은 서찰에 근거하여 심문이 진행되었다.

  정치적 갈등이 고조되면 따져 보아야 할 사항을 따지지 않고 쉽게 피아(彼我)로만 구분한다는

  점이 문제점인데, 선조는 이를 자의적 판단에 의존해 처리를 하였다는 문제가 있다.

  , 선조는 임금의 지위에 더하여 신뢰성 높은 정보를 독점한 채, 자신의 정치적 목적과 판단에

  따라 정보를 선택적으로 활용했다.(P293~320)

 

   [전주 생원 양천회의 상소]

- 양천회 상소는 정여립 사건의 외연을 확대하는 촉매가 되어 본격적인 정치 쟁점화 된다.

  그의 주장은 정여립이 그렇게 된 것은 조정에 있는 당국자들과 결탁해 벌어진 일이며 비록

  그들이 정여립의 그러한 행동을 알았거나 행동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정치적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는 상소였다.

 

- 상소는 중요 동인 측 인사들을 퇴진시켰고 서인 중심 인물들을 불러들이는 계기가 된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우상 정언신의 퇴출이다.

  대신을 새로 임명하면서 이산해가 추천한 정철을 정언의 자리에 배치하는데 이는 선조 8

  이래 늘 동인의 표적이었던 정철을 선조가 이를 이용하지만 정철은 성혼과 함께 정언신의

  구명 및 죄의 경감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P321~328)

 

 

상기 내용만 갖고도 해당 작품의 70% 이상은 읽은 것이나 마찬가지라 여겨지며 여기까지 내용을

갖고 왜 이런 작품이 이 시기에 이런 작품 제목을 갖고 출간되었을까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관점으로 생각한 몇 가지를 추려 보면

 

첫째 조직의 분란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앞세운 소수에 의해 일어나며

둘째 전체를 관장해야 할 최고 지도자의 올바르지 못한 처신

셋째 리더들의 열린 마음과 소통하려는 자세의 부족

넷째 어떤 명분으로도 현재의 잣대로 과거를 단죄하면 절대 안 되며

다섯 리더들의 겸손한 자세가 부족했다

  

점이었는데 어느 것 하나 새로운 것이 없는 우리 모두가 학창시절에 다 배운 내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사건 사고를 보아도 위에서 언급한

현상이 없어지지 않고 지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역사는 분명히 반복된다고 볼 때 모두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며 산은 오를 때 보다

내려올 때 조심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가 있다.

마음에 두고두고 새겨야 할 문구가 아닌가 생각하며 글을 접는다.

 

   작품으로 얻는 지식들

  

- 처치(處置)와 피혐(避嫌)

  사헌부와 사간원의 결정방식은 전원합의 방식인데, 사헌부에서 전원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각자 자신의 의견을 밝힌 후 피혐하고 이를 사간원으로 넘겨 다시 합의를 하는데 여기서도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이를 처치라고 한다.

  여기서도 역시 합의가 안 되면 최종 결정은 홍문관으로 넘어가 결정된 결과가 사헌부, 사간원

  에서 제시한 의견과 동일한 의견을 남긴 이들은 살아남고 나머지는 물갈이 된다.

- ‘숙배(肅拜)’란 어떤 벼슬에 임명된 관원이 임지로 가기 전에 임금에게 올리는 인사

- ‘위관(委官)’이란 추국(推鞫)할 때 삼정승 가운데서 임시로 뽑아서 임명하는 재판장

- ‘승정원은 도승지 포함 6명의 승지로 구성되는데 각 승지는 6조 중 하나씩을 맡아 왕과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

- ‘구언이란 임금이 관료조직의 위계를 뛰어넘어서 신하들 개인의 의견을 구하는 절차

- ‘계사(啓辭)’신하가 임금에게 아뢰는 말이나 내용혹은 중앙 아문에서 국왕에게 올리는

  문서로 임금에게 전달하는 것을 전계(傳啓)‘라고 한다.

- ’선전관은 국왕을 지금거리에서 모시는 무관

- ’도직이란 도적을 잡기 위해 중요한 지점마다 세운 검문소

- ’승전색이란 내시부에 속한 직책으로 왕의 명령을 전달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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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세계 - 개정3판
막스 피카르트 지음, 최승자 옮김 / 까치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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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7


책 읽다 '정신 줄'을 놓아 버릴 뻔한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나의 이 이야기를 확인하고 싶거나내 이야기가 과장되었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작품을 꼭 조용히 그것도 

아주 조용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과장되게 이야기해 작품의 머리말만 한 20여 번 읽다 포기한 작품입니다.

작품의 초반부만 읽어도 그냥 자연스럽게 스스로 '침묵의 세계'로 빠져 듭니다.

 

작품의 서문을 읽어 보면 본 작품이 어떤 작품인지 대체적으로 감을 잡을 수 있다고 보여지는데읽고자 

하시는 분이 있다면 제가 그 서문의 일부를 발췌할 터이니 한 번 조용한 시간을 갖고 읽어보시고 그 문장의 

의미를 음미해 보시기 바랍니다.

 

[침묵이란 그저 인간이 말하지 않음으로써 성립되는 것이 아니다침묵은 단순한 말의 포기 그 이상의 

 것이며단순히 자기 마음에 들면 스스로 옮아갈 수 있는 어떤 상태 그 이상의 것이다.

 말이 끝나는 곳에서 침묵은 시작된다그러나 말이 끝나기 때문에 침묵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그 때 비로소 분명해진다는 것 뿐이다.....(중략).....인간을 진정한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침묵이 아니라 

 말이말은 침묵에 대해서 '우월권'을 갖는다......(중략)....그러나 놀라는 것은 다만 침묵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로서 이해할 뿐이다그러나 침묵은 '존재'이자 하나의 실체'이며말이란 모든 '실체'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 대목만 읽고도 무슨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라는 생각이 드십니까?

솔직히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그냥 침묵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작품인가? 하는 생각 밖에는 말입니다.

 

작품을 읽던 중 제게 심각한 고민을 던져 준 한 문장이 눈에 보였습니다.

"두 사람이 이야기 나눌 때는 항상 제 삼자가 듣기 마련인데, 그 제삼자가 바로 '침묵'이다"

 

저는 이 문장에서 필이 꽂혀서 작품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작품을 읽고 어떤 느낌을 느끼는 것도 중요하지만저자가 심각한 사유 속에서 만들어낸 '핵심 키워드'를 

나름대로 추출해 전체를 이해하고자 하지만 솔직히 나와 같이 어려서부터 체계적으로 철학적 사고를 교육 

받지 못한 현대인들은 이런 작품을 접하게 되면 상당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게 작품을 읽은 

나의 소회입니다.

 

따라서 그냥 작품에서 언급된 주요 문장을 그대로 옮겨 볼까 합니다.

그것만 읽어도 작가가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려는 의미나 내용을 전부 숙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저는 작품을 통해서가 아니라 살아가면서 한 가지 분명하게 터득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어떤 특정한 사안이 발생했을 때 상대를 설복시키는 방법으로 화려한 언변술 보다는 [침묵]이 더욱 더 

호소력이 있다는 것을 삶을 통해 배웠다는 사실입니다만 자기PR 시대이며 소음의 저장소인 오늘을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그런 정의가 꼭 맞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조금 있으면 더위도 물러가고 풍성한 가을이 올 것입니다.

어느 CF처럼 조용한 산사는 아니더라도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소음의 원천을 차단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침묵의 세계]로 빠져 들어가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침묵의 모습]

침묵은 능동적인 것이고 독자적인 완전한 세계이다.

침묵이 존재하는 곳에서는 인간은 침묵에 의해서 관찰 당한다.

침묵은 다만 존재할 뿐 아무런 다른 목적도 가지고 있지 않다.

침묵은 자기 안에 들어 있는 사물들에게 자신의 존재가 가지고 있는 힘을 떼어 준다.

침묵은 보이지 않지만분명하게 현존한다침묵은 그 어느 먼 곳까지도 뻗어 가지만 우리에게 가까이 

  우리 자신의 몸처럼 느낄 정도로 가까이 있다침묵은 잡을 수는 없지만 옷감처럼직물처럼 직접적으로 

  감지할 수 있다침묵은 언어로써 규정할 수는 없지만 확실한 것이며 분명한 것이다.

 

[말의 침묵으로부터의 탄생]

말은 침묵으로부터 그리고 침묵의 충만함으로부터 나온다.

말은 다만 침묵의 한 면일 뿐이다인간은 말을 통해서 침묵의 소리를 듣게 된다

  진정한 말은 침묵의 반향(反響)인 것이다.

침묵은 말이 없이도 존재할 수 있지만말은 침묵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침묵으로부터 말이 나온다는 것그것에 의해서 침묵은 비로소 완성된다침묵은 말을 통해서 비로소 그 

  의미와 진정한 가치를 얻게 된다

언제나 침묵은 다만 위에서 보다 고귀한 것이 나타나게 하는 하나의 토대일 뿐이다.

  

[침묵말 그리고 진리]

진리는 언어의 논리 속에 하나의 객관적인 사실로서 들어 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말을 진리로 완전히 채울 수 있다그 때문에 그리스도의 말은 우울하지 않다.


[말 속의 침묵]

인간의 말은 진리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비에 의해서도 결정된다자비 속에서 말은 다시 

  자신의 근원으로 되돌아 간다중요한 것은 말은 자비를 통하여 침묵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현대의 우울은 인간의 말 대부분을 침묵과 분리시킴으로써 말을 고독하게 만들었다는 데에서 기인하다

  이러한 침묵의 제거는 인간의 내부에서 하나의 죄책감으로 존재하고그 죄책감이 우울로 나타난다.

침묵은 정신을 위한 자연적 토대이다.

침묵은 말에게는 자연이며 휴식이며 황야다말은 침묵에게서 활기를 얻고 말 자신으로 인해 생긴 황폐를 

  침묵으로 정화시킨다침묵 속에서 말은 숨을 죽이고 자신을 다시금 원초성으로 가득 채운다.

완벽은 자연적 침묵의 원초성과 정신의 원초성이 한 인간 속에서 서로 만나 결합할 때 달성.된다

오늘날의 말은 그 침묵의 두 세계와는 거리가 멀다말은 소음에서 생겨나고 소음 속에서 사라진다

  즉작동하지 않는 소음이 침묵이다.

더 이상 침묵과 결합되어 있지 못하면 말은 더 이상 재생할 수 없고 자신의 본질을 잃어 버린다.

  

[말과 몸짓]

 - 몸짓은 그것을 야기시킨 충동들로부터 해방되어 있지 않다몸짓은 그 충동들과 뒤섞여 있고

 그 충동들의 일부이며그것은 대개 한 욕구를 표현한다.

 - 말에는 충동적 의지보다는 존재적인 것이 들어 있다더구나 말은 제 스스로 존재를 창조할

 만큼 특수한 존재이다.

  

[고대의 언어]

오늘날의 언어는 극도로 긴장해 있고 침묵으로부터가 아니라 선행했던 말로부터 나오고 침묵이 아니라 

  다음 말로 가 버린다.

위대한 문체 속에서는 침묵이 대개 중요한 공간을 차지한다타키투스의 문체 속에서는 침묵이 지배적

  비천한 노여움은 폭발하는 듯하고 저열한 노여움은 말이 많지만미래의 정의를 기다리면서 말을 

  사건들에게 맡겨 두기 위해서 침묵해야 할 필요가 있는 분노도 있다.             (에르네스트 엘로)

  

[자아와 침묵]

침묵이 더 이상 작용하지 않는 곳에서는 '안정이 경직되는 까닭에 인간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리고 불안정은 인간을 소진시키는 까닭에 그 속에서 인간은 견딜 수 없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끊임없이 어느 하나에서 다른 것으로 무겁게 나아갈 수 밖에 없고그의 모든 시작 

  속에는 불가피하게 불안함이 스며드는 것이다. (괴레스)

오늘날 개인은 침묵과 마주해 있지도 않고 공동체와 마주해 있지도 않으며 다만 보편적인 [소음]과 마주해

  있다.

침묵이 작용하는 세계에서 고독은 주관적인 것에 달려 있지 않으며 주관적인 것에서 유래되지 않는다

  고독은 어떤 객관적인 것으로서 인간 앞에 존재하고 있으며인간 자신의 내부 속에 있는 고독 역시 

  그러하다고독은 침묵으로서 인간 앞에 존재하고 있다옛 성자들이 고독 속으로 들어가서 마주쳤던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침묵의 객관적인 고독이었다.

  그래서 그들 자신의 내적 고독은 객관적인 고독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았다성자는 그 객관적인 고독을 

  그것이 제삼자로부터 온 것인 양 받아서 가졌고그것을 당연한 것인 양 받았다.

  따라서 성자의 고독은 오늘날의 '내적고독처럼 긴장되어 있지 않았다반대로 그것은 침묵의 위대한 

  객관적인 세계와 그 객관적인 세계의 고독과 결합되어 있음을 보여 주는 하나의 표시였다

  그리하여 성자는 단순히 자신만의 고독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그 고독으로부터 

  얻었다또한 그것은 그의 고독 바깥에 있는 것이었고, 자기 자신의 고독이 될 수도 있는 것 이상의 

  것이었다.

  그러나 고독이 다만 인간 내부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 곳에서는 인간은 고독에 의해서 소진되고 고독에

  의해 수축된다.

침묵하는 실체가 아직 자기 내부에 존재하고 있을 때인간은 자신의 본성에 반대되는 것자신을 소진

  시키는 것을 더 잘 견딜 수 있다바로 그 때문에 아직 침묵하는 실체가 가득 차 있는 동양 민족들이 침묵

  하는 실체가 거의 완전히 파괴된 서양만족들보다 기계와의 생활을 잘 견디는 것이다.

 - 한 인간의 내부에 침묵하는 실체가 존재하고 있을 때 그의 모든 특성들은 그 실체 속에 중심을 두게 된다.

  

[역사와 침묵]

말씀이 행해지는 곳에서는 더 이상 징조가 말해질 필요가 없고 더 이상 그것을 감히 말할 수도 없다.

징조들은 말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존재할 뿐이다.

인간이 침묵으로부터도가르침의 말씀으로부터도 옳은 것을 행할 수 없을 때에는 사건이, 역사 자체가 

  인간을 가르치는 일을 떠맡게 된다진리는 더 이상 말을 통해서 인간에게 이르지 않게 되면사건들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드러낸다.

인간들 사이에서 폭력과 증오와 범죄가 행해져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을 더 이상 믿지 않았던 까닭에 

  그것은 전쟁이라는 사실을 통해서 인간에게 실증되었다.

그리스도 시대에는 신성한 역사 자체가 말을 했다. 인간이 말을 버렸기 때문에 하느님 자신이 망 속으로 

  오셨다.

  

[형상과 침묵]

형상은 망하는 침묵이다형상은 침묵으로부터 말로 가는 도중의 정거장과 같은 것이다.

사물의 침묵하는 형상을 보존하는 것은 영혼이다.

한 사물은 인간 내부에서 두 번 존재한다한 번은 영혼 속에서 형상으로서 또 한 번은 정신 속에서 말로 

  존재한다.

  

[사랑과 침묵]

사랑만은 침묵에게 무엇인가를 주는 것이다연인들은 두 사람의 공모자, 침묵의 공모자들이다.

침묵할 때에 사랑하기가 훨씬 더 쉽다침묵하면서 사랑하기가 쉬운 것은 침묵 속에서는 사랑이 가장 

  멀리까지 뻗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말을 통해서 구체화되며 말을 통해서 진리 위에 서게 되며말을 통해서 오직 말을 통해서만 사랑은 

  인간의 사랑이 된다.

  

[잡음어]

잡음은 소리 없는 공허를 덮어 버리는 소리 나는 공허이다그와 반대로 참된 말은 고요한 침묵의 표면 

  위에 드리워진 소리 나는 충만함이다.

인간의 말을 그 진정한 본질대로 보존할 때에만 말은 악마적인 힘에 대항하는 위력을 간직할 수 있다

  슬로건은 잡음어를 기계적으로 압축한 것에 불과하다.

잡음어는 스스로 멈출 용기가 없고항상 침묵을 막기 위해서 경계하고 있다.

  

[침묵과 신앙]

신의 목소리는 자연의 어떤 한 목소리도 아니고 자연의 모든 목소리들을 합친 것도 아니고침묵의 목소리

  이다주께서 목소리들을 빌려 주지 않았더라면 모든 피조물들이 벙어리가 되었을 것임이 분명하듯이 또한    그 때문에 숨쉬는 모든 것은 주를 찬미해야 함이 분명하듯이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듣는 자만이 모든 

  목소리 중에서 주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음도 분명하다. (빌헤름 피셔)

신의 침묵은 사랑을 통해서 말씀으로 변한다신의 말씀은 스스로를 바치는 침묵인간에게 스스로를 

  바치는 침묵이다.

기도의 말은 모든 진정한 말이 침묵으로부터 솟아 오르듯이 침묵으로부터 올라 온다.

  

[기타의 명제 속에 깃든 이야기들]

침묵은 항상 인간을 위해서 준비되어 있는 유일한 현상이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사랑은 이야기보다는 오히려 침묵에서 드러난다.

인간의 얼굴은 침묵과 말 사이의 마지막 경계선이다인간의 얼굴은 말이 튀어 나오는 벽이다.

인간의 본질은 인간의 형상보다는 인간의 말 속에서 더 잘 보인다.

   소크라테스는 말했다. '말하라내가 그대를 볼 수 있도록!'

 - 시간의 무음(無音)은 시간 속에 있는 침묵으로부터 온다.

 - 아기의 언어는 소리로 변한 침묵이다어른의 언어는 침묵을 추구하는 소리다.

 - 자연의 사물들은 다만 침묵이 있는 곳을 보여주는 표지들일 뿐이다.

 - 독백은 침묵과의 대화이다대도시는 거대한 소음의 저수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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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기 / 세 자매 / 바냐 아저씨 / 벚꽃 동산 동서문화사 세계문학전집 31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음, 동완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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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6

굉장히 설레는 마음으로 작품을 접했다.

작가의 위트와 재미있는 상황 전개가 여느 작가와는 달라 보였기 때문에서 이 번 작품에 거는 기대가 상당

했었다.

결론은 이 작품 역시 과거의 시대적 상황가치관의 변화에 따라 작품 평가의 기준이 달라져 있었기 때문에 

뭐라 평가하기가 참 애매하다내가 읽었던 전작에서 보여 주었던 작가 및 작품에 거는 기대감을 상당히 

무너뜨리는 작품들이었다.

작품은 체홉의 4대 희극이라고 하는 <갈매기>, <세 자매>, <바냐 아저씨>, <벚꽃 동산외 4편이 더 실려

 8편이 실려 있었는데작품에 대한 소회를 옮기기에는 약간의 무리가 있어 출판사가 인터넷 서점에 올린 

작품 소개 내용을 약간 변형에서 올리고자 한다.

 

작가 체홉은 모두 7편의 장막극과 10편의 단막극을 썼는데특히 1896년부터 세상을 떠나기 전 해인 1903

사이에 쓰인 4대 희곡갈매기,세 자매,바냐 아저씨,벚꽃 동산은 체홉 희곡의 최고봉일 뿐만 아니라

세계문학사에 길이 남을 불멸의 걸작이라고 한다. (다른 작품을 통해서는 위의 평론에 동의했으나 금번 작품을 통해서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의 작품의 특징은 거창한 사상이 아니라 현실의 진실에 주목하는 작품으로 읽기 쉽고누구에게나 뭉클한 

감동을 준다그러나 해석하려고 들면 누구의 것보다 어렵다그가 제시하는 것은 추상적인 이념이 아닌 

삶 속에 나란히 존재하는 평범한 일상의 진실한 삶이기 때문이다. (글쎄 난 동의하기가 어렵다)

작품갈매기는 현실과 꿈의 간극좌절된 희망과 엇갈린 사랑 등 중기 체홉 문학의 특징인 출구 없는 

절망과 우울의 분위기를 짙게 풍긴다. '갈매기'는 대배우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연인에게도 버림받은 '니나'

떠나간 사랑에 좌절하여 자살하는 '트레플료프'를 상징한다.


작품바냐 아저씨는 실연의 상처를 억누르며 소냐가 바냐를 위로하는 장면은 절망 속에서 인간다운 삶을 

살고자 하는 인간 순수 영혼의 숭고함을 느끼게 한다

또 다른 작품세 자매는 지방도시에 사는 군인유족 가정을 무대로 인간이 품은 꿈과 현실의 충돌을 극적 

갈등으로 삼아 서서히 운명에 휘말려 드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 정적인 작품이다.

실제로는 그 곳을 한 발짝도 떠나지 못하면서 언제나 모스크바로 돌아갈 날을 꿈꾸는 세 자매의 모습은 

이룰 수 없는 이상을 희구하며 현실을 견뎌 내야 하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체홉의 4대 희곡 가운데 마지막 작품이며 그의 문학생애를 장식하는 최후의 걸작인 벚꽃 동산은 쇠락해

가는 러시아 지주계층의 모습을 신랄하게 그려 낸 작품으로 인생의 비극과 희극이 교차하는 세계이다

벚꽃동산으로 상징되는 옛 생활의 시정(詩情)은 현실 앞에서 무참히 깨져 버린 이상화된 욕망에 다름  

아니다그럼에도 벚꽃 동산이 경매로 남의 손에 넘어갔을 때 집안 사람들 모두는 새로운 자신들의 정원을 

만들 것을 다짐한다.

 

현실은 어둡다,

하지만 진보를 믿는다면 반드시 밝고 빛나는 미래가 찾아오리라는 이들의 희구는 병든 만년의 체홉이 

품었던 인류에 대한 확신 어린 기원이기도 했다이는 또한 절망에서 인내로인내에서 전 인류적인 행복의 

기원으로마침내 인류의 밝은 미래에 대한 확신으로 옮아가는 4대극을 관통하는 빛나는 정신이기도 하다.

작품에 대한 설명은 꿈보다 해몽이라고 멋지게 하고 있으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오늘날의 잣대로 작품을 

해석해 보면 위에서 언급된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오히려 작품 해설로 소개가 안 된 <청혼혹은<좋든 싫든 비극 배우>가 더 인상 깊었지 

않았나 생각한다어쨌든 체홉은 대단한 작가라는 생각에는 별 이의가 없게 한 작품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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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설헌 - 제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최문희 지음 / 다산책방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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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7 


작품을 접하기 전 난설헌에 대해 여기 저기서 주워들어 온 게 있다 보니 그녀에 대한 정보가 어줍잖게 

얼키고 설켜 있어 진정한 그녀를 만나지 못하고 변방만 맴돌았었다.

우연히 주워 들은 신문 카피인지 아님 어느 책방의 선전물이었는지 확실한 기억은 없으나 그녀가 독백처럼 

했다는 말

 

["나에게는 세 가지 한()이 있다여자로 태어난 것조선에서 태어난 것그리고 남편의 아내가 된 것……"]

 

이라는 문구를 보고서 작금 이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성관련 사건 사고와 겹치면서 도저히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외면할 수 없었다. - 이 문구를 요즘 여성들이 읽으면 뭐라 할까? –

그녀의 호는 난설헌(蘭雪軒). 자는 경번(景樊). 이름은 초희(楚姬)라는 여성이었다.

작품을 이야기하기 전 세간의 화제가 되었던 천만 관객 동원 영화 '광해왕이 된 남자'에서 광해를 보필하던 

신하가 바로 작품의 주인공인 난설헌의 남동생이었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좋을 듯하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비록 그의 누이가 힘들어 하던 시기에 그는 어렸고 또 출가 외인이라는 시대적 전통 사상이 당시 사회의 

근간을 이루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비록 왕을 강력하게 보필하고 그의 뛰어난 강직함으로 누나를 좀 더 

보호하여 주었더라면 어떠하였을까 하는 아쉬움이 작품을 접하는 내내 내 머리 속을 맴돌았다.

난설헌그녀에 대해 약간의 조사를 해 보면

명종 18년 강릉 나의 고향이기도 하다 에서 초당 허 엽 3 3녀 중 셋째 딸로 태어 났으며 집안은 

모두 문장에 뛰어났다고 하는데, 아버지 ‘허엽’을 비롯해 그녀의 두 오빠인 ‘허성’ ‘허봉’ 그리고 남동생이자

홍길동의 저자인 ‘허균’까지 당시 "허씨 5문장"으로 불렸다고 한다.

- 이들 형제에 대한 이야기는 내가 과거 허균평전에 소상히 밝혀 두었기 때문에 중언부언 하지 않겠다 -

15세 무렵 김성립과 결혼하였으나 결혼 생활은 원만치 못했고고된 시집살이를 겪었다고 한다. 인간에게 

어려움은 동시에 닥친다고 하지 않았던가그녀의 어려움은 아버지(허엽)가 비명 횡사(객사)한 뒤얼마되지 않아 크게 의지하던 그녀가 낳은 딸과 아들을 연달아 잃었을 뿐만 아니라 그녀를 특히 아꼈던 오빠 ‘허봉’ 

역시 귀양가서 불우하게 죽었으며동생 ‘허균’ 역시 정쟁에 휘말려 귀양길에 올라야 했었다고 한다.

 

친정의 몰락과 함께 자식을 잃은 아픔부부 간의 불화 등으로 인해 견딜 수 없는 절망감 속에서 그녀는 

돌파구를 찾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어려서부터 교육받았던 ()’였다.

그녀는 생전에 약 200 여 편의 작품을 남겼는데그녀의 시문에 매료된 사람들에 의해 널리 퍼트린 것이 

아니라 누나가 죽은 후 동생 허균이 그녀의 작품 일부를 명나라 시인 ‘주지번’에게 선물로 주면서 중국에서 

시집 <난설헌집>이 간행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작품은 16세기 천재 여류시인 '허 난설헌'이라는 여인의 삶을 다룬 작품이지만 나는 그 여인이 남긴 

문화적역사적 족적에 대해 이야기하기 보다오늘날 여성들이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작가가 

창작에 근거한 어떤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지만 나는 색다른 각도에서 오늘날 우리의 여성들이 생각해야 할

점에 대해 주장하고자 한다.


1. 여자의 적()은 여자였다.

작품을 읽으며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바로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점을 확인한 점이다.

자식을 잃고부모 형제의 객사에 마음 힘들어 하는 며느리를 다독여 주지는 못할망정 시어머니라는 사람은

며느리(난설헌)를 몰아 부치고 있다.  오히려 며느리의 딱한 사정에 동정심을 표하는 남편을 타박하고

무능하기 이를 데 없는 자신의 아들을 끝까지 두둔하는 꼴이란 정말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시어머니 자신도 며느리였던 시기가 있을 것이고 또 자신의 딸도 며느리로 보냈을 터인데 어쩜 그리 야멸

차게 며느리를 못 살게 구는지 알다가도 모를 족속이었다는 생각 밖에는 다른 생각이 들지를 않았다.

여자들이여 당신도 며느리를 거쳐 시어머니가 된다는 진리를 잊지 말고 당신의 아들과 평생을 함께 할 

여인인 며느리를 사랑해 줄 것을 당부하고 당부하는 바입니다.

난 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공교롭게도 아들만 두고 있다.

남들은 이런 나를 두고 목메달감이라고 놀리기도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작품 속에 나오는 시어머니나 남편 같은 인물을 반면 교사로 삼아 며느리를 딸처럼공주처럼친구처럼 

아주 즐겁고도 재미나게 살 것을 이 자리를 빌어 맹세하는 바이다

언젠가 아들의 친구들이 자리한 모임에서 나는 여러 아들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이야기했다.

 

"어떤 여자 아이가 우리 아들의 와이프가 될지 모르겠지만 우리 집에 시집오는 순간부터 매일매일 시트콤을 

 찍는 분위기로 우리 집을 만들겠다“

 

고 공약 아닌 공약을 했음을 엄숙히 밝히는 바이다.

나는 이 땅의 며느리들이 주는 멋진 시아버지 상시부모 상을 받으려 무지 노력할 것이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써 놓아도 나의 와이프가 작품의 시어머니와도 같은 행동으로 며느리를 못 살게 굴면

헛수고라고 이야기할 것이다미안하지만 나의 와이프는 나보다 더 했으면 했지 덜 하지 않게 며느리들을 잘

챙길 것을 나는 확신할 수 있다. 딸이 없는 우리 부부는 며느리가 어떤 사람이 들어올지 모르지만 며느리가 

들어 올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시트콤 찍을 기분에 오늘도 기분이 아주 좋다솔직히 마음에 들지 않는 

며느리기준에 벗어난 며느리도 있을 수 있다.

그러면 그럴 수록 나는 더욱 더 사랑과 관심으로 그 며느리를 보듬어 주고 아끼고 챙길 것이다

사랑과 관심만큼 큰 무기는 없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드디어 몇 해 전 며느리가 들어와 최근 첫 손주를 안겨주었다.

며느리의 웃음 소리가 우리 집에서 떠난 적이 없고 지금도 그 웃음 소리와 함께 해피 바이러스는 항상 

우리 집에서 옆 집으로, 앞 집으로 옮겨 다닌다.

안사돈 되시는 분이 며느리의 웃음소리가 크다는 이유로 내 앞에서 자신의 딸이자 나의 며느리를 크게 

타박하신 적이 있다. 나는 단호히 이야기했다.

왜 제 며느리한테 그러십니까? 이전에는 사돈의 딸이라 제가 뭐라 말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었습니다만 

이제는 제 며느리요 딸입니다. 냅두십시요. 저는 듣기 좋고, 보기 좋습니다

하고 일갈한 적이 있다.

나는 며느리가 이쁘고, 사랑스럽다.

나의 유전자 50%를 물려받은 나의 축소판이 선택한 여인이 아닌가 그럼 당연히 이뻐하고 귀여워해야 하지 

않겠는가?

 

2. 무능한 놈과의 삶은 빨리 갈라서는 게 서로에게 이득이다

예나 지금이나 부모의 재력과 권세를 무기로 상위 계층으로 올라간 인간들은 언젠가 한 번은 사회적으로 

문제를 크게 일으키는 인간 말종짓을 반드시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그런 사례를 멀리서부터 찾을 필요가 없다. 작금의 우리 사회를 봐도 확실히 알 수 있다.

어느 철없는 계집아이가 한 때 능력 있는 부모를 갖는 것도 능력이라고 자랑질하다 세상의 손가락질과 욕을

다 얻어 들었고, 무슨 제약회사 고위직 아들이라는 놈은 여성 신체부위를 찍다 걸려서 처벌을 받았음에도 

며칠 지나지 않아 또 그 짓을 하다 걸렸으며, 외국에서 들어오는 비행기 안에서 고주망태가 되어 추태를 

부리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불법 마약류 갖고 들어오다 걸리는 것은 기본 중에 기본인 그런 

2세들의 작태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쉽게 나타 나는 것만 보아도 부모 찬스를 쓴 놈들의 말로가 어떠한지는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작품으로 돌아와 그런 가진 자의 자식들이라며 예나 지금이나 정말 열심히 사는 것에 더하여 바르게 살아도 

부족한 세상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헌 날 나이 어린 신부 앞에서 남편이라고 저급한 위세나 

떨고, 어린 마누라를 독수 공방시키며 그것도 모자라 냉 골방에 가둬 놓고 자신은 공부도 안 하며 농땡이를 

치는 놈을 아무리 하늘같은 지아비라도 그 싹수를 빨리 알아보고 판단했었어야지 무슨 미련이 남아서 

그리 애간장을 태우며 사람되기를 갈구했을까 안타까울 뿐이다.

내가 어느 정도 살아보면서 발견한 진리는 바로 인간은 절대 안 바뀐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결혼 생활하다 남편이라는 작자가 난설헌이의 남편과 같은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면 뒤도 돌아 보지

마시고 이혼에 적극 나서시길 강력 추천하며 요새 세상에 한 번 다녀온 것은 흠 축에도 들지 않음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간혹 정말로 개과천선하여 새 사람이 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개과천선의 대표 모델이 자신이 배우자라는 착각을 버리고 냉철하게 바라 보았으면 하는 게 

나의 이야기다다시 이야기하지만 인간은 절대 안 바뀐다.


3. 여인들이여 그대가 당했다고 느끼면 바로바로 ISSUE화시켜라!

지금 난설헌이 사셨던 그런 환경과 같은 삶을 살고 계시는 여성분들은 없을 것이지만 일부는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스스로 그런 굴레 속에서 살고 계시는 분들이 아직은 많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이런 분도 있으셨다.

서울 노원구 월계동에 인덕 대학이라는 곳이 있다. 이 학교의 설립자이신 박인덕 여사는 당시 여성으로서는 

보기 드문 해외 유학파 출신인데 그녀는 원래 결혼하여 자녀를 한 명 둔 전업 주부였었다고 한다.

결혼 생활을 통해 바라본 자신의 배우자 무능력과 무기력을 보고서 스스로 남편에게 이혼 우리 나라 근대사

최초로 여성이 요구한 이혼이라고 함 을 요구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박사 학위를 취득한 신 여성이라고 한다.

현대를 사는 여성분들이 당시의 박인덕 여사 보다 못한 처지도 아닐진데 지레 짐작으로 스스로 나락의 길로 

들어서서는 아니 될 것이며 남편과 시어머니 그리고 자식에게 눌려서 자신의 삶을 포기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작금 우리 사회에서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성폭력’, ‘성추행사건의 은밀한 내막은 개인간의 사생활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뭐라 이야기하기 어렵지만, 수 년씩 지난 일을 갖고 문제화시키는 여성들을 보면 뭔가 찜찜

하다 못 해 안타까운 생각이 먼저 든다.

그런 사고가 발생했을 당시 문제화시켰어야지 확실한 사고가 아닌 이상 시간이 흐르고 상대의 의도나 저의가

왜곡되고 의미가 퇴색해 질 무렵에 너 죽고 나도 죽겠다는 식으로 공론화하여 잘잘못을 따져보자고 덤비는 

것은 뭐가 이상해도 한 참 이상하다는 생각 밖에는 들지를 않는다.

당사자는 그렇다 치더라도 특히, 여론 주도층이라는 한량한 인간들이 그런 사건을 갖고 하는 발언을 보면 

무당 집 똥개처럼 굿하는 날 미친년 널 뛰듯 지랄하는 것을 보면 마치 그런 사건을 통해 자기들 이름 알리는 

경기대회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고는 한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과거 두 분 토론이라는 개그 프로그램에서 남성 패널이 적나라하게 상대 패널을 

깍아 내릴 때 쓰던 용어를 사용하여 묘사를 해 보면 아주 가관일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런 사건이 발생하면 자기와 이념이나 생각이 다른 진영에서 벌어진 사건 같으면 눈에 쌍심지를 돋우고

입에는 칼을 물고 세치혀를 갖고 온갖 난리를 치다가, 자기 진영에서 벌어진 문제라고 판단되면 이 산이 

아닌가 벼하는 식으로 침묵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생각을 지을 수가 없고 남자들의

경우는 자기 딸, 자기 와이프의 일이 아니라고 터진 입을 함부로 놀리는 꼴을 보면 안타깝다는 말 밖에는 

달리 할 이야기가 없다. 우리는 법의 준엄한 심판 결과를 보고 평가를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내가 전 직장을 다닐 때 공무원으로 근무하시다 회사 임원으로 스카우트되어 오신 분이 있었는데자신이 

모 부처에서 일하다 생긴 사건이라면서 해 준 이야기가 있다.

당시 자신의 상사(국장급으로 추정)가 대통령 표창을 받았는데 수상식 직후 아마도 기념으로 부서회식을 

하고 2차로 노래방을 갔었던 모양이다. 노래방 마지막 시간에 부서원 전체가 단합의 의미로 무대에 나가 

어깨동무하고 즐겁게 놀았던 모양인데, 그 다음날 국장이 성추행 혐의로 감사관실로경찰서로 불려 다니다 

사표를 냈다고 한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어깨동무하고 즐겁게 노래와 춤까지 같이 한 여직원이 자신의 의사와는 관계없는 

강요에 의한 신체접촉이었다’ 고 제보를 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어 대통령 표창 받은 지 한 달 만에 문제 

공무원으로 낙인 찍혀 사표를 냈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웃픈 이야기지만 그 여직원처럼 문제가 있으면 바로 신고하고 바로 조사하고처리를 했어야지 

이 사건도 자세히 보면 문제가 있다. 어깨동무 당했을 당시 기분 나쁘다고 주의를 주거나 반대 의사를 

강력히 피력했어야지 노래는 다 따라 부르고, 춤까지 췄으면서 다음날 생각해 보니 기분이 나빠서 신고(?) - 

….. 참으로 웃긴 세상이 아닐 수 없다.  

조금 있으면 상대를 쳐다만 봐도 문제가 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불쌍한 남자들의 한() 은 누가 풀어줄까?

여성을 주제로 한 작품에서 남자의 한을 이야기해 뭔가 씁쓸했지만 여기 지면에서도 여러 이야기를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하며 숨죽여 말할 수 밖에 없는 오늘의 사태가 너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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