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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성의 수호자, 나의 끼끗한 들깨
복거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6월
평점 :
품절
복거일은 상상력을 주된 무기로 하는 작가이다. {비명을 찾아서}와 {역사 속의 나그네} 등에서 내보였던 <역사의식이 바탕에 깔린 SF적 상상력>이 그의 작품세계를 이루는 근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SF적 상상력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현실에서 (아직) 이루어지지 않는 일을 다루어, 현실의 문제를 더욱 부각시킬 수 있는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비명을 찾아서}의 경우, “아직도 일제강점기가 계속되고 있다”라는 다분히 논쟁적인 상상력이 바탕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작품의 또 다른 스토리 라인을 만들고 있는 부하직원에 대한 戀情이나, (발표당시의 사회상황인) 군부독재에 대한 비판, 그리고 친일파에 대한 비판 등이 잘 살아나도록 하는 시너지효과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상상력을 기초로 하기 때문에, 그 상상력이 결여된 이번 작품은 다소 실망스럽다. 그의 상상력이 현실에 착륙해버리고 나니, 후광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이 작품의 제목처럼, 그의 작품은 어디까지나 빛나는 상상력의 마법성 안에서만 찬란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작가 복거일의 다른 요소, 즉 현실에 대한 인식과 대응감각, 문체, 구성 등은 그만큼 평이하다는 의미가 된다. (물론 한 작가가 모든 요소에 능통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끊임없이 변신하고자 하지만, 그 변신이 성공적이기 쉽지 않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무엇보다 아쉬운 부분은, 이 작품의 인물 관계 설정이 {비명을 찾아서}와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점이다. 아내와 딸을 사랑하지만, 옛 여인을 잊지 못하는 무명 詩人, 그리고 다분히 관념적인 그와 주변 인물들의 성격으로 인해서, 다양한 방면의 지식에 대한 소개와 비판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설정이 그것이다. 이와 같이 거의 유사한 설정과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비명을 찾아서}에 비해서 이번 작품인 {마법성의 수호자, 나의 끼끗한 들깨}의 경우가 훨씬 평이하게 느껴진다. 이는 단순히 반복의 문제가 아니라, 앞서 이야기한 상상력과도 연관되는 부분이다. 앞의 작품에서는 그러한 설정과 상황이 가상의 공간에 대한 안내와 설명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지만, 뒤의 작품에서는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그러한 안내와 설명은 군더더기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차라리 작품 속에서 주인공의 딸이 쓴 마법사에 대한 동화가 더욱 부각되었다면, 작가의 상상력이 유지되지 않았을까? 작가가 진정으로 이 작품을 “시간의 압제에 맞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그리고 싶었다면, 그 동화도 역시 비슷한 주제로 완성되어 가고, 그 동화로 인해 현실의 깨달음을 유도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으리라. 그러나 동화와 현실은 유리되어 버렸고, 그랬기에 작품의 절반을 차지하는 동화도, 나머지 절반을 차지하는 현실도 모두 살아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