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문제에 내고, 그냥 넘어가기 심심해서 올려봅니다.  ^^

쿠르베 Gustave Courbet (1819.6.10~1877.12.31)

사실주의의 대표적인 프랑스 화가로 프랑슈 콩테의 오르낭 출생입니다
부유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1840년 아버지의 권유로 법률 공부를 위해 파리로 나왔으나, 얼마 후
화가를 지망하여 브장송의 데생학교와 파리 아카데미쉬스에서 그림공부를 하며
루브르 미술관에서 에스파냐와 네덜란드 거장들의 작품을 공부하였습니다

1844년 살롱에 출품하여 첫 입선을 하고 이색적 화제를 인정받았으나,

 1950년의 작품《오르낭의 장례식》은 지나치게 실경(實景) 묘사에 치우친 불경스런 희화(戱畵)라는 비난을 받았지요 (역사적 사건도 신화적 주제도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거대한 크기로 그려내어 비난받았다고 합니다.)


무지 큰 그림이래요.


세상에서 가장 추한 것을 최악의 추악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혹평받기도 했습니다
특히 이러한 경향은 <<돌 깨는 사람 (1849)>>


이 작품은 2차 대전중 유실되어 이미지로만 보실 수 있습니다.

 

1855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출품한《화가의 아뜰리에》에 이르러 더욱 두드러졌습니다.


이 그림은 다비드의 <나폴레옹의 대관식>만큼이나 크다고 합니다.

* 그림 설명

" 이 작품은 나의 아뜰리에의 역사이다. 그리고 아틀리에의 도덕적 물질적 여러 사건의 전부이다."

라고 그가 밝혔듯이, 쿠르베 는 아틀리에속에 세계의 축도를 담으려 했다.
이 작품이 1855년 만국 박람회에 전시되었을때, 이 작품에는 [화가의 아뜰리에, 7년간의 나의 예술생활의 추이를 결정한 현실의 우화]라는 제목이 붙여져 있었다.
우화란 제목이 붙여진 것은,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이 각기 우의적인 뜻을 지니고 있기 때문인데 , 앞쪽의 화가는 쿠르베 자신이며, 그를 중심으로 오른쪽에 보들레르, 프뤼동 등 그의 친구들이 서있다.
오른쪽 인물들은 각기 시, 사회주의 사상, 산문, 사실주의 예술의 보호자이며,                         
왼쪽은 그가 관심을 두고 있는 빈곤, 실업, 죽 음 등 사회적인 관심을 여러 인물을 통해 그려내고 있다.
화가옆의 나부는 자연 또는 진실을 나타낸다. 중심의 인물은 밝게, 배경과 측면의 인물은 어둡게 처리하여 두 세계를 우의적으로 대조시키고 있다.

쿠르베는 이 작품의 출품을 거절 당하자 자신의 이상과 회화를 표명하기 위해

몽테뉴가에 손수 집을 짓고, 입구에 '사실주의' 라는 큰 간판을 걸고서 이 작품을 비롯한 40여 점의 자작품을 전시하여 자신의 예술 상 입장을 표명하였습니다
이것이 최초의 개인전이 되었지요

그는 감정이나 상상력을 강조하는 낭만주의란 그 시대의 현실로부터 도피하는것에 불과한 것이라고 믿고, 낭만주의에 반대하여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릴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나는 천사는 그리지 않는다. 그것을 한번도 본적이 없기 때문에"  (또는 "내가 천사를 그리기를 원한다면 나에게 천사를 보여달라") 
"리얼리즘(사실적)의 세계에는 쇼킹한 것이라고는 없다"
라는 쿠르베의 말은 그의 이상과 작품경향을 잘 나타내는 말입니다.

쿠르베는 그의 작풍을 인정받지 못하다가, 1850년대 중반부터는 도버해협 연안의 바다풍경


The Cliff at Etretat


해변


꽃, 과실 등의 정물,



과일


꽃병 속의 꽃다발

 


송어

 60년대 후반에는 관능적인 여인 등의 현실적 주제를 정확한 기법으로 그려내어,
1867년 알마다리에서 가진 개인전으로 사람들에게 인정받았습니다.

                     





목욕하는 여인들

 


앵무새와 여인

 



The Sleepers

 


세느 강변의 아가씨들

 

그러나 1871년 파리코뮌 때 방돔 광장의 나폴레옹1세 동상 파괴 책임으로 투옥되었다가 석방된 후,        75년 신변에 위험을 느끼고 스위스로 망명, 2년후인 1877년 12월31일
라 투르 드 페일스에서 죽었습니다.

그의 견고한 마티에르와 스케일이 큰 명쾌한 구성의 사실적 작풍은 19세기 후반의 젊은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리고 보다 근본적으로는 당시의 고전주의와 같은 이상화나 낭만주의적인 공상표현을 일체 배격하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묘사할’ 것을 주장한 그의 사상적 입장은

회화의 주제를 눈에 보이는 것에만 한정, 혁신하고,  일상생활에 대한 관찰의 밀도를 촉구한 점에서 미술사상 가장 큰 의의를 남긴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낭만주의·아카데미즘에 대한 투쟁이었던 그의 사실주의는, 시각을 중요시한다는 면에서 인상주의의
선구
가 되었고 독일·벨기에·러시아 등의 미술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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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는데, 오만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자화상들과, 이 그림 <안녕하세요, 쿠르베 씨?>에서 특히 잘 드러나지요. 모자를 벗고 인사하고 있는 사람은 쿠르베의 후원자라는데, 쿠르베는 뻣뻣하게 인사를 받고 있고, 후원자가 반가워하며 인사하지요.


국민학교 2-3학년이었나? 외갓집에 갔다가 작은 문고본 화가별 미술 전집을 슬슬 보았는데

(하도 볼 것이 없어 심심했던 나머지, 이 책들을 찾아내서 그림만 봤다)

그 때 본 그림들 중 이게 가장 인상깊었나 보다.  제목조차 잊지 않았다.

 


개와 함께 있는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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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풍경도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오르낭의 모습만 그렸다고 합니다.


 


The Oak at Flag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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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키웨이 2004-06-18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이 사람 동성연애자인가요?
아님 더 당시에 동성연애가 유행이었나요?
오우...상당히 에로틱한것이 묘~~합니다.

panda78 2004-06-18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성애자 아닐 걸요..(모르죠, 벽장 속의 동성애자였는지는.. ^^;;;)
(잠자는 두 여자의 그림이 제일 묘-하지 않은가요? 음... )

반딧불,, 2004-06-18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풍경그림은 언제나 보면 참 탁월해요..

다른 그림들도 그렇지만....


그나저나 참..그 그림 쇼킹하군요^^;;

panda78 2004-06-18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쿠르베의 <세상의 기원(근원?)>이란 그림을 한 번 보시죠. 차마 올리진 못하겠고...^^;;;

밀키웨이 2004-06-18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스!
지금 보고 왔습니다.
와우!

저같으면 올립니다.
방문자가 줄을 잇지 않을까 싶은디.... 큭큭큭

반딧불,, 2004-06-18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못 찾았어요^^;;
서재주인보기로 주소 올려주세요^^;;

반딧불,, 2004-06-18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밀키님은 대체 어디서 찾으셨을꼬..
내는 안 나오든데....^^;;

panda78 2004-06-18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요? 올려요? ㅋㅋㅋ 올립니다- 순진한 마태우스님이 충격 먹고 다시 안오심 어쩌나.. ㅋㅋ

밀키웨이 2004-06-18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디각시
내는 검색대마왕인기라 ㅎㅎㅎ

로렌초의시종 2004-06-18 1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쿠르베는 약간 부담스러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