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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한 글감옥 - 조정래 작가생활 40년 자전에세이
조정래 지음 / 시사IN북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추천권유도 9 

  

중학교 시절인지 고교시절인지 확실한 기억은 없으나 형님 책장 위에 꽂혀있던 이 분의

작품(어떤 전설)을 보고 손이 쉽게 가지를 않았다.

그 이유를 확실히 기억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당시 내가 처음 마주한 그냥 무명 작가라는

느낌이었기 때문에 또 작가의 정체에 대해 정확히 몰라 그랬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나이가 들어 우연히 접하게 된 - 나는 작품을 어떤 선전이나 타인 추천에 의해 작품을 고른

것이 아니라 읽고 싶어서 선택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 태백산맥이라는 시대를 대표하는 명작을 통해 접하게 되었는데, 어느 날부터 그 분의 해당 작품을 어떤 이상한 인간들이 이념적인 잣대로 작품을 예단하고, 폄하하는 모습에 굉장히 분노하면서 또 작가님이

세간의 화제가 되면서 나는 작가에 대한 호기심 보다는 이념적 성향이 뚜렷하지는 않지만

문학 작품을 낡아빠진 이데올로기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인간들의 한심한 작태를 조소하기

위해 작가님을 더욱 더 가까이 두고자 하는 마음이 일었다.

나는 도 아닌 그냥 보수적인 느낌이 강한 일개 독자였는데 잘 읽고 있는 좋은

작품을 갖고 뭐라 뭐라 궁시렁대는 인간들이 정말 역겨워 미치는 줄 알았다.

일련의 쓸데없는 인간들이 벌인 이념논쟁을 바라보면서 든 생각은 한마디로 문학자도 모르는 인간들이 벌인 작태라는 생각 밖에는 다른 생각이 전혀 들지를 않았다.

뿐만 아니라 과거 한 때, ‘태백산맥과는 다른 관점이기는 하나 차세대 리더를 꿈꾸던 유명

여성 정치인이 특정 문인을 두고 곡학아세니 하며 비난을 퍼붓던 모습이 교차되면서

속으로 웃고 말았는데

 

본 작품은 그 사건을 비롯한 작가로 왕성한 활동할 당시의 어려웠던 점을 이야기하고 계신

, 읽는 대목 대목마다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이 크게 밀려왔음을 이 자리

를 통해 밝혀두고자 한다

나는 작가의 대표작을 갖고 이념적 잣대를 들이대며 뭔가를 잡아 내려고 발버둥쳤던 소인

배들과 극단적인 애국주의 부류들을 생각하니 갑자기 내가 회사 생활할 때 벌어졌던

에피소드가 있어 여기에 소개해 보고자 한다.

과거 한 때 - 지금도 일부 그런 인간들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 건전한 소비자를 가장한

블랙 컨슈머들이 크게 활개를 치던 시기가 있었는데, 블랙 컨슈머로 추정되는 소비자가

벌였던 재미난 이야기이다.

어느날 소비자가 클레임을 걸어 왔는데,

당사의 제품인 자신의 휴대폰으로 임종 직전의 자신의 부친 유언과 그 장면을 녹화해 놨는

데 휴대폰 불량으로 이것을 재생할 수 없게 되었으니 보상해 달라는 클레임이었다.

사건을 접한 회사는 정말 황당했다.

임종을 앞 둔 부모를 자식이 영상으로 촬영했다는 것도 이상했지만 녹음까지 했다는 내용

을 듣고 아연 실색했었다.

소비자는 왕이라는 일념 하에 각종 사례를 뒤져서 최소한의 성의라도 보이려고 했는데,

도대체 소비자가 당사의 보상안에 만족을 못하고 회사가 제시하는 최소한의 보상안에

대해 사사건건 불만을 제기하는 것이었다.

종국에는 회사가 망가진 파일에 대한 가격을 산정하지 못하겠으니 문제를 제기한 소비자

께서 직접 합당한 금액을 요구해 보라고 했더니 그것을 왜 자기가 해야 하냐고 우리에게

짜증을 부린 적이 있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분이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 이를 피해 금액을 산정할 것인지 해결책이

있으면 알려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인내에 한계에 다다른 회사는 소비자를 향해서 역공을 펼치게 되었다.

, 그렇다면 소비자가 부친의 유언을 휴대폰에 녹음, 녹화했다는 증거가 정말로 있냐고

지금은 기술이 좋아져 웬만한 파일은 복원이 가능하다 - 역으로 추궁을 했더니 더 이상

우리를 찾아오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작품을 읽는데 왜 이 사건이 떠올랐을까?

세상이 어찌 변해가고 있는데, 죽은 레닌스탈린을 환생시켜 뭘 어쩌자고 그랬는지

참으로 씁쓸할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님의 작품을 갖고 작가의 사상성을 의심해 낡아빠진 이념의 잣대를 들이댄 작자들과

휴대폰 속의 유언 내용이 삭제되었다고 우기는 소비자와 같은 부류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작품 전체에 흐르고 있는 작가님의 대화 내용은 작가님의 입장에서 바라 보신 시대와

역사의 증인으로서의 역할이 두드러지게 돋보이는 대화들로 생각되었으며 두고 두고 음미

해 볼 필요가 있는 내용이었다는 생각되었다.

 

작가께서 언급하신 바와 같이 시대의 산소로서의 작가 본인이 갖고 계신 사상의 한다면을

여기에 간추려 보고자 한다.

 

- 소설은 인간에 대한 총체적 탐구이며 역사는 인간이 살아온 이야기이며 기록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만 간추려 놓은 기록으로 작가는 역사를 몰라서는 작품을 쓸 수 없지만,

   역사가는 문학을 몰라도 역사를 연구할 수 있다.

- 역사를 포괄하지 않고는 대작을 탄생시킬 수 없다.(어느 외국 평론가)

 

- 미술과 음악에 비해 문학이 민족적인 색채가 훨씬 강한 이유는 언어는 인간의 감정과

   느낌과 생각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훨씬 더 구체적이고 직접적이고 적극적이기 때문.

 

- 작가는 인류의 스승이며, 그 시대의 산소(진실)이다.

 

- 말로 지은 원한은 백 년을 가고, 글로 지은 원한은 만 년을 간다(중국)

 

- 옳고, 바르고, 참된 것을 위하여 모든 비인간적인 것에 저항하고 맞서야 하는 것이

   작가의 소임으로 그 옳고, 바르고, 참된 것을 작품으로 지키고 실현하는 것이 곧 진실

   이다.

 

- ‘진실만을 말하고자 하는 작가는 필연적으로 진보적일 수 밖에 없으며 기득권을 향유

   하는 보수 세력과는 갈등하고 맞설 수 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소설의 비판정신이며 휴머니즘의 실현이고 하다.

 

- ‘종교는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며, ‘철학은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을 말하려

   는 것이며, 과학은 말할 수 있는 것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학은 꼭 말해야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 글 잘 쓰는 기술은 애초에 없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는 ,

   그것이 방법이라면 방법으로 이를 비율적으로 굳이 표현한다고 하면 다독 4, 다상량 4,

   다작 2의 비율이라 할 수 있다.

 

- 또 좋은 글을 잘 쓰고, 못 쓰고는 단어를 얼마나 많이 아느냐의 여부로 결정된다 할

   것이다. 따라서 사전을 가까이 하라.

 

- 사전은 단어의 뜻과 개념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닳아지도록 부지런히 펼치는 것이지

   암기의 대상이 아니다.

 

- 세계적인 천재 첼리스트였던 카잘스는 아흔을 넘어서도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는데

   이를 궁금하게 여긴 질문자가 대가이시면서도 왜 그리 연습을 줄기차게 하느냐고 묻자

   날마다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아서라는 답을 했다고 한다. 무슨 의미이겠는가?

 

- 가장 뛰어난 능력은 지치지 않는 열정을 유지하는 것이다.

 

-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는 단어에서 만성(晩成)’이라는 단어는 오래 걸린다는 뜻만이

   아니라 오래도록 노력해야만 한다는 의미도 있다.

   , 크게 되려면 오래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 능력 있는 작가, 역량 있는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그 작가가 얼마나 많은 작품을 썼느냐

   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개성적인 인물을 창조했느냐로 결정되어야 한다.

   또한 모든 인물은 제각기 개성적이어야 하는 동시에 전형성(역할, 사건, 상황, 그 시대에

   없어서는 안 되도록 꼭 어울리는 생생히 살아 있는 것 같은 요소를 지닌 인물을 이야기

   한다)을 갖추어야 한다.

    

 작가는 태백산맥, 한강, 아리랑이라는 대작을 남기면서 약1,200여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데, 동일한 인물이나 동일한 성격을 지닌 사람을 등장시키지 않았다고 하며 작가 자신

     의 성씨와 같은 사람도 등장시키지 않았다고 한다. 참고로 러시아 문학의 백미로 꼽히

     는 전쟁과 평화한 편에 약 600명의 등장인물이 나타나고 있다. 

 

- 인물 탄생의 노하우는 세상에 있는 모든 사물을 유심히 보기입니다.

 

- 작가는 이성적 분노와 논리적 증오를 언제나 가슴에 품고 있어야만 바르고 감동적인

   글을 쓸 수 있다.

 

- 태백산맥, 한강, 아리랑을 관통하는 공통점은 역사의 주인이고 원동력인 민중의 발견,

   민족의 비극인 분단과 민족의 비원인 통일의 자각, 민족의 현실을 망치고 미래를 어둡게

   한 친일파 문제.

 

- 작품은 제목이 그 작품의 절반을 결정짓고, 첫 문장이 나머지 절반을 결정짓고, 끝 문장

   이 그 나머지 절반을 결정 짓는다.

 

- ‘민족주의를 폐기해야 할 구시대 유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질의에 자본 제국주의

   국가는 약소국이 소유한 그 강적을 물리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무력을 쓸 수는 없으니 그럴듯한 논리 개발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민족주의

   의 폐해와 시대착오를 강변하는 폐기론입니다. 자본 제국주의 강대국이 집요하게 공략

   하는 민족주의 폐기론을 바로 약소국의 정신 무장 해제 전법입니다.”

 

- 우리 나라 최초의 국비 유학생이었던 윤치호는 미국에 고작 3년 동안 머물고 돌아와 평생

   영어로 일기를 쓴 것을 자랑스러워했으며 약한 나라가 강한 나라에 저항해봤자 아무

   소득이 없으니 강한 나라가 하라는 대로 따르는 게 상책이라는 발언을 했다.

 

- 작가는 반드시 작가가 구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 깊고 깊은 고심과 몰두가 쌓여야만 영감

   은 분출하는데, 영감이란 고심의 깊이와 몰두의 강도에 따라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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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탁환의 쉐이크 - 영혼을 흔드는 스토리텔링
김탁환 지음 / 다산책방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추천권유도 6

   

나는 언제가 될 지 모르겠지만 글을 쓰고 싶고, 글을 쓸 것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 여정을 살아가고 있는 나는, 내가 살아 오는 과정에서 보고,

듣고, 느낀 점을 기록하고 싶어서 또 인생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한 편의 멋진 연극같은

생각이 들어 내가 감동했고 느꼈던 생각과 경험을 타인들과 공유하고 싶어 글 쓰기에

도전하려는 것이다.

나의 글을 누구도 보거나, 읽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실망하거나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주 먼 훗날 내 자손 혹은 완전한 타인이

나의 글을 읽고 어떤 조상이, 어떤 이름 모를 무명 작가가 인생을 살면서 이런 점을

느꼈고, 감동했었구나 하고 생각 정도만 하면 더 이상 바랄 것도 없다.

그러다 보니 함부로 휘갈겨 쓰기가 뭐해서 이런 저런 글쓰기 공부 차원에서 이런 작품을

골라 읽게 되었다.

 

금번에 고른 작품을 포함해 작가로서의 기본 소양에 관한 여러 권을 섭렵했지만 뭔가가

부족한 듯하여 또한 작가로서의 갖춰야 할 기본 소양을 더욱 더 조련해 보고자 하는

마음에서 해당 작품을 선택해 읽어 보았는데, 내가 이제까지 읽은 글쓰기와 관련된 작품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내용이었다고 생각한다.

(본 작품의 저자께서 나의 이런 글을 읽어 보면 웃겠지만...ㅋㅋㅋ)

 

아무튼 저자의 생각 중에서 내가 취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나름 정리해 본다.

 

좋은 이야기꾼이 되기 위해서는 가장 넓게, 가장 자주, 가장 빨리, 가장 깊게 스스로를

흔들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은 절대적으로 공감하며 여기에 첨언을 한 개 더 한다면

 

"깨달음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의미가 생겨나지 않는다

 

는작가의 주장에 완전 공감하는 바이며 작가의 강조점을 정리해 보면

 

첫째 주제를 선정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조사와 공부가 수반되어야 한다.

-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바로 쓰지 마라. 치밀한 준비가 있어야 한다.

- 준비단계 : 초고단계 : 퇴고단계 = 1:1:1의 비율로 시간을 할애하라

 

둘째 오감훈련을 부지런히 하자.

-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오감으로 감싸는 연습을 해 보는 게 중요하다.

- 인간을 오감으로 감싸 두는 것이 그 인물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가장 빠른 길이다.

- 공간을 오감으로 휘감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답사이며 시각을 제외한 나머지

  감각은 직접 그 장소에 가 봐야 파악이 가능하다.

- 시각에 의한 부분을 줄이고 미각, 후각, 촉각에 의지한 부분을 확대하라.

 

셋째 목적성을 가져라.

- 이야기를 잘 만들려면 누구에게, , 어떤 형식으로 얼마나 길게 할 것인지 명확히

  설정하라

- 이야기의 핵심은 소통이다.

 

넷째 100권의 책, 10권의 공책을 사라

  - 까뮈의 유려한 문체와 독창적인 구성, 무거운 주제와 세련된 호흡은 천재성에서 비롯

    되었다기 보다는 일곱 권의 공책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 자신만의 도서실을 만들고 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한 작품에 쓰일 소재를 연구

    하기 위해 100권의 서적은 사서 읽고, 연구해야 한다.

   - 10권의 공책의 활용법은

   1) 기자수첩 

   2) 독서록

   3) 몽상록 : 이야기하고자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단 하나의 문장으로 정리해 놔라

   4) 습관론(등장인물)

   - 곧바로 등장인물을 이야기 속에서 다루다 보면, 자기가 잘 알지 못하는 것들이 계속

      나오고, 그땐 그 인물의 습관이 아니라 작가 자신의 습관으로 메워 버린다.

   - 작가는 습관이 탄생한 과정과 습관의 의미 등을 자세히 알고 있어야 함

   5) 답사기(소재가 되는 배경에 관한 사항) : 답사 계획을 세우는 것이 전체의 절반임

   6) 이야기를 위한 공간(작품에 사용될 소재)

   - 이야기는 머리로 쓰는 것이 아니라 온 몸으로 쓰는 것이다.

   - 이야기를 만들 때는 객관적인 시간과 주관적인 시간으로 나누어 진행 연월일시로

      확실히 구분되는 것이 객관적 시간이라면 개개인의 마음에 따라 그 길이와 속도가

      달라지는 것이 주관적인 시간이다

   - 어떤 사물과 상황은 이야기 속 주인공의 개인사와 맞물려 그들이 살아온 특정 시간에

      각별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것들은 미리 설정해야 한다.

   - 이야기를 만들 때는 처음과 끝을 함께 생각하는 습관을 들여라.

   - 어떤 이야기의 시작점은 그 앞 이야기의 끝 점에서부터 비약하는 순간을 잡는 것이

      좋다.

   - 예상 밖의 결말이기는 하되, 그 결말이 시작과 교묘하게 연결되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이야기꾼의 역량이다.

   - 이야기 전개 방식 중 가장 좋은 방법은 이야기꾼의 개입 없이 '주인공 스스로 자신의

     삶을 말하게 하라'는 것이다.

   - 주장을 펼 때는 문장을 짧게 끊어 칩니다. 이야기꾼이 되기 위해서 먼저 갖추어야

     것은 '테크닉'이 아니라 자세.

     즉, 활을 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궁수의 자세이다. 테크닉 몇 개로 완성할 수 있는

     이야기는 이 세상에 없다. 이야기를 만드는 자기만의 자세가 없다면 진정한 이야기꾼이

     아니다.

   - 결과물을 갖고 이야기할 게 아니라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의 그가 취한 자세를 점검하고

      교정하는 게 중요하다.

   - 이야기란 인간이 세상을 인지하는 방법과 내용 속에서 탄생하는 것으로 좋은 이야기꾼

     이 되기 위해서는 오감 훈련을 반드시 열심히 해야 하고, 그 훈련이 어느 정도 숙달되면

     '육감'을 개발하는 훈련에 돌입해야 한다.

   7) 단어장 

   8) 주제록

   9) 소품기(작품에 사용될 소재들

  10) 한결같음의 힘

 

- 개인적인 일과도 '이야기를 만드는 시간''이야기를 만들지 않는 시간'으로 나누어서

   활동하라

 

- 반복과 단순함만이 좋은 이야기를 만들 가능성을 높인다.

 

작가가 주장하는 [그물망 퇴고법]

   1. 이야기의 큰 흐름을 고쳐라

   2. 캐릭터를 고친다.

   3. 갈등을 따라 초고를 고친다

   4. 공간을 따라 초고를 고친다.

   5. 시간을 따라 초고를 고친다

   6. 주제를 확인하라

   7. 문장을 고치라

로 기술되어 있으나 이 내용만 갖고는 절대 알 수가 없으니 이 글을 읽는 모든 작가 

지망생이나 글 쓰고자 하시는 분들은 작품을 꼭 사서 읽어 볼 것을 강추합니다.

(저는 작가나 출판사와는 전혀 관계없는 사람입니다)

 

- 다사(多思)는 정신을 죽이고 포식은 육식을 죽인다.

 

- 내가 예술가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예술을 실현하는 과정을 보면

   나 역시 하나의 육체 노동자이다.(엘버트 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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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2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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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권유도  7

 

그녀는 소리없이 내 마음에 들어왔다. 하지만 나는 그런 그녀를 단순히 사랑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녀에게 다가설 수 없었다.

 

작품을 이야기하기 전에 일본에 이런 훌륭한 작가가 있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

- 많은 일본 작품을 접하지는 않았지만 대체적으로 일본인 작가의 글을 읽노라면 무슨

  3류 작품집을 접하는 느낌이 들어 그간 일부러 회피해 왔었다 -

솔직히 외국 작품의 경우 번역가의 수준이 작품의 수준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작품과

함께 번역자의 미려하고도 섬세한 번역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번잡하지도, 사랑을 갈망하는 미사려구도, 상대와의 갈등을

유발하는 복잡다단한 복선도 없이 그저 담담히 사랑하는 이의 심리상태와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그리고 있었다는 점이다.

 

내가 이제가지 읽었던 여러 사랑을 주제로 한 작품과 비교해 보아도 크게 손색이 없는

그런 작품으로, 작품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나열하는 것보다는 모두가 한번쯤 읽어보고

느꼈으면 하는 그런 작품이 아닐지라도 우리가 순수하게 가졌던 사랑에 대한 추억을

반추시키기에 전혀 손색이 없었던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감히 작품을 통해 나는 내가 좋아하는 여인 앞에서 어떤 종류의 인간인가를 생각해

보았는데 아마도 작품 속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있는 K와 주인공의 성격을 조금씩

갖고 있는 인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런 마음은 나도 나지만 대개의 인간이

갖고 있는 사랑에 대한 마음이 아닌가 생각한다.

다른 이야기를 쓰고 싶어도 문필력(文筆力)과 사고력(思考力)이 일천하여 더 이상 글

쓰기가 버거울 뿐이다. 사랑에 대한 마음 앞에서는 말이다.

나는 사랑 앞에서 어른이 아닌 노인이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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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삼촌 현기영 중단편전집 1
현기영 지음 / 창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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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권유도 7

  

우리는 우리의 후손들에게 역사에 나타나고 있는 수많은 업적에 대해 자랑과 함께 길이

보전해 줄 것을 당부하면서도 알려지고, 물려주고 싶지 않은 역사에 대해서는 새색시

방귀뀌듯 조용히 입을 다문다.

렇게 잊혀지는 역사적 사실들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식으로 또 학교 시험문제에

자주 나오는 사항으로만 인식하는 후손들에게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전락한 채 더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하나의 사실로만 인식되고 있다.

 

우리는 일본의 역사적 진실을 호도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핏발을 세우고 목청을 높여

이야기하면서도 우리 스스로는 왜곡되고 변질된 채 머무르고 있는 우리의 역사적 진실은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

왜일까?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 작품은 분명 우리의 역사이면서도 우리것화 하지 못한 우리의 치부를 문학적으로

접근한 작품이다. 모두가 읽으며 왜 우리는 우리의 이런 역사적 사실을 외면하려 하는지

또 쉬쉬하며 살아왔는지를 작품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 보자.

 

엄연한 역사적 사실로 존재하고 있고 또한 그 상흔이 아직도 해당 지역을 비롯한 우리주변

곳곳에서 속속 밝혀지고 있음에도 우리들은 그러한 아픔에 침묵하고 있다.

또 그러한 역사의 아픔을 간직하고 살아가고 있는 현존하는 우리들의 '순이삼촌'

있음에도 왜 우리들과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싸웠다는 우리의 기득권들은 침묵하는가!

우리는 잘 알아야 할 것이다.

비록 당시 우리들의 '순이 삼촌'들에게 만행이 행해지던 그날, 육체적인 많은 '순이삼촌

들은 죽었을지는 몰라도 정신적인 '순이 삼촌'들은 구천을 떠돌며 죽지 않고 눈을 부릅뜬

채 구천을 헤매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순이 삼촌''제주4.3사태'를 역사적 배경으로 깔고 탄생된 작품으로 나는 이 작품이

어떤 의미를 주는지 잘 몰랐다.

내가 단순히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우리 문학작품에서 빛나는 작품' 속에 들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작품을 선정했으며 그냥 무의식적으로 책을 펼쳤을 뿐이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이 작품은 살아서 역사를 말하고 있었으며 우리의 숨겨진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책에서 ''가 묻어나고 있었으며 한숨이, 비명이, 울음이, 한탄의 소리가

울리고 있는 작품이었다.

낮에는 빨갱이의 첩자로, 밤에는 토벌군의 앞잡이었을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느 이념의

한편에도 설 수 없었던 민초들이 자구책으로 자신의 뿌리인 마을을 등지고 자기 방어의

일환으로 산으로도, 마을로도 돌아가지 못하고 제주도 여기저기에 자연 발생적으로 생성

된 동굴 속에 숨어 들어가 생명을 연장시킨다. 그도 저도 못하던 사람들은 한 쪽 편에

섰다 죽음을 맞이한다는 내용의 작품이다.

 

작품을 접하는 나는, 가슴이 아프기 이전에 어째서 이런 일이 우리들의 역사 속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나느냐 하는 점이 나를 더욱 슬프게 하였다.

 

본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품집에 나타난 또 다른 작품인 '소드방 놀이'(제주도

민속놀이의 일종)가 갖는 상징적인 의미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궁휼했던 시대에 관리들의 착취로 인해 벌어지는 사건을 주제로 만들어진 작품인데,

작품의 주제를 함축하고 있다.

관리나 양반의 잘못을 자신이 부리고 있는 하인들에게 주인을 대리해 벌을 상징적으로

받게 하는 소드방 놀이는 관리가 원하지 않는 방향 관리를 대신해 벌을 받는 자신의

하수인을 상징적으로 벌을 준 다음 풀어줘 다른 지역에 가서 살기를 원했으나 저질

관리의 착취에 불만이 높았던 민심이 폭발하여 주민들이 하수인을 돌로 쳐 죽이고 만다

으로 결과가 나타나면서 작품이 끝나고 있는데, 이때 죽어가는 하수인의 처한 상태가

제주4.3사태를 상징적으로 이야기하는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며 이 시대가 우리 자신의 역사적 사실을 얼마나 왜곡되게 우리의

후세들에게 전달해 왔는지를 그리고 얼마나 편파적으로 기술하고 교육하고 있는지를

절감했다.

제주4.3사태의 피해자는 당시의 제주도민이 아니라 이 역사적 사실을 외면하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 자신임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긴 말이 필요없다. 읽고, 느끼고, 함께 공분하며 다시는 이런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두 눈을 부릅떠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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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시조 (양장) - 이문열 중단편전집 2
이문열 지음 / 아침나라(둥지) / 2001년 10월
평점 :
절판


추천권유도 : 7.

 

본 작품 읽기에 다시 도전해 보았다.

과거 아무런 의미없이 저자의 지명도만을 믿고 작품을 선정해 읽었고, 단순히 책장을

넘기는 수준에서 작품을 접했었는데, 어느날부터 나의 서가 한모퉁이에서 자신이 지닌

의미를 되새겨 줄 것을 요구하는 끊임없는 무언의 항의가 몇 년씩 계속되다 보니 손이

안 갈 수 없었다.

 

어려서부터 부모를 여읜 서예가 '고죽'석담 선생에게 맡겨진다.

석담은 '()'보다 '()'를 우선시 하는데, '()보다 '()'가 더 센 고죽의 작품

세계를 못마땅해 한다. 고죽은 스승과는 달리 보편적 원리로서의 를 인정하지 않고,

한 인간의 삶과 마찬가지로 서예 역시 독특하게 추구되어야 할 상대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서예가 다른 무엇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보고 스승과

다른 독자적 서예관을 추구해 간다.

중년의 나이에 스승과 대립하기도 했던 고죽은 스승이 죽은 후에 스승이 자기를 총애

했음을 알게 되고, 죽음에 임박하여 고죽은 자신의 작품을 회수해 불태운다.

그 불꽃은 자기 부정의 예술혼인 '금시조'를 확인하며 죽음을 맞는 작품으로 예술에서의

'보편주의''상대주의' 논쟁을 이야기한 작품이다.

(위의 글은 공감하는 어느 평론을 그냥 옮겨 보았다)

 

붓 글씨를 초등학교 시절 미술시간(?) 이외에 배워 보지도 않은 내가 이 작품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작품을 읽으며 일전에 유사한 작품을 읽으며 서예가 , ‘냐 하는 점을 놓고 많은

번민 끝에 내 스스로 내린 결론은 '는 서로 통한다'는 결론을 얻었었는데,

본 작품에서 다시 한 번 이 점을 확인하였다.

또 하나는 던 그것이 어떤 부류에 속하든 서예 그 자체를 놓고 가슴 깊은 곳으로

이해해야지, '이래서 , 저래서 '라는 논법은 문제가 있는 시각이라 생각한다.

서예를 놓고 를 논한다는 것은 마치 설탕을 놓고 당분이 몇%, 수분이 몇 %라는

식으로 분석해 설탕을 먹은 후 '나는 설탕을 먹었다'라는 이야기대신

'!, 나는 지금 수분 몇%와 당분 몇% 먹었다'라는 소리와 동일하다는 느낌이다.

 

따라서 특정 사안을 놓고 분석적으로 따져야 할 것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고 볼

때 본 작품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세밀히 접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는 것이

바로 절제된 '를 가르치는 것이요, 수분과 당분의 절묘한 만남을, 미각만으로 이해

시키려는 것이 바로 ''가 아닌가 생각한다.

반면에 어느 끝단만을 부여잡고 마치 전체를 본 듯이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벗어난 저급한 행동이 아닌가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위의 글은 내가 지난 2007년 본 작품을 읽고 옮긴 독서일기의 한 부분이다.

지금 당시의 글을 읽으며 생각해봐도 아주 잘 쓴 내용은 아니지만 작품을 어느 정도 잘

이해한 부분이 있었다고 자평하고 싶다.

 

십년이 흐른 지금 다시 작품을 접한 이유는 나의 책장에서 항시 나를 노려보며 뭔가를

내게 전하려는 작품으로 다가왔기 때문인데, 가장 큰 이유는 솔직히 아직도 '금시조

던져주는 의미를 잘 모르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당시 읽었던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를

않아 - 망각은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이라고는 하나 - 억울하기도 하고 당황스러워서

다시 도전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해 외국 출장길 내내 좋은 시간을 내게 마련해 준 작품이었다고 자평

하고 싶다.

 

작품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느냐 아니면 별도의 색깔을 입혀 해석하느냐로 상당한 고민을

했다. 결론은 읽는 사람 마음이 아니겠는가?

 

작품을 전체적으로 놓고 보았을 때,

극단의 이념적 상흔과 관련된 아픔을 그리고 있는 사과와 다섯 병정이라는 작품은

나도 어린 시절 주위에서 한번 쯤 들었음직한 전설(?)같은 으스스한 이야기로 한편으론

슬프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가슴 아픈 작품이었고,

현대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간의 고립감과 소통의 단절에서 비롯된 현대인들의 심리

상태를 표현하고 있는 달팽이의 외출’, ‘제쳐논 노래’, ‘충적세 그 후그리고 이 황량한

역에서는 작품을 읽는 나를 잠시 잠깐씩 작품 속의 주인공으로 만드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 작품이었다.

 

분호난장기’(선거관련)어둠의 그늘’(교도소 수용자들의 이면)은 단순히 웃어넘기기에

이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나름 보여준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어둠의 그늘속 또 다른 주인공인 권기진이라는 인간은 교도소 안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 퍼져 있는 그런 암적인 존재 - 작품에서 밝히고 있는 그의

죄명만 갖고 예단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이기는 하나 - 로서 그런 인간을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제대로 처단하지 못한다면 작은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큰

좌절만을 안겨 줄 것이고 이 사회와 나라는 요즘 젊은 세대들이 이야기하는 우리나라를

헬 조선으로 부르게 하는 한 요인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나머지 작품(폐원, 제쳐논 노래)에 대해서는 다른 소회를 기록하기 보다는 작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 듯하여 별다른 이야기를 기록하지 않을까 한다.

반면, 두 번째 작품인 방황하는 넋은 작품이 던지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작품 속에서

언급되고 있는 농악과 관련된 여러 용어들은 생경하여 여기에 정리해 보았다

- 삭자리 : ‘돗자리(왕골이나 골풀의 줄기를 재료로 하여 만든 자리)’의 방언(경북).

- 봉당 : 주택 내부에 있으면서 마루나 온돌을 놓지 않고 바닥면을 흙이나 강회·백토 등을

            깔아 만든 공간.

- 걸궁굿(乞窮-) 일명 마당밟기굿·매귀굿·걸궁농악.

마당밟기굿의 하나로 걸궁농악이라고도 하는 걸궁굿은 정초부터 한 달 동안 동네집집을

   돌며 쌀과 돈을 얻어 동네 공동사업에 쓰기 위해 놀던 농악(네이버 지식백과)

- 판굿 : 걸립패(동네의 경비를 목적으로 돈이나 곡식을 얻기 위하여 풍악을 연주했던

   무리)와 남사당패(떠돌며 노래와 춤, 풍물 연주, 재주 등을 연행하였던 집단)가 연행하던

   음악과 놀이의 종합예술

- 반삼채 : 경남농악(慶南農樂)에 쓰인 쇠가락의 하나. 일명 반삼차

- 강마진 : 농악십이차(農樂十二次)에 나오는 쇠가락의 하나로 신장(神將)을 부르는

                ()에서 연주되는 가락

- 금쇄진 : 농악십이차(農樂十二次)의 하나로 나오는 금쇄진은 원진(圓陣)을 치는 법

- 문굿 : 농악 연주의 한 절차로 한 집을 중심으로 연주되는 정내(庭內)굿의 한 절차.

- 상쇠(上釗) 농악대(農樂隊)의 한 구성원. 일명 상공운이라고도 하며 꽹과리 연주자 중

                   우두머리인 상쇠는 꽹과리 연주자 중 기예가 가장 뛰어난 사람이다.

- 고방굿(庫房-) 농악 공연 때 마당밟기굿의 한 순서로 어느 한 집을 중심으로 연주되는

                        정(庭內)굿의 한 절차다. 농악 공연 때 마당밟기굿의 한 순서.

- 뒤안굿 : 농악을 연주하는 걸립패(乞粒牌)의 고사굿. 일명 천룡굿어느 한 집의 행운을

                빌기 위해 걸립패가 농악을 연주하는 고사굿이 뒤안굿이다.

- 우조(羽調) : 판소리의 조에는 우조(羽調), 계면조(界面調), 평조(平調)의 세 가지가 있다.

                     이 중 우조와 계면조가 판소리의 양대 악조에 속하고 우조와 계면조의 중간

                     에 평조가 존재한다.

                     우조(羽調)는 서양 계이름으로 치자면 솔----미의 음계로 구성되며

                                         웅장하고 호탕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호기 넘치는 장면에서

                                         사용

- 도드리 : 국악에 쓰이는 장단

- 보허자 : 궁중 연례악으로 쓰이던 관악합주곡

 

작품을 읽으며 다가 온 문구들

 

[‘달팽이의 외출’]

- 결국 인간들은 모두가 이라는 각자의 껍데기를 지닌 한 마리의 달팽이다.

- 자기의 조그만 세계를 지키기 위해 담을 쌓지만 사실은 외부의 더 큰 세계를 잃어 버리는

   어리석은 짓이다.

 

[‘이 황량한 역에서’]

- 그런 그에게 있어서 철로와 역은 전 생애를 일관한 근거 없는 애착의 대상인 동시에

   항상 열려 있는 영혼의 창이기도 했다.

 

- 우리가 감정의 과장에서 벗어나 그 본질 자체를 응시할 수 없다면 고독이란 죽음 그것과

   마찬가지로 결코 슬픔이나 고통의 이유는 될 수 없는 것이다

 

- 사실 추억이란 우리들 기억의 광맥에서 떼어낸 한 덩이의 자연석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제련과 가공을 거치는 동안에 엄청난 감상과 상상력이 끼어들어 실제와는 전혀 다른

   모조품이 만들어지고 또 원래의 것과는 엉뚱한 빛을 우리에게 던진다.

 

[‘어둠의 그늘’]

- 재판을 맡는 정의의 여신의 눈을 가린 것은 희랍인의 예지였을 뿐 땅 위의 법은 언제나

눈을 부릅뜨고 재판당할 자의 색깔부터 살폈다.

 

- 언론 스스로가 제4부를 자처하고 특권을 행사하려 들지만 도대체 누구로부터 수권을

   했는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은 선거를 통해 나왔고 법관은 시험을 쳐서 자격을

   얻었지만 언론은 자임(自任)에 불과하다.(339)

 

- 어떠한 고통도 그것을 당하고 있는 순간은 고통이 아니다. 고통은 언제나 그것이 지나간

  후에 기억으로만 존재한다. 그렇다. 고통은 맞지 않은 구두와 같은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작더라도 일단 우리의 발이 들어가기만 하면 점차로 그 괴로움은 잊혀

  지기 마련이다. 우리가 그 괴로움을 다시 과장스럽게 느끼게 되는 것은 언제나 이미

  그것을 벗어 던진 후의 일이다.

   엄청나게 제한된 자유도, 거친 음식도, 불편한 주거 환경도 그리고 무엇보다 격리의

   고독도 순간순간 사소한 불편 정도일 뿐 아무런 고통의 그림자를 동반하지 않게 되었다.

   나중에 그곳을 끔찍한 곳으로 기억하게 하는 것은 바로 순간순간의 사소한 불편들이

   극단으로 과장되어 결합되기 때문일 뿐이다.

 

 

작품의 소회를 마무리하기 전, 작품 제목인 금시조(金翅鳥)’가 무엇인지 확인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여기에 정리해 보았다.

금시조가루라라고도 불린다. 금시조의 깃털은 장엄한 보광(寶光)을 발하며 머리 위에 하나의 커다란 혹이 있는데 이 혹이 바로 여의주(如意珠)이다.

이 새의 울음소리는 슬프고 처량하다. 금시조는 매 끼니마다 한 마리의 용왕(龍王)500마리의 새끼 용을 잡아먹는다고 한다.

금시조는 죽을 때 허공을 아래 위로 7~8회 몸을 뒤집으며 날다가 금강륜산(金剛輪山)정상에서 최후를 맞이한다. 금시조는 용(毒蛇)을 먹었기 때문에 몸 속에 독기가 많이 축적되면 그 독기로 자신의 몸을 태워버린다고 한다. 육신이 불타고 남은 자리에는 '가루라'의 심장만이 남는다.

그 심장은 파란 색이며 유리처럼 투명하다고 한다.

가루라 전설에서 금시조가 몸에 독기가 쌓여 그 독기로 자신의 몸을 태우고 자신의

'심장'만을 남겨 죽는 것은 소설 속에서 '고죽'이 그간 자신의 분신과 같은 자신의

'서화더미'를 태우는 장면과 깊은 연관관계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금시조''영원한 예술의 본질'을 표상하는 전설의 신으로 '자신의 몸'을 독기로

스스로 태우면서 '심장'만을 남기는 것은 가장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예술성을 추구와

획득으로 해석 될 수 있다. 그것은 아이러니 하게도 그동안 자신이 이루었던 예술성의

존재를 소멸시키는 것으로 추구되는 것이기도 하다. (인터넷 블로그 참조)

 

금시조는 묘시조(妙翅鳥)라고도 한다. 사는 곳은 수미산 사해(四海)로 전해진다.

우리나라 탱화에도 잘 표현되어 있는데 얼굴 형태는 독수리와 같고 용을 게걸스럽게

씹어먹고 있거나 손에 쥔 모습이 자주 나온다. 대개 사찰 벽화에 많이 등장하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석굴암 전실에 있는 가루라상인데 이 상은 왼손에 삼지창 들고 있고

날개가 달려 있는 투구를 쓰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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