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00엔 보관가게
오야마 준코 지음, 이소담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아르's Review

 

 

책상 정리를 하거나 창고를 정리하다 보면 잊고 있었던 물건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곤 한다. 이전에는 꼭 품고 있었던 것이거나 중요한 것이라 잘 보관해야지, 하며 넣어둔 것들이 오랜 시간이 흘러서는 있는 지로 모른 채 먼지와 함께 세월 속에 묵혀지는 것인데 그런 것들을 마주하게 되면 어느 새 이전의 시간 속으로 훌쩍 뛰어 넘어 아련한 시간들이 떠오르게 된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저 하나의 물건이겠지만 나에게는 추억이 더해져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그 물건들을 버리기엔 왠지 아깝고 그렇다고 계속 가지고 있기에는 다시 사용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쌓아두기에는 난감한, 그런 것들 모아두는 <보관가게>를 앞에 두고서는 과연 이 안에는 얼마나 많은 사연들이 담겨 있을지 설렘이 밀려든다.

전당포와 결정적인 차이점은 돈을 받고 보관해준다는 점이에요. 보관하는 행위 자체를 순수하게 일로 삼은 거지요.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이 장점으로 작용했어요. 보관품을 읽어가 볼 수 없고 손님의 얼굴 역시 보지 못하니까요. 손님 입장에서는 사생활이 보장되니까 안심하고 물건을 맡길 수 있지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트러블이 없었습니다. 조마조마했던 적은 있어도 사달이 난 적은 없어요. –본문

 하루 100. 현재 환율로 보자면 1000원 안 되는 비용으로 무엇이든 보관할 수 있는 가게의 주인은 앞에 보이지 않는 기리시마이다. 그가 태어날 때부터 눈이 보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빛을 볼 수 없게 된 그를 두고 그의 어머니는 떠나버렸고 그렇게 그는 홀로 남아 의도하지 않았지만 어느 새 보관가게의 주인으로 자리하고 있다.

 무엇이든 이유도 묻지 않고 하루 100엔으로 물건을 보관해주기에 각자 사연을 안고 이 가게로 들어오게 된다. 무엇보다도 기리시마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그 자신의 목소리를 빌어서가 아닌 가게의 포렴과 그의 손에서 태어난 것이라고 믿는 고양이에 의해서 전해지고 있는데 그의 따스한 성품은 포렴과 고양이를 넘어 사람들의 마음마저도 편안하게 물들이고 있기에 그를 찾아오는 가게의 사람들의 사연 역시 따스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가게의 이름도 제대로 없는 이 곳을 알고 오는 이들을 보노라면 이전부터 알고 있었거나, 누군가를 대신해서 가게를 방문하게 되면서 알게 되었거나, 호기심에 들어왔다가 그 가게를 알게 된 이들도 있고 그야말로 다양한 이들이 이 가게를 찾아오게 된다. 그리고 매 장마다 흘러가는 이야기는 그 하나의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의 실타래를 따라서 모두 연결되어 있는데 그들의 사연을 연결해서 찾아보는 재미도 이 소설의 관전 포인트가 아닐 수 없다.

 아버지가 사주신 물빛 자전거를 매일 맡기러 오던 소년은 가키누마 나미가 어린 시절 부모님의 이혼 합의서를 이 가게에 맡겼던 것처럼 그녀의 이혼 서류를 가지고 왔을 때, 이제는 이 보관가게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닌 그녀 스스로의 삶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고 기리시마가 이 가게를 운영하도록 해준 사건의 주인공인 동생이 등장하게 되며 아이자와와의 이야기도 매듭을 짓게 된다.

어라, 큰일이다.
주인의 심장이 두근두근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비누 아가씨에겐 들리지 않겠지만, 고양이인 나는 못 속이지
.
 
두근두근, 두근두근
.
 
이건….. 분명 사랑이다
.
 
싫어라. 주인이 처음으로 여성을 의식한 순간에 입회하고 말았어. 냄새와 목소리만으로 사랑에 빠지다니. 고양이랑 뭐가 달라. 내겐 엄마의 첫사랑인 셈이니 겸연쩍기도 하고 낯간지럽기도 하고, 기분이 복잡하다. 게다가 걱정이다. 주인이 상처받지 않으면 좋겠는데. –본문

무엇보다도 쥐 할아버지의 오르골과 함께 비누 아가씨의 등장은 기리시마의 평범한 일상에 온기를 더해주는 에피소드인데 마지막 기리시마가 횡단보도에 서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노라면 나 역시도 그 장면 속의 주인공이 된 것 마냥 눈가에 눈물이 서리게 된다. 고양이의 바람대로 주인이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더해져 마지막 페이지의 이야기가 꿈이 아닌 실제의 것 이길 바라며 책을 덮으며 다양한 이야기들의 실타래를 조용히 묶어 본다.

 기리시마의 보관가게가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왠지 마음이 따스해지는 느낌이다. 그는 누구의 추억이라도 고스란히 간직해 줄 것만 같다. 그 모든 기억을 버리는 것이 아닌 조용히 보관해주는 이 곳에 나는 어떠한 기억을 가지고 가야 할 지 이 고민이 한 동안은 즐거운 고민으로 남을 것 같다.

 

아르's 추천목록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게 하기 좋은 날 / 무레 요코저

 

 

 

독서 기간 : 2015.06.17~06.19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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