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세계 - 개정3판
막스 피카르트 지음, 최승자 옮김 / 까치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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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다 '정신 줄'을 놓아 버릴 뻔한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나의 이 이야기를 확인하고 싶거나내 이야기가 과장되었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작품을 꼭 조용히 그것도 

아주 조용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과장되게 이야기해 작품의 머리말만 한 20여 번 읽다 포기한 작품입니다.

작품의 초반부만 읽어도 그냥 자연스럽게 스스로 '침묵의 세계'로 빠져 듭니다.

 

작품의 서문을 읽어 보면 본 작품이 어떤 작품인지 대체적으로 감을 잡을 수 있다고 보여지는데읽고자 

하시는 분이 있다면 제가 그 서문의 일부를 발췌할 터이니 한 번 조용한 시간을 갖고 읽어보시고 그 문장의 

의미를 음미해 보시기 바랍니다.

 

[침묵이란 그저 인간이 말하지 않음으로써 성립되는 것이 아니다침묵은 단순한 말의 포기 그 이상의 

 것이며단순히 자기 마음에 들면 스스로 옮아갈 수 있는 어떤 상태 그 이상의 것이다.

 말이 끝나는 곳에서 침묵은 시작된다그러나 말이 끝나기 때문에 침묵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그 때 비로소 분명해진다는 것 뿐이다.....(중략).....인간을 진정한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침묵이 아니라 

 말이말은 침묵에 대해서 '우월권'을 갖는다......(중략)....그러나 놀라는 것은 다만 침묵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로서 이해할 뿐이다그러나 침묵은 '존재'이자 하나의 실체'이며말이란 모든 '실체'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 대목만 읽고도 무슨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라는 생각이 드십니까?

솔직히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그냥 침묵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작품인가? 하는 생각 밖에는 말입니다.

 

작품을 읽던 중 제게 심각한 고민을 던져 준 한 문장이 눈에 보였습니다.

"두 사람이 이야기 나눌 때는 항상 제 삼자가 듣기 마련인데, 그 제삼자가 바로 '침묵'이다"

 

저는 이 문장에서 필이 꽂혀서 작품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작품을 읽고 어떤 느낌을 느끼는 것도 중요하지만저자가 심각한 사유 속에서 만들어낸 '핵심 키워드'를 

나름대로 추출해 전체를 이해하고자 하지만 솔직히 나와 같이 어려서부터 체계적으로 철학적 사고를 교육 

받지 못한 현대인들은 이런 작품을 접하게 되면 상당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게 작품을 읽은 

나의 소회입니다.

 

따라서 그냥 작품에서 언급된 주요 문장을 그대로 옮겨 볼까 합니다.

그것만 읽어도 작가가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려는 의미나 내용을 전부 숙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저는 작품을 통해서가 아니라 살아가면서 한 가지 분명하게 터득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어떤 특정한 사안이 발생했을 때 상대를 설복시키는 방법으로 화려한 언변술 보다는 [침묵]이 더욱 더 

호소력이 있다는 것을 삶을 통해 배웠다는 사실입니다만 자기PR 시대이며 소음의 저장소인 오늘을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그런 정의가 꼭 맞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조금 있으면 더위도 물러가고 풍성한 가을이 올 것입니다.

어느 CF처럼 조용한 산사는 아니더라도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소음의 원천을 차단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침묵의 세계]로 빠져 들어가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침묵의 모습]

침묵은 능동적인 것이고 독자적인 완전한 세계이다.

침묵이 존재하는 곳에서는 인간은 침묵에 의해서 관찰 당한다.

침묵은 다만 존재할 뿐 아무런 다른 목적도 가지고 있지 않다.

침묵은 자기 안에 들어 있는 사물들에게 자신의 존재가 가지고 있는 힘을 떼어 준다.

침묵은 보이지 않지만분명하게 현존한다침묵은 그 어느 먼 곳까지도 뻗어 가지만 우리에게 가까이 

  우리 자신의 몸처럼 느낄 정도로 가까이 있다침묵은 잡을 수는 없지만 옷감처럼직물처럼 직접적으로 

  감지할 수 있다침묵은 언어로써 규정할 수는 없지만 확실한 것이며 분명한 것이다.

 

[말의 침묵으로부터의 탄생]

말은 침묵으로부터 그리고 침묵의 충만함으로부터 나온다.

말은 다만 침묵의 한 면일 뿐이다인간은 말을 통해서 침묵의 소리를 듣게 된다

  진정한 말은 침묵의 반향(反響)인 것이다.

침묵은 말이 없이도 존재할 수 있지만말은 침묵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침묵으로부터 말이 나온다는 것그것에 의해서 침묵은 비로소 완성된다침묵은 말을 통해서 비로소 그 

  의미와 진정한 가치를 얻게 된다

언제나 침묵은 다만 위에서 보다 고귀한 것이 나타나게 하는 하나의 토대일 뿐이다.

  

[침묵말 그리고 진리]

진리는 언어의 논리 속에 하나의 객관적인 사실로서 들어 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말을 진리로 완전히 채울 수 있다그 때문에 그리스도의 말은 우울하지 않다.


[말 속의 침묵]

인간의 말은 진리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비에 의해서도 결정된다자비 속에서 말은 다시 

  자신의 근원으로 되돌아 간다중요한 것은 말은 자비를 통하여 침묵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현대의 우울은 인간의 말 대부분을 침묵과 분리시킴으로써 말을 고독하게 만들었다는 데에서 기인하다

  이러한 침묵의 제거는 인간의 내부에서 하나의 죄책감으로 존재하고그 죄책감이 우울로 나타난다.

침묵은 정신을 위한 자연적 토대이다.

침묵은 말에게는 자연이며 휴식이며 황야다말은 침묵에게서 활기를 얻고 말 자신으로 인해 생긴 황폐를 

  침묵으로 정화시킨다침묵 속에서 말은 숨을 죽이고 자신을 다시금 원초성으로 가득 채운다.

완벽은 자연적 침묵의 원초성과 정신의 원초성이 한 인간 속에서 서로 만나 결합할 때 달성.된다

오늘날의 말은 그 침묵의 두 세계와는 거리가 멀다말은 소음에서 생겨나고 소음 속에서 사라진다

  즉작동하지 않는 소음이 침묵이다.

더 이상 침묵과 결합되어 있지 못하면 말은 더 이상 재생할 수 없고 자신의 본질을 잃어 버린다.

  

[말과 몸짓]

 - 몸짓은 그것을 야기시킨 충동들로부터 해방되어 있지 않다몸짓은 그 충동들과 뒤섞여 있고

 그 충동들의 일부이며그것은 대개 한 욕구를 표현한다.

 - 말에는 충동적 의지보다는 존재적인 것이 들어 있다더구나 말은 제 스스로 존재를 창조할

 만큼 특수한 존재이다.

  

[고대의 언어]

오늘날의 언어는 극도로 긴장해 있고 침묵으로부터가 아니라 선행했던 말로부터 나오고 침묵이 아니라 

  다음 말로 가 버린다.

위대한 문체 속에서는 침묵이 대개 중요한 공간을 차지한다타키투스의 문체 속에서는 침묵이 지배적

  비천한 노여움은 폭발하는 듯하고 저열한 노여움은 말이 많지만미래의 정의를 기다리면서 말을 

  사건들에게 맡겨 두기 위해서 침묵해야 할 필요가 있는 분노도 있다.             (에르네스트 엘로)

  

[자아와 침묵]

침묵이 더 이상 작용하지 않는 곳에서는 '안정이 경직되는 까닭에 인간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리고 불안정은 인간을 소진시키는 까닭에 그 속에서 인간은 견딜 수 없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끊임없이 어느 하나에서 다른 것으로 무겁게 나아갈 수 밖에 없고그의 모든 시작 

  속에는 불가피하게 불안함이 스며드는 것이다. (괴레스)

오늘날 개인은 침묵과 마주해 있지도 않고 공동체와 마주해 있지도 않으며 다만 보편적인 [소음]과 마주해

  있다.

침묵이 작용하는 세계에서 고독은 주관적인 것에 달려 있지 않으며 주관적인 것에서 유래되지 않는다

  고독은 어떤 객관적인 것으로서 인간 앞에 존재하고 있으며인간 자신의 내부 속에 있는 고독 역시 

  그러하다고독은 침묵으로서 인간 앞에 존재하고 있다옛 성자들이 고독 속으로 들어가서 마주쳤던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침묵의 객관적인 고독이었다.

  그래서 그들 자신의 내적 고독은 객관적인 고독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았다성자는 그 객관적인 고독을 

  그것이 제삼자로부터 온 것인 양 받아서 가졌고그것을 당연한 것인 양 받았다.

  따라서 성자의 고독은 오늘날의 '내적고독처럼 긴장되어 있지 않았다반대로 그것은 침묵의 위대한 

  객관적인 세계와 그 객관적인 세계의 고독과 결합되어 있음을 보여 주는 하나의 표시였다

  그리하여 성자는 단순히 자신만의 고독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그 고독으로부터 

  얻었다또한 그것은 그의 고독 바깥에 있는 것이었고, 자기 자신의 고독이 될 수도 있는 것 이상의 

  것이었다.

  그러나 고독이 다만 인간 내부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 곳에서는 인간은 고독에 의해서 소진되고 고독에

  의해 수축된다.

침묵하는 실체가 아직 자기 내부에 존재하고 있을 때인간은 자신의 본성에 반대되는 것자신을 소진

  시키는 것을 더 잘 견딜 수 있다바로 그 때문에 아직 침묵하는 실체가 가득 차 있는 동양 민족들이 침묵

  하는 실체가 거의 완전히 파괴된 서양만족들보다 기계와의 생활을 잘 견디는 것이다.

 - 한 인간의 내부에 침묵하는 실체가 존재하고 있을 때 그의 모든 특성들은 그 실체 속에 중심을 두게 된다.

  

[역사와 침묵]

말씀이 행해지는 곳에서는 더 이상 징조가 말해질 필요가 없고 더 이상 그것을 감히 말할 수도 없다.

징조들은 말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존재할 뿐이다.

인간이 침묵으로부터도가르침의 말씀으로부터도 옳은 것을 행할 수 없을 때에는 사건이, 역사 자체가 

  인간을 가르치는 일을 떠맡게 된다진리는 더 이상 말을 통해서 인간에게 이르지 않게 되면사건들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드러낸다.

인간들 사이에서 폭력과 증오와 범죄가 행해져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을 더 이상 믿지 않았던 까닭에 

  그것은 전쟁이라는 사실을 통해서 인간에게 실증되었다.

그리스도 시대에는 신성한 역사 자체가 말을 했다. 인간이 말을 버렸기 때문에 하느님 자신이 망 속으로 

  오셨다.

  

[형상과 침묵]

형상은 망하는 침묵이다형상은 침묵으로부터 말로 가는 도중의 정거장과 같은 것이다.

사물의 침묵하는 형상을 보존하는 것은 영혼이다.

한 사물은 인간 내부에서 두 번 존재한다한 번은 영혼 속에서 형상으로서 또 한 번은 정신 속에서 말로 

  존재한다.

  

[사랑과 침묵]

사랑만은 침묵에게 무엇인가를 주는 것이다연인들은 두 사람의 공모자, 침묵의 공모자들이다.

침묵할 때에 사랑하기가 훨씬 더 쉽다침묵하면서 사랑하기가 쉬운 것은 침묵 속에서는 사랑이 가장 

  멀리까지 뻗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말을 통해서 구체화되며 말을 통해서 진리 위에 서게 되며말을 통해서 오직 말을 통해서만 사랑은 

  인간의 사랑이 된다.

  

[잡음어]

잡음은 소리 없는 공허를 덮어 버리는 소리 나는 공허이다그와 반대로 참된 말은 고요한 침묵의 표면 

  위에 드리워진 소리 나는 충만함이다.

인간의 말을 그 진정한 본질대로 보존할 때에만 말은 악마적인 힘에 대항하는 위력을 간직할 수 있다

  슬로건은 잡음어를 기계적으로 압축한 것에 불과하다.

잡음어는 스스로 멈출 용기가 없고항상 침묵을 막기 위해서 경계하고 있다.

  

[침묵과 신앙]

신의 목소리는 자연의 어떤 한 목소리도 아니고 자연의 모든 목소리들을 합친 것도 아니고침묵의 목소리

  이다주께서 목소리들을 빌려 주지 않았더라면 모든 피조물들이 벙어리가 되었을 것임이 분명하듯이 또한    그 때문에 숨쉬는 모든 것은 주를 찬미해야 함이 분명하듯이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듣는 자만이 모든 

  목소리 중에서 주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음도 분명하다. (빌헤름 피셔)

신의 침묵은 사랑을 통해서 말씀으로 변한다신의 말씀은 스스로를 바치는 침묵인간에게 스스로를 

  바치는 침묵이다.

기도의 말은 모든 진정한 말이 침묵으로부터 솟아 오르듯이 침묵으로부터 올라 온다.

  

[기타의 명제 속에 깃든 이야기들]

침묵은 항상 인간을 위해서 준비되어 있는 유일한 현상이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사랑은 이야기보다는 오히려 침묵에서 드러난다.

인간의 얼굴은 침묵과 말 사이의 마지막 경계선이다인간의 얼굴은 말이 튀어 나오는 벽이다.

인간의 본질은 인간의 형상보다는 인간의 말 속에서 더 잘 보인다.

   소크라테스는 말했다. '말하라내가 그대를 볼 수 있도록!'

 - 시간의 무음(無音)은 시간 속에 있는 침묵으로부터 온다.

 - 아기의 언어는 소리로 변한 침묵이다어른의 언어는 침묵을 추구하는 소리다.

 - 자연의 사물들은 다만 침묵이 있는 곳을 보여주는 표지들일 뿐이다.

 - 독백은 침묵과의 대화이다대도시는 거대한 소음의 저수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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