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으로 읽는 변신이야기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오비디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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뮈르라여, 쿠피도도 자신의 화살이 그대를 맞히지 않았다고 부인하며

자신의 횃불이 그대의 범죄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하고 있소.

세 자매들 가운데 한 명이 스튁스의 화염과 독으로 부어오른 독사로

그대를 덮쳤던 것이오. 아버지를 증오하는 것도 죄가 되지만

이런 종류의 사랑은 증오보다도 더 큰 죄가 되기 때문이오.

사방으로부터 내노라 하는 귀족들이 그대를 원했고,

온 동반의 젊은이들이 나타나 다투어 그대에게 장가들려고 했소.

뮈르라여, 그 모든 이들 중에서 한 명을 남편으로 고르되,

한 명만은 그들 중에 포함시키지 마시라!

사실 그녀는 자신의 사랑이 사악한 것임을 알고 그것과 싸우며

혼자말을 했소. '내 마음이 어디로 향하는 거지? 내 의도가 뭐야?

제발 신들과 자식 된 도리와 부모님의 신성한 권리는

이 무도한 짓을 막아주고, 이 범죄를 제지해주세요.

이것이 정말로 범죄라면! 하나 자식 된 도리가 반드시 이런 사랑을

저주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지 않는가! 다른 동물들은 마음대로

교합하지 않는가! 암송아지는 제 아비를 등에 태우는 것을

수치스런 짓으로 여기지 않으며, 수말에게는 제 딸이 아내가 되며.

숫양은 제가 낳은 암양들과 짝짓기를 하며, 새들은

그 씨에서 제가 잉태되었던 수컷한테서 저도 잉태하지 않는가!

그런 사랑이 허용되는 것들은 행복하도다! 하나 인간의 세심함이

악의적인 법을 제정하여, 자연이 허용하는 것을 시기심 많은

법이 금하는구나. 하지만 그래도 어머니가 아들과 결혼하고

딸이 아버지와 결혼하는, 그리하여 이런 이중의 사랑으로 가족간의

유대가 더욱 공고해지는 그런 부족들도 있다지 않는가!

나야말로 불행하구나! 그런 곳에서 태어나는 행운도 잡지 못했고

단순히 출생지로 인해 방해를 받고 있으니 말이야.

한데 내가 왜 자꾸 이런 생각을 하는 거지?

금지된 희망들이여, 너희는 사라져버려라! 그분은 사랑 받을 만하지.

하지만 아버지로서 그렇지. 그러니까 내가 위대한 키뉘라스의 딸이

아니라면 키뉘라스와 잠자리를 같이할 수 있었겠지. 한데 그분은

내 것이기 때문에 내 것이 될 수 없어. 가깝다는 것이 나에게는

오히려 방해만 돼. 오히려 낯선 여자라면 더 힘을 쓸 수 있으련만.

범행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나는 조국의 국경을 뒤로하고

이곳에서 멀리 떠나고 싶어. 하지만 사악한 정염이 가지 못하게

막는구나. 다른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면 키뉘라스를 가까이서

보고 만지고 대화하고 입이라도 맞추라고 말이야.

하지만 그 이상의 것은 바랄 수 없겠지? 이 불효한 소녀여,

네가 얼마나 많은 권리와 이름을 혼동하고 있는 줄 알아?

너는 어머니의 시앗이 되고 아버지의 첩이 되겠다는 거니?

너는 네 아들의 누이라고, 네 오라비의 어머니라고 불리겠다는 거니?

너는 머리털이 시커먼 뱀들로 된 자매들이 무섭지도 않니?

죄 지은 자들의 마음 앞에 나타나 무자비한 횃불로

그들의 눈과 얼굴을 공격한다지 않니? 그러니 너는 아직

몸으로 죄를 짓지 않았을 때, 마음속으로 죄를 꾀하지 말고

금지된 동침으로 위대한 자연의 계약을 어기지 마!

네가 간절히 원해도 현실이 이를 금하고 있어.

그분은 경건하고 도의를 아시는 분이야. 아아,

그분에게도 나와 같은 광기가 깃들어 있었으면 좋으련만!'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제10권 311∼355행

 

  


그러자 뮈르라가 미친 듯이 노파의 품에서 일어서더니

침상에 얼굴을 묻으며 '제발 나가든지, 아니면 나를 비참하고

부끄럽게 만들지 말아요!' 라고 말했고, 그래도 유모가 졸라대자

'나가든지, 아니면 왜 내가 괴로워하는지 묻지 말아요.

그대가 알려 하는 것은 범죄예요.' 라고 말했소.

노파는 겁이 나서 나이와 두려움 때문에 떨리는 두 손을 내밀고는

자기가 기른 소녀의 발 앞에 탄원자로서 무릎을 꿇고 엎드려

때로는 감언이설로 꼬이는가 하면 때로는 겁을 주며, 자기에게

알려주지 않으면 올가미 사건과 죽으려고 했던 일을 알리겠다고

위협했고, 사랑에 관해 털어놓으면 도와주겠다고 약속했소.

소녀는 고개를 들어 솟아오르는 눈물을 유모의 젖가슴에다 쏟았소.

소녀는 몇 번이나 고백하려고 했으나 매번 말문이 막혔소.

그러다가 마침내 소녀는 부끄럼 타는 얼굴을 옷으로 가리며

말했소. '아, 어머니. 우리 어머니는 참 남편 복도 많아요!'

거기까지만 말하고 소녀는 한숨을 내쉬었소. 유모는 등골이 오싹했소.

(그녀는 알아챘던 것이오.) 그녀의 온 머리 위에서는 눈처럼 흰

머리카락들이 쭈뼛쭈뼛 섰소. 유모는 그 끔찍한 사랑을

몰아내기 위하여 많은 말을 더 했소. 혹시 그것이 가능할까 해서.

소녀는 그 충고가 옳다는 것을 인정했소. 그러면서도

사랑하는 것을 갖지 못할 바엔 죽겠다는 결심을 비쳤소.

'그렇다면 살아서' 하고 유모가 말했소. '가지세요, 아씨의······'

유모는 차마 '아버지를' 이란 말이 나오지 않아 입을 다물고는

신들의 이름으로 자신의 약속을 다짐했소.

해마다 열리는 케레스의 축제가 돌아왔소. 이때에는 경건한

어머니들이 몸에 눈처럼 흰 옷을 두르고 그 해에 거둔

수확의 맏물로 곡식 이삭으로 만든 화환을 갖다 바쳤소.

그리고 그들은 아흐레 밤 동안 사랑과 남자와의 접촉을

금기사항에 포함시켰소. 그 무리들 사이에는 왕비 켕크레이스도

있었는데, 그녀는 열심히 신성한 비밀 의식에 참가했소.

그리하여 왕의 침상에 합법적인 아내의 자리가 비었을 때,

키뉘라스가 거나하게 취한 것을 보고는 지나치게 열성적인 유모가

가짜 이름을 대며 왕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소녀가 있는데

일색이라고 전했소. 소녀의 나이를 묻자 유모는 '뮈르라와

동갑이에요.' 라고 말했소. 왕이 그녀를 데려오라고 명령하자

유모는 돌아와 '기뻐하세요. 아씨! 우리가 이겼어요!' 라고 말했소.

불행한 소녀는 온 마음으로 기뻐하지 못했소.

그녀의 가슴은 슬픈 예감으로 가득 찼소. 그래도 그녀는 기뻤소.

그만큼 그녀는 마음이 갈팡질팡했소.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제10권 410∼445행

 

 

Myrrha (Greek: Μύρρα), also known as Smyrna (Greek: Σμύρνα), is the mother of Adonis in Greek mythology. She was transformed into a myrrh tree after having had intercourse with her father and gave birth to Adonis as a t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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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디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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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

안 루이 지로데 드 루시 트리오종(Anne-Louis Girodet De Roussy-Trioson), 18세기경, 루브르 박물관


 


퓌그말리온은 이 여인들이 죄악 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보자

자연이 여자의 마음에 드리운 수많은 약점이 역겨워 아내도 없이

홀아비로 살고 있었고, 오랫동안 동침할 아내도 들이지 않았소.

그 사이 그는 눈처럼 흰 상아를 놀라운 솜씨로 성공적으로

조각했는데, 이 세상에 태어난 어떤 여인도 그렇게 아름다울

수는 없었소. 그는 자신의 작품에 그만 반해버리고 말았소.

그 얼굴은 진짜 소녀의 얼굴이었소. 그대는 그녀가 살아 있다고,

곧은 행실이 막지 않는다면 움직이고 싶어한다고 믿었으리라.

그만큼 그의 작품에는 기술이 들어 있었소. 퓌그말리온은 보고

감탄했고, 자신이 만든 형상을 마음속으로 뜨겁게 열망했소.

가끔 살인지 상아인지 알아보려고 손으로 자신의 작품을 만져보았소.

그러고도 그는 그것이 상아라는 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소.

그는 그것에 입맞추었고, 그러면 그것이 이에 화답하는 것 같았소.

이제 그것에 말을 걸기도 하고 쓰다듬기도 했소.

그러면 그의 손가락에 그것의 살이 눌리는 것 같았소.

그러면 거기에 멍이 들지 않을까 두려웠소.

그리고 그는 그것에게 때로는 아첨하기도 하고, 때로는

소녀들이 선호하는 조개껍질들과, 반질반질한 조약돌들과,

작은 새들과, 나무에서 떨어진, 헬리아데스들의 눈물들을

선물하기도 했소. 그는 또 그것의 사지를 옷을 입혀 장식하고,

손가락들에 보석 반지를 끼워주고, 목에 긴 목걸이를 걸어주었소.

두 귀에는 진주가, 가슴에는 펜던트가 매달렸소.

이 모든 것이 잘 어울렸소. 그것은 장식하지 않았을 때

그에 못지않게 아름다웠소. 그래서 그는 그것을 시돈의

자줏빛 염료로 물들인 잠자리에 뉘고는

잠자리 반려자라고 부르며, 느낄 수 있기라도 한 양 그것의

기울어진 목덜미 밑에 부드러운 솜털 베개를 받쳐주곤 했소.

온 퀴프루스가 참가하려고 몰려드는 베누스의 축제일이 다가왔소.

구부정한 뿔에 금박을 두른 암송아지들이 눈처럼 흰 목을

가격당하여 쓰러졌고, 제단에서는 향연(香煙)이 피어올랐소.

퓌그말리온은 제물을 바치고 나서 제단 앞으로

다가서서 더듬거리며 '신들이시여, 그대들이 무엇이든

다 주실 수 있다면, 원컨대 내 아내가 되게 해주소서.'

'내 상아 소녀가' 라고는 차마 말하지 못하고 '내 상아 소녀를

닮은 여인이' 라고 말했소. 친히 축제에 참석하고 있었던

황금의 베누스는 그 기도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렸소.

그래서 여신이 호의를 품고 있다는 전조로

세 번이나 불길이 타오르며 대기 속으로 혀를 날름거렸소.

그는 집으로 돌아오자 곧장 자신의 소녀의 상(像)을 찾아가서

침상 위로 머리를 숙이고는 입맞추었소. 소녀가 따뜻하게 느껴졌소.

그는 다시 입을 가져가며 손으로는 가슴을 만져보았소.

그가 만지자 상아는 물러지기 시작하더니 딱딱함을 잃고는

손가락들에 눌렸소. 그 모습은 마친 휘멧투스의 밀랍이

햇볕에 물러지기 시작하며 손가락들에 주물러져 여러 가지 형상으로

만들어지고 그렇게 쓰임으로써 쓸모 있게 될 때와도 같았소.

그는 깜짝 놀랐고, 의심하면서도 기뻤고, 착각이 아닐까 두려웠소.

사랑하는 남자는 소망하던 것을 다시 또 다시 손으로 만져보았소.

그것은 사람의 몸이었소. 그의 손가락 아래 혈관들이 고동쳤소.

그러자 파포스의 영웅은 베누스에게 수없이

감사 기도를 올리고 나서 마침내 또 다시 자신의 입술로

진짜 입술을 눌렀소. 소녀는 그의 입맞춤을 느끼고는

얼굴을 붉히며 그의 눈을 향하여 수줍게 눈을 들더니

하늘과 사랑하는 남편을 동시에 쳐다보았소. 여신은 자신이

맺어준 결혼식에 참석했소. 그리고 어느새 초승달의 뿔들이

차서 아홉 번이나 둥근 달이 되었을 때 그들에게 파포스라는

딸이 태어났으니, 섬은 그녀에게서 이름을 따왔소.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제10권 244∼297행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 에티엔 모리스 팔코네(Etienne Maurice Falconet), 1761경, 루브르 박물관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

장 밥티스트 앙리 데자이(Jean-Baptiste Henri Deshays), 18세기경, 루브르 박물관

 

 

자신의 작품에 대한 애정에 대하여

시에 열중하는 사람치고 로마에서 가장 으뜸가는 미소년을 낳기보다는 《아에네이스》를 내놓기를 원하지 않을 자 없고, 전자보다도 후자를 잃는 것을 슬퍼하지 않을 자 없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모든 작가들 중에서 특히 시인들은 자기 후손으로는 딸들만 남겨서, 그녀들이 다음에 조상들에게 영광을 주리라고 자랑하던 에파미논다스(이 딸들이란 그가 라케데모니아 인들에 대해서 두 번 얻은 고귀한 승리를 의미하였습니다)가 그녀들을 그리스 전국의 화사한 미녀들과 바꾸었으리라고는 믿어지기 어렵습니다. 또한 알렉산드로스나 카이사르가 자기 아들과 상속자가 아무리 완벽하고 완성된 인물이라고 해도, 그들을 얻기 위해서 자기들이 전쟁에서 얻은 영광스럽고 위대한 공훈들을 갖지 않아도 좋다고 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나는 피디아스나 다른 탁월한 조각가들이 오랜 노력과 면학으로 예술적으로 완성해 놓은 탁월한 조각상이 잘 보존되어 영원히 남아 있기를 바랐을 만큼, 그가 낳아 놓은 아이들이 계속해서 보존되기를 원했을까를 의심합니다. 그리고 가끔 부친들이 자기 딸들에게 보이는 사랑이나, 모친들이 자기 아들들에 열중하던 악덕스런 미치광이 같은 태도의 사랑으로 말하면, 그런 예는 이 다른 종류의 부자 관계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증거로 피그말리온에 관해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바에 의하면, 그는 특별한 미를 갖춘 여인의 조각상을 만들고 나서, 자기 작품에 대한 억제할 수 없는 사랑에 사로잡혔기 때문에, 미친 듯한 열정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신들은 이 조상에 생명을 넣어 주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가 그 상아를 만지니
그것은 단단함을 잃고 유연해지며
그의 손가락에 눌려 들어간다.                    (오비디우스)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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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으로 읽는 변신이야기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오비디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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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페우스와 에우뤼디케], 니콜라 푸생

 

 


"오오, 필멸의 존재로 태어난 우리 모두가 되돌아오는

이 지하 세계를 다스리시는 신들이시여. 거짓말과

애매모호한 말은 집어치우고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 허용되고

또 그대들이 허락해주신다면, 내가 이리로 내려온 것은

어두운 타르타라를 구경하려는 것도 아니고, 메두사 같은 괴물의,

뱀들이 친친 감고 있는 세 개의 목에 사슬을 채우려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이리로 온 것은 아내 때문입니다. 발에 밟힌 독사가

그녀에게 독을 퍼뜨려 그녀의 꽃다운 청춘을 앗아갔으니까요.

나는 참고 견딜 수 있기를 바랐고, 아닌 게 아니라 또 그렇게 하려고

노력도 해보았습니다. 하나 아모르가 이겼습니다.

그분은 여기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상계(上界)에서는

잘 알려진 신이지요. 아마 여기서도 그럴 겁니다.

그리고 옛날의 납치 이야기가 거짓말이 아니라면

아모르는 그대들도 맺어주었습니다. 공포로 가득 찬 이 장소들과,

이 거대한 카오스와, 이 광대한 침묵의 왕국의 이름으로 청하옵건대,

너무 일찍 풀린 에우뤼디케의 운명의 실을 다시 짜주십시오.

우리는 모두 그대들에게 귀속됩니다. 잠시 지상에서

머문다 해도 머지않아 우리는 한곳으로 달려갑니다.

우리 모두는 이곳으로 향하고, 이곳이야말로 우리의 마지막 거처이니

그대들이 인간의 종족을 가장 오랫동안 통치합니다.

그녀도 명대로 살다가 때가 되면 그대들의 지배를 받게 될 것입니다.

운명이 내 아내에게 그런 특혜를 거절한다면 나는 단연코 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두 사람이 죽게 되니 그대들은 기뻐하실런지요!"

그가 뤼라를 연주하며 이렇게 노래했을 때 핏기 없는 망령들도

눈물을 흘렸다. 탄탈루스는 도망치는 물결을 잡지 않았고,

익시온의 바퀴도 놀라 멈춰 섰으며, 새들은 간(肝)을 쪼지 않앗고,

벨루스의 손녀들은 항아리를 내려놓았으며,

시쉬푸스여, 그대는 그대의 돌덩이 위에 앉아 있었소.

그때 처음으로, 소문에 따르면, 자비로운 여신들도 노래에

압도되어 불이 눈물에 젖었다고 한다. 왕비도, 하게를 다시리는

이도 차마 탄원자의 청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제10권 17∼47행

 

 

  

[오르페우스와 에우뤼디케], 티치아노

 

 


그들은 소리 없는 적막을 지나 오르막길로 올라갔다.

그것은 가파르고, 식별이 안 되고, 짙은 안개에 싸여 있었다.

이제 그들은 대지의 맨 바깥 표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곳에서 사랑하는 남자는 아내가 힘이 달리지 않을까

걱정도 되고 아내를 보고 싶기도 하여 뒤돌아보고 말았다.

그 순간 그의 아내도 도로 미끄러졌다. 그는 팔을 내밀어

그녀를 잡고 자기는 잡히려 했으나, 불행히도 그의 손에

잡히는 것은 뒤로 물러나는 바람뿐이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이제 두 번 죽으면서 남편에게는 아무 불평도 하지 않았다.

(하긴 그녀로서는 사랑 받은 것말고 무슨 불평이 있겠는가?)

그녀는 남편의 귀에 들릴락 말락 하게 마지막으로 "안녕." 이라고

말하고는 자신이 떠나왔던 곳으로 도로 미끌어져 갔다.

오르페우스는 아내의 이중의 죽음에 제정신이 아니었다.

······

오르페우스는 또다시 강을 건너고 싶어 간청해 보았으나 소용없었다.

뱃사공이 거절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누추한 모습으로

이레 동안 케레스의 선물도 즐기지 않고 거기 강가에

앉아 있었다. 근심과 마음의 괴로움과 눈물이 그의 양식이었다.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제10권 53∼75행

 

 

 

에우리디케를 데려오기 위해 지옥으로 내려가는 오르페우스(부분)
장 레스투(Jean Restout), 18세기경, 루브르 박물관

 

 

 

저승 문을 나서면서, 오르페우스가 돌아보는 순간 다시 저승으로 끌려들어가는 에우뤼디케.

 

 

 

[간청하는 오르페우스], 조아키노 세란젤리(Gioacchino Serangeli), 18세기 ~ 19세기경, 파리 음악 박물관

 


 

[플루톤과 페르세포네 앞의 오르페우스], 프랑수아 페리에(François Perrier), 17세기경 루브르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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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로 바뀌는 텔레투사의 딸 이피스

 

 


한편 이피스는 성취될 희망도 없이 사랑했고, 그래서 더 열렬히

사랑했다. 그녀는 소녀의 몸으로 소녀에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녀는 눈물을 간신히 억제하며 말했다. "어느 누구도 들은 적이

없는 놀랍고도 불가사의한 사랑에 사로잡힌 나를 대체 어떤 종말이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신들이 나를 살릴 작정이라면, 나를 완전하게

살려주었어야지. 그게 아니고 신들이 나를 죽일 작정이라면,

내게 적어도 자연스럽고 통상적인 재양을 보내주었어야지.

암소는 암소에게, 암말은 암말에게 달아오르지 않는 법이야.

암양은 숫양에게 달아오르고, 암사슴은 수사슴을 따라다니지.

새들도 그렇게 짝을 짓지. 그리고 모든 동물들 중에

암컷이 암컷에 대한 사랑에 사로잡히는 경우는 없어.

내가 태어나지 말았더라면! 하긴 크레테에는 온갖 괴물들이

태어나고 , 태양신의 딸은 황소를 사랑했었지. 하지만 틀림없이

암컷으로서 수컷을 사랑하지 않았던가! 사실을 말하자면,

내 사랑은 그보다 더 광적이야. 그래도 그녀에게는 사랑이 이루어질

희망이 있었고, 그래도 그녀는 계략과 가짜 암소에 힘입어 황소와

교합했고, 간통한 황소는 거기에 속아 넘어가지 않았던가!

설사 온 세상의 재주꾼이 이곳에 다 몰려온다 해도,

다이달루스 자신이 밀랍 날개를 타고 도로 날아온다 해도,

그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가 배운 온갖 재주로 나를 소녀에서

소년으로 만들 수 있을까? 이안테여, 너를 바꿀 수 있을까?

이피스야, 왜 왜 너는 마음을 굳게 먹고 정신을 가다듬어

이 부질없고 어리석은 정염을 털어버리지 못하는가?

너 자신마저 속이지 않으려면 네가 무엇으로 태어났는지 보고 나서

도리에 맞는 것을 추구하고 여자로서 사랑해야 하는 것을 사랑해야지.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제9권 724∼748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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뷔블리스, William Adolphe Bouguereau, 1884

 

 


뷔블리스는 아폴로의 손자인 자기 오라비에게 걷잡을 수 없는

연정을 품었으니, 뷔블리스야말로 소녀들은 허용된 것만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오라비에 대한 그녀의 사랑은

오누이간의 사랑이 아니라, 해서는 안 될 사랑이었다.

······

그녀는 혈족이란 말을 싫어했으며, 어느새 그를 여보라고 부르며

그가 자기를 누이라고 부르기보다는 뷔블리스라고

불러주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녀는 깨어 있는 동안에는

마음속에 감히 불순한 욕망을 품지는 않았다.

하나 부드러운 잠에 사지가 풀리게 되면 그녀는

자기가 사랑하는 것을 가끔 보았다. 그녀는 오라비의 품에 안겨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는 잠들어 누워 있는데도 얼굴을 붉혔던 것이다.

잠에서 깨어난 그녀는 한동안 말없이 누워 꿈에서 본 것을

되새기며 갈팡질팡했다. "아아, 나처럼 불쌍한 애가 있을까!

이 고요한 밤의 환영이 원하는 것이 대체 무엇일까?

그런 일은 얼어나지 말았으면! 왜 나는 이런 꿈을 꾸는 것일까?

그를 곱지 않게 보는 눈에도 그가 미남인 것은 사실이야. 나도 그가

마음에 들어. 오라비만 아니라면 그를 사랑할 수 있을 테지. 그는

나에게 딱 어울리는 상대였겠지. 하지만 불행히도 나는 그의 누이야.

내가 깨어 있을 때 그런 짓을 하려고 시도하지만 않는다면야,

가끔 잠이 그와 비슷한 꿈과 함께 돌아왔으면 좋겠어.

꿈에는 증인도 없고, 그렇다고 쾌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아니니까.

오오, 베누스여, 그리고 부드러운 어머니와 함께하는

쿠피도여, 나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얼마나 실감나는 쾌락에

나는 사로잡혔던가! 누워 있었을 때 나는 골수가 모두

녹아내리는 것 같았어. 생각만 해도 나는 즐거워.

비록 그것이 짧은 쾌락에 지나지 않고,

밤은 우리가 시작한 일을 시기하여 허둥지둥 달려갔지만 말이야.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제9권 454∼486행

 

 

 

그녀는 시작하다가는 망설였고, 쓰다가는 쓴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적다가는 지우기도 하고 고치기도 하고 나무라기도 하고

칭찬하기도 했다. 그녀는 손에 쥐었던 서판을 놓는가 하면 놓아둔

서판을 다시 쥐곤 했다. 그녀는 자신이 뭘 원하는지 알지 못했으니,

무엇이든 일단 시작하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의

얼굴에는 대담성과 부끄럼이 드러나 있었다. 그녀는

"그대의 누이가"라고 적었다가 누이란 말을 지우는 것이 좋겠다고

여기고 밀랍 표면을 문지른 다음 이런 말들을 적었다. "여기 그대를

사랑하는 사람이 그대가 안녕하기를 빌고 있어요. 하지만 그녀는

그대가 허락하지 않으면 안녕하지 못할 거예요. 아아, 그녀는

이름을 밝히기를 부끄러워하고 있어요.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대가 물으신다면, 내가 원하는 것은 이름을 밝히지 않고

내 용건을 말하고, 내 희망이 확실히 이루어지기 전에는

내가 뷔블리스라는 것이 알려지지 않는 거예요.

그대는 내가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거예요. 창백하고 마른 내 얼굴,

가끔 눈물이 글썽이는 내 두 눈, 뚜렷한 이유도 없는 내 한숨,

잦은 포옹, 그리고 그대가 알아챘는지 몰라도 도무지 누이가

하는 것이라고는 느낄 수 없는 내 입맞춤이 그 증거예요.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제9권 523∼539행

 

  


노인들이나 법도를 알고, 무엇이 허용되고, 무엇이 그르고,

무엇이 옳은지 묻고, 법규를 따지며 지키라 하세요!

경솔한 사랑이 우리 또래에게는 어울려요. 우리는 무엇이

허용되는지 아직 알지 못하며, 모든 것이 허용된다고 믿어요.

그 점에서 우리는 위대한 신들의 본보기를 따르고 있지요.

엄하신 아버지도, 소문에 대한 거리낌도, 두려움도

우리를 가로막지 못할 거예요. 두려워할 만한 이유가 있다면,

우리는 은밀한 사랑의 즐거움을 남매라는 이름으로 가리게 될 거예요.

그러면 나에게는 그대와 은밀히 이야기를 나눌 자유가

주어질 것이며, 우리는 남들이 보는 앞에서 포옹하고

입맞추어도 좋을 거예요. 그만하면 부족한 게 뭐죠?

그대는 그대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하지만 극단적인 정염이

강요하지 않았더라면 고백하지 않았을 여인을 불쌍히 여기세요. 그대는

내 무덤에 내 죽음의 원인으로 그대의 이름이 새겨지지 않게 하세요!"

그녀가 아무 소용없을 이런 말을 적어 넣었을 때

서판이 가득 차 맨 마지막 줄은 가장자리에 매달렸다.

그녀는 지체 없이 사실상 자신의 범죄를 고발하는 이 편지에다

이름을 새긴 보석 반지로 도장을 찍었는데, (입에 침이 말라) 눈물로

그것을 적셨다. 그리고 그녀는 부끄러워하며 하인 한 명을 부르더니

소심하고 상냥한 목소리로 "가장 충실한 하인이여, 이것을 전하게,

내" 라고 말하고 나서 한참 뒤에야 "오라버니께!" 라고 덧붙였다.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제9권 551∼570행

 

  


그는 정복될 거야! 다시 해보아야 해. 내가 일단 시작한 일에

나는 결코 싫증내지 않을 거야. 내 몸에 숨결이 남아 있는 한 말이야.

내가 시작한 일이 취소할 수 있는 것이라면,

아예 시작하지 않은 것이 최선책이겠지. 하나 일단 시작한 이상

차선책은 그것을 끝까지 쟁취하는 거야.

내가 시작한 일이 취소할 수 있는 것이라면,

아예 시작하지 않은 것이 최선책이겠지. 하나 일단 시작한 이상

차선책은 그것을 끝까지 쟁취하는 거야.

내가 여기서 구애를 그만둔다 해도 그는 내 다담한 행동을

두고두고 기억하게 될 거야. 내가 여기서 그만둔다면 그 때문에

오히려 나는 경솔하게 변덕을 부렸거나 그를 시험해보았거나

그에게 덫을 놓은 것처럼 보이겠지. 그리고 내 마음을

부추기고 불태우는 것은 사실은 사랑의 신인데도

그는 틀림없이 내가 애욕에 제압되어 그러는 줄 알겠지.

간단히 말해, 죄를 짓고도 짓지 않은 것으로 할 수는 없어.

나는 편지도 썼고 구애도 했어. 나는 내 욕망을 드러냈어.

더 이상 아무 짓도 않는다 해도 나를 죄 없다고는 할 수 없지.

앞으로 남은 일은 희망은 키울지언정 죄는 별로 키우지 않겠지."

그녀는 말했다. 그리고 (그만큼 그녀는 마음이 갈팡질팡했다.)
그녀는 시도한 것을 후회하면서도 다시 시도하고 싶어했다.

그녀는 절도를 잃었고, 불행히도 거듭해서 퇴짜를 맞았다.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제9권 616∼632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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